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우(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박사는 ‘빙상 실크로드’ 건설을 통해 ‘극지 강국’으로 도약하려는 중국의 전략적 의도와 이로 인해 촉발된 북극권의 지정학적 지각변동을 다각도로 분석합니다. 저자는 기후 변화에 따른 북극 해빙이 미국의 안보 무게중심을 본토 방어로 이동시키고 있으며, 두만강 하구를 비롯한 동해 진출로를 둘러싸고 북·중·러 간 미묘한 전략적 긴장이 형성되고 있음을 진단합니다. 저자는 이 같은 안보 환경 속에서 한국이 특정 진영의 최전방으로 소모되지 않고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색해야 할 ‘선제적 안정화 전략’과 북방 외교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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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관련 주요 언급 및 정책문서
중국의 ‘빙상 실크로드(氷上絲綢之路)’는 단순한 수사적 슬로건을 넘어 국가의 명시적 비전이 투영된 공식 정책 용어이다. 이는 2018년 1월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발간한 최초의 북극 관련 백서인 『중국의 북극정책(中国的北极政策)』(이하 ‘백서’)에서 해당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대외적으로 공식화되었다.[1] ‘백서’는 2017년 5월 발간된 보고서인 ‘중국의 남극사업(中国的南极事业)’과 함께 중국의 양대 극지전략을 구성하고 있다.
국내 일부 매체에서는 기존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에 ‘일도(一道)’를 추가하여 이를 북극항로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문헌적으로 정확한 해석으로 보기 어렵다. 2017년 6월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국가해양국이 발표한 『일대일로 건설 해상 협력 비전(一帶一路建设海上合作设想)』은 이른바 ‘3대 푸른 경제 길(蓝色经济通道)’을 제시한 바 있는데, 여기서 정의하는 세 가지 길은 다음과 같다.
∙ 중국-인도양-아프리카-지중해를 잇는 기존 해상 실크로드
∙ 중국-대양주(호주)-남태평양을 연결하는 통로
∙ 중국-북극해-유럽을 관통하는 항로
다시 말해, ‘일도’라는 표현이 북극항로를 포함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를 북극항로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은 중국의 확장된 해양 거버넌스 전략을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
2014년 11월, 시진핑 주석은 호주 태즈메이니아 방문 중 쇄빙선 쉐롱(雪龍)호에 승선하여 남극 탐사대를 격려하며 ‘극지 강국(極地强國)’ 건설이 국가적 공식 목표임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당시 시 주석은 “중국의 극지 탐사 사업은 이미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며, 이제 ‘극지 대국’의 단계를 넘어 “‘극지 강국’으로 진군해야 한다(我们要向极地强国进军)”고 선포했다.
중국 전략 담론에서 ‘대국’이 기지의 증설, 탐사 범위 확대, 예산 투입 증대 등 외연적·양적 팽창에 방점을 둔 개념이라면, ‘강국’은 해양강국·우주강국·제조강국 등의 사례와 같이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여 질적 고도화를 달성하겠다는 최상위 전략적 지향점이다. 중국은 2014년 시점에 이미 북극이사회 옵저버 지위를 획득하고(2013년), 남극에 창청(長城)과 중산(中山) 기지 등 다수의 거점을 확보한 상태였다. 따라서 상기 시 주석의 발언은 투입과 참여 면에서 ‘대국’의 위상을 확보했다고 자평하고, 이러한 성취를 발판 삼아 다음 단계의 질적 도약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중국은 실제로 ‘강국’ 목표 달성을 위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 과업을 추진하며 전략의 밀도를 높이고 있다.
∙ 기술적 자립: 독자적인 최첨단 쇄빙선 건조 및 심해 탐사 핵심 기술 확보
∙ 거버넌스 주도: 북극이사회 등 국제기구에서 단순 참여자를 넘어 ‘룰 메이커(Rule Maker)’로서 발언권 강화
∙ 실익 극대화: 북극항로의 상용화와 자원 채굴 등을 통한 실질적 국익 확보 및 지속 가능한 발전 추진
2015년에는 「국가안전법」 제32조에 “평화적 탐사 및 이용”과 더불어 “극지·심해·우주 등에서 이익 안전을 수호한다”를 명문화하였다. 이는 극지를 과학적 탐사와 경제적 활용의 대상을 넘어, 국가 안보의 영역으로 격상시킨 법제화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2015년 제3차 북극서클총회에서 왕이 외교부장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중국이 ‘근(近)북극 국가’임을 대외적으로 천명하며 개입의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이어 2018년 발간된 ‘백서’에서도 자국을 '근북극 국가'로 공식화하고, 존중·협력·상생·지속 가능성의 원칙 아래 북극의 인식·보호·이용 및 거버넌스 참여를 핵심 정책 목표로 설정하였다. 여기서 중국이 주창하는 ‘근북극’ 개념은 그 표현이 주는 인상과 달리, 단순한 지리적 인접성을 의미한다기보다 북극의 기후 및 생태 변화가 자국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과 밀접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강조하는 한편,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전 지구적 평화와 안전을 수호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나아가 ‘백서’는 중국이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포함한 국제법적 토대 위에서 북극 공해상의 과학연구, 항행 및 비행의 자유, 어업, 해저 케이블 및 파이프라인 부설, 해저 자원 탐사·개발에 관한 권리를 향유함을 명시하였다. 동시에 기존의 일대일로 구상을 북극까지 확장한 ‘빙상 실크로드’ 건설을 공식화하며, 북극항로를 매개로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새로운 경제 회랑을 국제사회와 ‘공동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기조는 제14차 5개년 계획(2021-2025)으로 이어진다. 중국은 심해·심지·극지를 ‘3대 전략적 신영역’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핵심 기술 확보와 영향력 확대를 명문화하였다. 특히 극지 강국 건설을 해양강국 실현을 위한 하위 실행 목표이자 핵심 요소로 간주한다고 명시하였다.
최근의 변화는 더욱 주목할 만하다. 2025년 5월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발표한 『신시대의 중국 국가안보(新时代的中国国家安全)』 백서는 시진핑 정부의 ‘총체적 국가안보관’을 집대성하며 국가 안보의 외연을 대폭 확장하였다. 특히 제3장 4절에서 해양 권익 수호와 영토의 완전성(영토 완정)을 함께 다루고 있는 점은 해양 이익을 영토 주권과 동일한 차원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일차적으로 대만 해협과 동·남중국해를 겨냥한 것이겠으나, 향후 중국의 해상 권익이 북극권 등지로 확장됨에 따라 해상 통제권 확보가 국가 주권 수호의 명분으로 강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이는 자국의 해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해양 군사력 투사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유념할 필요가 있다.
중국 빙상 실크로드 전략의 성과와 한계
북극항로의 경제적 가치와 사업성에 대해서는 해빙 시점과 경로 예측 등 다양한 변수로 인해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늦어도 2050년을 기점으로 북극항로의 경쟁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점에는 대부분 이견이 없다. 이에 따라 비북극권 국가들의 북극해 관련 투자 및 참여도 본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북극항로의 전반적인 물동량은 절대적 수치 면에서 아직 낮은 수준이지만, 성장세는 가파르다. 2013년 1,298척이었던 운항 선박 수는 러-우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악재 속에서도 2024년 1,781척으로 약 37% 증가하였으며, 같은 기간 선박들의 총 운항 거리도 610만 해리에서 1,270만 해리로 108% 급증하였다.
북극 자원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지표도 뚜렷하게 식별된다. 벌크선의 운항 거리는 2013년 139,000해리에서 450,000해리로 223.7% 증가했다. 2014년 전무했던 가스 운반선의 운항 거리도 2024년 87만 해리를 상회하였다. 더욱이 국제 경유 항로로서의 이용 실적은 2010년 4척에서 2024년 97척으로, 화물 중량도 10만 톤에서 310만 톤으로 증가했는데, 이들 경유 화물의 95.2%가 러시아발 중국행 원유(61.6%), 벌크 화물(28.6%), 컨테이너(2.6%) 등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사실상 북동항로가 러시아를 기점으로하고 중국을 종점으로 하는 독점 체제로 재편되고 있음을 시사한다.[2]
특히 중국의 전략적 투자는 에너지 분야에 집중되어 있으며, 전체 북극 투자의 90% 이상이 러시아의 에너지 프로젝트에 할당되어 있다. 중국 기업들은 러-우 전쟁 상황에도 철수하지 않고 야말(Yamal) LNG 프로젝트 등에 막대한 자본을 지속 투입하고 있다. 그 외 중국은 기단 반도의 ‘북극 LNG 2’ 프로젝트에도 CNPC를 통해 지분을 확보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2025년 9월 육상 파이프라인인 ‘시베리아의 힘 2’ 협상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양해각서 형태로 타결됨에 따라 북극을 둘러싼 지정학적 지각변동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3]
물류와 운송 측면에서 중국은 아직 항만 건설보다는 해운 노선 운영과 선박 건조에 주력하고 있다. 국영 해운사인 코스코(COSCO)는 2013년 이래 매년 해빙기에 상업 운항을 지속하고 있으며, 후동중화조선(沪东中华造船) 등을 통해 독자적인 쇄빙 운반선 건조 역량을 축적하고 있다.
과학 연구 분야에서는 2018년 중국 극지연구소(PRIC)가 아이슬란드 북부에 개소한 ‘중국-아이슬란드 오로라 관측소(CIAO)’가 대표적 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이를 순수 과학용이라 주장하나, 서구 정보기관은 항로 감시 및 잠수함 통신 등이 가능한 이중용도(Dual-use) 시설로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북극 진출이 항상 성공가도만을 달린 것은 아니다. 그린란드에서는 성허자원(盛和资源)이 희토류 광산 개발 참여를 시도했으나, 2021년 그린란드의 총선 결과와 미국·덴마크의 안보 우려가 겹치며 채굴이 불허되었다. 또한, 중국 국영 건설사(CCCC)가 그린란드 내 3개 공항 확장 공사 입찰에 참여한 바 있으나, 이 역시 2018년 중국군의 거점화 가능성을 경계한 미국과 덴마크가 자국 자본으로 대체하며 중국을 배제했다. 핀란드 로바니에미와 노르웨이 키르케네스 구간을 연결하는 북극 철도 투자 시도 또한 지역민의 반대와 핀란드 정부의 사업타당성 부족 판정으로 인해 폐기된 바 있다.
이러한 성과와 한계는 중국의 ‘빙상 실크로드 전략’이 경제적 기회와 안보적 견제가 교차하는 복잡한 지정학적 환경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지정학적 함의
현재 중국 에너지 수입의 약 80%와 무역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말라카 해협을 경유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으로 인해 중국은 북극항로를 단순한 상업적 항로를 넘어, 미국의 해상 전략을 약화시키고 말라카 해협이라는 잠재적 ‘단일 실패지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전략 통로로 인식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북극항로의 물동량 규모를 감안할 때, 말라카 해협을 대체할 경제적 대안으로서의 한계는 뚜렷하나, 전시 또는 국가 비상사태 시 ‘핵심 비상 통로’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특히, 북극항로는 남중국해와 인도양 라인에 배치된 미 해군력 및 우방국의 포위망을 우회할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한다. 특히 항로의 상당 부분이 러시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포함되어 있어, 중·러 간 전략적 협력이 유지되는 한 미 해군의 작전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다만, 이는 동시에 북극의 실질적 열쇠를 쥔 러시아의 대중국 지렛대가 강화됨을 의미하는 지정학적 비용을 내포한다. 동·남중국해에서 미군의 전력 투사와 운용 차원의 제약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중국 해군이 북방 진출로를 확보할 경우, 미국은 기존 포위망을 북극권까지 대폭 확장해야 하는 전략적 과부하에 직면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포위망의 밀도를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개연성이 있다.
현재 북극해에 본격적인 영토 분쟁이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속화되고 있는 해빙은 잠재적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빙하가 사라지면서 드러나는 새로운 도서와 영해 기선 설정 문제, 그리고 빙하의 소실과 심해 탐사 영역의 확대에 따른 해저 대륙붕 소유권 문제는 관련국들의 전략적 변수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막대한 석유와 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로모노소프 해령을 둘러싸고 러시아, 덴마크, 캐나다가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CLCS)를 통해 전개하는 영유권 경쟁은 이러한 갈등의 해소 국면이 아닌, 전초전으로 볼 수 있다.
북극권 영토가 전무한 중국은 특정 국가의 독점을 반대하며, 북극해를 ‘인류 공통의 자산’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이는 공해 구역을 극대화하는 것이 비북극권 국가인 중국의 개입 공간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와 캐나다 등 연안국들은 북극 해역을 자국의 ‘내수’로 간주하며 주권적 통제를 강화하고자 노력하는 추세이다. 현재 쇄빙 역량의 부족과 중·러의 밀착으로 인해 미국은 북극권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FONOPs)’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으나, 역설적으로 작전의 필요성은 증대되는 현 상황의 지속 자체가 북극권 안보 지형에 새로운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
시론(試論)적 지정학적 가설들
가설 1. 전통적으로 미국의 안보전략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축으로 양면 전선(Two Front)에 집중해 왔으며, 북극은 강력한 얼음층이 본토를 지켜주는 ‘천혜의 방벽’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인한 급격한 해빙은 북극해를 상시 작전이 가능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이는 미국에 가장 안전한 전략적 종심이었던 북극이 본토 방어를 위한 전선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러시아를 제외한 북극이사회 7개국이 모두 나토 회원국이라는 점은, 북극이 권위주의 진영과 민주주의 진영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단층선이 될 위험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근원적인 배경으로 작용한다. 특히, 러-우 전쟁 이후 서방의 대러 고립 정책이 러시아의 대중국 의존도를 심화시켰고, 이는 결과적으로 북극으로의 중국의 진입을 확대하여 이 해역을 미·중·러의 이해관계가 얽힌 복합적 안보 딜레마의 현장으로 부상시키고 있다.
전력 운용 측면에서도 북극의 해빙은 과거와는 다른 변수를 창출하고 있다. 과거 불안정한 동토와 얼음으로 인해 제한되었던 대규모 미사일 발사대 배치나 레이더 기지 건설과 같은 무기체계의 배치는, 지표 암반이 드러나면서 대공 방어체계 및 극초음속 미사일 기지의 영구적 구축이 가능한 환경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요격의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한 조기 경보 역량 강화와 레이더 기지의 전진 배치 경쟁 등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있다.
또한 잠수함 작전 환경 역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과거 북극에서의 잠수함 기동은 미사일 발사를 위해 얇은 얼음 지대를 탐색해야 하는 물리적 제약이 있었다. 그러나 해빙의 가속화는 북극의 광범위한 해역에서 이러한 제약이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잠재적 갈등 요소가 반드시 북극에서의 신냉전적 ‘진영화’로 이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북극해는 러시아의 민감한 전략자산이 다수 집결된 성역이며, 러시아는 이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극도로 경계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콜라 반도 등지에 러시아 전략핵잠수함(SSBN) 기지와 핵시설이 밀집해 있어, 대잠 작전의 핵심 정보인 수온·염도·해저 지형 등의 데이터에 대한 중국의 수집을 허용하는 데 매우 제한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가 북극항로 보호를 명분으로 한 중국 군함의 정례적 파견이나 항로 진입 등을 쉽게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과거 중국의 북극이사회 옵저버 가입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국가가 러시아였다는 점은, 러시아가 이 지역에서 중국을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하는 본심을 뒷받침한다. 요컨대, 러시아는 중국과의 경제 협력이 절실하면서도, 항만 소유권이나 운영권을 요구하는 중국 특유의 ‘일대일로’ 방식에는 전략적 괴리를 보일 개연성이 크다.
가설 2. 중국에 있어 동북 3성에서 두만강 하구를 거쳐 동해로 직접 진출하는 경로는 북극해로 향하는 최단 노선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은 이 통로를 이용하지 못해 다롄이나 칭다오 등 항구로 우회한 뒤, 대한해협을 거쳐 다시 북상하는 전략적·경제적 비효율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2024년 5월 중·러 정상이 공동성명을 통해 두만강 관련 ‘건설적 대화’를 명시하며 변화를 추동하는 듯 했으나,[4] 실제 북한과 러시아는 직후 기존 ‘우정의 다리’ 인근에 추가적인 도로 교량을 착공하며 양자 간 독자적인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5] 이는 중국이 염원하는 ‘두만강 출해구’ 확보까지 넘어야 할 지정학적 장애가 견고함을 의미한다.
즉, 북·중·러 간 표면적인 협력 구도와 달리, 러시아와 북한은 각자의 국익을 위해 중국의 두만강 출해를 강력히 견제하고 있다. 만약 두만강 하구가 개방되어 중국이 직접 동해로 쏟아져 나오게 되면 러시아 연해주 항구들의 가치는 급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러시아는 두만강 하구를 봉쇄함으로써 중국 동북 3성의 물류를 블라디보스토크, 자르비노 등 자국 항구로 유도하여 통행료 수익과 대중국 전략적 지렛대를 확보하려 한다. 또한, 자신의 ‘앞마당’ 격인 동해와 오호츠크해에서 중국 해군이 자체적 목적에 입각하여 상시 기동하는 상황을 안보적 차원에서 지양하고자 한다.
북한의 입장에서도 중국에 두만강 출해권을 허용하는 것은 경제적·안보적 ‘자해’와 다름없다. 중국이 동해로 직접 나갈 수 있게 되면, 북한의 잠재적 핵심 외화벌이 수단인 나진항의 전략적 가치는 즉시 반감된다. 기술적으로도 두만강 하구의 대규모 강바닥 준설과 제방 건설을 위해 중국의 중장비와 인력이 국경 최전방에 상주해야 하는데, 이는 폐쇄적인 북한 체제가 수용하기 어려운 안보적 부담일 수 있다.
따라서 북한에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두만강 하구와 관련하여 러시아의 반대와 기술적 문제 등을 명분 삼아 중국의 진출을 차단함과 동시에, 나진항 이용을 유도하여 임대료나 에너지 지원 등을 요구하는 것이다. 동시에 러시아에는 중국의 출해를 막는 공동의 역할을 수행하는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노동력 쿼터 증대 등 경제적 실익을 챙기며 외화벌이 경로 다변화를 꾀할 수 있다. 나아가 한·미·일에 북·중·러 간 ‘두만강 공동 개발’ 뉴스를 주기적으로 흘려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고도의 ‘블러핑’을 구사한다. 이를 통해 한·미·일 당국에 북한 체제 존속을 통한 ‘현상 유지’가 중국의 동해 장악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을 수 있는 중요한 방책으로서의 의미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이는 자국을 향한 파국적 군사 옵션을 억제하고 자국의 전략적 가치를 제고하려는 ‘몸값 올리기’로 귀결된다.
가설 3. 과거 미국은 대서양과 태평양이라는 광활한 해양과 더불어 북극의 견고한 ‘얼음 방벽’을 기반으로 압도적으로 깊은 전략적 종심을 향유해 왔다. 그러나 기후 변화에 따른 북극의 해빙은 본토를 지켜주던 천혜의 방벽을 해체하며 미국의 안보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일관된 위협 인식은 Arctic Policy Directive(2009년), National Strategy for Arctic Region(2013년), Arctic Strategy(2024) 등 각종 전략 문서에 지속적으로 반영되어 왔다. 특히 2022년 국가안보전략서(NSS)와 국방전략서(NDS)는 북극을 본토 방어를 위한 우선순위 지역으로 격상했다.
북극발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쇄빙 역량의 확충, 알래스카 조기경보 레이더 체계의 현대화, 다층적 미사일 방어(MD) 시스템 구축 등에는 막대한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 미국의 ‘신고립주의’ 혹은 ‘본토 우선주의’ 기조와 맞물린 이러한 비용 부담은 필연적으로 해외 주둔 미군 태세 및 우방국 방어 관련 예산의 재조정 또는 삭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결국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에게 방위비 분담 증액과 보다 적극적인 안보 역할 분담 요구로 전이될 개연성이 있다.
현재 미국은 지정학적 관점에서 북한을 중국의 동해 진출을 저지하는 ‘북쪽의 빗장’으로, 한국을 중국의 해양 팽창을 억제하는 ‘남쪽의 그물’로 상정하는 일종의 ‘분리 대응(Bifurcated Response)’ 전략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는 남북 관계의 구조적 개선이 전제되지 않는 한, 시간이 흐를수록 안보적 불확실성을 증대시킬 개연성이 있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개의 톱니바퀴가 역방향으로 회전할 경우, 미국의 전략적 의도는 상호 충돌하는 모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만약 미국이 한국의 입장을 도외시한 채 북·미 관계의 개선만을 추구하려 한다면 한미 동맹에는 균열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 반대로 한국을 대중국 견제의 전초기지로만 소모하려 할 경우, 한국 국민의 우려와 반발을 차치하더라도, 중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적·안보적 영향력을 한층 더 강화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자국이 동해로 향하는 ‘빗장’을 전격 개방하도록 압박하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미국의 본토 방어 전략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북쪽의 빗장’과 ‘남쪽의 그물’이 유기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한반도의 최소한의 평화와 소통 구조가 필수적이다. 또한, 이를 추동하고 뒷받침하기 위한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 확보도 중요하다.
가설 종합: 우리의 선제적 안정화 전략과 북방 외교의 재설계
한국은 잠재적으로 북극권까지 포함할 수 있는 진영화에 따른 안보적 연루 위험을 능동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미국을 향한 고도의 전략적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 전략의 핵심은 한국이 남북 및 한·러 관계의 점진적 개선을 통해 북방의 잠재적 위협을 선제적이고 자율적으로 통제함으로써, 미국의 역내 개입 비용을 최적화해 줄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추구하는 ‘북쪽의 빗장(북한)’과 ‘남쪽의 그물(한국)’이 유기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최소한의 소통과 평화’가 불가결한 전제조건임을 피력해야 한다. 남북 관계 개선이 주한미군 주둔 명분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오래된 우려는 미국의 ‘신고립주의’ 기조와 본토 방어 우선순위 강화 흐름 속에서 이미 상당 부분 상쇄되었음을 역설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미국이 효율적 대중국 견제라는 최우선 전략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동시에 조선 등 하드웨어 분야와 긴밀한 기술 협력을 통해 동맹의 결속력을 유지할 수 있다.
미·중의 거시적 대립 이면에 존재하는 중국과 북·러 사이의 미묘한 전략적 괴리는 한국에 중요한 전략적 공간을 제공한다. 중국은 자국 안보에 부담이 되는 역내 진영화를 최우선적으로 기피하는 성향이 있으므로, 한국은 이러한 중국의 입장을 고려한 전략적 접점을 모색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전략의 핵심은 북한과 러시아의 대중국 지렛대가 지나치게 약화되지 않도록 이들의 지렛대 확충을 지원하고 이들의 대중국 비대칭성을 완화하는 데 있다.
러시아의 지나친 대중국 지렛대 약화는 필연적으로 중국의 전략적 이익으로 귀결되며, 이는 미·중 경쟁을 격화시켜 한국의 안보 부담을 가중시킨다.
∙ 일례로 2012년 러시아는 S-400에서 S-500으로의 대공 무기체계 이행 계획을 수립했다. 2014년 크림 사태 이후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의 대중국 의존도가 심화되자, 러시아의 대중국 지렛대는 약화되었다. 이는 중국의 오랜 염원이었던 첨단 대공 무기 S-400의 대중국 수출 타결(2015년)로 이어졌다. 그리고 중국이 이를 한반도 인근에 배치하면서 미국의 사드(THAAD) 배치를 촉발하는 전략적 연쇄 반응으로 이어졌다. 이는 한·중 관계의 경색과 한국을 역내 진영화의 최전방에 노출시키는 위기로 내몰았다.
∙ 작금의 북·러 밀착 역시 이들 양국의 대중국 비대칭성 심화에 따른 전략적 고심이 투영된 측면이 있다. 이러한 밀착이 역내 진영화를 가속하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 한국을 역내 진영 간 갈등의 한복판에 내모는 악순환을 방지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은 우선적으로 대러 관계 복원을 추진해야 한다. 러-우 전쟁이 종식 이전에 선제적 소통을 시작함으로써 관계 개선의 과정에서의 지렛대를 확보해야 한다. 직접적인 대러 관계 개선이 정세상 제약된다면, 베트남, 몽골 등 중국과 접경하며 유사한 대중국 안보 딜레마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다자적 접점을 적극 활용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는 미국발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대중국 비대칭성 증대를 고민하는 역내 인접국들과의 공통분모를 형성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러한 다자적 노력을 기반으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함으로써, 중국의 과도한 대북 영향력 침투에 유효한 균형점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북한의 관점에서도 남북 양자 차원에서 동력이 고갈된 관계 개선 노력를 재정립할 전략적 명분과 프레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특히 대중국 의존도 심화에 따른 전략적 고민을 완화할 수 있는 실효적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 유인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미국 발 불확실성이 증대할수록 확대·심화될 개연성이 큰 대중국 비대칭성 문제의 분산·완화를 모색하고, 대북 및 북방 외교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은 미·중 양국이 수용 가능한 정교한 논리를 통해 전략적 공간을 유지해야 한다.
∙ 대미 논리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의 효율성 증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한국의 북방 정책이 북·러의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이들의 협상력을 높임으로써, 결과적으로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의 효율성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 대중국 논리는 역내 진영화 방지 및 긴장 완화에 맞추어야 한다. 역내 국가들의 대중국 비대칭성 완화 노력과 미국 중심의 대중국 봉쇄를 위한 결속과의 차이를 강조해야 한다. 즉, 역내 국가들의 자체적 관계 강화가 오히려 역내 진영화를 방지하여 중국이 직면한 안보적·군사적 부담을 경감시키는 평화적 완화 구도임을 피력한다.
이러한 전략적 고도화의 목표는 미·중 양측으로부터 ‘차선책’으로서의 묵인과 이해를 이끌어내는 데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은 잠재적 북극발 지정학적 격변과 같은 안보 환경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특정 진영의 최전방 첨병으로 소모되지 않고, 국가의 자율성과 국익을 수호하는 ‘선제적 안정화’의 기틀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의 성공 여부는 단순한 전략적 선언을 넘어, 한국이 조선 등 제조업과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국에는 ‘대체 불가능한 안보 파트너’의 가치를, 중국과 러시아에는 ‘전략적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제공할 수 있는 실질적 역량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1] 中华人民共和国国务院新闻办公室, 《中国的北极政策》 白皮书(全文). (2018.01.26.) http://www.scio.gov.cn/zfbps/ndhf/2018n/202207/t20220704_130568.html
[2] 언급된 각종 항운 관련 자료는 이대식, “북극이 정말 열리는가?”, RIO No.9 (1월호) 특집기획, (2025.1.31.)을 참조하였음. https://www.rioins.kr/notice/notice1__list.html?bmain=view&uid=34
[3] 전재우, 「중‧러 간 ‘시베리아의 힘 2’의 지정학적 함의」, 『KIDA 안보전략 FOCUS』, 한국국방연구원, (2025.12.17.).
[4] 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中华人民共和国和俄罗斯联邦关于在两国建交75周年之际深化新时代全面战略协作伙伴关系的联合声明(全文), (2024.05.16.) https://www.mfa.gov.cn/zyxw/202405/t20240516_11305860.shtml 이 성명의 제3조는 “양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국 선박의 두만강 하류를 통한 출해 항행 사안에 대해 건설적인 대화를 전개할 것이다.(双方将同朝鲜民主主义人民共和国就中国船只经图们江下游出海航行事宜开展建设性对话)” 라고 명시하였음.
[5] Joseph S. Bermudez Jr., Victor Cha and Jennifer Jun, “Significant Progress of the North Korea-Russia Road Bridge”, Beyond Parallel. CSIS. October 14 2025. https://beyondparallel.csis.org/significant-progress-of-the-north-korea-russia-road-bridge
■ 전재우_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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