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⑨ 사면초가의 유럽: ‘돈로 독트린,’ 그린란드, 그리고 중국
이숙종
EAI 석좌 연구위원;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특임교수

Editor's Note

이숙종 EAI 석좌 연구위원(성균관대 특임교수)은 트럼프 행정부의 ‘돈로 독트린’과 그린란드 매입 위협, 그리고 중국의 고부가가치 제조업 공세로 인해 유럽이 전례 없는 안보·경제적 ‘사면초가’ 상황에 직면했다고 진단합니다. 저자는 대서양 동맹의 균열과 내부 극우 세력의 부상 속에서 유럽이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외교적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이 교수는 강대국 중심의 무질서한 국제 환경에서 한국이 중견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가치와 실익을 공유하는 유럽과 공급망 및 첨단 기술 분야에서 긴밀히 연대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개요


동아시아연구원은 새해를 맞아 급변하는 세계질서와 국제정세를 전망하는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2026년 국제정치는 미·중 전략 경쟁의 구조화, 동맹 질서의 재편, 지정학과 경제·기술 안보의 결합, 그리고 인공지능과 군사·안보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중첩되는 전환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중견국과 지역 질서 전반에 새로운 선택과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미국을 출발점으로 일본, 중국, 인도·태평양, 국제정치경제, 인공지능(AI), 국방, 북한, 유럽에 이르기까지 주요 행위자와 핵심 이슈를 순차적으로 조망함으로써, 2026년 세계질서의 구조적 변화와 그 함의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각 논평은 단기적 현안 분석을 넘어 중장기 전략 환경을 진단하고, 한국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발간 순서


1. EAI 선정 2026년 국제정세의 10대 트렌드 [논평 읽기]

2. 미국 [논평 읽기]

3. 일본 [논평 읽기]

4. 중국 [논평 읽기]

5. 인도·태평양 [논평 읽기]

6. 국제정치경제 [논평 읽기]

7. 인공지능(AI) [논평 읽기]

8. 국방 [논평 읽기]

9. 유럽 [논평 읽기]

10. 북한 [논평 읽기]


   

1. 들어가는 말

 

유럽이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4년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종전 협상은 지지부진한 가운데 러시아의 서진 영토 야욕이 계속되고 있고, 나토의 핵심 동맹국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를 내놓으라며 위협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혁신 동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중국의 고부가가치 제조업 상품 침투로 산업 기반이 잠식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유럽연합의 단결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지만 유럽 여러 나라에서 득세하는 극우세력은 정치적 불안정을 키우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안보 위협에 이어 동맹국 미국으로부터 영토 야욕 및 가치 갈등, 중국의 경제적 위협, 그리고 극우세력의 득세까지 그야말로 사면으로부터 위기 경보가 울리는 셈이다. 유럽은 대서양관계의 파국을 막고자 대미 외교에 힘쓰면서도 헤징전략의 일환으로 인도태평양지역에 손을 내밀고 있다. 국제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이 대전환기에 유럽과 인태지역 국가들 간의 협력과 연대가 절실하다. 이 국면에서 한국이 가치와 이익 모두에서 유럽과 연대해야 한다.

 

2. 대서양관계의 이완에서 파국?

 

돈로 독트린

 

유럽의 지정학적 환경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는 변화의 동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에게 ‘전쟁 없는 평화’는 안보의 핵심 가치였다. 냉전 초기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이후 나토)는 소련의 팽창을 억제하기 위해 1949년 12개 유럽 및 북미 국가가 결성한 정치·군사 동맹으로 출범했다. 회원국 중 한 국가에 대한 공격을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이 집단방위(collective defense) 체제는 지속적으로 회원국을 늘려 왔고, 소련 해체 이후에도 동유럽 국가들의 가입을 통해 외연을 확대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평화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유럽 내에서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공하는 사태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에 따라 나토의 임무도 전통적 전쟁 억지보다는 민주주의 가치 수호, 테러 대응, 사이버 안보 등 위기관리 임무로 이동해 왔다. 그러나,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당연시 되어 왔던 유럽의 평화를 깨뜨렸다. 회원국들은 냉전 종식이후 다시 러시아를 자국 및 역내 안보에 가장 중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하면서 회원국 수는 32개국으로 늘어났다.

 

둘째 변화 동인은 미국의 전략적 전환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미국 우선주의’가 미주 권역에 집중되면서 유럽으로부터는 멀어지고 있다. 나토의 군사적, 정치적 리더 역할을 하던 미국은 유럽 안보는 나토 회원국 스스로 짊어지라며 압박을 해오고 있다. 대서양관계의 긴장은 방위비 분담 차원을 넘어 자유민주주의 가치 연합의 이완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2025년 2월 뮌헨안보회의(MSC)에서 있었던 밴스(J.D. Vance) 미국 부통령의 기조연설은 유럽 지도자들에게 충격이었다.[1] 밴스는 유럽의 민주주의와 안보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러시아나 중국보다 더 큰 위협은 유럽 “외부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민 정책과 표현의 자유 문제를 지적했는데, 이는 전통적 안보 담론을 넘어서 ‘문화 전쟁’ 의제로 받아들여져 유럽 지도자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 왔다.[2]

 

이러한 가치 충돌은 2025년 11월 발표된 미국 국가안보전략(NSS)에서 더 분명히 나타난다.[3] 보고서는 유럽을 나토의 비효율적 방어 체제, 과도한 규제로 인한 경제 침체, 이민 문제와 DEI 가치 옹호 등을 이유로 유럽이 미국과는 다른 ‘문명적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될 경우, 20년 후의 유럽은 현재와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며, 나토 회원국들 또한 비유럽계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게 되어 미국을 동맹으로 인식할지 의문이 든다고 서술한다. 보고서는 유럽과 러시아 간 전략적 안정성 조성을 위한 미국의 관여를 언급하지만, 나토의 확장에 대한 비판과 유럽의 경제·기술·통상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를 주로 하고 있다.

 

NSS 2025는 미국의 이익과 거리가 먼 지역에 대해서는 불간섭주의(non-interventionism)를 지향하고, 미주 지역(Western Hemisphere)에서의 패권 유지에 집중하는 ‘트럼프식 먼로 독트린(Trump Corollary to the Monroe Doctrine)’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른바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으로도 불리는 이 전략 하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3일 베네수엘라 마두로(Maduro) 대통령을 전격적으로 생포해 뉴욕 법정에 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명분을 마약으로부터 미국 보호와 석유 자원 유치로 말하면서 민주주의 수호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남미 좌파정권들을 향한 포함외교(Gunboat Diplomacy)가 어디로 확장될지 모르는 가운데 확실한 것은 돈로 독트린에서 유럽은 뒷전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권역으로는 인도·태평양 지역만을 유익한 전략 공간으로 상정하고 있는데, 이곳은 세계 경제의 중심이자 중국과의 지정학적 경쟁의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유럽 지도자들은 11월에 발표된 NSS 2025를 대서양동맹에 대한 미국의 리더십 철회로 보고 있다. 영국 런던의 싱크탱크 채텀하우스(Chatham House)의 로럴 랩(Laurel Rapp)은 트럼프 1기 행정부의 2017년 안보전략이 중국과 러시아를 수정주의 세력으로 규정했던 것과 달리, 이번 보고서는 거래 중심의 접근과 권위주의 체제와의 타협을 드러낸다고 평가한다. 유럽은 이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가변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재확인되었다고 인식한 만큼, 향후 파트너십 다각화를 통한 전략적 헤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4] 문화충돌에 대한 부분은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안토니우 코스타(António Costa)는 NSS 2025가 유럽 내정에 대한 간섭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동맹국은 서로의 정치적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며, 어떤 정당이 옳고 그른지를 미국이 유럽 시민을 대신해 판단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미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지적한 EU 디지털서비스법(DSA)에 대해서도, 다원성 없는 정보 환경에서는 정보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존재할 수 없다며 유럽의 규제 자율성을 옹호했다.[5]

 

그린란드 병합 위협

 

잊을 만하면 불거지던 트럼프 대통령의 덴마크령 그린란드(Greenland) 매입 발언이 수위가 높아지면서 대서양관계에 큰 긴장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가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처음 밝힌 것은 2019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서였다. 덴마크 총리 메테 프레데릭센(Mette Frederiksen)은 당시 이를 ‘터무니없다(absurd)’며 일축했는데, 이에 트럼프는 덴마크 방문 일정을 취소한 바 있다. 트럼프는 재집권하면서 그린란드 매입을 추진할 의사를 다시 내비치기 시작했다.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던 2024년 12월부터 “미국은 그린란드 지배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2025년 1월엔 그린란드를 차지하려면 군사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해 논란을 불렀다. 3월에는 고위급 미 대표단을 그린란드에 보냈다. 나토는 9월, 미국을 빼고 그린란드에서 군사훈련을 하면서 주권보호 의지를 보인 바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12월 공화당 소속 제프 랜드리(Jeff Landry) 루이지애나 주지사를 그린란드 특사로 임명하여 덴마크 정부와 그린란드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마두로 생포이후 트럼프가 다시 그린란드 병합을 주장하기 시작하자 덴마크와 유럽 지도자들은 심각한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난 미국의 서반구 팽창주의가 그린란드를 향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1월 4일 트럼프는 그의 전용기에서, “우리는 그린란드가 필요하다. 국가 안보 관점에서 그렇다.” "그린란드 도처가 러시아, 중국 선박으로 뒤덮여 있고, 덴마크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미 미국은 덴마크와 1951년 방위협정을 맺어 툴레 공군기지를 그린란드에 두고 자유롭게 군사활동을 할 수 있어 이런 논리는 계속 반박되어 왔다. 트럼프 발언 다음날인 1월 5일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다른 나토 회원국을 공격한다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국제사회, 게임의 민주적 규칙,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방어연합인 나토가 와해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미국이 위협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6] 1월 6일, 나토의 7개 주요 회원국—-덴마크,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스페인—지도자들은 “그린란드의 일은 덴마크와 그린란드가 결정한다”는 공동 성명을 채택하였다. 성명은, “그린란드를 포함한 덴마크는 나토의 일부이며, 북극 안보는 미국을 포함한 나토 동맹국들과 함께 주권, 영토보전, 국경불가침을 포함하는 유엔 헌장을 지키는 가운데 집단적으로 성취되어야 한다”고 적었다.[7]

 

덴마크의 외교장관과 그린란드 관계자는 1월 14일 백악관을 방문해 밴스 부통령과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과 만남을 가졌다. 당일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즈 기사에 의하면,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덴마크 측이 요청했던 만남이었으나 서로 다른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고 한다. 대신, 고위급 워킹그룹을 만들어 북극 안보에 관한 앞으로 논의를 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회담에 앞서 자신의 SNS에 그린란드는 그가 구축하고 싶어 하는 미사일 방어체제인 골든 돔(Golden Dome)에 전략적 위치상 필요하며, 미국이 그린란드를 소유할 때 나토는 훨씬 강력하고도 효과적이게 될 수 있다고 적었다. 이에 그린란드 방어에 연대감을 표시하고자 덴마크, 독일, 프랑스, 영국 등 8개 나토 회원국은 소수의 병력을 보냈다. 그러자 트럼프는 1월 17일 이들에 대해 2월 1일부터 10%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게 되면 기존 상호관세 15%에 더해져 25%의 관세를 내게 되는 셈이다.

 

그린란드 문제가 트럼프의 관세 위협으로 치닫자 유럽도 보다 강경해지고 있다. EU 지도자들이 지난해 대미 무역 협상 때 마련했던 160조원 규모의 보복관세를 다시 검토하고 있다거나 미국 채권을 팔 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덴마크의 한 연기금은 실제 보유하던 미 국채를 시장에 팔았다. 이에 영향을 받아 미 주식이 한때 폭락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추가 관세 대상이 된 나토 8개국은 1월 19일 발표한 공동선언에서 추가관세 위협은 대서양관계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면서 강력히 경고했다.

 

이어 개막한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은 트럼프 성토장이 되었다. 1월 20일 연설에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국제법이 짓밟히며 유일하게 의미있는 법이란 가장 강한 자의 법인 무규범 상태로 들어서고 있다”며 “제국주의 야심들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다”고 규탄했다. 21일 청중으로 꽉 채운 포럼 회의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는 북미의 일부로 당장 협상을 원하며, 무력으로는 병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진 마크 뤼터(Mark Rutte) 나토 사무총장과 회동이후 자신의 SNS에 관세 추가 부과를 철회하며, 그린란드와 북극의 미래에 관한 협상 틀에 합의했다고 썼다. 이 협상 틀은 그린란드에 미국이 소유권을 가질 수 있는 군기지를 건설하는 것과 광물 채굴권이 포함된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 뉴스에 그린란드 주민들은 나토가 자신들을 대신해 미국과 이런 방식으로 딜을 할 권한이 없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다보스 포럼을 계기로 파국으로 치닫던 대서양관계는 일단 진정되는 모양새이지만 불신의 골이 깊어진 만큼 미국과 나토의 관계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유럽의 대응

 

유럽 지도자들은 이러한 미국 우선주의 및 미주대륙 패권주의가 트럼프 행정부를 넘어 일정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미·유럽 관계의 구조적 이완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변화는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위험한 안보 환경에 직면한 시점과 맞물려 있다. 2024년 하반기 이후 폴란드, 루마니아, 덴마크, 독일 등의 영공에 러시아산으로 추정되는 드론이 반복적으로 출몰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었고, EU 지도자들은 하이브리드 전쟁에 대응하기 위한 ‘드론 장벽’과 동부 전선 감시 체계 구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병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징병제 부활 또는 새로운 군 복무제 도입 논의도 확산되고 있다. 독일은 모병제를 유지하되 병력 부족 시 강제 징집을 가능하게 하는 병역법 개정을 추진 중이며, 프랑스 역시 새로운 형태의 군 복무제 도입을 발표했다.

 

나토 집단방위의 전제는 여전히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적 보증과 작전 주도 능력이다. 미국은 GDP 대비 약 3.4% 수준의 국방비를 나토에 지출하며 동맹국에도 유사한 수준을 요구해 왔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나토는 각 회원국 GDP 대비 2% 국방비 지출을 가이드라인으로 설정했지만, 이행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트럼프의 압박 이후 유럽의 자강 노력은 가속화되고 있다. 2025년 6월 헤이그 나토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은 2035년까지 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기로 합의했고, 이 중 최소 3.5%는 핵심 방어 능력과 타켓 목표 공격 능력에 배정하기로 했다. EU 역시 27개 회원국 중 22개국이 나토 회원국이라는 점에서 군사 재무장을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유럽집행위원회는 2025년 ‘Readiness 2030’ 계획을 통해 군사적 기동성 강화와 방위산업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군사적 솅겐(Military Schengen)’에 가까운 목표로, 단일 승인 절차를 통한 군사 장비 이동, 긴급 패스트트랙 체제 구축, 인프라 우선 접근권 보장, 물류·수송 역량 공유, 나토 및 파트너국과의 협력 강화를 포함한다.[8]

 

이러한 유럽의 자강 노력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유럽은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재무장과 병행하여 미국과의 대서양 동맹을 유지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동시에, 트럼프의 추가 관세 위협을 일단 막아낸 유럽 지도자들은 예측불허의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더 이상의 양보 없이 자신들의 카드를 사용하면서 전략적 자율성을 도모할 것이다.

 

3. 유럽 내 중국 위협감 확산과 대중 디리스킹 전략

 

유럽의 중국과의 관계는 견제와 갈등이 확산될 전망이다. EU는 2019년 3월 EU-China: A Strategic Outlook에서 설파된 3중 대중 전략을 추구해 왔다. 중국을 환경과 같은 지구적 과제의 협력자, 통상과 투자에 있어 경쟁자, 체제문제에 있어서는 권위주의 확산을 막아야 할 시스템 라이벌로 간주해 대응하는 것이다.[9]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편을 든 중국을 보면서 중국 역시 안보 위협으로 보는 인식이 강해졌다.

 

이에 더해 중국이 유럽 산업을 공동화하고 있다는 경제적 불안감이 커졌다. 중국 제조업의 저가 과잉생산과 불공정 경쟁으로 말미암아 자동차 및 기계산업, 의약품, 반도체 등 유럽의 성장과 안정을 해칠 ‘중국 쇼크 2.0’이 휘몰아치고 있다고 본다. 유럽 제조업 경쟁력 약화는 고용과 복지를 중시하는 유럽의 사회경제 정책에 타격을 줄 수 있어 대중정책이 경제안보 쪽으로 무게추가 옮겨지고 있다.[10] ‘중국 쇼크 1.0’이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저임금 경공업 중심의 중국 수출품 범람으로 선진국 특히 미국 제조업과 고용에 충격을 주었다면, 2.0은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로봇, AI, 반도체 장비 등 고부가가치 제조업에서의 과잉생산과 수출 공세를 의미한다. 즉, 이번에는 유럽의 핵심 산업과 전략 산업 자체가 직접적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2024년 기준으로 보면, 중국은 EU의 3위 수출국이자 1위 수입국으로 EU의 대중 무역 적자는 수백억 유로에 달한다. EU의 대중 수출은 2023년 192억 유로, 2024년 168억 유로이지만, 같은 기간 중국으로부터 수입은 464억 유로와 441억 유로였다. 두 해 모두 매년 무역적자가 약 270억 유로에 달했던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품에서 제조업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는 현실이다. 2024년 기준으로 중국으로부터 EU가 가장 많이 수입한 품목들은 전기통신장비, 자동차 프로세싱 기계, 전기 기계 및 장치 등 제조업 품목들이다.[11] 중국 수출품 주력이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 이동하면서 유럽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중국 전기차가 독일 자동차 산업에 큰 타격을 입힌 예는 전형적이다.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유럽 자동차 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펼치고 있는 한편, 메르세데스, BMW, 아우디 등 독일의 고급 자동차 브랜드의 중국 시장 판매는 감소하고 있다.

 

중국이 유럽 산업을 공동화하고 있다는 위기인식 배후에는 집중 투자와 혁신으로 무장한 중국 제조업 부흥이 지정학적 경쟁과 맞물려 총력전 양상의 정치경제 모델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유럽의 핵심 산업을 약화시키는 소용돌이를 맞아 단일시장으로서의 스케일을 활용해 투자와 혁신을 통해 전략산업을 보호 및 육성하고 유연한 공급망 확보에 나설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12]

 

경제안보 측면에서 유럽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전략으로 디리스킹(De-Risking)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지정학적 리스크를 관리하려는 움직임이다. 2024년 9월 발간된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가 주도한 ‘유럽 경쟁력의 미래’ 보고서는 혁신을 통한 경쟁력 제고와 함께 디지털과 희귀광물 공급망 등 대외 의존도를 줄일 것을 핵심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13] 중국의 희토류 통제가 유럽에 대해 전격적으로 실시되지는 않았지만 희토류 통제도 유럽 경제안보의 우려 사항이다. Rebecca Arcesati와 Jacob Gunter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는 통상 갈등에 대한 보복 차원을 넘어서 중국의 산업 지배력 유지, 중국으로의 생산 투자 유도, 무기 생산 억지 등과 같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민·군 분야 모두에 공급망 차단 효과를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중국은 라이센스제를 도입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는데 수입된 희토류 재고가 떨어지면 유럽 자동차 회사들은 배터리 생산을 일시 중지하고 물량이 들어오기를 대기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는 결국 중국 전기차의 지배력을 돕기 위함이란 것이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는 광물자원만이 아니라 이를 가공하는 기술까지 포함해 다른 나라들이 희토류 생산능력을 갖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대응하는 전략으로는 EU가 유럽 기업들에 보조금 지원, 보호규제, 중국 희토류의 수입 쿼터 도입을 통해 중국에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14]

 

유럽과 미국은 중국의 제조업 과잉생산에 공동 대응해 효과성을 높이고, 핵심 첨단기술의 대중 수출을 통제하고, 공급망 안전을 위한 협력하는 등 중국 견제를 위한 협력 어젠다가 많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 관계가 위축되어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대중 공동전선을 펼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안보에 있어서는 미국에게 가장 큰 중국 위협은 대만문제라면 유럽에게는 역내 중·러 밀착으로 결이 다르다. 경제 영역에서도 관세나 기술정책에 있어 파열음을 내고 있어 중국 견제에 대한 상호 협력은 선택적이고 부분적일 가능성이 높다.[15]

 

유럽과 미국 사이 대중 공조가 별로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유럽 주요국들이나 EU는 대중 디리스킹 전략의 일환으로 인태지역 국가들과의 협력강화에 나서고 있다. 이 경우 공급망 안정이나 사이버 안보 문제에 있어 중국에 대해 위협감을 갖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이 주 대상이 될 것이다. EU의 접근방식은 미국보다 다자적이고 제도적인 협력 방식을 취할 것이어서 한국, 일본, 호주 등 주요 인태지역 국가들이 이에 호응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아시아 국가들도 미국 우선주의에서 다각화를 꾀하는 헤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4. 유럽과 미국의 극우 연대의 한계

 

유럽 내 극우 세력의 확산은 이제 일시적 현상을 넘어 구조적 정치조류로 자리 잡고 있다. 무역·분쟁·환경과 같은 초국가적 협력보다는 자국 우선주의를, 이민과 인종·종교적 다원주의보다는 토착 문화 보호를 강조하는 비자유주의적 조류는 유럽과 미국 공통이어서 양측의 연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겠다.

 

2024년 6월 유럽의회 선거 이후 구성된 720석의 유럽의회는 8개 정파와 무소속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민족주의 성향의 우파 그룹은 세 개로 나뉜다. 유럽보수개혁그룹(European Conservatives and Reformists, ECR, 78석), 유럽을 위한 애국자 그룹(Patriots for Europe, 84석), 주권국가 유럽 그룹(Europe of Sovereign Nations, ESN, 25석)이다. ECR과 Patriots는 EU 탈퇴보다는 EU를 국가 주권을 중시하는 정부 간 연합체로 개혁하는 노선을 지향한다. ECR에는 프랑스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 RN), 이탈리아의 프라텔리 디탈리아(Fratelli d’Italia), 루마니아의 AUR, 폴란드의 법과정의당(PiS) 등이 속해 있다. 2024년 선거를 계기로 새롭게 결성된 Patriots 그룹은 세 번째로 큰 정파로 부상했으며, 프랑스 RN, 이탈리아의 레가(Lega), 스페인의 복스(Vox),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án) 총리가 이끄는 헝가리의 피데스(Fidesz)가 참여하고 있다. ESN 그룹에는 독일 대안당(AfD)을 비롯해 불가리아, 체코, 프랑스, 헝가리, 리투아니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등의 정당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가장 급진적인 주권주의 성향의 그룹으로, EU 권한의 대폭 축소 또는 제한적 경제공동체 수준으로의 전환을 주장하며 환경 협력과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에 반대하고, 이민의 중단을 추구하는 강력한 토착 민족주의 성향을 보인다.

 

유럽의 극우 정당들은 이미 여러 국가에서 지방정부를 장악한 데 이어 중앙정부 차원의 집권 가능성도 높이고 있다. 프랑스 RN, 영국의 개혁당(Reform UK), 독일 AfD 등은 전통적인 좌·우 정당의 지지 기반을 잠식하며 세를 불려 왔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브렉시트를 주도했던 나이절 패라지(Nigel Farage)가 이끄는 개혁당의 지지율이 노동당과 보수당을 모두 앞지른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유럽 극우정당들이 단독정부를 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연립정부에 파트너로 참여해 유럽의 주류 정당들의 정책과 엇박자를 낼 가능성은 크다.

 

Besch와 Verma는 이러한 극우 정당들을 ‘수정주의 우파’로 규정하며, 이들이 미국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운동과 광범위한 연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와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Giorgia Meloni) 총리는 자신들의 이념적 지향이 MAGA 운동과 유사하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들을 유럽의 대표적 지도자로 치켜세웠다. 특히 AfD는 MAGA 네트워크와의 유대가 두드러지는데,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AfD만이 독일을 구할 수 있다”고 발언해 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밴스 부통령과 머스크가 EU의 디지털서비스법을 표현의 자유 침해로 비판하는 입장이나, 트럼프 행정부가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평가절하 하는 태도 역시 AfD를 비롯한 유럽 극우 정당들과 유사해 협력을 통해 상호 정당화를 강화하고 있다. 나아가 일부 극우 정당들은 러시아산 가스 재수입 등 경제적 화해를 주장하며 나토의 대러 제재 단결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16]

 

그러나, 이들의 연대는 제한적일 것이다. 국가 주권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국제기구와 초국가적 연합체를 경계한다는 점에서 MAGA와 유럽 극우 세력은 유사하지만, 초강대국인 미국과 27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EU 개별 국가들 사이에는 국력과 전략적 선택지가 크게 다르다. 미국은 UN, WHO 등 주요 국제기구 재정의 최대 기여국이자 막강한 군사강국으로 다자체제에 대한 선택적 탈퇴 및 거리 두기가 가능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다자 협력에서 훨씬 더 큰 이익을 얻는 중견·중소 국가들이다. 이러한 구조적 조건을 고려할 때, 브뤼셀의 간섭을 이유로 EU를 탈퇴하는 선택은 이미 버려진 카드가 되었다. 특히,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는 자국 농민과 노동자 보호를 핵심 의제로 삼는 유럽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의 이해와 충돌할 수 밖에 없다. 작년 유럽 대미 수출품에 대한 갑작스러운 추가 관세부과는 MAGA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을 것이다.

 

군사·안보 측면에서 MAGA와 유럽 극우 세력 간의 간극은 더욱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전반에 확산된 실존적 안보 위협 인식은 나토를 구심점으로 한 집단 방위와 역내 협력 강화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중국에 대해 보다 유화적인 입장을 보이는 일부 유럽 극우 세력의 태도 역시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과 상충될 여지가 있다. 그린란드 분란은 유럽의 극우세력으로 하여금 트럼프의 패권주의에 경각심을 일깨웠을 것이다. 결국 미국과 유럽의 수정주의 우파 연대는 반이민·반다양성이라는 포스트 리버럴 가치 차원의 느슨한 연대에 그칠 것이다.

 

5. 유럽, 다시 인도태평양지역으로

 

대서양동맹의 이완은 유럽으로 하여금 인도태평양 민주주의 국가들과 관계 강화를 도모하게 만들 것이다. 유럽의 인태지역으로의 전략적 관여 강화는 헤징전략의 논리적 귀결인 셈이다. 유럽 주요국들은 2010년대 말에서 2020년 초 사이에 규칙기반 질서 옹호를 위한 인태전략에 동참한 바 있다. EU[17]를 비롯해 영국,[18] 독일,[19] 프랑스[20] 등 주요국들은 대서양과 인도태평양의 연계를 강조했는데 여기에는 인태지역에서 안보, 경제, 체제 차원에서 날로 확장되는 중국의 영향력에 대응하는 것이 전 세계의 규칙기반 질서 확립에 핵심적이라는 생각을 미국과 공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유럽의 인태전략이 실질적 정책으로 진전을 이루지 못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은 유럽으로 하여금 다시 인태지역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전쟁 발발 약 4개월 후인 2022년 6월, 나토는 마드리드 정상회의에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이른바 IP4 국가들을 초청하기 시작했다. 이는 유럽과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가 상호 연계되어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 조치로, 당시 바이든 행정부의 강력한 지지가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IP4 국가들은 이후 3년 연속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으나, 2025년 헤이그 정상회의에서는 뉴질랜드 총리만이 정상 자격으로 참석하고, 나머지 국가들은 정상 대신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하는 데 그쳤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나토와 인태 지역의 미 동맹 국가들 사이에 상호 협력이 심화되는 흐름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이 IP4와의 협력을 지속·강화하기 위해서는, IP4 국가들에게 미국의 명시적 지지가 없이도 유럽 안보에 관여하는 것이 인태지역의 핵심 이익에 부합한다는 논리를 설득력 있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유럽은 인태 국가들의 안보문제에 유럽이 기여할 수 있는 군사적, 외교적 지원 역량이 제한적이라는 현실을 알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은 군사적 협력보다는 자유와 인권, 규칙 기반 국제질서 수호라는 가치 외교를 인태 관여의 토대로 삼되 경제안보 분야를 보완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유럽은 군수 물자, 희귀 광물, 공급망 안정화, 디지털 및 AI 기술 협력 등 실질적 이익이 걸린 분야에서 한국·일본·호주와의 협력을 강화하려 할 것이다.

 

한국의 경우, 북·중·러 간 전략적 밀착과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은 유럽 안보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으나, 동시에 중·러와 관계 개선도 추구하고 있어 유럽 안보를 위한 능동적인 외교는 제한적일 것이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한국에게 직접적인 군사 지원보다는 유럽 방위에 기여할 수 있는 군수 물자 수출 및 방산협력,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 반도체 등 공급망 협력, 다자체제 옹호 국제공조 등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6. 나가는 말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러시아 견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재무장과 안보 결속을 강화할 것이다. 또한 대서양 동맹의 약화로 인해 인태지역과의 협력을 헤징 전략 차원에서 강화하고자 할 것이다. 그린란드 병합 위협으로 미국과 불신의 골이 깊어진 만큼 헤징을 넘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아가는 자유주의 유사입장국 간의 연대를 인태에서 찾으려 할 가능성도 크다. 안보나 통상 모두 아직 막강한 미국 영향력 아래 놓여 있지만 미중 경쟁에 치여 있는 아시아 국가들이 유럽과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설 동인은 상당히 존재한다. 특히, 유럽은 대중 디리스킹 전략상 유럽 주요국들이 반도체, AI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의 아시아 주요 제조업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또한 희토류와 같은 핵심 광물 및 제조업 주요 부품의 공급망 안정을 위한 협력에도 큰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들 문제는 아시아 주요 제조업 국가들도 공유하는 문제인 만큼 협력의 폭이 클 수 있다.

 

강대국들이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강압의 무기로 활용하거나 심지어는 영토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무질서의 시대를 맞고 있다. 다보스 포럼에서 마크 카니(Mark Carney) 캐나다 총리가 연설했듯이, 강대국에 순응하는 것이 안전을 담보하지 않으며, 중견국들은 인권 존중, 지속가능한 발전, 연대, 주권 및 영토보전과 같은 가치를 포함하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힘이 있다.[21] 강대국에 편승하거나 각자도생으로는 자율성을 얻을 수 없기에 아시아의 중견국인 한국은 뜻을 같이 하는 국가들과 협력해야 한다. 국제질서가 붕괴되고 있는 혼돈의 시기에 상호 존중과 호혜의 다자질서가 최소한의 범위에서 작동하도록 연대하는 것이 각 나라와 세계 모두에 이롭다. 이 목표에 있어 유럽 국가들은 가장 잘 준비된 파트너일 것이다. ■ 

 


[1] MSC, Munich Security Conference 2025: Speech by JD Vance and Selected Reactions, April 2025. https://securityconference.org/assets/02_Dokumente/01_Publikationen/2025/Selected_Key_Speeches_Vol._II/MSC_Speeches_2025_Vol2_Ansicht_gek%C3%BCrzt.pdf

[2] 연설 도중 “용납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항의했던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이후 열린 유럽 방위 패널에서,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되 이를 파괴하려는 극단주의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역시 나치즘에 대한 “네버 어게인(Never Again)”이라는 독일 사회의 합의와, 민족사회주의 범죄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독일대안당(AfD)은 양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3] White House,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November 2025. https://www.whitehouse.gov/wp-content/uploads/2025/12/2025-National-Security-Strategy.pdf

[4] Laurel Rapp, “Trump’s new national security strategy: Cut deals, hammer Europe, and tread gently around autocrats,” December 9, 2025. https://www.chathamhouse.org/2025/12/trumps-new-national-security-strategy-cut-deals-hammer-europe-and-tread-gently-around?utm_source=chatgpt.com

[5] POLITICO, “EU’s Costa warns US against interference in Europe,” December 8, 2025. https://www.politico.eu/article/eu-council-antonio-costa-warns-us-against-interference-in-europe/

[6] Reuters, “Denmark's prime minister says Trump is serious about wanting Greenland takeover,” January 5, 2026. https://www.reuters.com/world/europe/denmarks-prime-minister-says-trump-is-serious-about-wanting-greenland-takeover-2026-01-05/

[7] Foreign Policy World Brief, “NATO Leaders Push Back Against Trump’s Greenland Threats,” January 6, 2026. https://foreignpolicy.com/2026/01/06/trump-annex-greenland-nato-frederiksen-denmark/

[8] EU Commission, “ Commission takes steps to modernise European defence and improve military mobility,” https://commission.europa.eu/news-and-media/news/commission-takes-steps-modernise-european-defence-and-improve-military-mobility-2025-11-19_en

[9] EU Commission, EU-China: A Strategic Outlook, March 2019. https://commission.europa.eu/system/files/2019-03/communication-eu-china-a-strategic-outlook.pdf

[10] Abigael Vasselier and Tara Varma, “How should Europe position itself for systemic rivalry with China?.” Brookings Commentary, December 5, 2025. https://www.brookings.edu/articles/how-should-europe-position-itself-for-systemic-rivalry-with-china/

[11] eurostat, “China-EU - international trade in goods statistics,” https://ec.europa.eu/eurostat/statistics-explained/index.php?title=China-EU_-_international_trade_in_goods_statistics.

[12] Jacob Gunter and Mikko Huotari, “Shockwaves Made in China,” Internationale Politik Quarterly, October 20, 2025. https://ip-quarterly.com/en/shockwaves-made-china.

[13] European Commission, “The future of European competitiveness: Plan A/ A competitive strategy for Europe,” September 2024. https://commission.europa.eu/topics/competitiveness/draghi-report_en#paragraph_47059 에서 다운로드.

[14] Rebecca Arcesati와 Jacob Gunter, “China’s multi-purpose export controls raise pressure on Europe to derisk,” Mercator Institute for China Studies, October 1, 2025. https://merics.org/en/comment/chinas-multi-purpose-export-controls-raise-pressure-europe-derisk.

[15] Zack Cooper, “How should the United State cooperate with Europe on China strategy?.” Brookings Commentary, December 5, 2025. https://www.brookings.edu/articles/how-should-the-united-states-cooperate-with-europe-on-china-strategy/.

[16] Sophia Besch and Tara Verma, “Alliance of Revisionists: A New Era for the Transatlantic Relationship,” Survival 67;2, April-May 2025, pp. 7-38.

[17] The EU Strategy for Cooperation in the Indo-Pacific, 2021년 9월.

[18] Global Britain in a Competitive Edge: the Integrated Review of Security, Defence, Development and Foreign Policy, 2021년

[19] Policy Guideline for the Indo-Pacific Region, 2020년

[20] France’s Defence in the Indo-Pacific, 2019; France’s Partnerships in the Indo-Pacific, 2021.

[21] Davos 2026: Special address by Mark Carney, Prime Minister of Canada. https://www.weforum.org/stories/2026/01/davos-2026-special-address-by-mark-carney-prime-minister-of-canada/

 


■ 이숙종_EAI 석좌 연구위원;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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