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이슈브리핑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② 2026년 미국 외교정책의 변화와 국제질서
전재성
EAI 원장; 서울대 교수

Editor's Note

전재성 EAI 원장(서울대 교수)은 트럼프 2기 행정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미국이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약화시키고 ‘거래적 실용주의’와 ‘세력권 정치’라는 새로운 운영원리로 국제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저자는 2026년 미국의 외교가 중간선거 승리와 국내 경제 부흥을 최우선으로 삼아, 중국과는 경제적 휴전을 모색하되 첨단 기술과 안보 분야에서는 봉쇄를 지속하는 이중적 전략을 취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전 원장은 미국의 선택적 개입이 강화되는 환경 속에서 한국이 안보·기술을 결합해 동맹의 효용을 입증하는 동시에, 유사 입장국과의 연대를 통해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개요


동아시아연구원은 새해를 맞아 급변하는 세계질서와 국제정세를 전망하는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를 발간합니다. 2026년 국제정치는 미·중 전략 경쟁의 구조화, 동맹 질서의 재편, 지정학과 경제·기술 안보의 결합, 그리고 인공지능과 군사·안보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중첩되는 전환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중견국과 지역 질서 전반에 새로운 선택과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는 미국을 출발점으로 일본, 중국, 인도·태평양, 국제정치경제, 인공지능(AI), 국방, 북한, 유럽에 이르기까지 주요 행위자와 핵심 이슈를 순차적으로 조망함으로써, 2026년 세계질서의 구조적 변화와 그 함의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각 논평은 단기적 현안 분석을 넘어 중장기 전략 환경을 진단하고, 한국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2026년 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발간 순서


1. EAI 선정 2026년 국제정세의 10대 트렌드

2. 미국

3. 일본

4. 중국

5. 인도·태평양

6. 국제정치경제

7. 인공지능(AI)

8. 국방

9. 북한

10.  유럽


  

트럼프 2기 행정부 1년이 바꾸고 있는 국제질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국제질서는 대격변을 맞이하고 있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 미국 단극패권체제 질서가 유지될 수 없다는 분석은 공고해졌다. 그러나 다음 질서로의 이행과 새로운 대안적 질서에 대한 예측은 트럼프 2기 정부의 1년으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과연 트럼프 정부의 외교정책이 변화시키고 있는 국제질서의 범위와 심도는 어느 정도인가.

 

하나의 국제정치 권역은 조직원리와 운영원리의 두 축으로 구성된다. 조직원리가 질서의 가장 근본적인 축으로 행위자들 간의 근본적인 구성적 관계를 규정하는 가장 뿌리 깊은 원리라면 운영원리는 조직원리에 의해 성립된 단위들 간의 세력 배분, 규범, 규칙, 제도의 양상을 결정하는 원리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권역질서는 주권국가체제라는 조직원리 위에 미국이 주도하는 패권적 자유주의 운영원리가 작동한 질서였다. 운영원리는 행위자인 국가들이 의도적으로 구성하고 유지하고 파괴하는 원리인데 비해, 조직원리는 다양한 힘들과 긴장이 잠재적으로 존재하다가 일정한 강도를 넘어 현실화되는 구성적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질서는 베스트팔렌-주권국가 질서라는 조직원리를 토대로 400년 가까이 유지되어 왔고, 지난 80년은 소위 자유주의 규칙기반 질서라는 운영원리를 창출하고 강화했다. 트럼프 정부는 기존의 자유주의 운영원리를 상당부분 약화시키고 있다. 자유주의 운영원리는 국가주권의 다양한 원칙들, 즉 영토의 보존, 내정불간섭, 국제법 준수, 다자주의 등의 원칙들 위에 인권에 기초한 국제질서, 시장에 기초한 개방적 국제경제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운영원리이다. 그리고 이러한 운영원리는 미국이라고 하는 압도적 힘을 가진 패권에 의해 가능했고, 미국은 질서의 실패를 막기 위한 국제질서의 다양한 공공재를 생산하여 공급함으로써 질서를 부여하는 역할을 해왔다.

 

트럼프 정부는 자유주의 운영원리의 대부분의 원칙들을 약화시키며 미국의 국가이익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며 거래적 실용주의와 강압적 패권이라는 대안적 운영원리를 제시했다. 지난 1년간의 정책들이 자유주의 운영원리를 재조정하려는 시도인지, 자유주의 운영원리를 버리고 새로운 운영원리를 추구하려는 것인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남은 3년 간 트럼프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의 성공 여부, 트럼프 정부 정책에 대한 대안적 정책의 등장 여부, 3년 후 대통령 선거의 향방, 무엇보다 패권적 국가이익 추구 방식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판단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만약 자유주의 운영원리가 약화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조직원리까지 변화된다면 주권국가체제의 기본 원칙도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행위자들이 선택하는 운영원리가 국제질서의 힘들에 영향을 미쳐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새로운 조직원리의 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적 역구성의 과정이 현실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전략 변화

 

트럼프 정부는 12월 5일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을 출간하고,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12월 6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 연설에서 국방전략의 개요를 설명하면서 미국 외교전략의 변화를 보여주었다.[1] 미국은 가장 근본적인 외교전략의 목적을 표방하는 대전략 개념을 제시해왔는데 현재까지의 내용으로 트럼프 정부의 대전략 개념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안보전략』은 변화하는 세계질서에 대한 개념적 규정을 하고 있지 않다. 미국이 추진하는 대전략의 내용과 미국의 핵심 이익에 대해 논하고 있지만 현재 국제질서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과 앞으로 건설해야 할 국제질서에 대한 청사진이 명확하지 않다. 다만 미국의 이익이 실현되는 국제질서라는 모호한 개념이 제시되어 있다. 국제질서의 현황 및 이행 과정, 미래의 대안적 질서에 대한 이론적 규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로 지금의 국제질서를 진단하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정부가 현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둘째, 미국의 이익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위협세력에 대한 규정이 빠져있다. 기존의 『국가안보전략』들은 변화하는 국제질서에 대한 규정과 미국의 이익에 위협이 되는 세력들을 구체적으로 명명해왔다. 이러한 위협인식은 다른 국가들과 공유되거나 혹은 반발을 불러오는 중요한 항목이었다. 지난 바이든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처럼 중국과 러시아, 북한과 이란, 테러세력들을 명백히 위협이라고 규정한 것과는 대비된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각각 안보위협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미국이 이러한 위협인식을 공유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하기 어려워졌다. 통상 위협으로 규정된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도 미국이 자신을 위협으로 보는지, 타협의 대상으로 보는지 명확한 인식을 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셋째, 지난 30여 년 간 탈냉전기 미국의 외교대전략에 대한 포괄적 비판을 하고 있다. 공화당의 신보수주의, 민주당의 자유주의 국제주의 모두가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대전략이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세계 전체에 대한 패권정책을 수행하고 민주주의를 확립하고자 하며, 지구적 차원에서 자유주의 무역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외교대전략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자유주의 운영원리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안보전략』은 미국 주도 질서의 중요성, 패권으로서 질서부여에 힘썼던 외교대전략을 미국의 지속적 지배(permanent American domination of the entire world)를 추진했다는 말로 비판하고 있어 흥미롭다.

 

넷째, 미국의 문서들은 트럼프 정부의 대전략이 유연한 현실주의(flexible realism), 혹은 실용적 현실주의라고 명명하고 있다.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핵심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정책의 우선 순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이 전 세계에 걸쳐 전방위적 개입을 추구했던 과거와는 달리 불개입을 기준으로 설정하고 미국의 핵심이익이 명확할 때에만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군사적 개입에 대해 헤그세스 장관은 소위 신와인버거 독트린을 제시하여 미국의 핵심적인 정치적 이익이 걸려있고 군사적 승리가 명백할 때만 해외 군사개입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명백히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건설하는 세계

 

이러한 대전략을 바탕으로 트럼프 정부가 지향하는 국제질서의 모습을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은 무엇보다 자국의 안보를 중심에 놓고 있다. 멕시코 국경에서 넘어오는 이민을 엄격히 관리하고 국경안보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마약의 유입 등 소위 마약테러리스트의 적발과 퇴치를 위해 군사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본토방위의 범위가 단순히 국경안보를 넘어 소위 근외(near abroad)에 대한 개입으로 확대된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중남미와 북극에 대한 영향력, 세력권 건설이 본토방위의 핵심이라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서반구가 미국의 생존, 국가안보, 산업, 통화, 이민 통제의 기반 공간이 된다는 인식이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작전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고 마두로 정권에 대한 압박도 심화되고 있다. 『국가안보전략』이 제시하고 있는 서반구에 대한 전략은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중남미 정권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소위 “enlist” 전략으로 미국의 전략 목표 수행을 위해 현지 국가들을 질서관리자로 결속하겠다는 것이다. 서반구 전체를 미국 주도 안보, 산업, 공급망, 자본 세력권으로 묶는다는 전망으로 트럼프식 먼로독트린의 실행원칙(Trump Corollary to the Monroe Doctrine)을 내세우고 있다. 근외는 비단 중남미 뿐 아니라 그린란드와 북극까지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캐나다 역시 미국의 압박에 시달릴 가능성을 내포한다.

 

미국이 제시하는 근외전략은 기존의 고전적 국가 주권 개념을 약화시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중남미 국가들이 미국에 우호적인 정책을 취하지 않을 경우 이들 국가들의 실질적 주권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민과 마약은 물론 비서반구 국가들의 영향력 확장을 막기 위해 중남미 국가들의 다양한 정책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세력권(sphere of influence) 정책은 강대국의 세력권에 속하는 중견국 및 약소국의 실질적 주권을 제한하는 운영원리를 내포하기 때문에 자유주의 운영원리가 중시한 영토보존 및 타국의 주권 존중, 주권평등 및 내정 불간섭의 원리와 충돌한다.[2] 물론 자유주의 운영원리 하에서도 이러한 규범의 위반이 존재했기 때문에 세력권의 운영원리와 자유주의 운영원리를 정도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몬로 독트린처럼 이를 명시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차이를 가진다.

 

둘째, 서반구 이외의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군사적 불개입을 기본으로 하되, 핵심 이익이 걸린 지역에서는 경제, 외교, 동맹 재편을 통해 구조적으로 개입하는 전략으로 전환되고 있다. 『국가안보전략』은 유럽, 중동, 아프리카를 전통적 개입의 중심 공간이 아니라, 부담 전가와 선택적 관리의 대상 지역으로 재배치하고 있으며, 동남아와 중앙아시아 역시 독자적 전략 공간이 아니라 미·중 경쟁과 공급망 경쟁의 하위 전장으로 통합하고 있다. 유럽에 대한 문화·문명적 비판과 방위 부담 전가, 에너지, 기술 허브로 재정의된 중동, 자원, 투자 경쟁장으로 설정된 아프리카는 미국이 세계적 개입국에서 거점, 자원 중심의 선택적 패권국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중요한 지역은 인도-태평양으로, 미국은 안보, 경제, 기술 차원에서 이 지역을 자국의 핵심 이익 공간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미국이 서반구에서 배타적 세력권을 설정하는 것과 달리, 인도-태평양에서는 중국의 지역적 패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는 특정 국가의 지역 지배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반패권적 세력균형 논리로, 미국은 이 지역에서 패권국이 되기보다는 중국의 패권화를 저지하는 구조적 개입자로 자리매김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국 우위의 비대칭적 세력균형을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 제1도련선에서 중국이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거나 해상 통제권을 갖는 것을 부정하고, 이 지역 전반에서 중국의 지배, 차단 능력을 제거할 수 있는 군사적, 동맹구조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의 외교대전략을 단일한 세력권 전략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서반구에서는 배타적 세력권을 주장하면서도 중국의 아시아 세력권 형성은 부정하고 있으며 러시아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에 대한 제한적 영향권을 사실상 용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주권과 영토 보전이라는 보편 원칙에 기초한 질서가 아니라 강대국의 위계와 위협 인식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되는 복합적 세력권 질서를 반영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중국은 미국이 자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세력권을 허용하고 부정하는 이중적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미국은 다른 강대국의 세력권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강대국 간 협조체제의 가능성까지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세력권 분할이 기존의 자유주의 운영원리 자체를 부정한 것이라고 한다면, 강대국 간 협조체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존의 운영원리의 핵심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강대국 간 조정을 통해 규칙기반 질서를 개선해나갈 수는 있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전략』은 소위 유연한 현실주의 논의에서 다른 강대국들의 국내정치체제의 성격은 논하지 않고 이익에 따른 조정을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 강대국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지 않아도 이들의 외교정책이 합의에 이를 수 있다면 협상과 조정으로 공통된 운영원리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운영원리가 세력권 분할과 같은 원리일 수도 있겠지만, 기존의 원리를 유지하면서 조정과 합의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3]

 

만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실하게 종전되고 유럽의 지속가능한 안보체제가 자리잡는 한편, 인태지역에서 미중 간 군사적 세력균형 위에 경제적 조정, 협력 체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기존의 운영원리는 근본적 변화보다는 개선의 상황 속에서 진화해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미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국력을 회복하고 전략적 조정을 추구하는 한편, 중국, 러시아, 유럽 등과 지속적 조정을 해나가야 하지만, 강대국 간 협조가 반드시 세력권 분할로 나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넷째,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한 동맹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헤그세스 장관은 미국의 동맹들이 강한 국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미국의 핵심적 안보이익을 위해 더 많이 공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대중 안보전략에서 미국은 중국과 충돌이 아닌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고 있고 이는 거부억제전략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일본, 호주와 같은 핵심 동맹들이 중요하며 특히 한국을 모범적 동맹으로 거론하고 있다. 『국가안보전략』 역시 1도련선에서 중국의 우위를 제압하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동맹국들의 지역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안보동맹 뿐 아니라 경제, 기술 동맹의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기존의 동맹은 지정학적 거리에 의해 결정되었지만, 이제는 지경학적, 기정학적 거리에 의해 재편되고 있다. 미국은 경제적 부흥을 위해 재산업화, 방위산업 제조기반의 확보, 핵심광물 확보,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등 경제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중국에 대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자체 기술 생태계를 추진하면서도 동맹국과 첨단기술 협력, 핵심자원 확보, 에너지 확보 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경제와 기술의 우위를 통해 미래 미국의 힘이 확보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동맹 역시 안보적 차원 뿐 아니라 경제, 기술적 차원에서 재평가되고 미국과의 동맹의 거리가 재편될 것이다.

 

트럼프 정부 외교안보대전략의 문제점

 

트럼프 정부가 건설하고자 하는 세계질서는 과연 모순과 반발 없이 조성될 수 있을까. 이러한 세계질서는 진정으로 미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것일까. 첫째,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을 비롯한 제반 문서는 미국이 제시하는 바람직한 국제질서를 동맹국 및 국제사회와 공유하는 내러티브 전략, 선언적 전략의 일환이었다. 미국의 리더십의 내용과 그 밑에 깔려있는 이론적 정합성, 미국이 제공하는 공공재의 중요성을 믿고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과거의 사례였다. 그러나 앞서 논의한 바대로 트럼프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세계에 대한 비전은 전반적으로 결여되어 있고 미국의 이익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므로 동맹국과 전략적 파트너들, 국제사회는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깊은 회의를 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이 동맹국들에게 지속적이고 신뢰할 한만 안보공약과 안보 공공재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경제적 강압을 실행할 경우, 동맹국들은 미국이 제공해 온 패권 질서의 순이익을 재평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국가안보전략』이 미국이 패권국이 아니라 비개입과 거래를 중시하는 강대국으로 행동할 수 있음을 공식화한 점은, 동맹국들로 하여금 기존의 대미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19세기 초 먼로 독트린을 소환하는 것 역시 또다른 문제를 잘 보여준다. 당시 중남미 국가들은 독립 직후였고, 유럽 열강의 재개입 가능성이 실재했으며, 국제정치는 지역별로 분절된 상태였다. 반면 오늘날의 중남미는 국제법과 다자기구, 글로벌 금융과 공급망에 깊이 편입된 주권국가들로, 외부 세력과의 경제 관계는 이미 구조화되어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미국이 서반구를 배타적 세력권으로 설정하며 중국과의 경제 관계 축소를 강요할 경우, 이는 단순한 안보 조치가 아니라 타국의 경제 주권과 정책 자율성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다수의 중남미 국가에서 중국은 최대 교역 상대국이자 핵심 투자자이며, 항만, 에너지, 통신 인프라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세력권 설정 시도는 해당 국가들의 성장 전략과 주권적 선택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 서반구를 미국의 안보 공간으로 관리하려는 시도가 국경 방어를 넘어 강압적 경제 통제와 외교적 배제를 동반할 경우, 이는 주권이 평등한 권리가 아니라 세력권에 따라 차등적으로 허용되는 조건부 권리로 전환되는 질서 변화를 의미하며, 그에 대한 반발은 중남미는 물론 국제사회 전반에서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미국 우선주의, 자국 경제 부흥 노력 등이 기존 패권의 부담에서 비롯된 패권재조정 전략이라고 한다면 이해할 여지가 존재한다. 지난 30년은 단순히 단극체제였을 뿐 아니라 환경위기, 보건위기, 글로벌 사우스의 다양한 문제 제기, 지구화로 인한 공공악재의 확대 등 단일 국가 패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발발한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패권의 부담은 다양하게 나타났고 이는 미국의 천문학적 국가부채로 증명된다. 미국이 타국의 경제적 기여를 통해 국력을 회복하고 리더십 복원의 길을 택할 것인지의 전망이 지금 미국과 관계설정에서 핵심적인 지표인데, 트럼프 정부의 외교대전략은 이러한 전망을 더욱 불확실하게 하고 있다.

 

둘째, 트럼프 정부의 외교전략이 진정으로 미국의 이익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패권국가가 국익을 추구하는 방식은 보통 강대국의 이익추구 방식과는 다르다. 국제사회에 대한 구조적 기여를 통해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이익을 취하는 방식이다. 기축통화와 핵무기 독점, 다자주의의 일방주의적 운용 등이 패권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기축통화 발행국으로서 경제정책의 엄청난 권한을 확보하고 핵무기를 독점하고 동맹국들에게 핵확장억제를 제공함으로써 정치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많은 다자주의 제도들을 만들지만 정작 미국은 자신의 이익대로 이를 운용할 수 있는 행동의 자유를 가져왔다. 만약 미국이 이러한 리더십을 행사하지 않을 때, 많은 국가들은 달러 기축통화, 핵무기 비확산, 미국 주도 국제제도 등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동맹국과 파트너들은 달러 체제, 핵우산, 미국 주도 제도의 안정성에 대해 점차 위험 분산 전략을 모색하게 되고, 대안 결제망, 지역 통화, 자체 군사력, 소다자 협력체를 병행 구축할 유인을 갖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단기간에 미국의 레버리지를 높일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이 누려온 패권적이고 구조적인 이익의 기반을 잠식할 가능성이 결국 미국이 누려왔던 패권적, 구조적 이익이 약화될 것이고, 이러한 임계점을 더욱 앞당기고 있는 것이 현재 트럼프 정부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미국의 강력한 경쟁국들은 미국의 복합적 세력권 전략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며 보다 정당한 대안적 국제질서를 제시하는 내러티브를 강화할 것이다. 앞에서 논의한 대로 미국은 서반구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세력권 운영원리를 제시하면서 인태지역에서는 힘의 우위에 기반한 세력균형 운영원리, 유럽에서는 러시아와 협상을 통한 거래적 운영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서 이러한 구조는 지역별로 다른 규칙을 적용하면서도 미국의 전략적 우위를 고정하는 위계적 패권질서로 인식될 것이다. 이들은 미국 동맹국 내부의 불만과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다차원적 연대 전략을 활용하여, 미국 주도 질서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외교적, 담론적 공세를 강화할 수 있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가 제시하는 질서가 현재 국제질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러시아는 명시적으로 타국의 형식적 주권조차 침해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주권의 존중을 이야기하지만 대국주의 외교와 현상변경의 정책으로 타국의 우려를 사는 모습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제시하는 국제질서의 전망이 미국 중심적이고 지구적 리더십에 대한 일관된 모습을 결여하기 때문에 점차 현상변경국의 비판에 취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국가안보전략』은 소프트 파워에서 우월한 미국을 제시하지만 현재의 전략은 이 부분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2026년 미국의 외교정책: 국내정치 중시 전략

 

트럼프 정부의 이상의 외교대전략을 기반으로 2026년 미국의 외교는 다양한 영역에서 여러 양상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변수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정책과[4] 11월 3일로 예정된 중간선거로 규정되는 미국 국내정치 변수,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변수, 그리고 인공지능을 핵심으로 한 첨단기술 변수가 중요할 것으로 볼 수 있다.

 

11월의 미국 중간선거는 트럼프 정부가 2년간 추진한 정책에 대한 국민의 평가이자 향후 미국 외교정책의 국내적 기반을 결정할 중차대한 변수이다. 만약 하원에서라도 민주당 우위가 확보된다면 예산과 법안을 좌우하는 하원이 트럼프 정부의 외교정책에 다양한 제동을 걸수 있게 될 것이다. 지난 1년간 진행된 미국 국내정치 변화는 단순한 정책 변화라기 보다는 국가 운영 방식의 구조적인 재편이라고 할 수 있다. 헌정질서와 국가 정체성의 작동 원리가 변화하는 체제적 전환의 모습도 보여주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이민, 행정국가, 사법체계, 군의 역할, 경제통치, 그리고 대통령 권력의 범위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제도적 균형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정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해 왔다. 지난 1년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행정국가의 해체와 대통령 권력의 집중이다. 연방정부 관료조직, 독립기관, 법무부와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정과 구조조정은 단순한 효율화 차원을 넘어, 정치적 충성에 기반한 국가 운영 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민 정책과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제거 정책은 미국 사회의 정체성을 구조적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이민 통제는 불법 이민 억제를 넘어 합법 이민과 난민 제도 자체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비백인 이민에 대한 제도적 차별이 강화되고 있다. DEI 정책의 전면 폐기, 시민권법적 보호의 후퇴, 인종·성차별 연구와 교육의 위축은 미국이 다인종·시민권 국가에서 배타적 민족국가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에서 트럼프 정부의 외교정책은 국내정치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정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정책을 지지하는 핵심 지지층은 소위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세력으로 트럼프 2기 외교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미국 우선주의가 단순한 구호를 넘어 외교의 작동 원리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국제 규범이나 다자주의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질서라기보다는, 미국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한에서만 유지할 수 있는 수단에 가깝다. 이들은 세계 곳곳의 분쟁을 관리하는 패권국의 역할보다는, 미국 본토의 안전과 직결되지 않는 전쟁과 개입에서는 물러나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들이 말하는 외교적 성공은 영토 확장이나 체제 변화가 아니라, 전쟁을 끝내고 새로운 전쟁을 막는 것이다. 외교의 운영 방식 역시 전통적인 가치외교가 아니라 거래적 외교에 가깝다.

 

이 모든 외교 노선은 경제 민족주의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관세와 통상 압박은 단순한 무역정책이 아니라 외교 협상의 핵심 수단이며, 자국 산업 보호와 중산층 기반 회복이 외교의 최종 목표로 설정된다. 중국과의 디커플링, 공급망 재편, 기술과 산업을 둘러싼 경쟁은 군사·외교 문제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국가전략으로 묶인다. 결국 마가식 외교는 규범, 동맹, 안보, 경제를 모두 ‘거래 가능한 자산으로 다루는 새로운 형태의 미국 중심 질서를 지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트럼프 정부는 작년 말 상무부 등 정부 부처의 낙관적 경제실적 발표에 한껏 고무되었다. 2025년 미국 경제는 경기 둔화, 정책 불확실성에 대한 비관론을 상당 부분 뒤집으며, 3분기 실질 GDP가 4.3% 증가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이 수치는 소비지출과 수출, 정부지출의 증가가 성장에 기여했음을 보여주며,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미국 경제가 흔들렸지만 꺾이지 않았다는 내러티브를 강화하고 있다. 2025 회계연도 관세 수입 역시 약 1,950억 달러로 급증했다는 분석이 제시되었고, 2,000억 달러 규모의 세입 창출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 경제분석국(BEA)의 자료는 지난 12개월 동안 명목 임금이 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인플레이션율(약 2.8~3%)을 감안하더라도 실질 임금이 약 2% 증가했음을 의미하며, 유권자들이 체감하는 ‘실질적 소득 증대를 뒷받침하는 통계적 근거로 해석될 수 있다.

 

미국 경제는 2025년을 거치며 예상보다 강한 회복력을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2026년을 향한 구조적 불안도 함께 커지고 있다. 관세와 공급망 분절화, 그리고 미중 경쟁의 심화는 단기적인 성장 지표와 달리 외교정책의 운신 폭을 점차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2026년의 미국 외교는 강한 경제 위에 서 있지만, 그 토대 자체는 점점 더 정치화되고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관세정책은 세입과 협상력을 제공하는 동시에 물가 상승과 소비 위축이라는 역효과를 낳는다. 시간이 갈수록 기업이 흡수하던 비용이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되면서 실질 소득 개선 폭이 둔화될 수 있다.

 

중간선거에서 승리를 추구하는 트럼프 정부는 경제적 성과를 극대화하고 미국 우선주의 기치에 맞는 외교정책을 추구할 것이다. 2026년의 트럼프식 외교는 국내의 번영을 위해 해외의 개입은 줄이고, 필요한 협상은 거래적으로 타결한다는 전략으로 관통할 수밖에 없다.

 

2026년 미국의 외교정책: 대중 전략

 

이러한 맥락에서 트럼프 정부의 대중 전략은 매우 중요하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정부의 대중 전략은 『국가안보전략』에서 제시된 미중 간 경제 관계 조정의 측면이 안보적 견제보다 앞설 것으로 보인다. 미중 경쟁은 이념이나 질서 경쟁보다는 미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경제, 기술 전선의 성격이 강해질 것이다. 관세, 공급망 재편, 그리고 AI를 통한 생산성 제고는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고 미국 중산층의 장기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미중 경쟁이 격화될 경우 중국의 보복 조치와 희토류를 핵심으로 한 공급망 혼란이 미국의 첨단산업과 물가 안정성을 동시에 압박할 가능성도 크다. 우회 수입 통로마저 제한되면 비용과 비효율만 커질 수 있다.

 

『국가안보전략』이 제시한 인도-태평양 경제 전략의 기본 목표는 무역적자 축소, 공급망 안정, 핵심기술 보호, 동맹과의 경제 블록화로 요약된다. 그러나 중간선거라는 정치 일정 속에서 이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전면적 대결보다는 일정 수준의 경제적 조정과 성과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2026년 초반, 특히 4월 전후로 예상되는 미중 정상회담은 전략적 화해는 아니지만 경제적 휴전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정부가 회담을 통해 추구하는 핵심은 중국이 미국 경제 회복과 물가 안정에 부담을 주지 않는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며, 이는 무역적자 축소, 중국의 과잉수출 관리, 미국산 제품의 수입 확대, 보복 조치의 상호 억제를 중심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현실적인 합의는 중국이 정치적으로 수용 가능한 분야에서 대규모 양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산 대두와 옥수수, 밀과 같은 농산물과 액화천연가스, 원유, 정제연료와 같은 에너지, 그리고 일부 항공기와 산업 장비에 대한 구매를 확대함으로써 트럼프 정부에 즉각적인 정치적 성과를 제공할 수 있다. 이는 중서부 농업주와 에너지 산업을 겨냥한 선거 전략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에 상응하여 미국은 소비자 물가에 민감한 일부 품목에 대해 중국산 관세를 제한적으로 유예하거나 환급하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으며, 중국 역시 미국산 소비재와 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상호 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 동시에 중국은 철강, 배터리, 전기차, 태양광 패널 등 주요 산업에서 대미 수출량을 관리하고, 멕시코나 동남아를 통한 우회 수출을 일정 수준 자율 규제하는 약속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조치는 완전한 구조적 전환이라기보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으로부터 실질적 양보를 받아냈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조정과 별개로, 미국은 안보와 기술 전선에서의 압박을 완화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국가안보전략』이 명시한 대로, 인공지능, 반도체, 양자 기술과 같은 핵심 기술 영역에서는 대중 수출 통제와 동맹과의 기술 블록화가 지속될 것이며, 중국의 제1도련선 군사적 우위 형성을 봉쇄하는 전략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경제적 거래와 군사적 억제를 분리하는 이중 구조로서, 미국은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되 전략적 힘의 이전은 허용하지 않는 접근을 취하게 된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합의는 전략적 굴복이 아니라 전술적 시간 벌기의 성격을 갖는다. 수출 둔화와 희토류를 포함한 공급망 레버리지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관세 폭탄을 피하는 것이 중국의 핵심 이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농산물과 에너지 구매를 통해 단기적 긴장을 완화하는 한편, 기술과 안보 문제를 경제 협상과 최대한 분리하려 할 것이다. 결국 올 한 해 미중 관계는 군사적으로는 긴장된 억제 상태를 유지하고, 경제적으로는 제한적 거래와 관리된 갈등이 병행되며, 기술적으로는 탈동조화와 봉쇄가 지속되는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화해도 전면적 충돌도 아닌, 관리된 전략적 경쟁 상태로서,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정부가 가장 필요로 하는 미중 관계의 모습이기도 하다.

 

2026년 미국의 외교정책: 첨단기술 전략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을 축으로 한 첨단 기술은 올 해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이 될 것이다. 작년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미중 인공지능 경쟁에서 중국이 승리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아 큰 충격을 제시한 바 있다. 젠슨 황은 에너지–칩–인프라–모델–애플리케이션으로 이어지는 인공지능 5층 스택의 경쟁에서 미국의 기술 우위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중국의 추격 속도는 구조적으로 위협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중국은 에너지 공급 능력과 증설 속도에서 이미 미국을 압도하고 있으며, 이는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하는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 공장의 확장에 결정적인 구조적 우위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에너지를 전략 자산으로 충분히 도구화하지 못해 왔다는 점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반도체와 핵심 칩 분야에서는 미국이 여전히 기술적 선두를 유지하고 있으나, 중국은 정부 차원의 보조금과 인프라 지원, 에너지와 노동 비용의 국가적 할인 정책을 통해 기술 격차를 가격과 속도로 상쇄하는 산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본다. 인프라 측면에서도 중국은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대규모 인공지능 인프라를 단기간에 구축할 수 있는 조직력과 동원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인공지능 경쟁이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국가적 자원 동원의 경쟁임을 보여준다. 모델 부문에서는 미국이 최첨단 상용 모델에서 앞서 있지만, 중국은 오픈소스 생태계를 중심으로 기술 확산과 혁신의 저변을 빠르게 넓히고 있으며, 애플리케이션 단계에서는 산업과 행정 전반에 인공지능을 신속하게 적용하는 사회적 실험 능력을 통해 기술을 생산성과 권력으로 전환하는 속도에서 우위를 보인다.

 

무엇보다 미국의 고민은 인공지능 분야에서 전면적 탈동조화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젠슨 황이 경고하는 바와 같이 중국 시장을 포기할 경우 미국 기업의 장기 경쟁력이 구조적으로 약화되고, 중국이 독자적 기술 스택을 완성해 세계로 확산시키면 미국은 기술 주도국이 아니라 중국 기술의 수요국으로 전락할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따라서 미중 인공지능 경쟁은 수출 통제만으로는 승산이 없으며, 재산업화와 에너지 독립, 인프라 확충이 결합되지 않을 경우 중국의 제조 역량과 인적 자원, 기술 확산 전략에 의해 미국의 패권이 잠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기술 경쟁이 곧 국가 체제 경쟁임을 보여준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인공지능을 산업정책이 아니라 외교안보와 경제 패권을 통합하는 국가 전략의 중심으로 보고 작년 『America’s AI Action Plan』과 행정명령 14320호를 제시한 바 있다. 미국산 인공지능 기술 스택의 글로벌 확산과 통제를 동시에 추진하는 새로운 국제협력 전략을 본격화하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칩, 모델, 소프트웨어, 데이터, 클라우드, 표준을 포괄하는 전주기적 기술 패키지를 동맹국에 우선 제공하고, 중국 등 경쟁국에는 차단과 실시간 감시를 결합한 봉쇄 체제를 적용하는 이중 트랙 구조를 통해, AI를 미국 주도의 기술 동맹과 공급망 질서의 핵심 축으로 재편하려는 시도이다. 올해 트럼프 정부는 선택적 개방과 정밀 차단, 동맹 중심 협력을 결합한 새로운 인공지능 질서를 창출하고자 할 것이고, 한국을 포함한 핵심 동맹국들은 이 기술 블록화 과정에서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공급망, 데이터센터, 반도체, 모델 개발, 표준 설정에 걸쳐 전략적 선택을 요구받는 주체로 떠오를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전략이 한국에 던지는 도전들

 

2026년 미국이 추진하는 세력권 정치의 강화와 선택적 개입 전략은 한국 외교에 근본적인 도전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외교 전략이 불개입을 기본값으로 하면서도 핵심 동맹을 중심으로 한 선택적 관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동함에 따라, 동맹의 전략적 중요성은 오히려 과거보다 더 분명해지고 있다. 한미동맹 역시 단순한 안보 의존의 틀을 넘어, 국방력 강화, 핵확장억제의 제도화, 인공지능, 반도체, 에너지와 같은 첨단 산업 분야에서의 기여를 결합한 포괄적 동맹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미국이 동맹국에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비용 분담이 아니라, 실제로 미국의 전략적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역량과 자산이며, 한국은 이러한 요구에 부합하는 핵심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적극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한국은 동맹에 대한 의존과 외교적 자율성을 조화시키는 중견국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미국의 서반구 집중과 인도-태평양에서의 선별적 개입은 역내 안보 환경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한국은 일본, 호주, 필리핀을 비롯한 유사 입장국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기능적 안보, 해양 치안, 사이버 안보, 공급망 안정과 같은 분야에서 다자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대중 관계에서는 미중 간 거래적 조정 가능성을 고려하여 한미 간 사전 조율 체계를 강화하는 한편, 공급망과 기술 분야에서는 미국과의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협력 공간을 모색하고, 사회, 문화, 인적 교류를 통해 갈등의 휘발성을 낮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러한 다층적 전략을 통해 한국은 세력권 정치가 강화되는 환경 속에서도 외교적 안정성과 전략적 선택지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 

 

[1] The White House. 2025.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Washington, DC: The White House, November; Hegseth, Pete. 2025. “Remarks at the Reagan National Defense Forum.” Reagan Institute, Simi Valley, CA, November.

[2] Susanna Hast, Spheres of Influence in International Relations: History, Theory and Politics(Farnham, Surrey: Ashgate, 2014).; Hanna Samir Kassab, Weak States as Spheres of Great Power Competition(New York: Routledge, 2018).

[3] Stacie E. Goddard, 2025. “The Rise and Fall of Great-Power Competition.” Foreign Affairs, January/February; 전재성, "19세기 유럽협조체제에 대한 국제제도론적 분석: 현실주의와 구성주의 제도론의 시각에서," 『한국과 국제정치』 15, 제2호 (1999): 33-60.

[4] Stacie E. Goddard, and Abraham L. Newman. 2025. “Further Back to the Future: Neo-Royalism, the Trump Administration, and the Emerging International System.” International Organization 79 (Supplement): S12–S25.

 


 

■ 전재성_EAI 원장,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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