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성 EAI 원장(서울대 교수)은 최근 중국 전승절 행사와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가 드러낸 국제질서의 변화를 분석하고, 권위주의 국가들의 연대 속에서 북한이 차지하는 위상을 조망합니다. 전 원장은 미국 패권의 재조정, 다권역체제의 부상, 그리고 북한 외교의 전략적 전환이 한반도에 미칠 함의를 짚으며 한국 외교가 직면한 선택지를 제시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한반도 비핵화와 통일 전략을 국제질서 재편의 맥락 속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제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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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중국 전승절 행사와 8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톈진에서 개최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는 미국 주도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비판하는 움직임이 더욱 가시화되었다는 점에 관심을 끈다. 톈진 회의는 SCO 창설 이래 가장 큰 규모로, 20여 개국 정상 및 10개 국제기구 수장이 참석했다. 특히 주의를 끈 점은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참석했다는 사실로, 인도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관세 압박 속에서 인도 외교정책의 향방을 놓고 많은 논의가 제기되었다. 미국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이유로 인도에 25%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여, 기존 관세와 합쳐 총 50%의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인도는 그간 중국과 국경분쟁 등 갈등을 겪고 있었지만 미국-인도 관계의 긴장 속에 중국과 협력노선을 보이며 균형외교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였다. 텐진 회의는 기존의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새로운 다극 체제를 구축하려는 중국과 러시아의 의지가 강력하게 드러난 회의였고, 여기서 채택된 텐진선언은 미국 중심의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인도 역시 반서방 연대에 참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인도는 쿼드 참여 국가로 향후 미국, 일본 등과의 관계를 고려하고, 역사 해석에 대한 중국과의 견해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전승절 열병식에까지는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텐진회의에 연이어 개최된 전승절 기념식은 전체적으로 미국 주도 국제질서에 대한 대안제시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끈다. 두 행사에는 세계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국가들의 정상이 참여했다. 민주주의 국가들도 다수 참여했지만 중국, 러시아, 북한을 비롯하여 권위주의 강대국들이 회의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연대와 명백한 대비를 보인다. 또한 세계 9개 핵보유국 가운데 5개국 정상이 참여하여 군사적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더구나 핵무기 개발의 문턱에 다다른 것으로 알려진 이란의 참여도 눈길을 끈다.
과거 권위주의 연대가 주로 추상적 원칙이나 정치적 담론에 머물렀다면, 중국이 주도한 두 행사는 권위주의 국가들의 연대가 단순한 외교적 구호를 넘어 실질적으로 글로벌 거버넌스의 또 다른 축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열병식에 등장한 중국의 무기들은 권위주의 연대가 강고한 군사력에 뒷받침될 수 있다는 점도 확인해주었다. 중국은 더 이상 첨단 무기 생산에서 미국을 따라가는 추격자의 지위가 아니라 신무기를 앞서 개발하는 선두주자의 위치로 넘어가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들 간 세계질서에 대한 비전, 구체적인 국가의 이익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이미 새로운 글로벌 질서가 도래했다고 선언하면서 기존의 유럽 중심 질서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푸틴 대통령이 2022년 2월 베이징을 방문해 ‘새로운 세계 질서’를 외쳤던 장면을 연상시키며, 그 연장선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유럽의 우크라이나 쿠데타 지지로부터 비롯된 정당한 대응이라고 주장하였다. 많은 정상들이 이러한 논리를 지지하는 모습은, 권위주의 연대가 단순한 외교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기존 국제 질서의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 실질적 세력화 과정임을 보여준다. 중국 역시 미국 중심의 일방주의적 행위에 대한 반대를 강조하며 보다 공정하고 평등한 다극적 질서를 주장했다. 그러나 러시아처럼 현재 국제질서의 근본 규범들, 예를 들어 타국의 주권존중, 핵비확산 등의 규범을 명시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다. 중국은 향후 국제질서의 리더로 등장하기 위해 UN과 같은 국제기구를 중시하며 현존하는 국제규범을 포용하면서 미국보다 정당한 리더십 행사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국제제재를 명시적으로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북중러 삼각 관계가 진전될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북한, 러시아와 양자회담을 하지만 3자회담을 하거나 삼각관계를 제도화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중국은 미국과의 전략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자신들의 비전과 이해를 공유하고, 중국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국가들을 불러모아 새로운 세계 질서의 출발점을 알리는 데 집중했다. 이는 권위주의 연대가 군사적 역량을 동반한 국제정치 질서로 발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만약 이 연대가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연합과 군사적으로 경쟁을 지속할 경우, 더 이상 미국의 일방적 승리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패권 재조정 전략과 미래의 불확실성
현재 미국은 패권의 재조정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패권의 경제적 기반을 회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해 대외 개입의 우선 순위를 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차원의 변화 시도는 오히려 국제질서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미국의 일국 패권을 바탕으로 한 자유주의 질서를 재정비하려는 과정이 전체 질서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전략은 반드시 협력적이라고 볼 수 없는 세 가지 논리가 공존하며 추진되고 있다. 첫째는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면서 세계적 영향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미국 군사 전략 공동체의 논리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세우고 중국을 강력히 견제하며 동맹을 중시하는 전략으로, 미국의 군사적 패권을 유지하려는 시도다. 둘째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경제적 논리이다. 관세 부과, 미국 내 투자 증액, 신기술 투자 등을 통해 미국 패권의 경제적 기초를 재건하고, 나아가 경제적 패권 자체를 확보하려 한다. 이는 군사력을 뒷받침하는 기반으로서 경제를 중시하는 접근이지만 동맹에 대한 압박 때문에 첫째 논리와 충돌하는 모습을 보인다. 셋째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입장에서 비롯된 논리이다. 국제관계를 하나의 사업으로 바라보며, 외교와 전쟁이라는 고전적 수단보다 경제적 이해관계를 앞세운다. 분쟁 해결 역시 비전통적인 계산을 통한 접근이 많으며, 개인적 업적에 대한 관심, 노벨상 수상 등 개인적 어젠다를 중요한 동기로 삼고 있다.
미국 패권 재조정전략의 향후 성패에 따라 미국 주도 질서의 미래는 몇 가지로 예측해 볼 수 있다. 첫째, 미국이 경제적 기반을 회복하고 다시금 일국 패권 주도의 자유주의 질서를 복원하는 경우다. 둘째, 미국을 제외한 자유주의 국가들이 협력하여 다자주의적 자유주의 질서를 구축하는 경우다. 셋째, 미국 스스로가 다자주의적 자유주의 질서를 수용하며 책임과 권한을 분산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경우다. 이 세 번째 시나리오가 가장 바람직한 경로로 평가될 수 있다.
자유주의 진영의 미래와 별개로 미국이 배제된 비자유주의적 질서를 추구하는 시나리오도 현실화되고 있다. 전승절 행사에서 나타났듯이 중국과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이 주도하여 다자주의라는 외피를 유지하더라도 위계적이고 배타적인 질서를 형성하려는 경향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중간 단계에서는 다자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권위주의적 질서로 수렴하는 경로가 나타날 수 있다.
결국, 단일한 질서가 확립되지 못한 채 서로 다른 질서들이 혼재하는 다권역 세계가 도래할 수 있다. 각 질서는 고유의 역사적 맥락과 사상적 기반을 반영하며, 단순한 국제질서를 넘어 권역화된 형태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권위주의 연대 속 북핵문제의 향방과 한국의 대응
북한 문제는 이러한 국제질서 변화 과정 속에서 김정은의 전승절 행사 참여로 더욱 중요해졌다. 북한의 참여는 단순히 북·중 양자 관계나 북·중·러 3자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에 대항하는 새로운 국가들의 질서 형성 노력에 북한이 일원으로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민주주의 국가들이 국내적 퇴행을 겪고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쇠락을 방관하는 반면, 권위주의와 독재 국가들은 오히려 국제질서의 민주화를 주장하며 스스로를 정당성과 평등성의 수호자로 자처하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북한은 고무될 수밖에 없으며, 자신이 새로운 질서의 정당한 일원이라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북한은 한국, 미국과의 협상보다는 권위주의 연대 속에서 불가결한 동맹이라는 인식을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연대의 서열 속에서 중요성을 강화화기 위한 외교를 강화해 나갈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 보유가 단순히 중국과 러시아의 묵인으로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비확산 체제 자체가 약화됨으로써 국제 제재와 불법성 담론이 무효화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유엔 제재 역시 새로운 기준에 따라 재검토될 수 있다고 믿으며, 권위주의 연대의 일원으로서 국제적 지위와 실질적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될 것이다. 북한 외교는 권위주의 연대 속에서 핵무기 보유와 경제 발전을 병행하는 공격적 외교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한 비핵화의 기본적 전제들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과거에는 비확산 체제(NPT) 속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원리적으로 정당하며, 유엔 제재가 유지되고, 중국도 이를 대체로 수용한다는 가정이 있었다. 미·중 관계가 완화되면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협력할 것이라는 기대도 존재했다. 그러나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틀이 약화되고 권위주의 연대가 힘을 얻는다면, 이러한 전제들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결국 북핵 문제는 군축 회담의 여부나 비핵화 협상 자체보다, 국제질서의 근본적 재편 속에서 논의되어야 할 사안으로 전환되고 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서방의 쿠데타 지원 탓으로 돌릴 때 전승절 참가국 다수가 이를 지지한 것처럼, 북한도 유사한 논리를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을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이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 속에서 전략적 지위를 강화하고, 핵무기 보유를 정당한 자위 수단으로 정당화하려는 근거가 된다.
향후 트럼프식 스몰딜이 북핵 문제 해결에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지만, 낙관적 속단은 이르다. 트럼프의 외교는 사업적 거래에 가까우며 국제정치의 본질적 수단인 외교와 군사적 수단을 외면하는 한계가 있다. 스몰딜이 성사되더라도 한반도의 전략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은 낮고, 오히려 국내 정치 분열이나 연합훈련 중단 등 파급력이 클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 속에서 한국의 비핵화 노력은 남북 간 혹은 북·미 양자 간 접근만으로는 달성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북한은 글로벌 거버넌스 속에서 전략적 지위를 제고하고 있으며, 자유주의 질서의 향방에 따라 핵무기 고도화와 외교적 입지를 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은 먼저 향후 국제질서에 대해 어떠한 전망을 제시하며 전반적으로 외교국면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한·미 관계와 자유주의 국가들과의 연대를 통해 권위주의 연대를 주시하고 이상적 국제질서를 통해 갈등을 완화하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북한 비핵화 가능성을 치밀하게 계산해야 한다.
현재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현재 유효할 수 있으나, 국제질서가 변화하고 진영 간 세력균형이 변하면 또다시 바뀔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한은 권위주의 연대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국에 대한 통일 노력을 다시 본격화할 수 있으며, 군사력과 국력, 외교력이 강화되면 한국을 향한 태도도 달라질 것이다.
결국 통일에 대한 북한의 구상은 힘의 균형 위에서 수립되는 것이다. 한국은 이에 휘둘리기보다 국제질서의 향방을 주시하며, 한반도의 미래와 통일 전략을 주체적으로 구상해야 한다. 한국 정부의 정책은 국제 질서의 변화 속에서 비핵화와 통일 문제를 장기적·구조적 관점에서 조정해 나가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적 해법이 아니라, 한국이 지향하는 국제질서와 통일 비전에 대한 적극적이고 독자적인 전략적 구상이다. ■
■ 전재성_EAI 원장;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 담당 및 편집: 오인환_EAI 수석연구원; 정종혁_국립외교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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