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복귀와 미국 시리즈] ①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양극화 정치
ISBN 979-11-6617-832-0 95340
Ⅰ. 2024년 미국 대선 분석 및 국내 정치 전망
2024년 11월 5일에 치러진 선거는 여러 차원에서 예상을 뛰어넘었다. 한 마디로 일찍 개표 결과가 완료된 트럼프(Donald J. Trump)의 완승이었다. 7개의 경합주를 모두 휩쓴 이번 선거 결과는 2016년 아웃사이더 트럼프가 처음 등장해서 여론 조사 예측과 달리 힐러리(Hillary Clinton) 후보에게 낙승했던 시기 와도 비교할 만하다. 더구나 팬데믹 이후 사전 투표(early voting)가 활성화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7개의 경합주들 중 개표 완료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주들이 꽤 있었다. 지난 2020년 대선 당시에는 화요일 선거의 최종 결과가 토요일에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 대선 결과는 예측과 빗나갈 정도의 속전속결이었다. 특히 위스콘신(Wisconsin)과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주가 대선 이전에 선거법을 개정해서 소위 밤샘 개표를 가능하도록 한 점이 이유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대선 기간 내내 박빙의 여론 조사 결과를 보여 왔고, 대선 결과 판정에 적어도 며칠은 걸릴 것이라던 많은 선거 전문가들의 전망이 모두 맞지 않는 선거 및 개표 결과였다.
트럼프 후보의 완승으로 끝이 난 이번 선거에서는 공화당 후보가 7개 경합주를 모두 석권했을 뿐만 아니라 2004년 대선 이후 최초로 총 득표수에서도 민주당 후보를 앞선 결과가 나왔다(그림 1 참조). 이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인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인 케리(John Kerry) 상원 의원을 선거인단과 총득표 모두에서 이겼던 상황 이후 처음이다. 일각에는 선거에서 낙승한 차원을 넘어서서 공화당이 소위 “트럼프 연합(Trump Coalition)”을 형성했다는 평가까지 존재한다.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가 행한 투표 분석 중, 특이한 점은 거주지, 교육 수준, 인종 구성, 연령 등 다양한 차원에서 트럼프 지지도가 이전 대선보다 높아졌다는 사실이다(그림 2 참조). 백인 구성이 절반 미만인 290개 카운티(county)들에서는 지지율이 7퍼센트 포인트 올랐으며 흑인 유권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도 트럼프의 선전이 두드러진다. 특히 흑인 남성 득표가 차이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선거에서 투표한 유권자들 중 71퍼센트가 백인 유권자였는데, 이는 지난 1992년 미국 대선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사실 가장 커다란 지지율 변화는 라티노(Hispanic) 인구가 1/4 이상을 차지하는 지역들에서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대선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라티노 지지를 확보했었는데, 이번에는 9퍼센트 포인트를 상회하는 지지율 증가를 기록한 셈이다. 이는 소수 인종이나 청년, 여성 등에 의존하는 정체성(identity) 선거 방식을 활용해 왔던 민주당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지점이다. 심지어 트럼프 등장 이후 오히려 민주당으로 지지가 편향되어 왔다고 알려졌던 대학 재학 이상의 고학력 유권자 그룹 역시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지지를 더욱 증가시킨 것으로 확인된다.
<그림 1> 대선 총 득표수 비교 |
<그림 2> 대선 지지율 변화 비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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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270 To Win 2024. |
출처: The New York Times 2024. |
이번 2024년 미국 대선의 트럼프 승리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지표 또한 존재한다. 우선 총 득표에서 트럼프가 앞선 것은 맞지만, 해리스(Kamala Harris)와의 차이가 11월 21일 기준 1.6퍼센트 포인트에 불과하며 개표가 완전히 종결되면 더 줄어들 수도 있다는 전망이었다. 또한 늘 그렇듯이 미국 대선은 50개 주 중 불과 몇 개의 경합주에 의해 그 결과가 좌지우지 되는데, 이번에도 미시건(Michigan), 위스콘신, 펜실베니아 세 곳에서의 23만 5천명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는 분석이 있다. 보통 대통령 선거의 완승은 의회 선거 관련 “후광 효과(coattail effects)”로도 증명이 되나 이번 선거는 그렇게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Edwards III 1979; 서정건 2021). 다시 말해, 이번 연방 상원 선거의 경합주였던 애리조나(Arizona), 네바다(Nevada), 미시건, 위스콘신, 펜실베니아 중 4곳에서 민주당이 의석을 지켰고, 펜실베니아 한 곳에서만 공화당에게 패배했다. 펜실베니아 선거조차도 현역 상원 의원이 선거 후 거의 20일만에 패배를 시인할 정도로 초박빙 승부였다. 따지고 보면 이번 선거를 통해 공화당이 새 상원의 다수당이 된 이유는 몬태나(Montana), 오하이오(Ohio), 그리고 웨스트 버지니아(West Virginia) 등 공화당 초강세 지역에서 상원 선거를 이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원 선거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새로 한 석을 추가했으며 결국 내년 1월 3일에 개원하는 119대 하원에서 의석 분포는 공화당 220명, 민주당 215명으로, 역대급의 작은 의석 수 차이를 기록할 전망이다.
한편 내년 1월 3일에 개원하는 새 연방 상원에서 공화당이 53석을 확보했다는 것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과반을 넘는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트럼프 입법 사안 중 예산 조정 절차(budget reconciliation)에 태울 수 있는 법안들의 통과 가능성이 올라갔다는 점이다. 트럼프 시대와 바이든 시대 들어 가장 중요한 두 개의 법안, 즉 2017년 트럼프 세금 인하법(Tax Cuts and Jobs Act of 2017)과 2022년 바이든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of 2022) 모두가 상원에서 필리버스터 규칙의 적용 없이 단순 과반으로 통과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서정건 2023). 한편 지난 11월 13일 공화당 상원에서는 당선자까지 포함한 총 53명이 참여하여 새 원내 대표를 선출하는 표결이 있었다(그림 3 참조). 선거 직전까지 숀 해너티(Sean Hannity), 터커 칼슨(Tucker Carlson), 일론 머스크(Elon Musk) 등 트럼프의 최측근들이 대대적으로 나서서 스콧(Rick Scott, R-FL) 상원 의원을 지지하고 뜐(John Thune, R-SD) 의원을 저지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막판까지 누구에게도 공개적인 지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고 결국 2차 투표에 가서 뜐 의원이 코닌(John Cornyn, R-TX) 의원을 물리치고 새 상원의 공화당 원내대표로 등극하는데 성공하였다. 사실 뜐 의원이나 코닌 의원은 모두 전통파 상원의원으로 분류된다. 이들의 합산 표는 40명으로, 스콧 의원이 얻은 13명보다 월등히 많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만 뜐 의원의 경우, 트럼프와 대립하는 유형이라기보다는 조용히 상원을 운영하면서 사안별로 트럼프와 공화당 온건파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 예컨대 트럼프가 요구하는 휴회 중 장관 임명(recess confirmation) 같은 변칙적인 의회-행정부 관계 변화에 대해서도 다소 순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스콧 의원처럼 상원 의회 규칙관을 교체하거나 필리버스터를 없앤다는 등의 과격한 상원 변화를 추진하지 않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공언한대로 난민 신청을 엄격하게 만든 강경 이민법안의 경우, 상원 규칙관에 의해 필리버스터 적용 법안이 되므로 이는 의회를 통과하기 어렵게 된다(손병권 2021).
<그림 3> 119대 상원 공화당 원내 대표 당내 선거
출처: The Hill 및 저자 계산.
하원의 경우 마이크 존슨(Mike Johnson) 현 하원 의장이 지난 13일 공화당 내부 선거에서 경쟁자 없이 차기 하원 의장 후보로 선출되었다. 트럼프는 당선자 신분으로 하원 공화당 의원들을 만나서 존슨 의장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공언하였고, 존슨 의장은 트럼프를 두고 “돌아온 왕(comeback king)”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원 공화당의 비공개 회의에서 구두 표결(voice vote)을 통해 공화당 하원 의장 후보 자리를 차지한 존슨에 대한 진정한 도전은 내년 1월 3일 하원 의장 선출 과정이 될 것이다. 공화당 내부의 프리덤 코커스 등 강경파 의원들이 존슨 의원을 완전히 지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118대 하원 개원 당시처럼 하원 의장을 뽑지 못해 대혼란이 벌어진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은 일단 낮아 보인다. 다만 사안에 따라 얼마든지 존슨 의장에 대한 반란표가 등장할 수 있다.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 역시 2기 행정부에서 공화당 하원 강경파 의원들을 상대로 예상보다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II. 양극화 시대의 미국 대선과 정당 정치
이론적 차원에서 생각해 볼 때는 우선 1980년 레이건 승리 미국 대선과 이번 대선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승리에 가장 크게 기여한 요소라 볼 수 있는 인플레이션 상황이 유사하다. 미국 경제의 쇠락 및 2차 석유 파동 이후 역대 급으로 높아진 물가 수준 및 에너지 위기를 놓고 당시 민주당 대통령이었던 카터(Jimmy Carter)는 구체적인 정책이나 대국민 레토릭(rhetoric) 차원에서 모두 실패했다. 집안에 난방기를 끄고 옷을 두껍게 입으라는 대통령의 담화에 대해 미국 국민들은 분노했고, 반대로 카터를 비롯한 모든 정치인에게는 물가를 잡을 수 있는 정책 처방이 없었다. 통상적으로 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려고 하지만 높아진 카드 및 대출 이자를 물어야 하는 일반 서민들에게는 정치적으로 역효과만 불러일으키게 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1980년 대선에서 카터가 레이건(Ronald Reagan)에게 패배한 이후 미국의 어떤 대선에서도 인플레이션이 가장 큰 선거 이슈가 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이번 대선에서 인플레이션이 미칠 정치적 파괴력에 대해 지난 44년 동안 데이터에 근거한 분석과 전망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잘 알려진 대로 1980년 레이건 혁명(Reagan Revolution)의 또 다른 중요 차원은 1932년 루스벨트 당선 이후 건설된 뉴딜 연합(New Deal Coalition)의 시대를 마감했다는 점이다. 1800년 제퍼슨 당선(Revolution of 1800) 이후 100년도 훨씬 넘게 미국은 적극적 정부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고, 인정하지 않았다. 대공황을 겪는 과정과 2차 대전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루스벨트는 연방 정부가 국민들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 정책과 메시지를 내놓게 된다. 이 과정에서 행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었고, 뉴딜 연합은 루스벨트의 4선 및 트루먼(Harry S. Truman)의 페어딜(Fair Deal) 정책으로 미국 정치의 새 판을 짜게 된다. 또한 뉴딜 연합의 공고함은 정책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향후 선거 승리를 담보할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 구축 차원에서도 발견된다. 도시 거주민, 흑인 유권자, 유태계 미국인, 여성 및 청년층을 동원하여 만들어진 뉴딜 선거 연합은 이후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 전략뿐만 아니라 의회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도 민주당에게 사활적인 요소가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효율적인 관료제는 방만한 운영으로 비판 받게 되었고, 지나친 정부 간섭으로 둔갑하면서 1980년 레이건 혁명을 통해 해결책이 아닌 문제점으로 치부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이번 대선과 관련된 두 가지 사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4>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비교
출처: 270 To Win 2024.
첫째, 정부효율성위원회(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라 명명된 기관을 통해 트럼프가 연방 관료제 혁파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의 국가 성격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과도 연결되는데, “약한 국가(Week State)” 대 “강한 국가(Strong State)” 논쟁에 이어 소위 “깊숙한 국가(Deep State)” 개념이 부각되고 있는 중이다. 예의 공화당 정권에서 늘 있었던 문제 제기임에 틀림없을 뿐만 아니라 스코우로넥 등(Skowronek, Dearborn, and King 2021)의 지적대로 모든 대통령들은 자신의 행정부를 새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런데 1기 행정부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2기 행정부의 최대 개혁 안건을 들고 나온 트럼프의 향후 행보는 의미심장하다. 1기 행정부 당시 절반을 채우지 못한 인사 조직 및 기존 제도권 인사들에 의해 자신의 통치가 방해 받았다고 굳게 믿는 트럼프는 선거 기간 동안에도 집권하면 척결할 대상으로 “깊숙한 국가, 전쟁주의자들(warmonger), 그리고 세계주의자들(globalists)”을 꼽은 적이 있을 정도이다. 연방 행정부 개혁 문제는 의회의 권한 이양(delegation)과 행정부의 재량 권한, 공무원의 중립성 의무 및 보호와 민주적 책임성, 그리고 기관 쟁의를 둘러싼 사법부의 판결 및 주장 등 가히 미국 정치의 전체를 아우르는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Crouch, Rozell, and Sollenberger 2020). “깊숙한 국가” 논쟁은 단일 행정부 이론(unitary executive theory)과 더불어 향후에도 미국 정치학의 주요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여기에 머스크와 라마스와미(Vivek Ramaswamy) 같은 트럼프 못지 않게 예측 불허의 인사들이 위원회(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DOGE)를 주도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미 월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 기고를 통해 규제 혁파, 인원 감축, 비용 절감 등의 입장을 밝힌 두 공동 위원장의 향후 행보가 집요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림 5> 2024년 미국 대선과 트럼프 지지율 선회
출처: The New York Times 2024.
둘째, 1980년 레이건의 승리가 뉴딜 연합의 한 축인 적극적 정부 개념을 공략함으로써 미국 정치를 다시 작은 정부 시대로 되돌려 놓았다면, 올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의 승리는 뉴딜 연합의 또 다른 축인 정체성 정치를 흔들어 놓았다는 점이 흥미롭다(서정건 2019). 사실 1980년과 1984년의 공화당 압승 이후에도 정체성 전략은 2008년 오바마 대선에 이르기까지 그 명맥을 공고하게 유지해 왔다. 소수 인종 및 여성, 청년 표심은 기본적으로 70 대 30 비율 이상으로 민주당에게 쏠렸고, 민주당의 정당 기반이 되어 왔다. 다만 슈머(Chuck Schumer)로 상징되는 민주당과 월스트리트의 결탁, 노조와의 약해진 유대감, 기후 위기를 둘러싼 엘리티즘(elitism)의 가능성 등은 2008년 흑인 대통령 등장과 2016년 아웃사이더 트럼프 등장 이후 백인 노동자 유권자들의 공화당 흡수를 촉발시켰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과반을 넘는 라티노 남성의 지지 및 흑인 남성 유권자들의 지지 상승을 거둔 것에 대해 섣부른 예단은 어렵다. 민주당 후보가 흑인 여성이었고 불법 이민 문제가 첨예한 상황에서 라티노 남성 유권자들의 표심 변화를 항구적인 것으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트럼프 당선을 통해 만들어진 젠더(gender)와 인종(race) 간의 결합 문제는 향후 미국 정치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림 5>는 거주지, 인종, 학력, 산업, 세대(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등 전 영역에서 늘어난 트럼프 지지세를 보여준다.
2024년 미국 대선이 향후에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라고 구분될 수 있을지를 전망하기에는 당연히 아직 이른 시점이다. 미국의 역사상, 학자들 간에 합의를 이룬 중대 선거들로는 대체로 평균 약 40년을 주기로 다음의 대통령 선거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연방 정부가 아닌 주 정부 중심으로의 미국 정치 회귀와 지속을 확정 지었던 1800년 제퍼슨(Thomas Jefferson) 선거, 엘리트가 아닌 대중 중심의 정치와 선거 시스템을 새로 구축한 1828년 잭슨(Andrew Jackson) 선거, 공화당을 창당하여 향후 남북전쟁이라는 전대미문의 내전을 촉발하고 노예제 폐지 및 공화당 일당 체제를 만들어낸 1860년 링컨(Abraham Lincoln) 선거, 포퓰리즘을 저지하고 산업 및 금본위제를 중심으로 한 국가 발전 방향을 정립했던 1896년 맥킨리(William McKinley) 선거, 적극적 정부 개념을 사상 최초로 도입하여 미국의 정부와 시장, 권력과 국민 간의 관계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1932년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선거, 그리고 뉴딜 연합을 혁파하면서 세금 인하 및 강한 국방이라는 정통 보수 이념의 작은 정부 시대를 개척한 1980년 레이건 선거 등이 중대 선거로 알려져 있다. 2024년 미국 대선이 시기적으로 보면 1984년 레이건의 압승 재선에 이어 40년 만에 치러진 선거임에 틀림없다. 앞서 지적한대로 레이건 대선이 작은 정부 회귀라는 이념적 차원에서의 중대 선거였다면, 이번 트럼프 선거가 정체성 정치의 약화라는 현실적 차원에서의 중대 선거였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구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마치 1860년 링컨 선거가 잭슨 민주당 시대로부터 공화당 전성시대로의 전환을 이루어 냈던 것에 비해 1896년 맥킨리 선거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 주도 하의 민주당 포퓰리즘을 흔들어 놓았던 것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트럼프 시대를 전망해 보자면, 내년 119대 상원에서 트럼프 내각 인준 절차라든지 트럼프 세금 인하법 연장이나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축소)폐기 등 중요 법안들의 경우, 단순 과반, 즉 50명이 찬성하면 된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트럼프 내각 인준을 좌초시키거나 단순 과반 법안을 부결시키기 위해서는 공화당 상원 의원 4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4명의 후보로는 소위 “C2M2” 의원들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콜린스(Susan Collins, R-ME), 캐서디(Bill Cassidy, R-LA), 맥코넬(Mitch McConnell, R-KY), 머카우스키(Lisa Murkowski, R-AK)가 그들이다. 이 중 콜린스, 캐서디, 머카우스키 의원은 2021년 2월 트럼프 2차 탄핵 당시 찬성표를 던졌던 의원들이다. 맥코넬 의원은 2026년에 은퇴하는 전통파 의원으로서 트럼프와 종종 대립했던 적이 있다. 이 중 콜린스와 캐서디 의원은 2026년 선거에 나서야 하는데, 콜린스 의원이 대표하는 핵심 주는 해리스가 이겼던 주이다. 캐서디 의원이 대표하는 루이지애나(Louisiana) 주는 소위 정글 프라이머리(jungle primary) 시스템을 운영 중이라 캐서디 의원이 예비 선거에서 낙마할 일이 없으므로 트럼프의 압력이 덜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만일 이들 4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단합하여 반대표를 던진다면 트럼프 어젠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2026년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은 20명의 현역 의석을, 민주당은 13명의 현역 의석을 지켜야 하지만 공화당 쪽에서 재선이 불확실한 의원은 콜린스와 틸리스(Thom Tillis, R-NC) 정도 밖에 없다. 이에 비해 민주당 쪽은 오소프(Jon Ossoff, D-GA)와 피터스(Gary Peters, D-MI) 등이 있기 때문에 트럼프 임기 4년 동안 적어도 연방 상원은 공화당 다수당 지위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III. 트럼프 2기 행정부 전망의 정치학
2024년 미국 대선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전망하는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향후 이번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다양한 실증 자료들이 향후 더 많이 분석되어야 한다. 2024년 대선의 총 득표율조차도 현재 AP 통신(AP News) 전망과 쿡 리포트(Cook Report) 데이터가 다를 정도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역시 아직 취임도 전에 무수한 논란을 낳고 있는 충성파 인선이 가져올 파장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트럼프 주도 하의 단점 정부(unified government)가 내년 1월에 시작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1기 행정부 당시에도 첫 2년간인 2017년과 2018년은 단점 정부 상황이었다. 당시에도 행정 명령 위주의 정치, 트위터를 통한 혼돈의 메시지 정치, 김정은 위원장과의 싱가포르 회담 등 탑 다운(top-down) 방식의 정치를 통해 미국 정치 시스템과 무관한 리더십을 보인 대통령이 트럼프였다. 오직 충성파들로 채워진 내각을 중심으로 4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종횡 무진할 트럼프에 대해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2기 전망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트럼프의 정책 우선순위에 대한 분석과 전망이 중요하다. 이는 수정헌법 22조에 의해 2028년 대선에 나설 수 없는 4년 임기의 트럼프 대통령 시대와 직결되어 있다. 일반적인 예측으로는 이민 문제가 1순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민 이슈를 다루기 위한 백악관 내 책임자(czar)도 임명해 둔 상태이고 자신의 최측근인 밀러(Steve Miller) 역시 주도권을 발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우선순위이지만 이는 러시아의 푸틴과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라는 또 다른 주요 행위자들의 전쟁 관련 선택들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시간을 요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과의 통상 문제 역시 정책 우선순위에 속한다. 관세를 최상의 정책 도구라고 믿는 트럼프가 이를 무기로 휘두를 나라가 중국이며, 대통령의 적극적인 정치적 리더십을 쉽게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들은 북한 문제가 우선순위가 아닐 수 있다는 현실을 시사한다. 더구나 북한 문제가 트럼프 정책으로 연결되려면 미국정치화(Americanization) 절차가 필요한데, 지난 번 북미정상회담 이후 이 과정이 얼마나 생략된 채 트럼프가 전격적으로 이슈화 할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이다.
한편 또 다른 고려 사항은 일각의 분석과 달리 트럼프의 외교 정책 관련 권한이 레임덕(lame-duck) 현상과 상관이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력의 시간은 두 번째 임기 첫 해 정도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 해에는 대통령 소속 정당이 고전하는 중간 선거가 정해져 있고, 3년 차부터는 모든 언론과 정당 내부 사정이 차기 대선 주자들에게 관심을 쏟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이러한 분석이 대통령의 의회 관련 국내 정치에 주로 국한된다는 사실이다.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이 재선 후 첫 해인 2005년에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 개혁과 관련하여 주식 시장을 이용한 일부 사립화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패한 적이 있다. 이처럼 국내 정치 관련 재선 대통령의 권력에서는 주로 레임덕 현상이 비교적 속히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히려 외교 정책과 관련된 영역에서는 자신의 치적(legacy)을 쌓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일반적으로 보인다. 일례로 클린턴 대통령의 대북 유화 정책이나 중국과의 자유 무역 정책 모두 재선된 임기의 마지막 해에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민 정책, 세금 정책, 연방 정부 개혁 등 우리에게 덜 중요한 미국 국내 이슈들은 중간 선거 이전에 단점 정부 상황에서 트럼프가 밀어 붙일 가능성이 큰데 비해, 안보와 통상에 이르는 대외 정책은 트럼프 4년 내내 트럼프가 좌지우지할 것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둘째, 트럼프의 정책 우선순위가 정해지면 이들이 행정 명령으로 집행 가능한 것들인지 아니면 의회의 승인 혹은 폐기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들인지 분석해 보아야 한다. 관세 부과의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중국에 대한 60퍼센트 이상의 관세 정책은 행정 명령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전 세계 모든 수입품들에 대한 10퍼센트 보편 관세의 경우 절차상의 흠결을 이유로 진보 성향의 연방 판사(federal judge)에 의한 집행 정치 가처분 신청 상황을 상정해 볼 수도 있다. 이민 정책 관련해서도 불법 이민 추방 같은 과격한 정책은 행정부 주도 하에 행정 명령으로 가능하지만 사법부의 제동 역시 작동할 수 있다. 예컨대 난민 지위 신청을 엄격하게 만드는 법안의 경우 상원의 필리버스터 적용 대상이기 때문에 입법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역시 상원의 필리버스터에 막혀서 폐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경우 단순 과반으로 폐기가 가능하지만 공화당 지역구에 집중된 혜택들로 인해 정치적으로 복잡한 국면을 맞고 있다. 이처럼 트럼프의 정책들이 행정 명령 차원에서 진행될지 아니면 의회 및 사법부와 연결되는지를 둘러싸고 구체적인 정책의 성공 가능성이 결정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트럼프의 또 다른 4년이 미국 정치의 완벽한 변화(transformation)의 시기로 귀결될 것인지 아니면 4년을 건너뛰어 만들어진 또 다른 일탈(aberration) 시대로 종결될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치의 모든 사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시간을 두고 판단해야 한다. ■
참고 문헌
서정건. 2019. 『미국 정치가 국제 이슈를 만날 때: 정쟁은 외교 앞에서 사라지는가 아니면 시작하는가』. 서울: 서강학술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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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건_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담당 및 편집:이소영, EAI 연구보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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