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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논평] 혼돈의 시대, 새로운 미래상과 중견국의 대응 전략
아이셰 자라콜
캠브리지대 교수

Editor's Note

아이셰 자라콜 캠브리지대 교수는 국제질서의 변화와 중견국의 전략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합니다. 저자는 기존 서구 중심의 국제관계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비서구 국가들이 새로운 질서의 비전을 제시할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자라콜 교수는 혼란(disorder) 속에서 한국과 같은 중견국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회를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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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질서의 미래와 새로운 비전의 가능성

 

오인환: 교수님, 저희와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첫 번째 질문은 글로벌 질서의 미래에 관한 것입니다. 최근 Ideas 뉴스레터에 기고하신 글에서 교수님은, 1990년대 초반에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을 비롯하여 학자들과 전문가들 모두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했으나,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앞으로 무엇이 올 것인지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 논지에 따라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교수님은 진정으로 새로운 비전이 비서구 세계로부터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새롭게 부상하는 국제질서는 기존 질서의 개혁이나 재편이 아니라, 상당히 새로운 질서가 될 것이라고 보십니까?

 

아이셰 자라콜: 감사합니다. 우선, 초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동아시아연구원과 이야기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네, 말씀하신 글은 Ideas 뉴스레터에 기고한 것입니다. 거기서 저는 1990년대 냉전이 종식되었을 때, 서구 지식인들이 논쟁의 여지가 있더라도 이후 세계에 대한 포괄적인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을 논했습니다. 그 글에서 저는 말씀하신 “역사의 종말에 이르렀으므로 다음에 오는 것은 없다“고 주장한 후쿠야마 뿐만 아니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테제와 로버트 카플란도 함께 다루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저는 현재 특히 서구에서 '자유주의 국제질서'라 불리던 것이 끝났거나 끝나가고 있다는 뚜렷한 불안감이 퍼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일부 MAGA 진영이나 일부 기술 기업의 후원을 받는 철학자들을 제외하고는,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지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비록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구하려는 시도, 즉 과거를 향한 '우리가 이것을 고칠 수 있다'는 식의 후향적 비전이 있거나, 혹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2차 세계대전이나 전간기에 대한 20세기적 유추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서구 지식인들이 활용하는 대부분의 프레임워크는 다음에 올 것이 아닌 과거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강조하고자 했던 핵심입니다.

 

그리고 저는 에세이를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비전이 등장한다면 그것은 비서구 세계에서 나올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표현이라 생각하지만, 소위 “글로벌 사우스”라고 불리는 비서구 세계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좋은 사례입니다. 모든 비서구 국가가 과거 제3세계라고 불리던 '글로벌 사우스'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비서구 세계는, 설령 자유주의 국제질서로부터 혜택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동일한 감정적 애착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감정적 애착이 없다는 것이, 다음에 올 것을 생각할 때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그것이 더 혁신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합니다.

 

오인환: 네, 저도 비서구 세계가 자유주의 국제질서(LIO)에 감정적으로 덜 애착되어 있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최근, 교수님이 지적하신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 레이크와 토마스 리세 등이 LIO에 관한 글들을 다시 묶어 발표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2월에 출판된 것 같은데, 그들은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LIO의 회복력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LIO가 어느 정도 돌아오거나 재편될 것에 대해 좀 더 희망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LIO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나머지 사람들 사이에 인식상 혹은 감정적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셰 자라콜: 네. 그렇게 쓰여진 것들이 있죠. 제도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종종 새로운 체제에 의해 새로운 목적으로 전용됩니다. 저는 지금 처음부터 현재까지를 다루는 세계사 대중서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금 중국 역사에서 전국시대와 진(秦), 한(漢)에 관해 쓰고 있었는데요. 각 시기가 구질서의 제도에 반(反)하는 경우에도 그 제도를 새로운 목적에 맞게 전용한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 달러의 패권과 같은 경제적 측면을 비롯하여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많은 제도, 협정들이 회복력을 보여줄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제가 회의적인 것은, 그것들이 자유주의적 목적을 위해, 혹은 겉으로라도 자유주의적 목적을 위해 계속 사용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실제로 자유주의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언제나 논쟁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일부 제도와 동맹이 비자유주의적 목적, 그리고 미국 제국주의 2.0을 위해 사용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합니다.

 

오인환: 네. 그러니까 국제질서의 일부 특징들, 예컨대 경제적 측면은 잔존할 수 있지만, 그 질서의 목적은 기존처럼 자유주의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아이셰 자라콜: 정확합니다. 무엇이 회복력을 갖느냐는 것이죠. 그것이 아이디어의 회복력인지, 아니면 일부 협정, 동맹, 제도의 회복력인지.

 

미국-이란-이스라엘 갈등과 새로운 세계 질서의 구조

 

오인환네, 좋습니다.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미국-이란 또는 미국-이스라엘-이란 간의 갈등을 신흥 질서의 스트레스 테스트로서 살펴보는 질문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이스라엘-이란 갈등은 교수님이 구분하신 혼돈(disorder) 또는 비질서(unorder) 중 하나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이며, 그 프레임워크를 적용하시면서 그 구분을 명확히 해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갈등은 교수님이 저술하신 여러 단층선들—1945년 이후 체제의 해체, 서구의 규범적 권위 상실, 비서구 행위자들의 주체성, 규칙을 누가 쓰는가의 문제—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이 갈등이 신흥 질서의 실제 구조에 대해 무엇을 드러낸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군사적·외교적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당장의 혼란이 가라앉은 후 이 갈등이 향후 국제질서 또는 혼돈에 미칠 더 지속적인 결과는 무엇이라고 예상하십니까?

 

아이셰 자라콜: 네, 감사합니다. 혼돈(disorder)와 비질서(unorder)의 구분은 제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유럽외교관계위원회(ECFR) 의장인 마크 레너드가 질서에 관한 신작을 출판했는데, 그가 제시하는 구분은 이렇습니다. 즉, 질서가 있고, 그 다음에 질서에 대한 기억과 기대 등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인 혼돈이 옵니다. 따라서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혼돈해 보이는 것은, 우리가 질서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대를 여전히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이르면 사실상 질서가 없어집니다. 혼돈 조차 아닌,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가 됩니다. 저는 그것이 유용한 구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그와 의견이 다릅니다. 우리가 아직 그 단계에 이르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모든 것이 실제로 무너진 시기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서아시아의 청동기 시대 붕괴를 보면, 약 100년간 일부 문화적 요소는 지속되다가 고고학적 기록이 공백이 됩니다. 그것이 아마도 혼돈 혹은 비질서일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아직 혼돈의 시기에 있다고 생각하며, 제가 정의하는 혼돈은 말씀드린 것처럼 사물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고, 국제질서는 하나여야 한다는 기대가 있는 상태입니다. 레이크, 리세 등 말씀하신 것처럼 질서가 아직 건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로 아니,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합의가 없는 것이고, 파편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상당히 거래적입니다. 중견국들은 헤징을 하고 있고, 다른 나라들은 다음 질서의 방향을 설정하려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그것이 혼돈입니다. 정확히 비질서은 아니지만, 합의가 무너졌고 일부는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으며, 나머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호르무즈 상황, 또는 이란-이스라엘-미국 전쟁이 그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두 달째 그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데, 영국은 올 여름 심각한 항공 연료 부족으로 여행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 갈등에 대한 관심은 어느덧 가라앉은 것 같습니다. 가자 분쟁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그냥 풍경의 일부가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들은 작은 갈등이 아닌 주요 갈등임에도 불구하고, 파편화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모두를 주시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영향을 받는 갈등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는 해협이 닫혔는지, 열렸는지도 매일 추적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그것이 혼돈의 정의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상황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어떤 합의나 새로운 질서가 재창출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이 파편화된 지형 위에 더 많은 갈등이 추가될 것이며, 모든 나라가 이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어떻게 생존할지 스스로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오인환: 네, 제가 전재성 원장님과 함께 작성한 간략한 메모를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거기서 우리는 현재 상태를 '혼합적 불안정(hybrid unstable)' 상태로 규정했습니다.

 

아이셰 자라콜: 네, 그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오인환: 네. 이것은 세력권 정치나 강대국 정치가 아닙니다. 트럼프는 서반구에서의 세력권을 주장하지만, 그 같은 논리로 중국의 태평양 세력권이나 러시아의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지역에 적용되는 두 가지 상이한 조직 원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저희도 교수님의 견해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아이셰 자라콜: 네. 사람들이 이 낡은 개념들을 현재 상황에 끼워 맞추려 하고 있지만, 저는 그것이 실제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합니다.

 

중견국의 생존 전략: 한국의 기회와 도전

 

오인환: 네, 세 번째 질문입니다. 비록 중견국의 헤징과 중견국 생존 전략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셨지만, 마지막 질문은 동아시아연구원 청중에게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교수님은 NSI 인터뷰에서, 글로벌 사우스나 비서구 지역처럼 예측 불가능성에 익숙한 국가들이 많은 서구 국가들보다 이 환경에 더 잘 대비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맥락에서, 한국은 특이한 위치에 있습니다. 냉전 이후 자유주의 질서의 가장 성공적인 수혜국 중 하나가 된 구 주변부 국가이지만, 지리적으로는 인도-태평양에서 미국과 중국의 조직 원리가 맞닿는 봉합선 위에 놓여 있습니다.

 

교수님의 낙인, 위계, 그리고 역사적으로 서구가 정의하는 질서의 외부자였던 국가들의 주체성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과 같은 국가나 이 질서의 위기 혹은 파편화를 헤쳐나가야 하는 다른 중견국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아이셰 자라콜: 네, 그것이 바로 제가 그 인터뷰에서 그리고 현재 제가 하고 있는 혼돈 강연에서 제시한 주장 중 하나입니다. 저는 한국과 같은 국가들이 — 제가 예상하기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래 지속될 — 이 혼돈의 시기를 헤쳐나가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 최근 저서 《서구 이전(Before the West)》에서 비교한 사례는, 17세기경에 끝나는 또 다른 긴 혼돈의 시기입니다. 그 혼돈은 16세기의 구패권, 즉 오스만 제국에서 명(明)에 이르는 주로 아시아 제국들, 그리고 유럽의 합스부르크 왕가에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혼란이 가라앉았을 때 실제 승자는, 잉글랜드, 프랑스 등 서유럽의 신흥 소국들이었습니다. 물론 정확한 유사성은 아니지만, 혼돈의 시기는 기성 패권국이 아닌 신흥 국가들에게 더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AI, 금융화, 기후변화 등의 구조적 압력 속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와 같은 20세기의 구패권국들은, 더 큰 나라이기 때문에 더 얇게 펼쳐져 있고 더 큰 도전에 직면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견국들이 더 유리한 상황에 놓이는 순간이 올 수 있습니다. 특히 말씀하신 것처럼 구질서의 수혜국이지만 최상위 강국은 아니면서, 물질적으로는 혼돈의 시기에 진입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는 한국과 같은 나라들이 그러합니다. 동시에, 앞서 논의한 것처럼 동일한 감정적 애착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전략에 더 열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을 보면, 유럽에도 중견국들이 많지만 그들은 20세기 질서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틀 밖에서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디에 있든 혼돈의 시기는 힘든 시기입니다. 우리 모두 높은 수준의 불확실성, 변동성, 빠른 변화 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과 같은 국가들이 이를 헤쳐나가기에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인환: 네. 한국이 역사적·정치적으로 누려온 위치를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셰 자라콜: 네.

 

오인환: 비록 우리가 어떤 이슈에서는 일본과 같은 편이지만,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접근 방식에 있어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셰 자라콜: 자유주의 질서의 긍정적인 측면을 인정하는 것 자체에는 잘못이 없습니다. 그것을 완전히 부정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세계는 변화하고 있고, 우리 모두 적응해야 합니다.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는지는 과거를 얼마나 잘 내려놓을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주류 국제관계이론의 한계와 새로운 분석 틀의 모색

 

오인환: 네. 시간이 충분한 것 같으니 네 번째 질문도 드리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주류 국제관계이론이 현재 국제질서의 현안들과 현황에 대해 무엇을 제대로 이해하고 무엇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가입니다. 《패배 이후(After Defeat)》부터 《서구 이전(Before the West)》과 본질주의 함정에 관한 에세이들에 이르기까지, 교수님 저작에서 반복되는 주제 중 하나는 현실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구성주의의 상당 부분 같은 주류 국제관계이론이 서유럽 역사의 비교적 좁은 단면에서 도출된 가정들 위에 구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 이론들이 정상화한 질서가 해체되고 있는 현재와 같은 순간에 특히 더 제약이 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주류 국제관계 프레임워크는 가자, 이란, 우크라이나의 갈등을 포함한 우리 시대의 긴박한 현안들을 이해하는 데 어디에서 도움이 되고 어디에서 우리를 오도할까요? 그리고 혼돈(disorder)나 비질서(unorder)와 같이 그것들을 대체할 개념이나 출발점은 무엇일까요?

 

아이셰 자라콜: 네,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와 같은 국제관계 학파들을 얘기하자면, 그것들은 서구뿐만 아니라 동양 철학 등에도 존재해 온 매우 오래된 아이디어의 20세기 후반 형태입니다. 구성주의를 일종의 유물론이나 경험주의에 대립시킨다면, 이 역시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논쟁입니다.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따라서 저는 학파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20세기 후반 버전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 주장 중 하나는 항상 이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더 많이 알수록, 특히 유럽 역사 이상의 역사를 더 많이 알수록, 이 이론들을 21세기에 맞게 업데이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세기 버전들에는 많은 맹점이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원생이었을 때—이 점은 《서구 이전》에서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다루고 있는데—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끝날 수 있다거나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은 아무도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서구 질서가 보편적 국제질서가 되어가는 목적론과 같았습니다. 그 '역사의 종언' 테제는 국제관계이론에도 있었습니다. 세력권 이야기도 이미 언급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트럼프가 하는 일과 중국이 하는 일을 19세기 후반의 세력권 렌즈로 읽으려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유럽 제국들의 시대가 아니며 세계도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물론 강대국들이 경쟁한다는 주장에는 저도 이의가 없습니다. 항상 그래왔으니까요. 하지만 왜 역사의 매우 짧은 한 시기의 렌즈로만 이것들을 읽어야 합니까?

 

지금은 훨씬 더 많은 주권 국가와 행위자들이 있습니다. 중견국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지만, 우리는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혼돈의 긴 시기에 대해 나눈 이 논의조차도, 20세기 말 국제관계이론에는 그것을 위한 공간이 없었습니다. 역시나, 충분한 역사가 연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 아이셰 자라콜_캠브리지대학교 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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