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희 동국대 교수는 최근 북한 노래 가사의 내용이 '우리 조국'에서 '나의 조국'으로 변화했음을 포착하여 분석합니다.. 저자는 이를 집단적인 슬로건을 통해 충성심을 이끌어 내기 어려운 시대를 고려하여, 북한 당국이 개인의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을 선택한 결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하 교수는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는 개별적인 조국에 대한 사랑이 결국 지도자와 정치 체제에 대한 충성으로 귀결되도록 하는, 간접적인 우상화 전략이 작동하고 있음을 진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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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조국’ 노래
매년 신년을 기념해 열리는 북한의 신년경축공연은 북한 당국이 창작한 신곡을 공식적으로 공개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공연에서 발표하는 신곡은 북한의 국제 음악 트렌드 수용 양상을 가늠하는 지표이자,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정책적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2025년 신년경축공연에서도 새로운 창작곡들이 공개되었는데, 특히 주목할 만한 곡은 <길이 사랑하리>, <우리는 조선사람>, <강대한 어머니 내 조국>, <조국과 나의 운명> 등 네 곡이다.
북한에서 새로운 노래는 공연 무대에 그치지 않는다. 창작곡은 로동신문 등 주요 매체에 악보 형태로 게재되고, 조선중앙방송 화면음악으로 반복 송출된다. 이후 주요 악단의 공연 레퍼토리로 채택되고, 독보회 등을 통해 주민들에게 반복 학습된다. 북한에서 새 노래의 등장은 북한 사회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확산시키기 위한 선전·선동 과정의 일환인 것이다.
올해 발표된 신곡들의 공통점은 바로 ‘조국’이 핵심 정서와 주제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전에도 조국을 전면에 내세운 창작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국’을 표제어로 사용하는 집중적 창작은 2013년과 2024년 단 두 차례만 확인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3년에는 <내 조국강산에 넘치는 노래>, <희망 넘친 나의 조국아>, <조국 찬가> 등 세 곡이 잇따라 발표되며 ‘조국’이라는 단어가 이례적으로 강조되었고, 11년 뒤인 2024~2025년 다시 ‘조국’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이 반복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북한에서 ‘국가’는 특정 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실현하는 권력기관이자, 주민 전체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조직·관리하는 제도적 장치로 정의됨에 따라, 사회 운영을 책임지는 실체적 권력으로서의 성격이 뚜렷하다. 반면 ‘조국’은 사전적으로 ‘자기가 나서 자란 나라’, ‘국적이 속해있는 나라’는 일반적 의미와 함께 “수령이 마련해준 인민의 나라”라는 규정을 포함한다.[1] 조국이라는 말이 제도적 범주가 아니라 수령 주도의 정치적 기원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북한식 개념 정의의 핵심이다.
이처럼 ‘국가’가 제도와 권력의 언어라면, ‘조국’은 정치적 기원을 내포하면서도 보다 상징적이고 정서적 호소력을 띠는 표현으로 기능한다. 당국이 다시 ‘조국’을 노래의 표제어로 선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 개념이 갖는 상징성을 새롭게 활용하겠다는 의도적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제도적 언어가 아니라 상징적이자 정서적인 언어로 접근하는 방식이 선전 전략에서 다시 부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13년 ‘집단’의 조국: 지도자 중심의 충성 동원
2013년 창작된 ‘조국’ 표제곡들은 표면적으로는 조국을 노래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충성과 지도자 중심의 집단 결속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조국’이라는 표제어는 포장일 뿐, 가사 속에서 조국은 지도자의 존재와 업적을 담는 상징적 바탕으로 재구성된다.
<내 조국 강산에 넘치는 노래>노래에서 조국이라는 단어는 1절 가사 ‘희망찬 내 나라 조국강산에 울려퍼지네 원수님노래’라는 구절에서 등장하는 것이 전부다. 여기서 조국은 지리적 공간도, 민족 공동체도 아닌 ‘지도자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장소’로 정의된다. 지도자의 사상이 확산되는 공간이 곧 조국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지점이다. 후렴구에서 반복되는 ‘김정은원수님 노래’와 ‘노래 노래 노래’ 같은 짧고 반복적인 구절은 집단 합창을 쉽게 만들고 감정을 고조시키며, 결국 집단주의적 충성을 강제하는 음악적 장치로 작동한다.
희망찬 내 나라 조국강산에 울려퍼지네 원수님노래 인민위해 바치시는 사랑 고마워 심장으로 부르는 흠모의 노래 노래 노래 흠모의 노래 강산에 넘치는 노래 아 우리의 김정은원수님 노래
<조국찬가>는 조국을 보다 서정적으로 묘사한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첫걸음마 떼여준 정든 고향’과 같은 표현은 조국을 감성적 안식처로 제시하며 개인적 추억과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곡 전체 흐름을 지배하는 것은 감성적 묘사가 아니라 ‘행복은 넘쳐라 인민의 조국’, ‘누구나 소중한 그 품은 조국’과 같은 표현이다. 이 문장들은 조국을 모성적 존재로 이상화하는 동시에 국가가 감정과 행복의 기준을 설정하고 규정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림같이 황홀한 땅과 바다’나 ‘금은보화 가득한 전설의 나라’와 같은 과장된 이미지 역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상향을 통해 체제의 영속성과 우월성을 강조한다. 참매,[2] 목란꽃 등 국가 상징의 반복 역시 주민에게 자긍심과 충성의 정서를 주입하기 위한 수사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첫걸음마 떼여준 정든 고향 집뜨락 조국이여라 누구나 소중한 그 품은 조국 그림같이 황홀하여 눈이 부신 땅과 바다 금은보화 가득한 전설의 나라 행복은 넘쳐라 인민의 조국 구름우엔 참매 날고 목란꽃 핀 이 강산 슬기롭고 아름다운 조선의 모습 부러움 없어라 아침의 나라
세 곡 중 <희망넘친 나의 조국아>는 조국을 가장 노골적으로 지도자와 등치시킨다. 후렴구는 ‘희망 넘치는 조국은 원수님 그 품’이라는 표현을 통해 조국의 정체성을 ‘지도자의 품’으로 환원한다. 1절 ‘눈부신 아침 즐겁게 맞네’, 2절 ‘비 내려도 폭풍 세차도’ 같은 가사는 현실의 고난과 제재로 인한 고립을 은유적 시련으로 치환하면서 그 극복의 길을 지도자에 대한 충성으로 제시한다. ‘우린 누구나’, ‘우리 사는 곳’과 같은 1인칭 복수 주체는 개인감정을 집단 감정으로 재편하고 가사 말미의 ‘나의 조국아’는 개인적 호명처럼 보이지만, 이는 집단 정서를 대변하는 수사적 장치일 뿐이다.
우린 누구나 기쁨에 넘쳐 눈부신 아침 즐겁게 맞네 바라는 꿈이 눈앞에 꽃펴 래일도 즐겁게 맞네 밝고 밝아라 우리 사는 곳 원수님 그 품이여 인민의 희망 만복의 희망 넘치는 나의 조국아
2013년에 창작된 ‘조국’ 관련 세 곡은 모두 표제에서는 조국을 말하지만, 가사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실명이나 칭호와 함께 성과와 업적의 칭송이 중심이 되며, 조국은 지도자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공간으로 종속된다. 조국을 이상향으로 묘사하는 노래조차 그 이상향을 지키고 실현하는 주체로서 지도자를 암묵적으로 배치한다. 이 시기의 ‘조국’은 어디까지나 ‘집단의 조국’이며, 그 집단은 지도자 중심으로 결속되는 집단으로 볼 수 있다. 2013년의 조국 표제곡들은 모두 미래의 밝음과 희망을 내세우면서도 그 희망을 가능하게 하는 절대적 주체로 지도자를 세우는 집단적 충성 동원 노래로 기능한다.
2024년 ‘개인’의 조국: 감정의 내면화 전략
2024년에 공개된 조국 표제곡들은 조국을 집단의 구호가 아닌 개인의 감정 속에 위치시키려는 방향으로 선전 전략을 전면 전환했다. 이 곡들은 모두 1인칭 화자의 내면 독백을 중심 서사로 삼아 조국을 기억, 추억, 삶의 의미와 결부된 친밀한 대상으로 구성한다. 특히 <조국에 대한 노래>는 ‘노래하려니’라는 자발적 고백의 언어로 시작하여 조국을 절대적 충성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여러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정서적 공간으로 재정의한다. ‘무엇부터 어떻게 노래해야 할까’라는 표현을 통해 조국에 대한 진정성을 감정의 포화상태로 강조하고 있다. 가사 속 조국은 ‘지도자’가 아닌 기억이며 제도적 ‘국가’가 아니라 회고의 대상이다. 후렴에서 반복되는 ‘사랑하노라’를 통해 1인칭 시점에서 사랑의 감정을 조국이라는 대상에 투영시키고 있으며, ‘그대 없인 한순간도 못살아’라는 표현에서 조국을 ‘그대’로 이념적 대상을 인격화시킴으로써 추상적 존재가 아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감성적 존재로 전환시키게 된다.
내 조국에 대하여 노래하려니 하많은 모습과 추억이 떠올라 무엇부터 어떻게 노래해야 할까 너무나 정답고 소중한 모든 것을 사랑하노라 나의 조국을 그대 없인 한순간도 못살아 노래하노라 이 세상 제일 아름답고 위대한 조국을
<조국과 나의 운명>은 그 감정적 결속을 더욱 강화한다. ‘넘어야 할 산들’을 언급하며 현실의 난관을 인정하는 도입은 과거처럼 밝은 미래만을 강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있으며, 조국을 개인의 삶과 선택 불가능한 운명으로 결속시킨다. 후렴 ‘가를 수 없는 하나의 운명’은 조국을 운명적 동반자로 인격화하는 동시에 충성을 감정적 필연으로 전환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곡에서는 조국과 개인의 거리가 가장 극적으로 좁혀지며 개인과 국가의 경계를 감정적으로 융합시키는 전략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넘어야 할 산들이 아직 많으리 하지만 내 앞날의 운명을 아네 조국과 함께 하는 내 삶이 달리 될 수는 없는 것을 그대가 강해 두렴 모르고 그대가 빛나 나는 행복해 가를수 없는 하나의 운명 그대와 끝까지 함께 하리 조국아
<강대한 어머니 내 조국>은 조국을 ‘어머니’로 호명함으로써 정서적 친밀성을 극대화한다. 조국은 보호하고 보살피는 존재, 안정과 위안을 제공하는 모성적 존재로 재구성된다. 과거처럼 외형적 번영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조국이 굳건하고 강대한 이유를 감정적으로 체감시키며, ‘그래서 우리는 강해진다’는 논리를 통해 국가의 강함을 개인의 감정적 확신으로 연결한다. 후반부의 ‘우리 모두 다 함께 앞으로’는 개인 감정에서 출발한 선전이 다시 집단 행동으로 연결되는 흐름을 보여주며 체제의 정당화라는 선전 구조의 재배치를 확인하게 한다.
영광이 있으라 어머니 내 조국 성스런 그대 려정에 시련을 누르고 락원을 떠올린 그 힘은 무궁하여라 굴할줄 모르는 나라는 번영해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강해지리니 우리모두 다 함께 앞으로
<우리는 조선사람>은 ‘조국’이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지만, 조국의 정체성을 민족, 역사, 기질을 통해 드러낸다. ‘대대손손 굴할 줄 모른다’는 표현은 조국의 불굴성을 민족적 기질로 설명하며, 이러한 기질을 계승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심어준다. ‘조국’이라는 직접적인 표현 없이도 조국의 상징을 내면화시키는 전략적 선택이며, 조국을 감성적 존재로 느끼게 하는 다른 곡들과 달리 정체성 기반의 내면화를 시도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누구도 못가본 길 굴함없이 우리왔네 이 나라를 목숨보다 더 사랑하기에 설한풍도 포화속도 피로 헤쳐 승리했고 맨손으로 빈터에도 락원 세웠네 그렇게 강하다 우리는 조선사람 대대손손 굴할줄을 모른다 보여주리라 그 기상 백배해 이 조선이 억년 솟아 강대함을
<길이 사랑하리>는 조국을 ‘그대’로 직접 호명하며 서정적 고백의 형식을 차용한 곡으로, 조국을 사랑의 대상처럼 다룬다는 점에서 선전 언어의 감성화가 가장 앞서 있는 사례다. ‘행복만을 준 오직 그대’라는 표현은 개인의 삶에서 느끼는 행복의 원인을 조국으로 귀속시키며 충성을 감정적 관계로 위장한다. 이는 ‘충성은 사랑이다’라는 감정적 프레임으로 귀결되며 기존 선전 방식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형태의 감성화 전략을 보여준다. 또한 조국을 이상적인 유토피아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조국의 현실적 고난을 인정하고, 이를 개인이 함께 견뎌야 한다는 운명 공동체적 서사로 변환한다.
어이하여 그 이름 부를 때면 생각은 깊어지는가 함께 하며 보내온 못잊을 려정 가슴에 떠오르네 세월의 풍파 이기며 우리를 키운 조국아 행복만을 준 오직 그대를 길이 사랑하리
이처럼 2024년 북한의 창작 노래에 등장한 조국은 집단의 구호가 아니라 개인의 마음속에서 관계를 맺는 존재로 재배치되고 있다. 노래들은 조국을 각기 다른 정서적 상징으로 재구성하며 개인의 감정과 경험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이는 집단주의적 선전이 효과를 잃어가는 현실 속에서 개인화된 사회 정서를 고려한 전략적 선택으로, 조국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게 만드는 감정 기반의 새로운 선전 양식으로 읽을 수 있다.
왜 지금 ‘조국’을 다시 노래하나
김정일 위원장은 2009년 1월 8일 김정은 위원장을 후계자로 지명한 직후, 이를 알리는 선전 작업의 일환으로 김정은의 첫 우상화 노래인 <발걸음>이 제작 및 보급되며 후계 구도를 공식화하기 시작했다.[3] 2011년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에는 권력 승계의 정당성과 안정적 통치를 확보하기 위한 강도 높은 우상화 전략이 불가피했다. 김정은 공식 집권 초기(2012~2015)에 로동신문 1면에 게재된 우상화 노래는 총 4건으로, 이는 김정일 공식 집권기(1998~2009)의 1면 공개 횟수와 동일한 수준이다. 이는 김정은 정권이 짧은 기간에 집중적 우상화 조치를 필요로 했던 과도기적 시기였음을 보여준다.[4]
2013년 창작된 ‘조국’ 표제곡들 역시 표면상 ‘조국’을 노래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도자의 실명과 칭호를 활용해 조국과 지도자를 등치시키는 전략이 중심이었다. 이 시기 ‘조국’은 국가보다 지도자를 더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감성적 매개였으며, 조국을 지키는 실존적 주체를 지도자로 설정했다. 낙관적인 미래를 앞세운 구성은 새로운 젊은 지도자의 이미지를 강화하고, 주민들의 충성을 노골적으로 유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2012년 등장한 모란봉악단은 이런 전략의 상징적 장치였다. 악단의 콘셉트와 퍼포먼스, 시각적 스타일은 갱신되었으나, 당시 조국 표제곡들 자체는 절과 후렴의 반복, 합창에 적합한 구조 등 전형적인 북한 가요 문법을 유지했다. 새로운 이미지 전략을 뒷받침하는 매체의 변화는 있었지만, 노래의 창작 방식은 집단적 의례에 최적화된 기존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북한은 장기적 고립과 외부 환경의 급변 속에서 ‘조국’이라는 개념을 재구성해야 하는 국면을 맞았다. 결정적 계기는 2019년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5]이었다. 고립 속에서 자국의 주체성을 강화시키며 자력갱생으로 체제를 유지해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 2019년 신년사에서 ‘우리국가제일주의’가 공식 등장하면서 ‘국가’를 중심에 둔 통치 담론이 본격화했다.[6]
2020년 국무위원회연주단 창립, 2020년 당 창건 75돌 열병식의 공화국기 게양식, 2021년 8차 당대회의 ‘우리국가제일주의 시대’ 선포 등은 모두 보편국가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국가 브랜딩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2023년 국가상징법 제정, 김여정 부부장의 ‘대한민국’ 호명, 2024년 화성지구 2단계 준공식에서의 국가(國歌)명 변경[7] 역시 북한 당국이 스스로를 ‘국가 대 국가’ 질서 속에 재배치하려는 움직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적 재정립 과정은 내부 통제의 고민과 맞물린다. 코로나19 봉쇄 장기화로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주민들의 감정적 동요가 커졌고, 북한은 이를 체제 위협 요인으로 인식했다.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정, 이어 청년교양보장법·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통한 외부문화 유입의 전면 차단은 주민들의 감성 변화와 외부문화 수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는 기존 방식의 선전선동이 더 이상 충분히 작동하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북한 당국은 ‘국가’를 추상적으로 강조하는 대신 감성적이면서도 개인이 내면화할 수 있는 상징어로서 ‘조국’을 다시 호출하고 있다. ‘조국’이라는 매개는 집단적 구호에서 개인적 감정으로 옮겨가는 방식의 선전 전략 전환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 셈이다.
‘우리의 조국’에서 ‘나의 조국’으로
선전이 효과를 가지려면 무엇보다 주민의 감정적 동의를 확보해야 한다. 더 이상 집단적 구호만으로 충성심을 견인하기 힘들어진 상황에서, 선전의 무게중심은 개인의 감정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조국’이라는 상징어가 다시 호출된 것도 이 같은 고민의 결과로 읽힌다. 제도적 언어인 ‘국가’가 지닌 거리감을 감성적 언어인 ‘조국’을 통해 보완하고, 지도자 찬양을 정면으로 강화하는 대신 조국이라는 간접적 매개를 통해 주민의 내면에 스며들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후 발표된 여러 신곡들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지속되었다. 특히 <조국이여 번영하라>의 후렴 ‘나의 간절한 소원은 오직 그대의 번영뿐 사랑하는 조국이여 길이 번영하여라’는 충성이 개인의 소원과 열망의 언어로 번역되었음을 보여준다. 충성의 주체를 ‘우리’에서 ‘나’로 이동시키는 전략은 조국을 감정의 주체로 재배치하려는 시도와 맞물려, 주민의 내면적 감정 구조에 직접 호소하려는 선전 방식의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더 주목할 점은 2025년 한 해 동안 새롭게 발표된 창작곡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의 실명이나 칭호가 직접적으로 언급된 곡이 단 한 곡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조국이라는 간접 매개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지도자 개인의 직접적 호명 없이도 충성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도록 설계된 전략적 조정으로 볼 수 있다. 외적으로는 노골적인 개인 숭배 언어를 완화해 국제적 시선을 의식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조국, 세대를 호출함으로써 지도자 중심 체제를 우회적으로 내면화시키는 효과를 기대하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북한 노래에서의 조국은 ‘우리의 조국’에서 ‘나의 조국’으로 재구성되며, 조국 사랑이 결국 지도자 충성으로 귀결되도록 하는 정서기반의 간접적 우상화 전략이 작동하고 있다. ■
* 이 글은 2025년 북한연구학회 춘계학술회의 발표문 “북한 가요를 통한 ‘조국’의 재구성: 2013년과 2024년에 새로 창작된 노래를 중심으로”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1]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10). 『조선말사전』, 평양: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 2013년 해당 노래가 창작될 당시 북한의 국조는 ‘참매’였으나, 현재 ‘까치’로 변경되었다.
[3] 이기동 (2012). “김정은의 권력승계 과정과 권력구조”, 『북한연구학회보』 16권 2호, pp. 3-4.
[4] 하승희 (2015). “북한 로동신문에 나타난 음악정치 양상: 「로동신문」1면 악보를 중심으로” 『문화정책논총』 29권 2호, p. 238.
[5] 연합뉴스, [하노이 담판 결렬]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성사부터 결렬까지. https://www.yna.co.kr/view/AKR20190228151900504.(검색일: 2025.12.5.)
[6] 강혜석 (2019). “김정은 시대 통치담론 변화와 ‘국가’의 부상: <김정일애국주의>와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59권 3호, p. 326.
[7] 기존 ‘애국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로 변경되었다.
■ 하승희_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연구초빙교수.
■ 담당 및 편집: 이상준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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