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한 머커지 런던정치경제대학(LSE)교수는 미국의 국제제도 후퇴가 ‘지위’ 정치의 판을 어떻게 바꾸는지 설명합니다. 저자는 국제질서가 특정 국가의 의지만으로 유지되기 어렵게 된 상황에서, 중국은 대안 제도와 낮은 비용의 ‘기다리기’ 전략으로, 인도는 안보리·IMF 개혁을 포함한 제도적 헤지로 지위를 추구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머커지 교수는 이러한 흐름이 한국 같은 중견국에겐 ‘인도식 전략자율성의 모방’보다는 이슈 기반 다각화와 단일 의존 완화라는 실천적 함의를 제공한다고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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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탈이 바꾸는 국제질서의 ‘지위’ 조정
오인환: 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머커지 교수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국제기구 정치와 지위(status)의 현재 상황에 관한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예전에 LSE와 하신 인터뷰에서, 강대국 정치의 진짜 비극은 기존 강대국들이 새로 부상하는 강대국을 자신들의 클럽에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상하는 강대국들의 지위 요구를 무시하는 기구들은 결국 스스로를 훼손할 수 있다고도 하셨죠.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교수님이 최근 카네기에 기고하신 글은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유엔 안보리가 1991년 이후 가장 적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든지, 유엔이 유동성 위기에 처했는데 이는 미국이 분담금을 내지 않는 것뿐 아니라 중국도 분담금 납부를 미루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고, 미국이 66개 이상의 국제기구에서 탈퇴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그래서 오늘날의 위기는 클럽이 새 회원을 거부하는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창립 회원국 중 하나인 미국이 스스로 발을 빼거나 뒷걸음질치는 문제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질문의 초점이 '질서를 개혁하는 문제'에서 '질서가 살아남을 것인가, 지속 가능할 것인가'로 옮겨갈 때, 혹은 이 두 질문이 동시에 제기될 때, 교수님이 연구해 오신 국제 지위 정치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최근의 이런 흐름을 어떻게 보시나요?
로한 머커지: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이런 문제들을 이야기하게 되어 기쁩니다. 아주 중요한 질문이에요. 제가 책을 쓸 당시에는 지금처럼 상황이 어렵지 않았어요, 그러나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박사님께서 정확히 그 차이점을 짚어주셨어요. 오늘날의 국제 질서에서 말이죠. 제가 연구에서 발전시킨 틀은, 자신보다 위계상 위에 있는 다른 강대국들이 세우고 유지하는 질서를 부상하는 강대국이 어떻게 대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오히려 그 반대, 즉 그 구도가 뒤집힌 형태입니다. 왜냐하면 지배적 강대국인 미국 스스로가 그 질서를 구성하는 기구들을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탈퇴하고, 훼손하고, 자금 지원을 줄이는 식으로요.
그러나 저는 이런 행동들 때문에 지위 정치가 사라진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초점이 어느 정도 옮겨갈 뿐이죠. 그리고 여기서 제 생각에는 질서를 패권국의 행동과 분리해서 보는 것이 분석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질서 자체는 유엔 안보리, 총회, G20, 핵확산금지조약, 심지어 WTO까지 포함하는 방대하고 복잡한 제도들의 그물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탈퇴가 이것을 하루아침에 지워버리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상당한 관행과 습관, 그리고 실제 협력 기구들이 남아 있죠. WTO조차도 미국이 분쟁 해결 메커니즘의 작동을 막고 있기 때문에 잠정적인 중재 메커니즘을 개발했습니다. 그러니 제도들은 적응하고 어떤 형태로든 계속 존재합니다.
그러니 이 질서는 단순히 미국 외교정책의 연장이 아니라, 80년 동안 이어져 온 다면적이고 방대한 체제이며, 각국은 그 안에서 협력하는 데 매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이 질서에서 빠져나갈 때, 이는 여러 국가에게, 물질적으로도, 그리고 지위 측면에서도 이득이 됩니다. 사실상 미국의 지위를 약화시키는 동시에, 오랫동안 세계적 리더십을 기다려온 이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셈이죠. 미국인들이 말하는 정통성, 평판, 이미지, 지위라는 측면에서, 미국의 그런 영역에서의 세계적 존재감은 이런 탈퇴와 훼손 등으로 타격을 입었습니다.
지위란 우리가 이해하듯 위치재(positional good)이자 사회적 재화이며, 인정을 부여하는 청중과 순위가 측정되는 위계를 필요로 합니다. 이런 조건들은 여전히 국제 질서와 이 모든 기구 안에 존재하지만, 지금 달라진 점은, 제 생각엔, 그 전체를 뒷받침할 의지와 능력을 가진 단일 강대국이 더 이상 없다는 것입니다. 전체를 떠받치는 그런 존재가 없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보게 될, 그리고 이미 보고 있는 주요 변화는 그 국제사회, 말하자면 '지위 시장'의 파편화입니다. 여러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겠죠. 저는 앞으로 인정(recognition)이 점점 더 작은 단위의 협의체, 복수국가 클럽, 지역 협의체, 양자 간 지지 표명 등에서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G20, 브릭스, 상하이협력기구, 이슈 기반 연합, 심지어 쿼드, 그리고 이제는 '스쿼드'라고 불리는, 즉 인도를 뺀 쿼드 회원국들에 필리핀이 더해진 형태 같은 것들이요. 하나의 보편적 위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이죠.
그래서 부상하는 강대국들은 여전히 이 질서 전반에서 지위와 순위를 추구하겠지만, 이제는 여러 무대에서 동시에 그렇게 할 것이고, 이는 덜 효율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일관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더 커지겠죠.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대체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질서를 유지하는 문제는 부분적으로 제도가 제공하는 인정을 여전히 중요하게 여기지만, 개별적으로는 전체 체제를 떠받칠 역량이나 의지가 부족한 2군, 부상 강대국들 사이의 집단행동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하나의 기회로 남아 있습니다.
오인환: 네, 방금 말씀하신 요점에 동의합니다. 우리는 패권국의 행동과 국제기구의 지속 가능성을 구분해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로버트 코헤인이 이미 그의 저서 『After Hegemony』에서 이런 주장을 했었죠, 제도는 존속할 것이지만 아마 그가 그 책에서 묘사한 방식대로는 아닐 거라고요. 하지만 어쨌든 존속은 할 것이고, 미국이 기존 기구들에서 뒤로 물러난 것은 스스로의 지위를 훼손했을 뿐 아니라 다른 중견국이나 소국들이 일종의 소다자주의를 형성할 여지도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희가 개최한 공개세미나 주제도 NATO-IP4 였습니다. 쿼드나 그 외의 다양한 소다자 기구 형태들, 즉 중견국이나 비강대국, 혹은 부상하는 강대국들이 앞으로 밀어붙이고 싶어할 그런 형태들에 관한 것이었죠. 그래서 방금 말씀하신 요점에 정말 동의합니다.
로한 머커지: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흥미로운 점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의 영향이 미국 당국자들과 학자들이 중견국을 이야기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는 겁니다. 국방부(혹은 전쟁부, 뭐라고 부르시든)의 엘브리지 콜비가 최근 트위터에서 중견국 관련 논의는 과장된 것이며, 어차피 그들은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글을 올렸죠. 마이클 베클리 교수도 Foreign Affairs에 중견국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상, 착각이라고 썼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런 주장들이 다름 아닌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뭔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인환: 네, 맞습니다, 확실히요.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중견국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겠죠. 그래서 미국 바깥에서 중견국들이 벌이는 여러 활동과 행동들이 있는 거고요. 물론 저희 모두는 미국이 어떤 형태로든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미국은 여전히 나토 회원국이죠. UN에 대한 분담금은 예전만큼 내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른바 '별 볼 일 없는' 중견국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실은 중견국들과 그 연계에 대해 무언가를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네, 정확히 그렇습니다.
중국의 지위 정책
오인환: 두 번째 질문은 중국의 지위 정책에 관한 것입니다. 2023년 같은 LSE 인터뷰에서 교수님은 중국의 행동을 여러 기구에 걸쳐 매핑하셨죠. 안보리, WTO, G20에서는 순조롭게 협력하고, IMF와 해양법에서는 개혁을 추진하며, 인권 체제에는 도전한다고요. 그런데 이제 2026년이 된 지금, 3년이 지난 지금, 워싱턴이 WTO 상소기구를 무력화시켰고, 국제 해협을 봉쇄했고, 심지어 자신이 시작한 이란 전쟁을 베이징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정리하도록 요청했는데, 중국은 당연히 이를 거부하고 방관자 입장에서 비판했습니다.
'협력-개혁-도전'이라는, 부상하는 강대국의 지위 정책을 설명하는 그 틀이 지금도 베이징의 접근법을 잘 설명한다고 보시나요? 아니면 중국이 다른 전략, 즉 협력이나 개혁이나 도전이 아니라 그저 질서보다 더 오래 버티는 전략으로 옮겨갔다고 보시나요? 저는 중국이 최근 랜디 슈웰러와 푸 샤오위가 약 15년 전에 언급했던 이른바 '회피 전략(shirker strategy)'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략은 기존 제도를 이용하되 진지한 책임은 지지 않는 것이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뭔가를 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서 중국의 최근 지위 정책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로한 머커지: 네, 맞다고 생각합니다. 랜디와 샤오위가 13년 전에 이야기했던 회피 전략을 넘어섰다는 점에서요. 중국은 이제 여러 방식으로 앞으로 나서며 다양한 영역에서 리더십을 주장하려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평화유지활동은 중국이 임무영역을 통제하고 병력배치에서 더 많은 리더십을 갖고자 점점 더 애쓰는 영역 중 하나입니다. 일대일로(BRI)도 중국이 스스로를 다른 종류의 국제개발금융, 인프라 개발 제공자로 부각시키려는 시도로 볼 수 있고요. 유엔 안보리에서는 중국이 적어도 수사적으로는 여전히 유엔을 세계 거버넌스의 가장 정당하고 대표성 있는 기구로 지지하고 있고, 우리가 기억하는 한 계속 그런 입장을 유지해 왔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중국이 앞으로 나서고 있는 질서의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 자체 기후 공약 면에서 중국은 이제 배출량 억제와 녹색 경제로의 전환에서 많은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있습니다. 물론 이는 다자적이라기 보다는 좀 더 일방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결국 전 지구적 기후 목표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니 중국이 질서 안에서 리더십을 추구하고 투영하려는 다양한 측면들이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만든 틀도 두 가지를 봅니다. 하나는 어떤 기구가, 예전에는 부상하는 강대국이었지만 이제는 거의 부상하는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중국 같은 나라를 절차적으로 동등하게 대우하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기구가 개방적인가 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리더십에 대해서요. 그래서 이 두 조건이 모두 충족될 때, 즉 기구가 리더십에 개방적이고 부상하는 강대국들을 기존 강대국들과 공정하고 평등하게 대우할 때, 중국은 협력합니다. 그리고 국제 질서의 여러 부분이 여전히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G20이 그런 예 중 하나이고 안보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그렇지 않은 영역에서는 중국이 그것을 개혁하려 하는데, IMF 쿼터 문제가 한 예이고, 국제금융기구 전반이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개혁이 정체될 때는 중국이 아예 자체 기구를 만들어냈죠. 그래서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브릭스 은행, NDB(신개발은행) 같은 기구들이 확산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브릭스에는 다른 몇몇 메커니즘, 컨틴전트 리저브 메커니즘 등도 있고요. 그러니까 이는 기존 기구들보다 훨씬 약한 대안적 질서 형태에 대한 투자인 셈이죠. 자본 배분 규모도 기존 기구보다 작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구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 안에서는 중국이 1인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상하이협력기구, AIIB, NDB 등에서 최상위 국가가 됩니다. 그러니까 미국이 중국에게 허락하지 않는 곳에서 중국은 이제 새로운 경로를 찾아낸 겁니다, 어떤 형태로든 지위, 주요 강대국 지위, 강대국 지위를 갖기 위해서요.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워싱턴이 WTO를 무력화시킨 방식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른바 방관자 전략, 즉 미국이 세계 질서에 끼치는 손상을 그저 비켜 앉아서 버텨내려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건 제가 좀 빌려온 개념인데요. 스테이시 가더드와 로널드 크렙스가 몇 년 전에 훌륭한 특집을 낸 적이 있는데, 질서를 지지하는 이의제기(order-consistent contestation)와 질서에 도전하는 이의제기(order-challenging contestation)를 구분한 내용이었습니다. 어떤 형태의 이의제기는 오히려 질서를 강화하고 개선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데, 그건 질서를 더 낫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다른 형태의 이의제기는 질서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중국은 상당 부분 질서를 지지하는 이의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즉 무너뜨리지는 않되, 자원을 아끼고, 다른 영역에서 나서기를 자제하며 질서를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려 하지 않고, 그저 뒤로 물러앉아 세계 권력과 지위의 분포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놔두는 것이죠. 이는 사실 꽤 효율적인 전략입니다. 기존 패권국이 물러남으로써 중국에게는 저비용으로 자신을 방어자로 내세울 수 있는 지위 확보의 길이 열리는 것이죠. 미국이 버리고 있는 제도들의 수호자로서요. 그래서 이란 전쟁을 실제로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태지 않으면서도 방관자 입장에서 비판만 하는 것은, 중국이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어떤 비용도 치르지 않으면서 책임감 있어 보인다는 평판상의 이득을 챙길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러니 이 역시 합리적인 전략입니다.
그리고 이는 중국만의 고유한 방식이 아닙니다. 미국 자신도 19세기에 이와 비슷하게 행동했죠. 당시 영국이 해양 공유지를 순찰하는 비용을 부담하고 있었고, 미국은 자신의 위상에 따라 국제법의 여러 부분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했습니다. 그러니 저의 전반적인 평가는, 중국의 중점이 적극적인 개혁에서 미국이 끼치는 손상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쪽으로 다소 옮겨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영역에서 리더십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인환: 그러니까 교수님의 틀이 여전히 중국의 일부 행동에는 적용된다는 말씀이시군요, 다만 예를 들어 어떤 이슈 영역, 어떤 기구에서 개혁이 정체되면, 중국은 그것을 우회할 다른 방법을 찾거나 대안적인 질서, 대안적인 기구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것이고, 아니면 저희가 방금 이야기한 대로 중국이 방관자 입장에서 질서보다 더 오래 버티면서, 미국에 여러 여건들이 부담을 주고 세력 분포가 중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놔둔다는 것이군요. 방금 말씀하신 중국의 행동과 기구에 대한 부분에 저도 동의합니다, 네.
로한 머커지: 네, 그리고 제 생각에 이 모든 것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은, 중국이 국제 질서에 접근하는 방식이 하나로 획일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영역이 무엇인지, 그 영역의 사회적 위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치가 어떤지, 그리고 그 질서에서 나오는 물질적 이익—이것도 무시할 수 없죠—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니 중국이 하는 계산은 복잡한 것이며, 어느 정도는 그 패턴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오인환: 네, 방금 말씀하신 흥미로운 지점은, 대안적 기구, 대안적 형태의 질서 안에서는 중국이 상하이협력기구 등에서처럼 1인자 지위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군요. 그러니까 결국 저희 모두가 대체로 동의하는 기본 논지, 즉 부상하는 강대국들은 지위를 높이려 한다는 논지가 이런 사례에도 여전히 적용된다는 거고요. 그리고 앞으로 수십 년간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기후 의제를 둘러싼 이런 격차가 어떻게 전개될지도 정말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미국은 자국의 기후변화 대응 의제를 해체해가고 있는 반면 중국은 기후 의제를 산업정책에 아주 적극적으로 통합시키고 있으니까요. 미국도 다시 궤도에 오르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겠죠.
인도의 지위 정책
오인환: 자, 세 번째 질문은 인도의 지위 정책에 관한 것입니다. 인도는 안보리와 IMF 개혁 문제를 EU, 영국, 캐나다와의 새로운 협정에 계속 포함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브릭스 내에서는 2025년 선언에서 브라질과 인도의 안보리 개혁 지지를 명시했지만, 남아공은 아프리카 블록 회원국들의 반대 이후 눈에 띄게 제외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위의 희소성이 지위를 열망하는 국가들 사이에서도 작동하고 있는 셈이죠. 그렇다면 인도는 이런 지위 정책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걸까요? 뉴델리는 미래에 체제가 재편될 때를 대비해 인정을 미리 확보해 두려는 것일까요, 아니면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자산에 위신을 쏟아붓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관련해서, 누가 지위 상승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합의조차 이루지 못하는 글로벌 사우스 연합이 앞으로도 계속 이 캠페인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로한 머커지: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제 생각에 핵심은, 인도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미래를 위한 보험처럼 인정을 미리 쌓아두는 동시에, 인도가 추구하는 그 대상, 그 '가격'이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가치를 좀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죠.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것에 비유하자면, 만약 성공적인 전략을 갖고 있었고 매수한 주식이 잘 나가다가 어느 시점부터 떨어지기 시작한다면, 자원을 분산시키고 그 하락에 대비해 헤지를 하고 싶어지지, 완전히 손을 떼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미래에 다시 오를 수도 있으니까요. 바로 이런 불확실성 자체가 일종의 헤지 전략, 말하자면 '제도적 헤지'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인도에게는 이것이 합리적인 전략입니다. 안보리 개혁, IMF 개혁, 브레튼우즈 체제 개혁 등을 EU, 영국, 캐나다와의 파트너십 문서에 담아두는 것은 그런 인정을 미리 확보해 두는 방식입니다. 즉 "지금 당장 이 기구들을 개혁해 달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을 이 협정들에 명문화해 달라"는 것이죠. 이는 인도가 갖고 있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인정과 자리에 대한 주장을 하나의 기록으로 전환시켜 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국제체제의 이런 주요 국가들이 이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죠. 저는 이것이 일종의 상징적 자본이며, 캐나다나 영국 같은 나라들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형태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 협정들은 계속 유효하게 남아있을 테니까요.
물론 그 상징적 자본의 가치는, 실제로 인도가 미래에 주도할 수 있는 기능하는 질서가 존재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도, 아까 말씀하신 대로 안보리가 수십 년 만에 가장 활동이 적은 시기라면, 그리고 미국이 그 체제에서 발을 빼고 있다면, 그 가치는 떨어지겠죠. 그러니 어떤 면에서 인도의 주장은, 제 생각엔,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무언가에 대한 것이지만, 동시에 미래를 위해 이런 약속들을 확보함으로써 그것에 대비해 헤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답은 지위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것입니다, 아까 주식시장 비유를 이어가자면요. 안보리에만 베팅하는 대신 인도는 2023년 G20 의장국을 맡으면서 많은 에너지와 자금을 쏟아부으며 스스로를 글로벌 리더로 내세우려 했습니다. 기후변화 관련 협의체나 유엔 안의 여러 소모임, 심지어 쿼드 안에서도 리더십을 주장하고 있죠. 인도는 최근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이런 부분에 상당히 적극적이었습니다. 또한 2015년 무렵부터 인도는 스스로를 '리딩 파워(leading power)'로 규정하거나 그렇게 되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해 왔습니다. 그리고 모디 총리도 여러 나라들과 활발한 양자 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이, 제 생각엔, 유엔의 근본적 개혁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도에게 일정한 지위를 부여해 줍니다. 그러니까 이는 그 개혁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 유엔이 50년 후에는 더 이상 유의미한 기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비한 헤지인 셈이죠.
글로벌 사우스에 관한 질문은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세계적 리더십을 열망하는 국가들 사이에는 '지위의 희소성'이 존재합니다. 유엔 안보리 확대는 수십 년째 의제에 올라 있지만, 이른바 'G4' 국가들, 즉 브라질, 인도, 독일, 일본조차도 실현이 어려운데, 왜냐하면 자기 지역 내 다른 국가들의 반대에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아르헨티나나 파키스탄, 이탈리아는 바로 이런 이유로 이런 조치들에 반대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게 다른 국가들에게 일종의 인정을 부여하는 것이니까요. 아르헨티나는 브라질만 안보리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자신도 안보리에 들어가고 싶은 거죠. 하지만 이런 것들은, 제 생각엔, 협상과 정치를 통해 해결되어야 할 이견들이지, 그 자체로 꼭 특이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글로벌 사우스 연합 스스로는 어느 한 회원국의 지위 상승 캠페인을 단독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글로벌 사우스의 목적은 아니라고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글로벌 사우스는 많은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그것은 오히려, 국제 질서가 불공정했다는 좀 더 일반적인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고, 그 질서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것에 합의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니 박사님의 지적은 맞다고 보지만, 이것은 협상의 문제이지 이미 확정된 결론은 아니라는 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오인환: 친구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나 경쟁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공동의 더 큰 목표를 위해서라면 서로 관계를 유지하며 협력할 수 있습니다.
인도식 전략자율성의 연속성
오인환: 첫 번째 답변과 관련하여 추가로 질문드리겠습니다. 앞서 인도가 두 가지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고 하시며, 이를 일종의 '제도적 헤징(institutional hedging)'으로 설명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규정하실지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접근이 국제기구 영역에서 인도 외교가 전통적으로 추구해 온 '전략적 자율성'과 연관된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여쭙는 이유가 있습니다. 앞서 만자리 씨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인도가 추구하는 전략적 자율성의 역사적 뿌리를 냉전기 비동맹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견해를 들었습니다. 이 견해에 동의하시는지, 아니면 다른 관점을 갖고 계신지 여쭙고자 합니다.
로한 머커지: 인도 외교정책에 정통한 실무자들의 견해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샴 사란(Shyam Saran) 전 외교차관은 몇 년 전 출간한 저서에서, 전략적 자율성이 독립 직후부터 인도 외교정책의 초석이었다는 주장으로 책을 시작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동맹은 전략적 자율성의 한 형태이며, 현 정부가 '다자정렬(multi-alignment)'이라 부르는 것 역시 전략적 자율성의 한 형태입니다. 저는 이 둘이 본질적으로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냉전기에는 이른바 '진영 정치'에서 한발 물러서 있는 데 더 가까웠습니다. 인도는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모든 사안을 개별적으로, 그 자체의 시비에 따라 판단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냉전기 인도의 대외관계, 특히 소련과의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의미에서 인도는 일정 시점 이후로는 비동맹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맹은 아니었지만, 냉전기 내내 소련 쪽으로 정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다자정렬은 그 형태만 달라졌을 뿐입니다. 즉, 인도는 모든 국가와의 정렬에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특정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는 기조는 여전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사태, 이란 문제 등 어떤 국제 현안을 보더라도 인도는 입장을 밝히지 않으며, 이는 인도의 여러 파트너국과 우방국에게 상당한 답답함을 안겨 왔습니다. 그러나 만자리 씨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이는 인도 외교에 깊이 뿌리내린 특성입니다. 국제정치의 압력과 이해관계의 줄다리기 속에서도 자율성을 지키며 독자적인 노선을 걸으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오랜 전통이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오인환: 교수님의 답변이 자연스럽게 인도 외교정책의 미래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모디 이후를 내다보면, 교수님께서는 그가 2029년에 다시 출마할지 여부가 매우 불투명하다고 하시며, 두 명의 서로 다른 후계자를 제시하셨습니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한 명은 중국과 미국을 모두 경계하는 힌두 민족주의 노선의 요기 아디티야나트(Yogi Adityanath)이고, 다른 한 명은 시민적 민족주의(civic nationalism) 노선의 라훌 간디(Rahul Gandhi)입니다. 라훌 간디는 중국을 주된 위협으로 간주하고, 민주주의 국가들이 함께 생산 역량을 구축하자는 공동 비전에 서방을 끌어들이고자 합니다. 다만 후자는 인도의 전통적 외교정책 기조와는 그다지 부합하지 않아 보입니다. 따라서 역내 파트너국들 입장에서 이 둘은 상당히 다른 두 개의 인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금 짚어주신 더 깊은 차원의 연속성, 즉 전략적 자율성과 강대국 지위, 혹은 앞서 언급하신 '리딩 파워(leading power)' 지위에 대한 공통된 의지를 고려할 때, 누가 집권하든 다음 인도는 지금의 인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보시는지요? 지도자들은 일단 취임하고 나면 여러 이유로 입장을 바꾸어 기존 정책을 유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로한 머커지: 사실 저는 요기 아디티야나트와 라훌 간디 두 인물 사이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봅니다. 강경한 힌두 민족주의 노선과, 제가 '시민적 민족주의'라고 부르는 간디의 노선은 몇 가지 핵심 지점에서 수렴합니다. 인도 예외주의와 전략적 자율성에 대한 의지가 그렇습니다. 두 사람 모두 중국을 주된 외부 위협으로 간주하며, 다극 체제 속에서 강대국 지위를 추구하려는 열망도 공유합니다. 이처럼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물론 인도의 외교정책 결정은 중앙집중적이어서 지도자 개인의 성향이나 기질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그럼에도 정책 결정은 여전히 공유된 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세계 속 인도의 위상을 바라보는 전통과 이념, 사고방식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자리 밀러(Manjari Miller)와 케이트 설리번 데 에스트라다(Kate Sullivan de Estrada)는 모디 같은 지도자에게도 작용하는 이러한 '제약의 전통'에 관해 글을 쓴 바 있습니다.
다만 국내 정치 차원에서는 상당히 실질적인 차이가 존재하며, 이에 대해서는 제가 별도로 다룬 바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인도가 국내적으로 어떤 나라이고,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다른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이미 어느 정도 대외 영역으로 번지고 있으며, 향후 아디티야나트 정부가 들어선다면 더욱 뚜렷해질 수 있습니다. 그는 강경한 주권주의자로서, 인도 내 무슬림 소수집단은 물론 무슬림이 다수인 이웃 국가들에 대해서도 더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몰디브를 생각해 보면, 힌두 민족주의 성향이 더욱 강한 정부 아래에서는 향후 마찰이 커질 수 있습니다.
반면 라훌 간디는 서방과의 협력을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공동 민주주의 비전으로 규정하는 데 더 적극적입니다. 그러나 그조차도 그것이 인도의 주권을 희생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 왔습니다. 결국 이는 오래된 원칙으로 돌아갑니다. 주권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인도는 미국을 포함한 그 어떤 강대국에도 종속적인 행위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변하지 않는 상수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인도의 우선순위를 워싱턴에 종속시키지 않으리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라훌 간디는 야당 지도자로서도 인도의 핵심 이익이 미국과 엇갈리는 사안에서는 모디 정부를 지지해 왔습니다. 파키스탄 문제,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맥락에서의 대러시아 관계 등에서 그는 공개적으로 정부 입장을 지지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합의와 연속성이 존재하며, 전략적 자율성이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인환: 국내 정치에서의 수사만 보고 예상하는 것보다 두 사람 사이에 공통점이 훨씬 많다는 말씀이시군요. 또한 선출된 정치인이 집권 후 전통적 입장으로 회귀하는 것도 그리 드문 일은 아닙니다. 전략적 자율성과 관련하여 짧게 추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최근 미국 국방부, 혹은 전쟁부가 인도태평양사령부의 명칭을 '아시아태평양사령부'로 변경했습니다. 1기 트럼프 행정부 당시 '인도태평양사령부(INDOPACOM)'로 바뀌었던 명칭이, 6월 17일경 다시 '아시아태평양사령부'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는 미국-이란 전쟁의 여파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저는 이 변화가 일각의 추측이나 비판과 관련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미국은 장기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쿼드를 비롯한 연대 구도를 추진하고 있는데, 인도가 그 안에서 이른바 '가장 약한 고리'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전략적 자율성 때문에 인도가 쿼드 내 가장 약한 고리가 되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요.
로한 머커지: 타당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그 동맹국, 즉 쿼드 회원국인 호주와 일본의 관점에서 보면, 인도는 쿼드에 더 강한 군사적 성격을 부여하는 데 늘 소극적이었습니다. 쿼드가 '아시아판 나토'가 될 수 있다는 발상 자체에 일종의 거부감이 있는데, 사실 이 표현은 베이징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도의 대중국 경제 의존도 어느 정도 작용합니다. 의존이 존재하는 이상, 적어도 중국 측에서 상호의존을 무기화할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밀어붙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한국과 호주는 이미 이를 겪었고, 몰디브 같은 작은 나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쿼드처럼 아시아에서 야심 찬 구상을 추진하는 데 위험 회피 성향이 나타나며, 이것이 인도를 더 약한 고리로 만드는 요인입니다.
또한 나머지 두 나라는 1950년대부터 줄곧 미국의 동맹국이었습니다. 반면 인도는 한 번도 미국의 동맹국이었던 적이 없으며, 냉전기에는 적어도 정렬 측면에서 오히려 반대편에 서 있었습니다. 2000년 이후 관계 개선과 정상화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미국의 긴밀한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즉, 인도는 호주나 일본과는 성격이 다른 행위자이며, 그렇기에 종속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미국과 묶이는 데 자연히 더 소극적입니다. '종속'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쓰고 있지만, 미국이 동맹을 대하는 방식 자체가 스스로를 상급 파트너로 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대국을 지향하는 인도는 그 어떤 나라의 하급 파트너도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말씀하신 대로, 이것이 쿼드에 다소 제동이 걸린 이유 중 하나입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쿼드를 보다 군사 중심의 협의체로 만들려 했지만, 인도는 이에 관여하는 데 소극적이었습니다.
한편 지난 1년여 동안 관세, 러시아, 파키스탄 문제를 둘러싸고 미-인도 관계가 냉각되면서, 인도와 중국은 실제로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습니다. 양국 간 항공편이 재개되었고, 국경 대치 지역에서는 점진적인 병력 철수가 진행 중입니다. 나아가 인도 정책 결정 집단 내부에서도, 막대한 대중국 무역적자를 감당하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더 많은 외국인직접투자(FDI)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무역적자가 이만큼 크다면 자금이 다시 인도로 들어오는 경로가 필요하고, 그 방법 중 하나가 중국을 인도의 FDI 공급원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처럼 미국이 예측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대중국 관계에 대한 새로운 발상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는 양방향의 문제입니다. 미국 입장에서 인도가 약한 고리라면, 인도 입장에서도 미국은 신뢰할 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국제정치이며,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상황도 그러한 것입니다.
오인환: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입니다. 동맹국이든 인도와 같은 파트너든, 미국은 모든 상대에게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중국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해졌습니다. 물론 경제적 보복에 있어서는 다소 공격적일 수 있지만 말입니다.
한국에 대한 함의
오인환: 한국 역시 2016~2017년경 사드(THAAD) 배치 이후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보복을 겪은 바 있어, 이러한 위험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국도 미국은 물론 나토, EU 등 여러 파트너와 협력하면서, 동시에 역효과를 낳을 정도로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도록 매우 섬세한 균형을 유지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으로, 인도의 전략적 자율성이 한국에 주는 함의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한국은 인도와의 특별전략적동반자관계를 심화하는 한편,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미중 사이에서 독자적인 길을 모색해 왔습니다. 이러한 중견국 입장에서 인도의 전략적 자율성 추구는 어떤 교훈이나 함의를 줄 수 있을까요? 실제로 인도 측 인사들로부터 한국의 대외정책이 좀 더 전략적 자율성을 가질 수 있다는 의견을 종종 듣습니다. 인도의 사례는 미중 경쟁 속에서 다변화를 모색하는 중견국들이 참고할 수 있는 모델일까요? 아니면 이러한 자율성은 강대국이나 지역 선도국을 지향하는 나라만이 누릴 수 있는 일종의 사치라는 점을 일깨워 주는 것일까요?
로한 머커지: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인도의 자율성은 한국에는 없는 몇 가지 구조적 조건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인도는 영토가 매우 넓고, 거대한 내수 시장과 세계 최대 인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과 미국 모두 인도와 교역하거나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전시키기를 원합니다. 또한 인도는 독자적인 핵 억지력을 갖추고 있으며, 흔히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로 묘사됩니다. 저는 이 표현이 반드시 적절하다고 보지는 않지만, 어쨌든 인도가 국제질서에서 중요한 행위자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조건 덕분에 인도는 정렬을 거부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집니다.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고 규모가 작은 미국의 조약 동맹국에는 없는 여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물질적 위치는 인도와 매우 다릅니다. 한국은 중국과 인접해 있고, 북쪽에는 핵무장한 적대국인 북한이 있으며, 미국과 중국을 모두 거치는 공급망에 깊이 편입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이 인도식의 완전한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말씀하신 그대로 사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도의 방식에는 다른 나라에도 적용 가능한 논리가 있습니다. 바로 다변화의 논리입니다. 저는 한국이 성공적인 외교정책을 펼치기 위해 국제정치의 독자적인 한 축이 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인도에서 다른 맥락으로 옮겨 올 수 있는 좋은 관행들이 있습니다. 진영이 아닌 사안별 정렬, 여러 파트너에 걸친 헤징, 그리고 다방면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자체 역량 투자가 그것입니다. 이는 인도와 같은 규모 없이도 다른 중견국들이 충분히 응용할 수 있는 교훈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이러한 전략을 취할 유인이 어느 때보다 큰 시기일 수 있습니다. 앞서 논의했듯이 미국은 국제질서의 관리자 역할에서 물러나고 있고, 그다음 위치의 국가들은 서로 연합을 구축하며 선택지를 넓혀 가고 있습니다.
EU-인도 관계가 한 예이며, 한국-인도 파트너십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제가 강조하고 싶은 구분은 이것입니다. 인도가 추구하는 것은 목적 그 자체로서의 '전략적 자율성'이고, 한국과 같은 중견국이 추구할 수 있는 것은 단일 파트너 의존을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전략적 다변화'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로부터 배울 점은 있지만, 반드시 똑같은 교훈일 필요는 없습니다. 인도의 경험은 다변화를 통해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동시에, 자율성이 결국 국가의 규모와 군사력에 달려 있다는 점도 보여 줍니다. 자율성은 단순한 정책적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조건의 문제입니다.
오인환: 동의합니다. 한국의 외교정책은 중견국으로서의 행위 주체성(agency)을 강화하고, 작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가 그래 왔듯이 체급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재 국제정치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 미중 경쟁이며, 여기서 완전히 벗어날 방법은 없다는 점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말씀하신 대로, 인도의 전략적 자율성 추구에는 한국적 맥락에 맞게 배우고 응용할 수 있는 논리가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다만 반드시 똑같은 방식일 필요는 없겠지요. 실제로 인도를 방문한 한국 외교관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인도 측에서 "한국은 왜 좀 더 전략적 자율성을 갖지 못하느냐, 한국은 레버리지도 더 많고, 어떤 면에서는 다른 중견국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는 것입니다. 인도와 같은 지역 선도국에서 나온 피드백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격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인도의 외교정책과 지위 추구에 대해 더 깊이 배울 수 있어 대단히 흥미로웠습니다. 주어진 인터뷰 시간을 모두 쓴 것 같습니다. 교수님의 연구 전문성과 지역 전문성을 바탕으로 중국의 지위 정책, 인도의 외교정책, 그리고 이것이 한국에 주는 함의까지 짚어 주셔서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로한 머커지_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 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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