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환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AI 국가 전략을 목표 지향성과 주도 구조에 따른 네 가지 이념형으로 분류하여 체계적으로 분석합니다. 정 교수는 미·중 패권 경쟁에 의한 기술 블록화와 노동시장 충격 등 인공지능이 초래할 구조적 위험을 진단하며, 국제적인 ‘AI 거버넌스’ 구축이 시급함을 주장합니다. 나아가 저자는 한국이 단순한 추격자를 넘어 글로벌 표준 형성에 기여하는 ‘전략적 핵심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기술 경쟁과 사회적 안정을 통합하는 AI 외교 및 균형 전략을 제언합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국제정치 동아시아연구원 국가안보패널(NSP)은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가 국제정치 전반에 가져오는 구조적 변화를 조망하고, 주요 국가들의 인공지능 전략을 분석하기 위한 워킹페이퍼 시리즈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은 군사, 안보,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등 전 영역에서 혁명적 변화를 촉발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정치의 근본적 성격뿐 아니라 국가 간 세력 배분 구조에도 중대한 변동을 야기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오늘날 지정학적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인공지능은 각국이 국가 역량을 강화하고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핵심 전략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국가들은 자국의 인공지능 기술을 발전시키고, 효율적인 기술 생태계를 구축함으로써 산업 경쟁력과 안보 역량을 동시에 제고하고자 합니다. 이에 따라 주요국이 어떠한 인공지능 전략을 채택하고 있으며, 그 전략이 군사·경제·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더 나아가 이러한 움직임이 어떠한 새로운 세계 질서를 형성할 것인지에 대한 체계적 분석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한국 또한 독자적인 인공지능 발전 전략을 마련하여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는 한편, 국제질서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공지능의 급속한 확산이 가져올 사회적·윤리적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적절한 규제 제도와 글로벌 협력 메커니즘의 구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본 워킹페이퍼 시리즈는 각국의 인공지능 전략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변화하는 국제정치의 새로운 방향을 탐색함과 동시에 정책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 시대의 국제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학술적·정책적 기반을 마련하고, 한국의 전략적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
Ⅰ. 서론
인공지능(AI)은 최근 국가 경쟁과 국제정치경제에서 핵심 전략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확산은 단순한 산업 혁신을 넘어, 경제 성장, 군사력, 데이터 통제, 금융시장과 같은 국가 권력의 핵심 요소를 재편할 잠재력을 지닌 기술로 평가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각국은 경쟁적으로 AI 국가 전략(National AI Strategy)을 수립하고 발표하며, 글로벌 기술 주도권 확보를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본 연구는 우선 이러한 AI 국가 전략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네 가지 이념형(ideal type)으로 분류한다. 첫째, 전략의 목표 지향성(공세적 vs. 방어적)에 따라 AI를 글로벌 패권 확보의 수단으로 활용할 것인지, 기술 확산에 따른 위험과 종속을 관리할 것인지가 구분된다. 둘째, 정책 주도 구조(시장주도 vs. 국가주도)에 따라 혁신을 민간 기업과 시장에 맡길 것인지, 국가가 산업·데이터·인프라를 직접 조정할 것인지가 결정된다. 이 두 기준을 결합하면 ‘시장주도-공세형’, ‘국가주도-공세형’, ‘시장조정-방어형’, ‘국가주도-방어형’의 네 가지 전략 유형이 도출되며, 각국은 자신들의 정치체제, 산업 구조, 기술 생태계, 국제적 지위에 따라 서로 다른 전략적 선택을 취하고 있다.
또한 AI 국가 전략은 글로벌 AI 경쟁이라는 구조적 맥락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동적 산물로 이해되어야 한다. AI는 범용기술로서 경제, 산업, 군사, 사회 전 영역에 걸쳐 파급력을 가지며, 국가 간 기술 격차는 단순한 생산성 차이를 넘어 국가 권력과 전략적 지위의 재편으로 직결된다. 따라서 AI는 글로벌 경쟁을 총력전의 양상으로 심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AI 경쟁은 각 국가가 추구하는 전략의 부정적 효과를 증폭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차원의 AI Governance의 구축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이다.
Ⅱ. AI 국가 전략
최근 AI의 전략적 중요성이 급격히 부상함에 따라 각국은 경쟁적으로 ‘AI 국가 전략’을 수립·발표하고 있다. 2017년 3월 캐나다 정부는 전면적 재정 지원을 수반한 “Pan-Canadian Artificial Intelligence Strategy”를 발표하였다. 이는 AI를 단순한 산업기술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경제성장, 장기적 혁신 역량을 좌우할 전략적 기술로 규정하고, 연구개발 투자, 인재 양성, 혁신 생태계 구축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조정하려는 시도였다.[1] 이후 다수의 국가들이 AI 전략을 발표하면서, 국가 차원의 AI 정책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AI 국가 전략의 등장과 확산은 AI가 단순한 신기술을 넘어 생산성, 산업구조, 군사력, 데이터 통제, 금융시장 등 국가 권력의 핵심 요소를 재편할 수 있는 범용기술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AI 국가 전략은 기술정책의 단순한 확대라기보다, 기술패권 경쟁과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 속에서 국가가 자국의 정치 경제적 위치를 재정립하려는 전략적 대응의 산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2]
AI 국가 전략은 “AI가 경제와 사회에 가져올 잠재적 편익을 극대화하고 잠재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명확한 목표 아래 조정된 정부 정책들의 집합”으로 정의할 수 있다.[3] 이 정의는 세 가지 핵심 요소를 내포한다. 첫째, AI 전략은 국가 차원의 분명한 목표 설정을 전제로 한다. 둘째, 연구개발, 산업정책, 교육 및 인력 양성, 규제, 데이터 거버넌스, 국제협력 등 다양한 정책수단이 상호 조정된 형태로 결합된다. 셋째, 성장 촉진이라는 공세적 목표와 위험 관리라는 방어적 목표가 동시에 고려된다. 실제로 각국 정부는 글로벌 AI 리더십 확보, 기술 주권 강화, 전략 산업 보호, AI 도입의 감독과 규율 등 서로 다른 정책 목표를 설정해 왔다. 이는 AI 국가 전략이 단순한 산업 육성 정책을 넘어, AI 기술 발전과 확산을 국가가 어떠한 정치경제적 질서 속에서 관리하고 방향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포괄적 구상임을 의미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AI 국가 전략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네 가지 AI 발전 전략의 ‘이념형(ideal type)’을 제시한다. 이념형은 막스 베버가 제시한 개념으로, 현실에 그대로 존재하는 경험적 실체가 아니라 복잡하고 혼합된 현실을 분석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구성된 개념적 모델이다.[4] 이는 현실을 단순 분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각 국가 전략이 어떤 방향성과 제도적 특징에 보다 근접해 있는지를 비교·평가하기 위한 분석적 기준점을 제공한다. 실제 AI 국가 전략은 각국의 정치체제, 산업 구조, 기술 생태계, 금융 시스템, 사회적 가치체계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나지만, 그 기본적 방향성과 정책 주도 구조를 중심으로 유형화할 수 있다.
이념형을 구분하는 첫 번째 기준은 ‘전략의 목표 지향성’이다. 이는 AI 전략이 궁극적으로 어떠한 가치를 우선시하며, 국가 권력과 발전 모델 속에서 AI를 어떤 수단으로 위치시키는지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공세적(offensive) 전략과 방어적(defensive) 전략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공세적 전략은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AI 분야의 경쟁적 우위를 선점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군사적·과학기술적 우월성을 확보하려는 접근이다. 기술혁신의 가속화, 데이터 및 컴퓨팅 자원의 축적, 네트워크 효과 형성, 글로벌 기술 표준과 인프라 주도권 확보, 핵심 부품 및 공급망 통제 등이 핵심 과제로 설정된다. 이 경우 AI는 성장동력이자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되며, 국가 권력의 확장과 직접적으로 연계된다. 반면 방어적 전략은 AI 경쟁이 초래할 수 있는 산업적 종속, 데이터 취약성, 노동시장 충격, 사회적 불평등 심화와 같은 위험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는 기술 발전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도입의 속도·범위·방식을 제도적으로 관리함으로써 경제적 자율성과 사회적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조정적 접근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략의 목표 지향성’은 AI를 국가 권력 확장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는데 초점을 두는가, 아니면 AI 확산이 가져올 구조적 충격을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두는가 라는 정책의 기본 방향을 가늠하는 개념적 축이다.
두 번째 기준은 ‘정책 주도 구조’이다. 이는 AI 전략의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국가와 시장, 특히 디지털 플랫폼 기업 사이에 권한과 주도권이 어떠한 방식으로 배분되어 있는지를 가리킨다. 여기서 ‘정책 주도 구조’는 단순히 정부 개입의 수준이나 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AI 발전을 둘러싼 거버넌스 체계에서 핵심 의사결정 권한과 전략적 통제력이 궁극적으로 어느 행위자에게 귀속되는지를 설명하는 구조적 개념이다. 시장/플랫폼 주도형 전략에서는 민간 기업, 특히 대형 기술 플랫폼 기업과 벤처 생태계가 혁신의 핵심 동력으로 작동한다. 정부는 기초 연구 지원, 규제 프레임워크 정비, 경쟁 촉진, 윤리 가이드라인 마련 등 제도적 기반을 제공하지만, 기술 혁신의 구체적 방향과 속도는 시장 경쟁, 자본시장, 네트워크 효과에 의해 결정된다. 반면 국가 주도형 전략에서는 정부가 AI 발전의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산업정책, 재정 지원, 공공 연구기관, 공공조달, 규제 권한 등을 활용하여 기술 발전을 직접 조정한다. 전략 산업 지정, 대규모 공공 투자, 데이터 인프라의 국가적 통제, 안보와의 연계 등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이 경우 국가는 단순한 촉진자를 넘어 방향 설정자이자 자원 배분의 중심 행위자로 기능한다.
이 두 기준을 결합하면 ‘시장주도-공세형’, ‘국가주도-공세형’, ‘시장조정-방어형’, ‘국가주도-방어형’이라는 네 가지 이념형의 AI 국가 전략이 도출된다. 물론 현실의 AI 국가 전략은 이들 중 하나에 완전히 속하기보다는 복합적 성격을 띠며 연속선상에 위치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이념형은 각 국가들이 AI라는 범용기술의 발전과 확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데 유용한 분석적 틀을 제공한다.
<표 1> AI 국가 전략의 이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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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정책 주도 구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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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주도 |
국가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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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지향성 |
공세적 |
시장주도-공세형 전략 |
국가주도-공세형 전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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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적 |
시장조정-방어형 전략 |
국가주도-방어형 전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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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급진적 혁신론: AI에 의한 전쟁의 급속한 변혁
시장주도-공세형 전략은 AI를 국가 권력 경쟁의 핵심 전략자산으로 인식하면서도, 그 발전의 주된 동력을 국가의 직접적 통제나 중앙집중적 계획이 아니라 시장 경쟁과 민간의 혁신 역량에 두는 전략 유형을 의미한다. 이 전략에서 국가는 기술개발을 세부적으로 지휘하는 통제자가 아니라, 장기적 비전과 규범적 방향을 제시하고 제도적·재정적 기반을 설계하는 조정자이자 촉진자로 기능한다. 혁신의 실행 주체는 기업, 대학, 연구소, 벤처 생태계, 자본시장 등 분권화된 행위자들이며, 국가는 연구개발 투자 확대, 데이터 및 컴퓨팅 자원의 개방, 규제 정비, 표준 전략 수립, 공급망 안정화, 선택적 안보 조치 등을 통해 이들의 경쟁력을 전략적으로 강화한다. 따라서 이 전략은 자유시장 질서를 표방하면서도 기술 패권 확보, 국제 표준 선점, 군사적 우위 달성이라는 공세적 목표를 추구하는 ‘전략적 자유주의(strategic liberalism)’의 성격을 띤다.
AI 분야는 이러한 전략적 자유주의가 특히 적합한 영역이다. AI는 1970년대 이른바 ‘AI 겨울’을 거치며 공공 지원이 축소된 이후 민간 기업들이 발전을 주도해 왔다. 산업용 로봇, 데이터 마이닝, 클라우드 기반 AI, 대규모 언어모델 등 핵심 혁신은 주로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오늘날에도 Microsoft, Google, Amazon, Meta, OpenAI 등 거대 기술기업들이 방대한 데이터와 컴퓨팅 자원, 글로벌 플랫폼을 기반으로 AI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5] 따라서 AI는 기업 간 경쟁이 혁신의 속도와 방향을 좌우하는 전형적인 시장 중심 기술로 평가된다. 이러한 민간 주도적 구조는 시장주도-공세형 전략이 AI 분야에서 높은 정합성을 갖는 핵심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은 이 전략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2019년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발표한 “American AI Initiative”는 미국의 AI 리더십 유지와 강화를 국가 목표로 설정하였으나, 그 접근 방식은 중앙집중적 산업 통제가 아니라 혁신 환경 조성에 초점을 두었다. 연방 AI 연구개발 투자 확대, 고품질 연방 데이터 및 컴퓨팅 자원의 개방, 혁신을 저해하는 규제 장벽의 최소화, STEM 인력 양성, 국제 규범 형성 참여 등이 핵심 내용이었다. 특히 과도한 사전 규제를 지양하고 비용-편익 분석에 기반한 성과 중심 규제를 강조함으로써 민간 혁신의 자율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려 하였다. 이는 공세적 목표를 설정하면서도 정책 수단 측면에서는 생태계 조성과 제도적 기반 구축에 방점을 둔 촉진형 전략으로 평가할 수 있다.[6]
2025년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발표한 “Winning the Race: America’s AI Action Plan”은 보다 명시적이고 구조화된 공세 전략으로 진화하였다. 이 계획은 AI 혁신 가속화, 미국 AI 인프라 구축, 국제 AI 외교 및 안보 주도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미·중 전략경쟁 구도를 전면에 배치한다. 규제 재검토와 탈규제 강화, 오픈소스 생태계 촉진, 반도체·데이터센터·에너지 인프라 확충, 군사·정보기관용 고 보안 AI 인프라 구축, 수출통제 강화, 동맹 기반 기술 블록 형성 등 산업·안보·외교를 통합한 실행 전략을 포함한다. 즉, 2019년 전략이 혁신 생태계의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2025년 전략은 공급망 재편과 기술 통제, 동맹 네트워크 확장을 통해 그 혁신의 성과를 지정학적 우위로 전환하려는 종합적 실행 프레임워크라 할 수 있다. 2025년 America’s AI Action Plan은 AI 패권 경쟁의 명시화, AI의 안보화(securitization) 강화, 경쟁국에 대한 기술 통제와 블록화 전략의 제도화 등을 통해 국가의 전략적 역할을 한층 강화하였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전략 모두 정부가 AI 산업을 계획경제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혁신의 중심을 민간 기업과 연구 공동체에 둔다는 점에서 시장주도적 성격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표 2> American AI Initiative vs. America’s AI Action Plan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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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2019 American AI Initiative |
2025 America’s AI Action Pl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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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성격 |
촉진형 |
공세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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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인식 |
암묵적 |
명시적 미중 경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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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초점 |
R&D, 규제 완화 |
기술안보, 수출통제, 동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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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역할 |
지원자 |
전략 조정자 및 안보 행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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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 색채 |
상대적으로 약함 |
매우 강함 |
시장주도-공세형 전략의 강점은 무엇보다 AI의 민간 중심 발전 구조와 구조적으로 정합적이라는 점에 있다. 경쟁적 시장 구조는 다양한 기술 경로의 실험을 가능하게 하고, 실패를 신속히 걸러내며, 자본과 인재의 대규모 유입을 촉진한다. 글로벌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은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국제 표준과 기술 스택을 확산시킬 수 있으며, 국가는 공급망·안보·표준과 같은 전략적 지점에 선택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지정학적 리스크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술 발전의 속도와 규모는 시장에서 확보하고, 그 성과의 전략적 전환은 국가가 담당하는 구조적 분업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전략은 구조적 한계 또한 내포한다. 기업은 위험과 수익을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장기적 안보, 윤리, 사회적 책임이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 플랫폼 기업의 시장 지배력 강화와 데이터 독점은 경쟁을 저해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으며, 또한 민간 기업의 상업적 이해와 국가의 장기 전략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전략적 정합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8]
시장주도-공세형 전략은 국가가 직접 산업을 통제하기보다는 제도적 환경과 전략적 인센티브를 설계함으로써 민간 혁신 역량을 최대한 동원하여 국제 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하이브리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사례는 개방적 혁신 생태계를 유지하면서도, 기술을 중심으로 한 지정학적 질서 재편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 국가주도-공세형 전략(state-led offensive strategy)
국가주도-공세형 전략은 AI을 단순한 산업 혁신 수단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구조적 재편과 직결된 핵심 전략 자산으로 규정하고, 중앙정부가 장기적 비전 설정과 자원 배분, 제도 설계, 산업 조직, 안보 통합을 포괄적으로 주도함으로써 국제 기술경쟁에서 선도적 지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략에서는 중앙정부가 발전 로드맵과 중점 기술, 산업 배치, 데이터 관리 체계, 표준과 규제의 방향 등을 주도하며, 시장과 기업은 국가 전략의 틀 안에서 동원되고 조정된다.
이러한 이념형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중국이다. 중국은 2017년 국무원이 발표한 A New Generation Artificial Intelligence Development Plan을 통해 AI를 국가 전략의 최상위 우선순위로 격상시키고, 2030년까지 세계 AI 혁신의 주요 중심이자 선도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장기 목표를 제시하였다. 이 계획은 AI를 미래를 선도하는 전략적 기술로 규정하고, 핵심 알고리즘, 고급 AI 칩, 데이터 자원, 지능형 시스템 등 전략 자산의 자국 내 확보를 강조하며 기술 자립과 글로벌 경쟁 우위 확보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점에서 명확한 공세적 지향성을 가진다. 특히 군민융합 전략과의 결합을 통해 AI 발전을 군사 현대화와 직접 연계함으로써, 기술·산업·안보를 통합하는 국가적 프로젝트로 발전시켰다.
정책 주도 구조 측면에서도 중앙정부는 국가급 중점 실험실과 혁신기지 재편, 대규모 재정 및 정책금융 투입, 전략 산업 지정과 보조금 지원,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 구축 등을 통해 발전 방향을 총괄한다.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화웨이와 같은 주요 플랫폼 기업들은 자율적 혁신 주체이면서도 국가 전략의 실행 파트너로 기능하며, 이는 민간 기업이 독립적 시장 행위자로 중심이 되는 모델과 달리 국가 전략 하에 통합된 기술–산업 복합체의 성격을 보여준다. 또한 데이터는 시장 경쟁 요소를 넘어 국가안보와 직결된 전략 자산으로 재정의되며, 수집·유통·활용·국경 간 이전까지 점차 국가 관리의 범주 안에 편입된다. 법·윤리·표준·지식재산·보안 감독 체계 역시 선제적으로 정비되어 알고리즘 설계부터 응용 단계까지 포괄하는 감독 구조를 형성함으로써 대규모 기술 확산을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 추진하려는 체계적 접근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9]
국가주도-공세형 전략은 이러한 구조적 특징 덕분에 집중적 자원 동원과 장기 전략의 일관성 유지, 기술·산업·군사의 통합적 조정, 대규모 인프라의 신속한 구축이라는 강점을 가진다. 특히 기술 추격 단계에서 국가가 재정·금융·산업정책을 통합해 전략 산업에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은 빠른 역량 축적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동시에 중앙집중적 관료 구조는 급진적이고 파괴적인 혁신의 다양성을 제약할 가능성이 있으며, 전략 산업 지정과 대규모 보조금은 자원 오 배분과 정치적 판단 오류의 위험을 수반한다. 기업의 자율성이 국가 전략에 과도하게 종속될 경우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의 유연성과 창의성이 약화될 수 있고, 데이터 통제 강화와 국가 개입 확대는 국제 협력과 신뢰 형성에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 또한 기술 발전이 국가 전략과 밀접히 결합될수록 국제 정치 갈등이 기술 영역으로 전이되는 경향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도 구조적 한계로 지적된다.[10] 즉, 국가주도-공세형 전략은 높은 동원 능력과 장기적 전략 추진이라는 강점을 가지는 동시에 제도적 유연성과 국제적 개방성을 어떻게 확보하는가에 따라 그 지속 가능성이 좌우되는 전략 유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3. 시장조정-방어형 전략(market-shaping defensive strategy)
시장조정-방어형 전략은 AI를 전략적 핵심 기술로 인식하면서도, 국제 기술 패권 경쟁에서 공세적 우위를 확보하기보다는 시장의 제도적 조건과 규범을 재설계함으로써 자국의 가치, 제도, 사회적 안정성을 방어하려는 전략 유형을 의미한다. 이 전략에서 국가는 단순한 산업 촉진자가 아니라 규범 설계자이자 위험 관리자로 기능한다. 기술 혁신의 동력은 여전히 민간 부문에 존재하지만, 국가는 법적 규율, 표준화 체계, 데이터 거버넌스, 경쟁정책, 책임성 메커니즘을 통해 기술 발전의 경로를 구조적으로 형성한다. 즉, 시장을 폐쇄하거나 국가가 직접 생산을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장의 작동 규칙을 재구성함으로써 기술 발전이 민주주의, 인권, 개인정보 보호, 사회적 신뢰와 충돌하지 않도록 제도적 경계를 설정하는 전략이다.
이 전략의 대표적 사례는 European Union이 채택한 EU AI Act이다. 2024년 채택된 이 규정은 세계 최초의 포괄적 AI 규제 체계로, ‘위험 기반 접근법(risk-based approach)’을 핵심 원리로 삼고 있다. AI 시스템을 위험 수준에 따라 ‘용인 불가능한 위험’, ‘고위험’, ‘제한적 위험’, ‘최소 위험’으로 구분하고, 위험의 강도에 비례하여 규제의 강도를 차등화 한다. 사회적 신용평가, 취약계층 조작, 광범위한 실시간 원격 생체인식과 같은 시스템은 금지되며, 교육·고용·신용·법 집행·이민·사법 영역 등에서 활용되는 고위험 AI는 엄격한 위험관리, 데이터 품질 확보, 기술 문서화, 인간 감독, 정확성·강건성·사이버보안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또한 범용 AI(General Purpose AI)에 대해서도 일정 기준 이상의 연산 규모를 가진 모델에는 추가적인 평가와 보고 의무를 부과하여 시스템적 위험을 사전에 관리하도록 설계하였다. EU의 접근은 AI 단독 규제가 아니라 디지털 질서 전반을 재구성하는 포괄적 시장조정 전략의 일부라는 점에서도 특징적이다.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GDPR)을 통한 개인정보 보호 강화, Digital Markets Act (DMA)를 통한 플랫폼 시장지배력 규율, Digital Services Act (DSA)를 통한 온라인 플랫폼 책임성 강화는 AI 규제와 결합하여 하나의 일관된 규범적 프레임워크를 형성한다.[11] 이를 통해 EU는 기술 패권 경쟁에서 직접적인 산업 우위를 확보하기보다는, 규범과 표준을 통해 글로벌 시장의 운영 원칙을 형성하는 ‘규범적 권력(normative power)’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시장조정-방어형 전략의 강점은 명확하다. 첫째, 기술 발전이 초래할 수 있는 사회적·정치적 리스크를 사전에 제도화함으로써 장기적 안정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명확한 규제 프레임워크는 기업과 투자자에게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고, 소비자 신뢰를 제고한다. 셋째, 국제적으로는 규범과 표준을 선점함으로써 글로벌 기술 질서 형성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산업 경쟁을 넘어 규범 경쟁의 차원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라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략은 구조적 한계도 동시에 내포한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기술 성숙 이전 단계에서 포괄적 규제를 도입함으로써 발생하는 ‘선제적 과잉 규제’의 위험이다. 엄격한 사전 규제는 준수 비용을 증가시키고, 특히 자본과 법률 역량이 제한된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 상대적으로 큰 부담을 준다. 이는 혁신 실험과 빠른 상업화를 저해하여 산업 생태계의 역동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또한 복잡한 규제 체계는 역설적으로 대형 기업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충분한 자원을 가진 글로벌 기업은 규제 준수 비용을 흡수할 수 있지만, 신생 기업은 시장 진입을 포기하거나 EU 외부로 이전할 유인을 가질 수 있다. 더 나아가, EU는 규범 설정 능력에서는 선도적 위치를 확보했지만, 초대형 모델 개발과 대규모 컴퓨팅 인프라 측면에서는 미국과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산업 기반을 갖는다.[12] 이러한 상황에서 강력한 규제를 조기에 도입할 경우, ‘규칙을 만드는 권력’은 행사하되 ‘기술을 생산하는 권력’은 제한되는 구조적 불균형이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 확보라는 목표와 긴장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시장조정-방어형 전략은 시장을 전면적으로 통제하지 않으면서도 법과 제도를 통해 기술 발전의 방향을 구조적으로 형성함으로써 사회적 가치와 제도적 안정성을 방어하려는 접근이다. EU AI Act는 이러한 전략을 가장 체계적으로 구현한 사례로, 기술 경쟁을 단순한 산업 패권 경쟁이 아니라 규범 경쟁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전략은 규범적 정당성과 산업적 경쟁력 사이에서 지속적인 균형 조정을 요구하며, 그 균형을 어떻게 설계하는지에 따라 장기적 성과가 결정될 것이다.
4. 시장조정-방어형 전략(market-shaping defensive strategy)
국가주도-방어형 전략은 AI를 국가 안보와 경제 발전의 핵심 전략 기술로 인식하면서도,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직접적인 공세적 확장보다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산업 기반을 보호하고 자립성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두는 전략 유형을 의미한다. 이 전략에서 국가는 산업 육성의 주도자이자 시장 보호의 집행자로 기능한다. 시장의 자율적 경쟁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는 정부가 보조금, 공공조달, 연구개발 지원, 외국 기업 규제, 데이터 통제, 인프라 투자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하여 국내 AI 생태계를 외부의 경쟁 압력으로부터 보호한다. 이는 글로벌 선도 기업이 기술·데이터·플랫폼을 독점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산업 종속을 방지하고, 자국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전략적 완충 공간(strategic buffer space)’을 제도적으로 구축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방어 전략은 단순한 시장 보호 차원을 넘어 Sovereign AI 개념과 결합하면서 한 단계 진화하고 있다. Sovereign AI는 데이터를 국내 법 체계에 따라 관리하는 데이터 주권을 넘어, AI 모델의 설계·훈련·배포·운영,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컴퓨팅 인프라와 거버넌스 체계 전반을 자율적으로 구축하려는 전략적 접근을 의미한다. 이는 ‘누가 데이터를 통제하는가’라는 문제를 넘어, ‘누가 알고리즘과 모델을 설계하며, 어떠한 규칙과 가치에 따라 AI가 운영되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주권의 문제로 확장된 것이다. 국가주도-방어형 전략은 이러한 AI 주권을 확보함으로써 장기적 기술 내재화와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달성하려는 접근이라 할 수 있다.[13]
인도는 이러한 국가주도-방어형 전략의 대표적 사례로 분류할 수 있다. 인도는 AI가 경제 성장과 디지털 전환의 핵심 동력임을 인정하면서도, 자국 AI 생태계가 미국 및 중국의 플랫폼 기업에 구조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경계해 왔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NITI Aayog은 2018년 「National Strategy for Artificial Intelligence: AI for All」을 발표하며 국가 차원의 전략 비전을 제시하였다. 이 전략은 표면적으로는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을 강조하지만, 그 내용은 기술 자립과 주권 확보를 지향하는 국가주도-방어형 전략의 성격을 분명히 보여준다.[14]
인도의 AI for All 전략은 첫째, 공공 부문 중심의 수요 창출을 통해 AI 발전 방향을 국가가 주도하도록 설계되었다. 인도는 보건, 농업, 교육, 스마트시티, 스마트 모빌리티 등 사회적 외부효과가 큰 분야를 우선 적용 영역으로 선정하였다. 이는 단기적 수익 극대화보다는 사회적 최적화(social optimization)를 우선하는 접근으로, AI 산업이 외국 플랫폼 기업 중심의 상업적 소비 시장으로 재편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를 내포한다. 특히 농업과 보건처럼 민간 단독으로는 투자 유인이 낮은 영역에서 국가가 직접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산업 발전의 방향을 공공 목적 중심으로 유도하고자 한다.
둘째, 이 전략은 기초 연구 역량 강화를 위한 CORE (Centres of Research Excellence)와 응용·산업 적용 중심의 ICTAI (International Centres for Transformational AI)라는 이중 구조를 통해 연구 생태계를 국가 차원에서 체계화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외국 기술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습(adaptation)과 응용을 거쳐 장기적으로 기술을 내재화(indigenization)하려는 단계적 전략이다. 후발주자로서의 제약을 인정하면서도 ‘late-mover advantage’를 활용해 독자적 역량을 축적하려는 선택으로 평가할 수 있다.
셋째, 데이터 주권과 플랫폼 통제권 확보를 중시한다. 인도는 데이터 현지화 요구, 개인정보 보호 체계 정비, 부문별 규제 프레임워크 구축 등을 통해 데이터 통제권을 국내에 유지하려 한다. 또한 National AI Marketplace (NAIM) 구상을 통해 데이터 수집·주석·모델 배포를 통합하는 공공 플랫폼을 설계함으로써, 글로벌 빅테크 플랫폼에 대한 구조적 의존을 완화하고 국가가 생태계의 조정자이자 설계자로 기능하도록 한다. 이는 Sovereign AI의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넷째, 인적 자원과 제도적 기반 정비를 병행한다. 대규모 재교육 프로그램, 분산형 교육 모델, 데이터 주석과 같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 전략은 자동화 충격을 완화하고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방어적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AI 특허와 데이터 기반 모델의 특수성을 반영한 지적재산권(IP) 제도 개선은 외국 기업 중심의 지식재산 구조에 종속되지 않기 위한 제도적 대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주도-방어형 전략의 강점은 분명하다. 우선 외부 기술 의존도를 낮추고 장기적 산업 자립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보호적 정책은 초기 단계의 국내 기업이 글로벌 거대 기업과의 직접 경쟁에서 도태되는 것을 방지하고, 기술 축적을 위한 시간을 확보해준다. 또한 데이터와 인프라를 국내 통제 하에 두려는 Sovereign AI 접근은 안보적 리스크를 완화하고 정책 자율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나아가 공공 목적 중심의 AI 발전 모델은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평등과 배제 문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국가주도-방어형 전략은 구조적 한계 또한 내포한다. 과도한 보호주의는 경쟁 압력을 약화시켜 국내 산업의 효율성과 혁신 역량을 저하시킬 위험이 있다. 외국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는 단기적으로 시장 방어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외국인 투자 감소와 기술 협력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한 Sovereign AI 구축에는 대규모 컴퓨팅 인프라, 에너지 자원, 숙련 인력 확보 등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며, 후발 국가가 독자적 모델을 구축하는 데에는 기술적 제약이 따른다. 더 나아가 국가 주도의 자원 배분은 정치적 판단과 관료적 비효율성이라는 문제를 동반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국가주도-방어형 전략은 글로벌 AI 경쟁에서 후발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응 방식으로, 외부 기술 권력에 대한 구조적 종속을 방지하고 기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방어적·주권 중심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인도의 전략은 포용적 성장이라는 담론 아래 Sovereign AI 구축을 지향하며, 시장 개방보다는 생태계 통제와 기술 내재화를 우선하는 접근을 보여준다. 이는 공세적 패권 전략과 구별되는, 기술 생존과 전략적 자율성을 핵심 목표로 하는 국가주도형 AI 발전 전략의 전형으로 평가할 수 있다.
5. AI 국가 전략의 다양성
지금까지 살펴본 네 가지 AI 국가 전략은 글로벌 기술 경쟁에 대한 태도와 국가와 시장의 관계 설정 방식 따라 구분될 수 있다. 전자는 AI를 통해 국제질서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지, 아니면 종속과 위험을 관리하려고 하는지에 관한 전략적 지향의 문제이며, 후자는 혁신을 주도하는 행위자가 누구인지에 관한 문제이다.
시장주도-공세형 전략은 민간 기업의 혁신 역량과 자본 축적 능력을 핵심 동력으로 삼아 글로벌 AI 패권을 추구하는 유형이다. 이 전략에서 국가는 직접 산업을 통제하기보다는 규제 완화, 연구개발 지원, 인재 유치, 세제 혜택 등을 통해 혁신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촉진자 역할을 수행한다. 국가주도-공세형 전략은 공세적 목표를 유지하되, 이를 국가 중심의 산업 정책과 자원 동원을 통해 달성하려는 유형이다. 이 경우 국가는 단순한 조정자가 아니라 산업 방향을 설계하고 전략 분야에 자원을 집중 배분하는 핵심 행위자로 등장한다. 시장조정-방어형 전략은 시장경제의 기본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AI 기술이 초래할 수 있는 사회적 위험을 강력한 규제와 제도 설계를 통해 관리하려는 접근이다. 이 유형은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의 공세적 확장보다는 안전성, 윤리성, 인권 보호, 데이터 보호와 같은 가치의 수호를 우선시한다. 국가주도-방어형 전략은 국가가 산업 발전을 주도하지만, 그 목적은 글로벌 패권보다는 기술 종속 방지와 전략적 자율성 확보에 있다. 이 전략은 산업 보호, 데이터 통제, 공공 수요 창출, 인프라 자립 등을 통해 자국 AI 생태계의 내재화를 추구한다.
<표 3> AI 국가 전략의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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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시장주도-공세형 |
국가주도-공세형 |
시장조정-방어형 |
국가주도-방어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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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지향 |
글로벌 패권 |
글로벌 패권 |
위험 통제 |
기술 자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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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역할 |
촉진자, 지원자 |
설계자, 집행자 |
규제자, 조정자 |
보호자, 육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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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수단 |
R&D 지원, 규제완화 |
산업정책 및 국가 투자 |
위험 기반 규제, 데이터 보호 |
시장 보호 정책, 데이터 통제, 공공 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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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사례 |
미국 |
중국 |
EU |
인도 |
이와 같은 네 가지 AI 국가 전략은 국가 역량, 산업 구조, 정치 체제, 국제적 위상에 따라 상이하게 선택되는 전략적 조합이다. 이들은 상호 배타적이기보다는 각 국가가 처한 구조적 조건에 따라 혼합적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유형화는 글로벌 AI 경쟁의 구조를 이해하고, 각 국가의 전략적 선택이 지니는 함의를 비교 분석하는 데 유용한 분석적 틀을 제공한다.
Ⅲ. AI 글로벌 경쟁과 국가 전략의 상호작용
AI 발전 전략은 개별 국가의 정책 선택으로 출발하지만, 실제로는 고립된 환경 속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AI는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로서 경제·산업·군사·사회 전 영역에 파급 효과를 미치며, 그 발전 속도와 확산 범위가 국가 경쟁력과 국제질서의 위계 구조를 재편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또한 대규모 데이터 축적, 컴퓨팅 자원 확보, 알고리즘 성능의 누적 학습 효과, 네트워크 효과, 플랫폼 생태계 종속성 등은 선도자가 더욱 빠르게 격차를 확대하도록 만드는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승자독식 혹은 승자우위 현상이 나타나기 쉽다. 먼저 시장을 선점한 국가 또는 기업은 데이터와 자본, 인재를 추가로 흡수하면서 자기강화적 우위를 형성하고, 후발주자는 동일한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기하급수적인 비용과 시간이 요구된다. 이처럼 AI 산업은 지연 비용(delay cost)이 매우 큰 경쟁구조를 지니며, “한 번 뒤처지면 따라잡기 어렵다”는 인식이 국가 차원의 전략 선택에 강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경쟁적 압력 속에서 각국의 AI 전략은 상호작용을 통해 수렴(convergence)의 양상을 보이게 된다. 우선 AI 패권경쟁이 심화되면서 미국의 시장주도-공세형 전략과 중국의 국가주도-공세형 전략 간 수렴이 나타나고, 이를 통해 기술 블록화와 공급망 분절화가 촉진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경쟁 압력으로 인한 기술 속도 경쟁은 시장조정-방어형 전략의 실현을 어렵게 하며, 노동시장 충격, 정보 불균형, 불평등 심화 등 사회적 외부효과를 충분히 관리하지 못할 위험을 증가시킨다. Sovereign AI 전략의 무분별한 추진 역시 자원 낭비와 전략적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 이처럼 AI 경쟁과 기술 확산이 가속화될수록, 세계 경제와 사회 안정성, 국가 전략적 자원의 효율적 활용 측면에서 위험이 증가하며, 이는 단일 국가 차원의 대응만으로는 관리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따라서 국제적 차원의 AI Governance를 구축하는 것이 요구된다.
1. AI 글로벌 경쟁
2017년 9월 1일,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학생들과의 공개 수업에서 “AI 영역에서 리더가 세계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라고 언급하였다.[15] 그의 발언은 단순한 수사를 넘어, AI가 국가 권력과 국제질서의 향방을 좌우할 전략적 기술이라는 인식을 압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오늘날 AI는 산업 혁신의 도구를 넘어 군사력, 정보전, 경제 생산성, 규범 설정 능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술로 간주되며, 이로 인해 글로벌 경쟁은 점차 제로섬적 성격을 띠고 있다.
무엇보다 AI 경쟁의 성격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는 AI가 범용기술이라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증기기관, 전기, 정보통신기술(ICT)과 같은 범용기술은 특정 산업을 넘어 경제 전반의 생산 방식과 조직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해왔다. AI 역시 제조업, 금융, 국방, 의료, 교육, 행정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으며, 데이터 처리와 의사결정, 자동화를 통해 기존 산업의 효율성과 구조를 전면적으로 변화시킬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범용성으로 인해 초기에는 생산성 향상 효과가 제한적으로 나타날 수 있으나, 조직 구조와 제도가 이에 맞게 재편될 경우 그 파급력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16] 이와 같은 AI의 범용적 성격은 경쟁의 범위를 전면화한다. 이는 특정 산업 내 기업 간 경쟁에 그치지 않고, 국가 전체의 산업 생태계, 데이터 인프라, 인재 양성 체계, 군사 전략, 국제 표준 설정 능력까지 포괄하는 ‘총체적 경쟁’을 유발한다. 다시 말해, AI 경쟁은 연구개발(R&D) 경쟁이자 자본 동원 경쟁이며, 인재 확보 경쟁이자 플랫폼과 규범을 둘러싼 질서 경쟁이다. 이러한 다층적 경쟁 구도 속에서 정부와 기업은 AI 개발을 단순한 경제적 기회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기반을 재구성할 수 있는 전략적 우위 확보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더 나아가 AI 산업은 승자독식 혹은 승자우위의 구조적 특성을 강하게 띤다. 디지털 플랫폼 산업 전반에서 나타나는 네트워크 효과와 데이터 축적 효과는 AI 분야에서 더욱 강화된다. 알고리즘은 더 많은 데이터를 통해 성능이 개선되고, 성능이 개선될수록 다시 더 많은 사용자와 데이터를 흡수하는 자기강화적 구조를 형성한다.[17] 일단 선도적 위치를 확보한 기업이나 국가는 자본, 인재, 생태계를 추가로 흡수하며 격차를 확대할 수 있다. 반대로 후발주자는 동일한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기술적·시장적 종속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 이러한 구조는 AI 개발을 억제하기보다는 가속화하려는 강한 유인을 형성하며, 결과적으로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든다.
결국 AI 글로벌 경쟁은 범용기술이라는 구조적 특성과 승자독식적 시장 구조가 결합되면서, 국가와 기업 모두에게 ‘뒤처질 수 없다’는 압박을 가하는 총력전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는 냉전 시기의 핵무기 경쟁에 비견될 만큼 전략적 함의를 지니지만, 그 영향 범위가 군사 영역을 넘어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있다는 점에서 더욱 광범위하다. 따라서 AI 경쟁은 단순한 기술혁신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와 규모, 생태계와 규범을 둘러싼 전면적 권력 경쟁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18]
2. AI 패권 경쟁과 국가 전략의 수렴화
AI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면서 국가별 AI 발전 전략은 상호 견제와 모방, 제도적 학습을 거치며 점차 수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공세적 전략을 채택한 미국과 중국 사이의 AI 패권 경쟁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장기적 생태계 구축이나 개방적 협력보다는 단기적 우위 확보와 전략적 통제가 더욱 중요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우선 시장주도-공세형 전략과 국가주도-공세형 전략 사이의 수렴 현상은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전통적으로 시장주도-공세형 전략은 민간기업의 혁신 역량과 개방적 시장 질서를 기반으로 기술 우위를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반면 국가주도-공세형 전략은 대규모 국가 투자와 산업정책을 통해 전략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AI 경쟁이 안보와 직결된 전략 산업 경쟁으로 인식되면서, 양 전략은 점차 유사한 정책 수단을 활용하기 시작하고 있다. 특히 현재 AI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국은 반도체 수출 통제, 첨단 기술에 대한 투자 제한, 대규모 공공 보조금 정책 등을 통해 점차 국가 주도적이고 시장 보호적인 성격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보호를 넘어, 경쟁국의 추격을 지연시키고 자국의 기술적 우위를 구조적으로 고착화하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결과 시장주도-공세형 전략은 점차 국가주도-공세형 전략과 수렴하면서, 개방적 세계경제 질서보다는 블록화된 기술권역 형성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이러한 수렴은 단지 대외적 보호주의 강화에 그치지 않고, 내부적으로도 중앙집중화와 산업 집중이 심화되는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시장주도-공세형 전략은 민간기업의 혁신 역량과 개방적 시장 질서를 기반으로 기술 우위를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두었으며, 다수의 기업과 스타트업이 경쟁하는 분산적 생태계를 혁신의 원천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AI 성능이 대규모 데이터와 막대한 컴퓨팅 자원의 ‘스케일(scale)’에 의해 향상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AI 경쟁은 소수의 ‘국가 챔피언’ 또는 거대 플랫폼 기업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중앙집중화는 장기적으로 혁신의 동력을 약화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혁신은 통상적으로 다양한 실험과 진입 장벽의 완화, 인재의 자유로운 이동과 창업을 통해 촉진되는데, 과도한 집중은 이러한 경쟁적 역동성을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19]
결과적으로 미·중 경쟁은 단기적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국가 개입과 산업 집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렴시키고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기술 격차를 확대하고 전략적 통제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혁신의 다양성과 실험의 폭을 축소시켜 생산성 향상의 잠재력을 제약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동시에 이러한 중앙집중화와 블록화는 글로벌 공급망과 디지털 경제의 분절화를 가속화하며, 개방적 세계경제 질서를 위축시키는 구조적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AI 경쟁은 이처럼 외부적으로는 보호주의와 기술 블록화를, 내부적으로는 산업 집중과 중앙집중화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가 전략을 수렴시키고 있다.
3. AI 경쟁과 사회경제적 안정성
AI 기술 확산의 사회경제적 효과는 아직 충분하고 시기적절한 데이터에 의해 명확히 검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산업혁명 초기에도 노동자 1인당 산출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임금은 장기간 정체되었으며, 기술 진보가 노동자 후생으로 연결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AI는 생산성과 성장률을 제고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단기적으로는 ‘대체 효과(displacement effect)’를 통해 노동 수요를 감소시키고 소득 분배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기존의 로봇 자동화가 주로 ‘저학력·저숙련·저임금’ 노동을 대체했다면, AI는 ‘고학력·고숙련·고임금’ 직종의 작업까지 상당 부분 자동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AI 확산이 선진국의 전문직·사무직 노동자에게도 큰 충격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하며, 노동소득 분배율 하락과 임금-생산성 간 괴리 확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기술은 새로운 과업을 창출하는 ‘재정립 효과(reinstatement effect)’를 통해 노동 수요를 회복시킬 수도 있다. 19~20세기 동안 증기기관, 전기,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직업들이 새롭게 창출되었고, 이는 장기적으로 임금과 생활수준 상승을 견인했다. 그러나 최근 ICT와 AI 혁신의 경우, 일부 학자들은 새로운 과업 창출보다는 자동화에 집중되어 왔으며, 그 결과 노동 수요 정체와 불평등 심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20]
시장조정-방어형 전략은 이러한 분배 문제와 사회적 충격을 사전에 관리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AI의 급속한 확산으로 발생할 수 있는 노동시장 충격, 불평등 심화 등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규범 설정과 감독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고강도 AI 경쟁 압력 속에서 시장조정-방어형 전략은 구조적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이 전략은 위험 통제, 규범 설정, 사회적 신뢰 확보를 우선하며, 기술 확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외부효과를 예방적으로 관리하려는 접근에 기초한다. 그러나 AI 산업이 승자독식적 성격과 규모의 경제를 강하게 띠고 있고, AI 성능이 데이터, 컴퓨팅 자원, 네트워크 효과에 의해 비선형적으로 향상되는 구조에서는 초기 속도 격차가 장기적 기술 격차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규제와 안전장치 구축에 시간을 투입하는 시장조정-방어형 전략은 단기적으로 혁신 속도를 제약하며, 기술 주도권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경쟁 압력이 심화될수록 규범적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유럽에서도 AI 경쟁력 확보의 필요성이 점점 더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EU는 인구 고령화와 생산성 둔화로 경제 성장과 경쟁력에 대한 압박이 증가하는 상황 속에서, 글로벌 AI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결단력 있는 조치와 야심 찬 목표 설정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즉 기술·산업·정책 분야의 협력, 인재와 자본 동원, 핵심 인프라 현대화, 경쟁력 있는 기술 생태계 조성 등을 통해 EU도 AI의 경쟁력 확보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요구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21]
결국 시장조정-방어형 전략은 기술 격차 확대 위험과 사회적 안정성 훼손 위험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고난도의 선택 문제를 내포한다. 경쟁 압력이 심화될수록 규제 완화와 산업 지원 병행의 유혹은 커지지만, 이는 사회적 안전장치를 약화시킬 수 있다. 반대로 엄격한 규제 기조를 유지할 경우 기술 종속과 성장 둔화의 위험이 커진다. 이러한 딜레마는 AI 경쟁이 심화될수록 사회적 위험 관리 조치가 추진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AI가 야기하는 사회적 위험성을 관리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조치는 AI 경쟁 자체를 완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AI 경쟁과 Sovereign AI
AI 경쟁은 ‘Sovereign AI’ 전략의 확산을 촉진하는 핵심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경쟁이 심화될수록 외부 플랫폼과 기술에 대한 의존은 안보적 취약성으로 인식되며, 각국은 데이터 현지화, 자국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 국산 AI 모델 개발 등 자율성 확보를 위한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국가주도-방어형 전략 뿐만 아니라, 공세적 전략을 추구하는 국가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즉, AI 경쟁은 전략 유형과 무관하게 기술 주권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국가 정책을 수렴시키는 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다.
이처럼 AI 경쟁은 Sovereign AI 전략을 촉진하고 있으나, 이러한 전략의 타당성과 현실 가능성에는 몇 가지 구조적 제약과 한계가 존재한다. 첫째, Sovereign AI는 핵심 기술과 데이터, 컴퓨팅 인프라, 표준, 인재 등 광범위한 자원을 자국 통제 하에 두려는 전략적 접근을 전제한다. 그러나 AI 산업의 핵심 분야는 이미 글로벌 과점·독점 구조로 수렴하고 있으며, 특정 기업과 국가가 시장 지배력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후발국이 이러한 핵심 영역에서 완전한 자립을 달성하기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상용 LLM 시장의 약 70%를 Microsoft-OpenAI가 장악하고 있고, AI 학습용 GPU의 90% 이상을 소수 기업이 공급하는 현실은, 국가가 단독으로 이러한 핵심 자원과 기술을 통제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둘째, Sovereign AI 전략의 현실 가능성은 내수 시장 규모와 산업 생태계 역량에 크게 의존한다. 대규모 내수 시장을 보유한 국가의 경우, 보호주의적 접근을 통해 일정 수준의 기술·산업 내재화를 달성할 수 있으나, 내수 시장이 제한적인 국가에서는 전략 실행이 쉽지 않다. 제한된 시장 규모는 연구개발(R&D) 투자 회수, 인재 확보, 실험적 혁신 촉진 측면에서 제약으로 작용하며, 전략적 보호주의가 오히려 혁신을 저해하고 비용을 증가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Sovereign AI 전략은 경쟁 압력 속에서 기술 주권과 국가 안전을 확보하려는 논리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산업 구조, 내수 시장 규모, 기술 집적도, 자본 및 인재 접근성이라는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모든 국가가 동일하게 실행할 수 있는 전략은 아니다. 따라서 AI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도 각국은 전략적 우선순위를 정하고 핵심 분야와 특화 시장에서 선택적 Sovereign AI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며, 완전한 자립보다는 글로벌 협력과 내재화의 혼합 전략이 보다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5. AI 경쟁과 Sovereign AI
AI 경쟁은 국가와 기업 모두에게 기술 우위 확보와 전략적 자율성의 강한 동기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세계경제와 사회, 국가 전략 전반에 구조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첫째, 경쟁이 과도하게 심화되면서, 시장주도-공세형 전략과 국가주도-공세형 전략 간 수렴이 나타나고,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개방적 세계경제보다는 기술 블록화와 공급망 분절화가 촉진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글로벌 무역과 디지털 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장기적으로 세계경제의 개방성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둘째, 경쟁 압력으로 인한 기술 속도 경쟁은 시장조정-방어형 전략의 실현을 어렵게 하며, 노동시장 충격, 정보 불균형, 불평등 심화 등 사회적 외부효과를 충분히 관리하지 못할 위험을 증가시킨다. AI의 승자독식적 특성과 빠른 확산 속에서, 규제와 안전장치 구축에 시간이 필요한 방어형 전략은 단기적으로 혁신 속도를 제한하면서도 사회적 안정성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할 수 있다.
셋째, Sovereign AI 전략의 무분별한 추진 역시 자원 낭비와 전략적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 핵심 기술과 인프라에서 자급자족을 목표로 하는 과도한 보호주의적 정책은 막대한 투자와 인재 동원을 요구하지만, 산업 구조와 내수 시장 규모, 기술적 종속 가능성을 고려할 때 모든 국가가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일부 국가에서는 비용 부담만 증가하고 혁신 역량이 제한될 위험이 존재한다.
이처럼 AI 경쟁과 기술 확산이 가속화될수록, 세계 경제와 사회 안정성, 국가 전략적 자원의 효율적 활용 측면에서 위험이 증가하며, 이는 단일 국가 차원의 대응만으로는 관리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따라서 새로운 기술이 초래할 부작용과 의도치 않은 결과를 예방하기 위해 국제적 차원의 AI Governance를 구축하는 것은 필수적 과제가 되고 있다.[22] 키신저와 앨리슨은 “AI의 무제한적 발전이 미국과 전 세계에 파국적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정부 지도자들은 지금 즉시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AI가 단순한 경제·기술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전략적 안정과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잠재적 위협임을 분명히 했다.[23] (Henry Kissinger and Allison 2023). 또한 AI 개발자들 역시 “AI로 인한 멸종 위험을 방역, 핵전쟁과 같은 사회적 규모의 위험과 동등하게 글로벌 우선 과제로 다뤄야 한다”고 경고하며, AI가 인간의 삶을 통제할 가능성을 지적한 튜링의 우려를 다시금 상기시켰다. 이들은 AI가 가져올 근본적 변화(GenAI)를 관리하기 위해 윤리적이고 투명하며 통제 가능한 혁신을 보장하는 강력한 감독 체계와 새로운 규제 프레임워크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Tourpe 2025, 9).
하지만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AI Governance의 구축은 국제 사회가 직면할 가장 난제 중 하나로 평가된다.[24] AI Governance는 단순한 기술 규제가 아니라, AI 경쟁과 기술 확산으로 인한 세계 경제 개방성 약화, 사회적 안정성 침해, Sovereign AI 전략의 무분별한 추진으로 인한 자원 낭비를 완화하기 위한 포괄적·다층적 제도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는 AI 정책이 단순히 기술과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국제 협력, 표준 조율, 윤리적·사회적 합의 등 복합적 요소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문제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AI가 범용 기술(GPT)적 성격을 가지며 승자독식적 구조를 띠고, 각국 전략이 상호 얽혀 있는 상황에서 거버넌스를 정립하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AI Governance의 구축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기는 하나 바젤협약(Basel Accord) 사례는 유용한 참고가 될 수 있다. 바젤협약은 1970년대 은행위기를 계기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이 금융시장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국 내 금융 규제를 강화해야 하는 필요성과, 동시에 규제 강화가 자국 금융기관의 국제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문제 사이에서 도출된 국제적 규범이다. 즉, 국내 규제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는 문제를 국제적 규범을 통해 해결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바젤협약을 통해 미국은 자국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다른 국가들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도록 유도하여 경쟁 환경을 균형 있게 만들었다.[25]
바젤협약 구축 과정에서 나타난 논리는 AI Governance에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다. 즉, 특정 국가가 금융시장 안정성을 위해 단독으로 강력한 규제를 도입할 경우 경쟁력 약화의 위험이 존재하지만, 국제적 표준과 규범을 통해 안정성과 경쟁력 사이의 균형을 달성할 수 있었다는 점은 AI 분야에서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급속한 AI 확산은 노동시장 충격, 정보 왜곡, 불평등 심화 등 사회적 안정성에 대한 우려를 고조시키며, 이는 규제와 안전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AI 기술 발전을 주도하는 미국 내에서 AI 확산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불안정성이 증폭될 경우, 이러한 상황은 AI Governance 구축을 위한 강력한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다. 현재 이러한 가능성 중 하나는 AI Bubble 문제이다. AI 산업에 대한 과도한 투자와 기대가 결합되면서 금융적·산업적 버블이 형성되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26] 이러한 버블이 붕괴할 경우 미국 내에서 AI 발전을 일정 수준 규제하고 안정성을 확보하자는 목소리가 더욱 강화될 것이고, 이는 AI Governance 구축을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Ⅳ. 결론
현재 한국 정부는 AI 대전환을 국가 경제성장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AI 3대 강국 도약을 통해 한국 경제를 추격경제에서 선도경제로 전환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AI 예산 확대, 국가 데이터센터 구축을 통한 ‘AI 고속도로’ 형성, 고성능 GPU와 AI 데이터 집적 클러스터 확보, ‘모두의 AI’ 프로젝트와 규제 특례를 통한 융복합 산업 활성화, 미래인재 양성 등 포괄적 정책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기본적으로 국가 주도형 발전 전략의 특징을 보이면서도, 민간 주도의 혁신을 활용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한국이 기존 발전국가형 모델의 연장선에서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선 글로벌 AI 경쟁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은 독자적 발전보다는 반도체 산업과 디지털 인프라를 기반으로 AI 동맹 및 글로벌 협력에 참여하여 AI 생태계 내에서 전략적 핵심 국가(linchpin state)로 자리매김하는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더욱 중요하게 현재 한국 AI 전략은 기술 경쟁과 산업 육성에는 적극적이지만, 사회경제적 위험성 관리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AI 확산은 자동화, 노동시장 재편, 사회적 불평등 심화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음에도, 이를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정책적 대응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 현실적으로 글로벌 경쟁 속에서 독자적 규제 강화는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단기적으로는 사회적 안전망 강화, 재교육·노동 전환 프로그램 등 부정적 효과를 상쇄할 정책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국제적 AI 규제와 거버넌스를 통해 사회적 위험성을 공동 관리하고, 글로벌 표준과 윤리 기준 형성에 참여함으로써 기술 경쟁력과 사회적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AI 전략은 국내 산업 육성과 기술 인프라 구축에는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AI 외교와 국제적 협력 전략이 결여되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치열한 글로벌 AI 경쟁에서 한국이 전략적 핵심 국가로 기능하고, 국제 규범과 거버넌스 형성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기술 경쟁력, 산업 육성, 사회적 안정성 확보를 통합하는 AI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이러한 접근은 단순히 AI 발전을 촉진하는 것을 넘어, 발전 속도를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역할까지 포함해야 한다. 폴라니는 “변화의 속도(the rate of change)는 변화의 방향 자체만큼 중요하다”고 지적하며, 경제적 영역에서 정부의 핵심적인 역할은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데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27] 한국의 AI 전략 역시 기술 경쟁과 산업 육성 뿐만 아니라, 외교적·정책적 수단을 통해 AI 발전의 속도를 관리하여 AI 확산의 위험을 완화하는 균형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
[1]Government of Canada. 2022. "Government of Canada Launches Second Phase of the Pan-Canadian Artificial Intelligence Strategy." June 22. https://www.canada.ca/en/innovation-science-economic-development/news/2022/06/government-of-canada-launches-second-phase-of-the-pan-canadian-artificial-intelligence-strategy.html.
[2]Radu, Roxana. 2021. "Steering the Governance of Artificial Intelligence: National Strategies in Perspective." Policy and Society, 40 (2): pp. 178-193.
[3]Dutton, Tim. 2018. "Building an AI World: Report on National and Regional AI Strategies." CIFAR. December 6. https://cifar.ca/cifarnews/2018/12/06/building-an-ai-world-report-on-national-and-regional-ai-strategies/#topskipToContent.
[4]Weber, Max. 1978. Economy and Society.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p. 6.
[5]Radu, Roxana. 2021. "Steering the Governance of Artificial Intelligence." Policy and Society, 40 (2): pp. 179-180.
[6]The White House. 2020. “American Artificial Intelligence Initiative: Year One Annual Report.”
[7]The White House. 2025. “Winning the Race: America’s AI Action Plan.”
[8]Khanal, Shaleen, Hongzhou Zhang, and Araz Taeihagh. 2025. "Why and How is the Power of Big Tech Increasing in the Policy Process? The Case of Generative AI." Policy and Society, 44 (1): pp. 52–69.
[9]State Council of China. 2017. "The New Generation Artificial Intelligence Development Plan." https://digichina.stanford.edu/work/full-translation-chinas-new-generation-artificial-intelligence-development-plan-2017/.
[10]Frey, Carl Benedikt. 2025. "How the Battle for Control Could Crush AI’s Promise." Finance & Development, 62 (3): pp. 50-53.
[11]EU Artificial Intelligence Act. 2024. "High-level Summary of the AI Act." February 27. https://artificialintelligenceact.eu/high-level-summary/; European Union. 2024. "Regulation (EU) 2024/1689 of the European Parliament and of the Council." June 13. https://eur-lex.europa.eu/legal-content/EN/TXT/?uri=CELEX:32024R1689.
[12]Rajan, Raghuram R. 2025. "The Tradeoffs of AI Regulation." Project Syndicate. August 26. https://www.project-syndicate.org/commentary/ai-regulation-innovation-tradeoff-us-versus-europe-by-raghuram-g-rajan-2025-08.
[13]Letort, Brian and Kadri Linask-Goode. 2025. "What Is Sovereign AI and Why Is It Growing in Importance?" Digital Reality. April 3. https://www.digitalrealty.com/resources/blog/what-is-sovereign-ai.
[14]NITI Aayog. 2018. National Strategy for Artificial Intelligence: AI for All.
[15]RT. 2017. "‘Whoever leads in AI will rule the world’: Putin to Russian children on Knowledge Day." September 1. https://www.rt.com/news/401731-ai-rule-world-putin/.
[16]Kishtainy, Niall. 2025. "A New Industrial Revolution?" Finance & Development, 62 (4): pp. 46-49.
[17]Radu, Roxana. 2021. "Steering the Governance of Artificial Intelligence." Policy and Society, 40 (2): p. 189. Johnson, Simon. 2025. "Tech’s Winner-Take-All Trap." Finance & Development, 62 (2): pp. 66-67.
[18]Bremmer, Ian and Mustafa Suleyman. 2023. "Building Blocks for AI Governance." Finance & Development, 60 (4): pp. 10-12.
[19]Frey, Carl Benedikt. 2025. "How the Battle for Control Could Crush AI’s Promise." Finance & Development, 62 (3).
[20]Comunale, Mariarosaria and Andrea Maneara. 2024. "The Economic Impacts and the Regulation of AI: A Review of the Academic Literature and Policy Actions." International Monetary Fund Working Paper, WP/24/65; Kishtainy, Niall. 2025. "A New Industrial Revolution?" Finance & Development, 62, 4: pp. 46-49.
[21]General Catalyst. 2025. An Ambitious Agenda for European AI.
[22]Radu, Roxana. 2021. "Steering the Governance of Artificial Intelligence." Policy and Society, 40 (2): p. 180.
[23]Kissinger, Henry A. and Graham Allison. 2023. "The Path to AI Arms Control." Foreign Affairs. October 13. https://www.foreignaffairs.com/united-states/henry-kissinger-path-artificial-intelligence-arms-control.
[24]Bremmer, Ian and Mustafa Suleyman. 2023. "Building Blocks for AI Governance." Finance & Development, 60 (4).
[25]Kapstein, Ethan Barnaby. 1992. "Between Power and Purpose: Central Bankers and the Politics of Regulatory Convergence." International Organization, 46 (1): pp. 265-287; Oatley, Thomas and Robert Nabors. 1998. "Redistributive Cooperation: Market Failure, Wealth Transfers, and the Basle Accord." International Organization, 52 (1): pp. 35-54.
[26]Stiglitz, Joseph E. 2025. "Trump and the End of American Hegemony." Project Syndicate. December 15. https://www.project-syndicate.org/magazine/trump-end-of-american-hegemony-by-joseph-e-stiglitz-2025-12.
[27]Polanyi, Karl. 1944. The Great Transformation. Boston: Beacon Press, pp. 36-37.
■저자: 정재환_인하대학교 교수.
■ 담당 및 편집: 임재현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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