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환 서울시립대 교수는 미북 회담의 역사를 통해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회담에 나서기 위한 조건들을 분석합니다. 저자는 김정은에게 (1) 실질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확신, (2) 철저한 사전 접촉 및 준비, (3) 북중러 간 연대를 교란할 촉매제가 협상의 조건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따라, 황 교수는 한국 정부가 한미동맹의 기반 위에서 북한에 대한 관여 정책을 유지하는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와 외교적 관여를 통한 다차원적 외교를 추진해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 재참여할 가능성을 높일 것을 제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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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이후 북미 정상회담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지속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표명했다. 자신은 김정은과 개인적 관계가 좋다고도 하고, 김정은이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미국과의 협상은 이미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가보았다”며 만남을 단호하게 거절하고,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비판했다. 김정은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정상회담 제안은 계속되었다. 한미정상회담과 미중정상회담을 위해 아시아 순방을 떠나면서 트럼프는 또 다시 김정은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그는 북미 정상회담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정은과의 만남에 100% 열려 있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또한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는 마치 트윗으로 갑작스럽게 제안했음에도 판문점에서 만났던 2019년 6월의 모습을 되살리려는 듯 했다.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 둘 사이의 만남은 무산되었지만, 트럼프와 김정은의 과거를 생각하면 갑작스러운 만남이 언제 이루어지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트럼프의 지속적인 구애에 김정은이 결단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만남에서 실질적인 협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2019년 6월 판문점 회동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처럼, 두 지도자의 준비되지 않은 만남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공고한 평화정착을 위한 실질적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하튼 현재 북미정상회담의 열쇠는 김정은이 쥐고 있다.
김정은이 싱가포르에서 트럼프를 만난 이유
김정은은 트럼프와 세 번 만났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을 가졌고,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 해 6월에는 트럼프의 갑작스런 제안으로 판문점에서 세 번째 만남을 가졌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왜 트럼프와 최초의 정상회담을 하게 되었는가?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었는데, 김정은은 당시 상황이 북한에 유리하다고 인식했다. 북한은 수십 년 동안 핵무기 보유를 추구해 왔으며, 결국 미국을 상대로 한 핵 억지력 완성을 발표했다. 이는 미국 동부 해안까지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발사 이후 이루어진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 실질적인 힘의 균형을 달성함으로써 한반도 및 세계 평화와 안보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북한은 오랫동안 핵 억지의 힘을 믿어왔고, 미국을 상대로 독자적 핵 억지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핵 억지의 논리는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 간에 상호확증파괴가 보장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평양은 2017년부터 상호확증파괴가 워싱턴을 상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김정은 자신도 이제 북한이 언제든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물리적으로 입증했으므로, 미국은 감히 북한을 공격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의 대규모 핵 1차 공격 이후에도 북한이 실제로 치명적인 대미 핵 2차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완전히 갖추었는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지만, 북한은 스스로 핵 억지력을 달성했다고 선언했다. 김정은은 미국이 핵을 휘두르며 또 다른 전쟁을 벌이려 해도, 현재 북한의 강력한 핵 억지력 때문에 감히 침략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핵 억지력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김정은은 2018년 4월 20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일주일 전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새로운 전략노선을 선언했다.
김정은 정책 변화의 또 다른 이유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기반으로 한 트럼프의 새로운 외교정책이었다. 트럼프는 동맹이든 적국이든 이전의 관계에 상관없이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외교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런 배경에서 트럼프는 유럽 및 아시아 동맹국들과 긴장을 고조시킨 반면 러시아와는 관계를 증진시켰다. 사실 그는 기존 미국 행정부와는 전혀 다른 외교정책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트럼프는 한반도의 안보 환경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립주의적 전략을 추구하고 있었다. 트럼프의 외교정책은 북한 입장에서 상황을 더 유리하게 바꾸는 환영할 만한 변화였다. 싱가포르에서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가진 후, 트럼프는 “과거가 미래를 정의할 필요는 없다. 어제의 갈등이 내일의 전쟁이 될 필요는 없다. 역사가 반복해서 증명했듯이, 적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국민을 위해 안전과 번영의 찬란한 새 시대를 열어준 지도자로 기억될 수 있는, 그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는 기회를 앞에 두고 있다”고 언급했다. 김정은은 트럼프의 새로운 외교정책을 환영하며, 적대적 과거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트럼프의 의지와 포부를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요컨대, 김정은은 평양의 핵 억지력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싱가포르를 방문했으며, 한반도 문제에 대해 트럼프에게 전략적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공동성명에 합의했다. 김정은은 당시 북한에게 유리한 상황이라 인식하고 미국과 협상에 임했던 것이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실패한 이유
김정은은 2019년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트럼프를 다시 만나 추가 양보를 기대했지만, 아무런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북한은 오랫동안 안보 보장과 평화체제가 비핵화보다 우선되어야 하며, 평화가 한반도의 비핵화로 이어진다고 인식해 왔다. 김정은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이런 순서와 ‘행동 대 행동(action for action)’ 원칙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공동성명은 먼저 트럼프가 북한에 대한 안보 보장을 약속한 내용을 명시하고, 그 다음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의 재확인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는 인식 차이가 존재했고, 이것이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의 주된 이유였다. 트럼프는 회담 후 두 사람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었다며, 김정은은 미국이 원하는 핵심 사안보다 덜 중요한 분야만 다루자고 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은 하노이에서 트럼프가 북한의 부분적 비핵화 조치에 대한 첫 단계를 수용해 주기를 기대했다. 그는 영변 핵시설 폐기를 대가로 2016년과 2017년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부과한 주요 경제 제재를 해제하도록 트럼프를 설득하려 했다. 김정은은 이것이 당시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김정은이 기대한 것과 다른 협상 틀을 설정했다. 그것은 한 번에 완전한 비핵화를 받아들이라는 요구였다. 김정은은 하노이에서 미국과 단계적 접근으로 협상하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김정은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큰 빅딜 거래를 요구하면서 정상회담은 결렬되고 말았다. 경제 제재 해제만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수용하는 것은 김정은이 받아들일 수 없는 협상이었다.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의 대가로 자신들의 체제 보장을 확보하고자 했기 때문에, 한 번에 큰 거래를 하는 것보다는 단계적 접근을 요구했던 것이다. 평양의 안보 관심사는 미국의 적대 정책을 종식시키는 데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은 지속적으로 미국의 한반도 정책 변화를 요구해 왔다. 실제로 김정은은 하노이 회담 이후 시정연설에서 정상회담 실패의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자신의 전략적 결단과 용기있는 조치가 옳았던 것인지 강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고 토로했다. 미국이 양국 관계 개선에 진정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 경계해야 하는 계기가 되었다며, 미국은 전혀 달성할 수 없는 방법만 생각한 채 정상회담에 임했다고 비판했다.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 이후, 김정은의 인식은 2018년 전의 과거로 되돌아갔다. 사실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평화 체제 사이에 근본적인 딜레마가 존재한다. 북한은 미국과 이 문제를 교환 게임의 형태로 다뤄왔다. 평양은 핵 문제를 결코 북한만의 문제로 보지 않았으며, 미국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문제로 인식했다. 북한 입장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주체는 미국이며, 북한은 핵 억지를 통해 한반도의 전쟁을 방지했다고 믿는다. 따라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에 앞서 체제 보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북한의 비핵화 개념은 자신뿐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다른 핵보유국도 핵무기 군축에 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 체제가 구축될 때만 비핵화를 실행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북미 간의 인식차이가 하노이 정상회담이 실패한 주된 이유다. 평양은 지금까지 북한의 비핵화 조치보다 안보 보장과 평화 체제가 먼저 구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여기에는 단순한 평화조약이나 미국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뿐만 아니라, 미국과 북한 간 적대 관계의 종식도 포함된다. 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하노이 회담은 북미 간 인식차가 큰 상황에서 협상 타결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
판문점 회동이 향후 협상에 주는 교훈
김정은은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트럼프와 다시 만났다. 트럼프의 트윗으로 시작된 두 정상의 재회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역시 다시 실패로 끝났다. 갑작스러운 만남이었지만, 북한 역시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 이후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했다. 두 정상은 실무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지만, 양측의 입장 차이가 워낙 커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북한은 미국이 핵 협상을 위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미국이 국내 정치적으로 회담을 이용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판문점 회동은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 갑작스러운 만남이 가능하나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결심만 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사전에 전혀 준비되지 않은 만남에서 어떤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김정은이 트럼프와 협상하게 하려면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 세 번의 만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향후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현재의 한반도 주변 상황을 고려할 때 북미 협상을 위해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제약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사례로부터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우선, 김정은이 협상테이블로 나오기 위해서는 트럼프를 설득해 합의를 이룰 수 있다는 기대가 필요하다. 2018년에는 증대된 핵능력과 트럼프의 변화된 대외정책이 김정은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었다. 2019년 북미협상이 실패한 이후 김정은은 정면돌파전을 선언했고, 2021년 1월 8차 당대회를 통해 핵능력의 증강을 선언했다. 2017년까지의 핵능력 진전을 통해서는 트럼프를 설득할 수 없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김정은이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해 어떤 인식을 하고 있는지 잘 분석할 필요가 있다. 2020년 이후 증대된 핵과 미사일 능력이 김정은에게 새로운 자신감을 심어줄 경우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하고 러시아와 안보동맹 조약을 맺고 전승절 참가로 중국과 관계를 개선한 상황에서 김정은에게 트럼프와의 협상 필요성은 감소할 수 있다. 더구나 김정은이 현재의 세계질서를 다극체제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협상에 매달릴 이유는 작다. 하지만, 북중, 북러 관계의 불안정한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북한이 자국의 운명을 중국 및 러시아에 영원히 의존할 수는 없다. 결국 어느 정도 자신감이 회복된 시점에 위협의 근원인 미국과 협상을 시도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쉽지 않겠지만, 한국 정부는 이 기회의 창이 열리도록 노력하고 그 시기를 잘 포착해야 할 것이다.
둘째, 트럼프와 김정은이 갑작스럽게 만나더라도 만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그 만남은 비밀리에라도 사전에 준비된 만남이어야 한다. 김정은이 60시간이 넘는 기차여행에도 불구하고 하노이에 간 이유는 정상회담 합의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김정은의 기대는 분명 싱가포르 회담 이후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등 북미 양국 고위관료들의 수차례 상호접촉을 통해 협상이 진행된 결과 생겨난 것이었다. 판문점 회동처럼 북미간 고위급 협상이 선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트럼프와 정상회담 합의를 기대할 가능성은 낮다. 현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북미간 고위급 협상을 추동할 레버리지는 거의 없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북미간 협상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세부적인 로드맵을 만들고, 각각 북한과 미국에 지속적으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북한과 미국 모두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어 현 상황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북미간 접촉이 시작되면 한국은 패싱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미동맹 강화와 더불어 북한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여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이다.
셋째, 국제질서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기존 환경에 충격을 줄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부는 대중, 대러 외교를 조심스럽게 강화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김정은의 신뢰가 약화될수록 미국에 대한 접근 가능성은 높아진다. 북중, 북러 관계가 강화된 현 상황에서 한국의 대중, 대러 외교는 상당한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역시 다극질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외정책의 전략적 공간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의 모멘텀이 약화되었지만 한국 정부의 다면적 외교노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대러 관계 변화를 유심히 살펴 새로운 안보환경 등장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북미 협상에 나서게 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 황지환_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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