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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NK 논평] 전승절에서 APEC, 북중관계의 새로운 모색과 도전
이동률
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Editor's Note

이동률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학과 교수는 최근 중국 전승절 행사 이후 부각되는 북중러 연대에 대한 경계가 과대해석되고 있음을 경고하며, 이러한 접근에 신중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이 같은 진영 구도의 단순화로 인해 한국 정부가 정교하고 다양한 외교 전략 수립의 기회를 놓칠 것을 우려합니다. 이 교수는 한국 정부가 북중러 연대가능성에도 대비하는 한편, 정교하고 창의적인 외교전을 펼칠 준비 또한 병행되어야 함을 제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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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중관계의 새로운 모색

 

북중 양국이 9월 3일 전승절 행사를 계기로 고위급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등 관계가 급진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9월 3일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전승절 기념식 참석과 북중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9월 28일에는 최선희 외무상의 방중과 외교장관 회담, 그리고 10월 9일 리창 중국 총리의 방북과 북한 노동당 창건 행사 참여 등 고위급 교류가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양국관계가 개선을 넘어서 밀착을 과시하고 있다. 그리고 양국 정상은 각각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 77주년과 10월 1일 신중국 성립 76주년을 맞이하여 축전을 교환하며 '전략적 소통 강화'를 강조했다.

 

북중 양국간 고위급 교류가 이례적으로 빈번하지만 사실 모두 정례적인 주요 행사 계기에 진행된 것이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관행의 일환으로 간주할 여지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최근의 연이은 북중간 고위급 교류에는 관행 이상의 특별한 장면도 있었기 때문에 그 의미에 대해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 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중국은 9월 3일 전승절 행사 계기에 이례적인 주목할만한 두 개의 장면을 연출했다. 첫 장면은 66년만에 북중러 삼국 정상이 나란히 한자리에 서서 열병식을 참관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북중러 삼국은 현재 공히 미국의 압박과 공세에 직면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 만큼 삼국 정상이 나란히 도열한 장면은 다분히 미국을 겨냥하여 삼국 연대를 과시하려는 의도라는 논란을 초래했다. 두번째 장면은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 위원장과는 별도로 만찬을 겸한 정상회담을 갖는 등 이례적으로 국빈 방문급의 특별 예우를 제공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전승절 참석을 위한 4박 5일 일정의 베이징 방문은 2019년 1월 4차 방중 이후 6년 8개월 만이고 북중 정상회담은 2019년 6월 시 주석의 평양 방문 이후 6년 2개월여 만이다. 그리고 시진핑 주석은 북중 정상회담에서 다분히 북한의 입장을 고려하여 '비핵화'에 대한 언급도 회피했다.

 

아울러 중국은 리창 총리가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행사에 참석하여 김위원장의 전승절 행사 참석에 화답했다. 2015년 70주년 행사에 중국이 권력 서열 5위였던 류윈산 정치국 상무위원이 참석했던 것에 비하면 격을 높여 답례한 것이다. 시진핑 집권 이후 이전과 달리 북한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던 중국이 최근 왜 북한에 특별한 배려를 하면서 관계를 돈독히 하려 하는 것인지 그 이유와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현재의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한반도와 주변 국제정세를 전망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2. 북중러 연대에 대한 중국의 셈법과 전략

 

시 주석이 전승절 행사에서 푸틴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과 나란히 서서 친밀한 관계를 과시한 것은 미국을 향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주목해야 하는 세 번째 장면이 있다. 북중러 정상이 66년 만에 어렵게 한 자리에 모였지만 정작 삼국 정상회담은 열지 않았다. 북중, 북러, 그리고 중러 양자간 정상회담만 진행되었고 그 자리에서도 북중러 삼국 협력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의 이러한 선택 역시 미국을 의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즉, 중국은 미국과 서방국가들을 의식하여 북중러 연대의 실질화, 제도화는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이다.

 

중국에게 북한과 러시아는 최소한의 안전판이고 우군이기는 하지만 경제, 외교적 실익 차원에서 최고의 협력 대상은 아니다. 시진핑 정부는 여전히 국내 발전이 최우선 과제이기에 북한, 러시아와의 정치적 연대보다는 미국, 유럽 등 서방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이 더 중요하다. 중국이 북한, 러시아와 과도하게 밀착할 경우 오히려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이미지와 위상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경제협력 대상인 유럽 등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특히 중국은 미국과 치열한 관세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을 견제할 필요성도 있지만 다른 한편 과도하게 자극하여 미국과의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는 것도 원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2023년 12월, 5년 만에 개최된 중앙외사공작회의(中央外事工作会议)에서 글로벌 외교 구상으로 ‘평등하고 질서 있는 세계의 다극화’와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포괄적인 경제 세계화’를 제시한 바 있다. 북중러 연대는 시진핑 정부의 글로벌 구상인 ‘세계 다극화와 경제 세계화’ 추진의 필요조건일 수 는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중국의 입장에서 글로벌 구상의 실현을 위해서는 전승절 행사에 앞서 열린 텐진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과 경주에서 10월말 개최될 APEC 정상회담이 오히려 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중국은 세계의 다극화를 기치로 글로벌 사우스 국가를 비롯하여 유럽, 일본 등 서방국가들과의 협력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이른바 전방위 외교를 펼치고 있다. 중국은 내수 중심 전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외의존도가 높기에 ‘경제 세계화’를 기치로 협력 대상을 다변화하는 것이 현실적 과제이다. 요컨대 중국에게 북한과 러시아의 전략적 가치는 트럼프 변수의 영향을 받고 있어 향후에도 북한, 러시아와의 양자 관계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면서 유대를 과시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북중러 관계가 반미, 반서방을 기치로 이에 대항하는 구체적인 연대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3. 중국의 북한에 대한 복잡한 속내

 

시진핑 주석은 방중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특급 의전을 제공했다. 전승절 열병식에서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과 함께 톈안먼 망루 중앙에 자리를 배치했고, 리셉션에서도 시 주석 부부 옆 좌석을 제공했다. 특히 다른 정상들과 달리 김정은 위원장에게만 국빈 방문에 준하는 예우와 단독 만찬 회담 자리를 마련했다. 중국의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이러한 특급 예우는 전승절 참석에 대한 감사 표시로만 해석하기 어려운 것으로 양국이 함께 공조하면서 진행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첫째, 중국의 대규모 전승절 행사는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사실상 중국 인민들의 공산당과 시진핑 체제에 대한 지지와 결집을 견인하기 위한 국내 행사이다. 김정은 위원장도 전승절 행사 참석을 국내 선전용으로 적극 활용하였고 중국도 사실상 이를 지원했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이례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에서의 일정과 행보를 곧바로 상세하게 보도하면서 김 위원장 띄우기에 집중했다. 시진핑, 김정은 양 지도자는 전승절 행사 참석과 특급 예우라는 주고받기를 통해 각각 국내 리더십과 체제 강화를 위한 이벤트로 적극 활용하는데 상호 협조한 것이다.

 

둘째, 북중 양국은 전승절 행사와 정상회담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그동안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했음을 공개적으로 확인하고 과시했다. 그런데 사실 양국은 이미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하면서 관계 개선의 움직임이 진행되었다. 2025년 2월 18일 박명호 북한 외무성 부상이 이례적으로 평양의 중국 대사관을 방문하여 “조·중 양국 사회주의 건설이 끊임없이 새롭고 더 큰 성취를 거두기를 기대하고, 양국이 교류·협력을 강화해 조·중 관계가 더 높은 단계로 올라서도록 추동하기를 희망한다” 고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했다. 왕야쥔 대사도 “전략적 소통 강화와 실무적 협력 심화” 로 화답하였다. 이후 중국은 공식석상에 일관되게 북한과의 ‘전략적 소통’을 강조해오고 있으며 이는 중국의 대북 관계 개선의 의도를 시사해주고 있다.

 

즉,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곧바로 중국에 대한 관세 압박이 거세지고 미국과의 대립이 고조되고 북미 대화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면서 북한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중국 세관총서에 따르면 북중 무역 총액은 올해 1~7월 14억6584만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2%나 증가하는 등 양국간 교류가 이미 활성화되고 있었다. 요컨대 북중관계 회복의 주된 동인은 트럼프 2기 정부의 출범이었고 전승절 행사를 계기로 확인된 것이다.

 

셋째, 북중 양국은 미국 변수가 관계 회복의 주된 동기라는 점을 기본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양국이 미국 변수를 고려하는 구체적인 내용에는 전략적 동상이몽이 존재하고 있어 신속하고 전면적인 관계 개선에는 제약이 있을 수 있다. 중국과 북한 모두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의 돌발적 언행과 정책에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 중국은 2018년 예상치 못한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추진과 그에 따른 한반도 현상변경 가능성에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김위원장 역시 결과적으로 ‘하노이 노딜’로 인해 곤경에 처했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중국과 북한은 트럼프 변수라는 공통의 도전에 직면한 동병상련의 입장에 있다. 최소한 양국은 불확실성이 높은 정세에서 전략적 소통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관계 복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북중 양국은 단순히 반미 연대를 과시하는 차원 보다는 복잡하고 상이한 전략적 셈법이 있다. 중국은 미국과 대립,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남한을 넘어서 북한에게로까지 영향력을 확장하는데 민감하게 대응해왔다. 따라서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다시 중국을 배제한 채 북한과 직접 협상을 진행할 가능성을 상정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으며 그런 맥락에서 재차 ‘전략적 소통 강화’를 북한에게 우선적으로 주문하고 있다.

 

북한 역시 자국의 문제를 놓고 미중 양 강대국이 타협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과거 미중 관계가 갈등 상황에 있는 경우에도 양국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원론적 입장에 기본적으로 합의했다. 2017년 9월 북한 6차 핵실험 직후 미중 양국은 전격적으로 신속하게 고강도의 제재를 담은 ‘UN 안보리 결의안 2375’를 통과시켰고 이로 인해 북한은 지금까지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비록 미중간의 타협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고 해도 배제할 수는 없다.

 

다른 한편, 북한 역시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에 어려움이 있을 경우에 대비하는 차원에서도 중국과의 관계 회복은 필요하다. 2018년 이후 연이은 북중 정상회담은 비록 중국이 주도했지만 북한 역시 미국과의 중대한 협상을 앞두고 중국이라는 뒷배를 과시하려는 전략적 고려가 있었다. 요컨대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을 견인하기 위해서도, 협상 실패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모두 뒷배 역할을 할수 있는 중국과의 관계 강화가 필요하다.

 

넷째,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협력을 과시했지만 다른 한편 여전히 중국이 북한이 원하는 바를 충분히 제공하면서 그야말로 전통 우호관계를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있다. 북한이 중국에게 지속적으로 기대하고 요청하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사실상 핵보유를 인정하고 유엔 제재를 완화하여 대규모의 실질적 경제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북중 정상회담에서도 김위원장은 “북중이 모든 단계에서 밀접하게 왕래하고, 당의 건설·경제 발전 등의 경험을 교류하고, 조선노동당과 국가의 건설사업 발전을 돕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양국이 호혜적인 경제무역 협력을 심화해 더 많은 성과를 얻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요컨대 김정은 위원장은 정상회담에서 교역 확대, 중국 관광객 유치, 북한 노동자 파견 등 중국과의 교류 협력 관련 이슈를 중점적으로 제기하면서 경제지원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북한이 이번 방중단에 경제관료를 대거 포함한 것도 경협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과 경쟁하면서 유독 유엔의 가치를 중요하게 내세우고 있는데 자신이 동의한 유엔 결의안을 훼손해가면서 북한을 지원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특히 중국은 미국과 중요한 관세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엔 제재 위반이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이 기대하고 요구하는 구체적인 협력을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북러 밀착을 목도하면서도 북한의 요구를 다 수용하지는 않았다. 역대 북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이 북한을 관리하기 위해서 경제지원을 해온 것이 관행이다. 그렇지만 중국은 제재국면이 아니었을 때도 북한이 만족할만큼 충분히 경제지원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특히 시진핑 정부 들어서는 북중 정상회담이 정례적으로 진행되는 관행도 사라졌고 그에 따라 북한에 대한 지원도 제한적이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북한을 향해 어떠한 협상과 압박 카드를 펼칠지 예단하기 어려운 불학실한 상황에서는 북중 양국 모두 섣불리 반미를 공개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면서 양국간 협력을 강화해가기는 쉽지 않다. 북중관계 강화가 양국이 최우선시 하는 대미 협상에서 자산이 될지 아니면 오히려 부담이 될지 아직은 예측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 다양한 기대와 예상이 제기되면서 사실상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어 북중을 비롯한 관련 당사국들은 더욱 신중할수 밖에 없다.

 

북한과 중국의 상대에 대한 전략과 정책 역시 상당 부분 대미 관계에 영향을 받으며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북중관계도 그에 따라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APEC 회의 계기로 미중, 한중 정상회담이 연이어 진행되고 그 결과 한반도와 주변정세에 새로운 기류가 조성되면 이후 북중관계도 영향을 받으면서 또 다른 변화가 진행될수도 있다. 요컨대 북중 양국은 현재 관계 개선의 동기는 있지만 그 저변에는 여전히 동상이몽의 복잡한 전략적 셈법이 깔려있어 신속하고 전면적인 관계 개선은 쉽지 않으며 미중 관계 등 주요 변수의 상황 변화에 연동되어 외형적인 관계는 유동성을 보일수 있다.

 

4.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변화된 입장

 

북중 정상 회담에서 중국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비핵화’ 대신 ‘안정’을 강조했다. 시주석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중국은 일관되게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북한과의 조율을 강화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은 조선반도(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의 공정한 입장을 높이 평가한다”며 “유엔 등 다자 플랫폼에서 계속 협력을 강화해 양측이 공유하는 근본적인 이익을 지켜나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공식 회담에서 북핵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중국은 이미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핵에 대한 입장이 바뀌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의 입장 변화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2022년 발리 미중 정상회담에서 부터이다. 중국은 회담이후 외교부 발표문에 지난 30여년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강조해왔던 ‘한반도 3원칙’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고 이후 미국, 한국과의 논의에서도 북핵 문제는 회피하거나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이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전적으로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신호도 발견된다.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한반도 문제에 객관적, 정당한 입장을 견지한다고 하고 김 위원장이 이를 존중한다고 응답했다는 기존의 북중회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화법이 등장했다. 얼핏 보기에는 중국이 북핵 문제에서 사실상 북한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명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작 이 내용이 중국측 발표문에만 있고 북한측 발표에는 없었던 것으로 보아 실제 북한이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오히려 중국이 비핵화를 공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북핵문제에 대해 일방적으로 북한의 입장만을 지지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표명한 것일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을 사실상 승인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북핵 문제에서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구태여 입장을 밝힐 필요는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북핵에 대해 미국은 바이든 정부에서 부터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고 현재 트럼프 정부의 입장과 태도도 불활실한 상황에 있기 때문에 중국 역시 미국의 태도를 예의 주시하면서 관망하는 모호한 회피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일단 트럼프 정부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비핵화 문제를 거론하지 않으면서 모호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내심 북한의 핵보유 주장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경우 초래될 파장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북한 핵보유 인정은 결국 미국의 한반도에서의 전술핵의 재배치 또는 한국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핵개발 주장에 힘을 실어주게 되고 결과적으로 중국 동북, 화북, 북경, 천진 등 주요지역에 심각한 안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중국은 최근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이 주장하는 '정치적 해결'의 이면에는 사실상 미국 책임론을 내재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24년 5월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북한과의 대결을 고조시켜 한반도 무력 분쟁과 긴장 고조를 낳을 수 있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의한 군사적 위협 행동에 반대한다”고 발표하여 사실상 한반도 긴장의 책임이 미국과 한국에게도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2025년 5월 시진핑-푸틴 정상회담에서도 북핵 문제나 비핵화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북한에 대한 압박 중단”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요컨대 중국은 한반도 안보 불안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지만 정작 북핵문제 해결의 책임은 미국에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북한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상황을 관리하고자 한다.

 

5. APEC의 시간, 한국의 전략과 대비

 

한국의 입장에서는 북중러 삼국 관계의 동향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슈임에 틀림 없으며 따라서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전승절 행사를 계기로 북중러 연대에 대한 경계와 우려가 한국내 일각에서 과대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북중러 연대가 현실화되고, 한미일을 직접 겨냥하고, 중국이 반미, 반서방 연대를 추동할 것이라는 분석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진영 대결 구도로 해석하는 것은 명료하지만 과도한 단순화와 그로 인한 정교하고 다양한 전략 수립의 기회를 놓치게 될 우려가 있다. 중국이 실제로는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게 다양한 변수를 상정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그 흐름에서 전승절 행사도 진행했을 수 있는데 이 모든 것을 반미, 반서방 그리고 냉전 구도로 단순 치환해 버리면 그에 대한 대응도 한미일 협력 강화라는 단선적 대응으로 몰려갈 우려가 없지 않다.

 

중국이 전승절이라는 특별한 행사를 계기로 첨단무기를 과시하고 북중러 정상을 한자리에 모이게 해서 위세를 떨쳤다고 해서 중국의 대외 전략이 반미, 반서방 일변도로 전개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은 오히려 미국의 공세와 압박에 직면하여 북중러 연대를 넘어서 전방위 외교를 전개하고, 특히 경제협력 대상을 다변화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중국은 상대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약한 신흥경제권, 글로벌 사우스를 향한 외교에 적극적이고 유럽을 향해서도 외교 공세를 펼치고 있으며 심지어 미국과 대립하면서 협상에도 치밀하게 대비하고 있다.

 

북중러 정상회담이 개최되지 않은 것은 향후 전승절 행사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국가들간에 일련의 긴밀한 대화와 협상이 진행될 수도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전승절 이후 APEC 정상회의가 시작되면 다시 미중 정상회담을 비롯한 치열한 협상과 외교전의 시간이 도래하면서 그간의 온갖 예상과 기대가 현실로 확인되기도 하고 새로운 불확실한 상황이 재개될 수도 있다. 요컨대 이제는 APEC 정상회의가 가져다줄 새로운 변화와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에 집중해야 한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일단 북중러 연대가 구조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중관계가 회복되고 김정은 위원장이 비록 중국이 주최한 국내 행사이기는 하지만 다자무대에 등장한 것은 향후 북한이 무모한 도발만을 이어가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한편, 대화의 모멘텀이 조성될 수 있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활용할 기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도 북중러 연대 강화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대비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협상 등 치열한 외교전이 전개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정교하고 창의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을 수용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될 가능성에 대한 선제적 대비도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는 무엇보다 우선 중국의 이러한 일련의 태도 변화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에 대해 어떤 대응을 강구하고 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이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에 미칠 파장에 대해 중국과 인식을 공유하기 위한 전략적 소통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한중 양국이 북한 관련 문제에서 지니고 있는 근원적 공감대, 즉 북한 도발이 초래할 한반도 불안정의 예방과 억지, 그리고 북한 체제 안정화와 관련된 정보 교류와 조치 등에서 소통과 협력을 증진하는데 우선순위를 둘 필요가 있다. 아울러 중국이 주장하는 북핵문제에서의 ‘건설적 역할’은 무엇이며 그것이 한국 정부가 기대하는 역할에 부합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파악도 중요하다.

 

아울러 중국과 북한이 북핵 승인과 유엔 제재의 완화라는 장애물을 무리해서 구태여 돌파하기 보다는 양국간의 긴밀한 소통과 경제협력을 진행하여 북핵에 대한 양국간의 전략적 이해를 강화하고 제재의 공식적 완화 없는 사실상의 완화 효과를 얻는 현실적인 방법으로의 타협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 갈 가능성도 있다. 북중 양국이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사실상 점진적으로 북핵을 인정하고 제재도 완화되어 가는 경우에 한국은 어떻게 이 문제에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대비도 중요하다.  ■ 

 


 

■ 이동률_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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