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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신정부 외교 정책 제언 스페셜리포트] ③ 인공지능 기술을 중심으로 한 신정부 기술 외교 전략

  • 2025-05-27
  • 배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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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배경

 

2025년 현재 인공지능 경쟁은 미국과 중국의 AI 모델 및 기술 인프라 주도권 싸움을 중심축으로, EU의 규범 선도 전략, 영국 일본 한국 중동의 AI 발전 전략, AI 무기 규제와 글로벌 AI 안전 거버넌스 모색 등의 양상으로 전방위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기술 수준을 넘어 경제 안보 규범 부문에서 진행 중인 세계질서 재편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1세기 경제적 번영은 물론 국가 안보를 강화하고 국제 규범을 주도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 인공지능 기술 확보와 활용은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국가들은 인공지능 기술 혁신 역량과 활용을 제고하기 위해 투자 증대와 인력 양성에 애쓰는 한편, 인공지능 기술 개발 및 활용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기술외교 전략을 짜고 있다.

 

2025년 5월, 미국 상원이 개최한 "AI 경쟁에서의 승리" 청문회에 참여한 샘 알트먼과 기업인들은 이구동성으로 AI는 인터넷보다 더 큰 변화를 몰고 올 기술이며, 현재 미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도전자인 중국과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단순히 기술 개발을 넘어, 기술을 전 세계에 확산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미국이 선도적인 위치를 유지하려면 인프라와 에너지를 포함한 포괄적인 영역에서 지속적인 투자와 함께 국가간 협력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올해 초 중국 스타트업의 생성형 AI 모델 'DeepSeek-R1'이 저비용고효율 모델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미국 주도 AI 발전에 대한 대안적 모델로 관심을 모았다. 딥시크로 자신감을 얻은 중국 정부는 2025년 양회(两会)에서 인공지능(AI)을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삼는 'AI+' 전략을 제시하였다. 양회는 '임바디드 인텔리전스(Embodied Intelligence 具身智能)' 개념을 언급하며, 휴머노이드 로봇, 커넥티드카, AI 스마트폰 등 제조업 중심의 AI 응용산업 육성을 강조하고 제조업을 넘어 금융, 교통, 공공서비스, 의료, 교육, 복지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AI를 적용하여 혁신을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동수서산(東數西算)' 프로젝트를 통해 동부 지역의 데이터를 서부 지역에서 처리하는 데이터센터 및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하는 한편, 각국의 정책과 관행을 존중하는 기반 위에, 폭넓은 공감대를 가진 글로벌 AI 거버넌스 프레임워크 및 표준 규범을 형성하고, 유엔(UN) 산하에 글로벌 AI 거버넌스 기구의 설립을 지원하는 'AI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추진해 왔다. 중국은 AI 논문 및 특허 출원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중국 AI 모델이 중동, 라틴 아메리카, 동남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2025년 스탠포드 인덱스에 따르면 미국은 40개의 주목할 만한 AI 모델을 개발하여 중국(15개), 유럽(3개)을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양적 우위가 유지되는 와중에 중국 모델과의 성능 격차가 2023년 두 자릿수에서 현재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중국의 AI 도전이 부분적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기존 미국의 압도적 우위에 균열이 발생하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 추세가 지속될 것인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유럽연합(EU)은 2024년 말 ‘인공지능법’을 최종 통과시킨 이후, 2025년 2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AI 액션 서밋'에서 2,000억 유로 규모의 공공 및 민간 AI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신뢰할 수 있는 AI'를 위한 글로벌 규범을 주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2025년 4월 OpenAI, Google DeepMind, Anthropic, Meta 등 주요 AI 기업과 MIT, 스탠퍼드, 칭화대, 중국과학원 등을 포함한 세계 유수의 학술기관과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한 AI 안전 회의를 개최하였다. 싱가포르는 자국이 미중 양국과 모두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AI 안전 분야에서 국제 협력을 촉진하고 AI 안전 분야에서의 중립적 조정자 역할을 강화하여, 글로벌 AI 거버넌스 구축에 기여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자원 의존적 경제에서 기술 중심 국가로의 구조 전환을 내세우며 국부펀드(PIF)를 활용해 AI 기업 ‘Humain’을 설립하고, 아랍어 기반 AI 모델과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구축 중이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 EU, 싱가포르, 사우디 아라비아는 물론 일본 한국 호주 캐나다 등 많은 국가들은 미중이 주도하는 글로벌 인공지능 기술발전의 지평속에서 자국의 입지를 마련하고 공고히 하기위한 AI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유엔총회 결의안에서 164개국이 자율 무기의 위험을 국제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동의했고 이의 후속 조치로 2025년 5월 유엔에서 AI 기반 '킬러 로봇'의 규제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미국 중국 러시아의 입장 차이로 구속력 있는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UN을 위시한 다양한 국제기구들-OECD, UNESCO, G7은 물론 개별국가나 기업 수준에서 인공지능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 역시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현재 AI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AI 정책은 글로벌 AI 전개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가 AI 혁신과 안전 규제의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한 반면,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취임과 동시에 바이든 행정부의 ‘AI 기술의 안전・보안・윤리・책임 등에 대한 행정명령’을 폐지하면서 AI 안전 규제보다는 혁신을 중시하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하였다. 바로 이어 ‘미국의 인공지능 주도권에 대한 장애물 제거 행정명령’을 발표하였고 180일 이내로 미국의 글로벌 인공지능 주도권 강화와 경쟁력 및 국가안보 증진 실현을 위한 인공지능 실행 계획을 수립해 대통령에게 제출할 것을 지시하였다. 아울러 OpenAI(AI 연구 및 개발), Oracle(데이터 관리 및 클라우드 인프라 제공), SoftBank(자금 조달)의 협력하에 미국 중심의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중국의 AI 기술발전에 대응하여 미국의 AI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향후 4년간 5,0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대규모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AI 부문에서 대대적인 투자가 이루어 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미국의 AI 혁신 강화와 투자 증대는 중국 EU 일본 등 많은 국가들의 AI 투자를 끌어 올리며 AI 경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2025년 3월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53개 중국 기업을 포함한 80개 기업에 수출 통제를 발표하여 첨단기술의 대중 수출 통제가 트럼프 2기에서도 지속될 것임을 알렸다. BIS는 해당 기업들에 대한 수출 통제 이유로 중국의 군사 현대화, 인공지능 및 양자 컴퓨터 기술 발전 지원 등을 언급하였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대중 수출 견제(protection)와 아울러 반도체법을 통한 국내 첨단제조 역량강화 지원(promotion) 및 EU 일본 대만 한국과의 기술동맹(partnership)을 동시에 추진하였고 소위 3p 정책이 세트로 진행되면서 대중 기술 굴기 견제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2기는 미국 우선주위를 내세우며 첨단제조 지원과 기술 동맹에 대해 다른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어 이것이 대중 견제 효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보아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외국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대신 관세를 통해 미국내 첨단 제조 투자를 이끌어내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동맹국과의 협력보다는 압박을 통해 미국이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 하고 있다. 반도체는 구리 의약품 등과 함께 상호관세 미적용 대상으로 거론되었고 대신 이에 대해 품목별 관세 부과가 예고되어 향후 반도체 및 인공지능 관련 관세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대만산 제품에 대해 32%의 관세를 부과하였으나,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미국 시장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반영하여 반도체 제품은 일시적 예외로 두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수출 규제와 관세 압박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자유무역질서 쇠퇴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국가들은 첨단기술 역량을 강화하면서 이를 위한 국제협력의 틀을 다시 짜고 섬세한 기술외교를 통해 자국의 번영과 안보를 추구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II. 제언

 

한국은 강점을 가진 AI 기술력과 반도체 기반 인프라에 토대한 인공지능 전략을 마련하여 추진해 왔고 인공지능기본법 마련, 2024년 ‘AI 서울 정상회의’를 개최하여 혁신 안전 포용을 내세운 글로벌 AI 거버넌스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루어진 내용들만으로 AI 시대를 헤쳐나가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인공지능이 번영 안보 가치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인공지능 역량과 활용 수준 및 글로벌 영향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보다 과감한 정책들이 요구된다.

 

먼저 기술외교의 토대가 되는 AI 인프라 및 인력에 대한 투자가 대폭 확충되고 보완되어야 한다. 한국은 1980년대 초 과감한 투자와 함께 반도체 기술 혁신 역량을 발전시켜 왔으며 이것이 현재 우리의 가장 중요한 외교적 자산이 되고 있다. 우리가 확보하게 될 인공지능 기술이 향후 중요한 외교적 카드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를 위한 투자가 바로 지금 이루어져야 한다. 2024년 한국의 AI 투자는 정부 민간을 합쳐 총 3.7조 (원) 정도로 추정되며 이는 미국 190조 (원), 중국 52조 (원)과 비교할 때 경제규모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많이 부족하다. 정부는 작년에 2027년까지 총 65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지만 현재까지 이루어진 투자 실적은 계획에 비해, 또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우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AI 투자 부족의 가장 현저한 사례가 최신 AI칩인 엔비디어의 H100 확보 숫자로 확인된다. 지속적인 인공지능기술 발전을 위해 최첨단 칩의 확보가 중요한데 현재 한국은 약 2000개 정도를 확보한 상태이고 이는 미국의 수백만, 중국의 10만 정도(추정)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상황이다. 재원확보와 함께 칩의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기술외교 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 국내 AI 인력의 경우 절대적인 숫자의 부족도 문제이지만 국내 AI 인력의 40%가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 AI 발전을 위해 부정적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시급한 대응방안이 요청된다. 아울러 인공지능 기술의 확산에 관건이 되는 에너지 확보와 개인정보 보호 등 제도적 여건들을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

 

기술외교에는 기술발전을 위해 외교를 활용하는 측면과 외교적 소통이나 성과를 위해 기술을 활용하는 두가지 측면이 존재한다. 인공지능 기술 발전과 활용 확대를 위해 과연 외교가 중요한지 질문해 본다. 일차적으로 기술발전을 위한 국내 투자와 인력양성 및 각종 지원 정책들이 중요하다. 그러나 기술발전이 진공상태나 국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지지 않음은 명백하다. 연구개발 활동 자체가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원천기술이나 필요한 소재와 장비 등의 수입이 필요하고 또 개발된 기술 상품을 외국에 수출하기도 한다. 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가 원만하게 작동하는 시기에는 압도적으로 비용이나 효율성의 측면에서 국경을 넘는 기술 교류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수출규제나 관세인상으로 자유주의 세계정치경제질서가 불안정한 시기에는 외교 안보적 고려가 비용과 효율성의 논리를 압도하게 된다. 따라서 인공지능 기술발전을 위해 어떻게 국제협력의 틀을 짜고 어떤 국가들과 더 긴밀하게 협력할 것인가를 조정할 때 기술 내적 상황과 외교안보적 상황을 동시에 고려할 수 밖에 없고 기술외교가 중요하다. 여기서는 특히 인공지능 기술외교의 관점에서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내용들을 제시한다.

 

먼저 AI 반도체를 통해 기술내적인 상황을 점검해 본다. 한국의 메모리나 시스템 반도체의 경우 미국에 주요 제조장비와 IP를 의존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수출에서 미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이하 이다. 인공지능모델을 돌리는데 들어가는 최신 칩 H100은 미국 엔비디어에서 설계하고 대만 TSMC가 생산한다. 반면 한국 반도체는 실리콘, 게르마늄, 텅스텐 등 핵심원자재의 많은 부분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고 한국 반도체의 절반 이상이 중국(홍콩포함)으로 수출된다. 삼성이나 SK하이닉스는 중국에 제조시설을 두고 생산한다. 미국과의 협력이 중단되어 미국이 가진 강력한 카드인 반도체 장비와 최신 칩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면 한국 반도체 생산과 인공지능 기술 발전은 바로 멈출 수밖에 없다. 반면 중국과의 협력이 감소하면 한국 반도체 생산과 수출은 차질을 빚게 된다. 현재까지 중국은 한국의 기술과 반도체 수입을 필요로 하여 한국에 대한 압박이 크지 않지만 중국의 반도체 수입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중국이 가진 가장 위협적인 카드는 한국의 반도체 제조기술을 따라잡는 것이다. 지난 수년동안 미국의 수출통제로 중국의 반도체제조 기술혁신 속도가 느려지면서 한국기업들에게 시간을 벌어 주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할 때 한국 기술외교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는 당분간 미국이 될 수 밖에 없다.

 

기술외적인 상황에서 특히 언급할 만한 요소는 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와 한국의 안보 및 번영의 관련성이다. 1970년대 이후 본격화된 한국의 경제성장은 한미동맹과 자유무역질서에 토대하여 이루어졌다. 한국 기술혁신 역량강화 역시 미국 주도의 개방적 글로벌 혁신체제 하에서 진행되었다. 현재 미중경쟁과 미국의 수출규제 및 관세인상으로 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가 쇠퇴하고 글로벌 공급망 및 혁신체제의 블록화가 진행되면서 이로 인한 물가인상 경기침체 연구개발비용증대 등의 부작용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자유주의 경제질서의 쇠퇴와 글로벌 공급망 및 혁신체제 블럭화로 인한 충격을 가장 앞서서 맞고 있으며 어떤 형식으로든 공동번영을 위한 규칙 기반의 자유주의 경제질서 회복과 재편을 위해 나서 힘을 모아야 한다. 공동번영을 위해 함께 만들어가는 소위 공생공진 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에서, 한국에게 미국은 다른 어느 국가보다 양국 경제의 상호보완적 측면에서 중요한 파트너이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미국의 압박에 대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을 위시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협력하며 자유주의 세계경제의 재편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은 글로벌 인공지능 기술 발전을 주도하고 있고 우리에게 없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공생공진의 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의 재편을 위해 협력해야 하는 파트너로서 한국 기술외교의 가장 중요한 대상이다. 한미 양국은 차세대 핵심‧신흥기술 대화, 인공지능 워킹그룹(Korea-US AI Working Group)을 출범시켜 머신러닝 및 AI 개발, 국제 AI 표준화, 연구 협력, 정책 상호운용성, 국제 AI 거버넌스 등을 주요 협력 분야로 설정하였으나 실질적인 협력이 진행되지 못했다. 미국은 202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AI 안전 연구소 국제 네트워크(International Network of AI Safety Institutes) 회의를 개최하였고, 여기서 양국은 AI 모델의 안전성 평가와 국제 표준 개발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새 정부는 인공지능 기술 개발과 안전성에 관해 정부 차원은 물론 연구소 대학 기업을 망라하여 다양한 주체들간의 양국 인공지능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불안정한 국제질서 속에서 동맹 파트너이며 원천기술 보유국인 미국과의 첨단기술 협력 확대가 중요하며 특히 방위비나 관세 등에서 압박을 받는 반대 급부로 우리보다 협력의 동기가 약할 수 밖에 없는 미국에 보다 더 적극적인 신기술 협력 아젠다를 제시하고 실행해야 한다. 현재 미국 정부효율하에 연구개발 예산 축소가 진행중이다. 와중에 트럼프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분야 및 대중국 견제에 활용 가능한 분야를 중심으로 양국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한미 첨단기술 협력을 주도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양국 첨단기술 협력이 과거와 같이 과학기술 자체의 목적을 중심으로 진행될 경우는 분산적 협력이 의미가 있고 큰 문제가 없지만, 현재와 같이 전체 국가안보나 외교 전략 측면에서 첨단기술 협력을 진행하는 경우 이러한 전략적 협력을 총괄적으로 모니터링 하면서 조율해 할 기술외교의 구심점이 필요하다.

 

미중 경쟁 상황에서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 발전은 우리로 하여금 중국과의 기술외교를 어떻게 전개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더 깊게 하도록 요청하면서 보다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외교 역량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과의 협력 강화로 중국과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이 축소되는 것을 사실이지만 대중 기술외교 채널을 유지하고 향후 구체적 협력을 발전할 수 있는 씨앗을 뿌리는 것이 필요하다. 전략적으로 덜 민감한 과학기술 부문을 중심으로 대학이나 연구소 기업들간의 네트워크가 유지되고 협력이 진행될 수 있도록 대중 외교를 회복하고 관리하면서 물꼬를 터주어야 한다.

 

AI 기술발전 가속화와 함께 안전성 개인정보보호 등 확보에 대한 요청이 증대하고 있다. 한국은 2024년 유럽연합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공지능 발전 및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일명 AI 기본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AI의 개발과 활용을 촉진하면서도 윤리와 안전, 신뢰 기반의 생태계 구축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인공지능 진흥과 규제의 균형을 맞추며 주요 내용으로 국가 차원의 AI 전략 수립 및 갱신 의무화, 위험 기반 AI 등급 분류 및 정부 대응 가이드라인, 공공부문 데이터 개방 확대, AI 윤리 원칙 준수 의무 및 평가 기준 마련 등을 포함하고 있다. UN, OECD, UNESCO, G7 등 국제기구는 물론 미국 중국을 위시하여 영국 네덜란드 싱가포르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가 글로벌 AI 규범과 거버넌스를 제안하였다. 한국은 GPAI(Global Partnership on AI), OECD AI 원칙, G7 AI 프로세스, UN AI 거버넌스 논의 등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2024년에는 ‘AI 서울 정상회의’를 개최하여 서울 선언을 통해 AI거버넌스 가치로 안전, 혁신, 포용을 제시하였다. 일단 첫 발을 띤 상황에서 AI 발전과 신뢰를 균형 있게 고려하고 격차를 줄이는 내용을 담는 글로벌 AI 거버넌스 논의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주도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거대 인공지능 기업들과 강대국의 영향력 확대 속에서 많은 국가들이 자국의 데이터와 인프라를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지역 언어와 문화, 가치관 등을 반영한 LLM에 토대를 둔 소버린(Sovereign) AI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AI 기술혁신을 소수 빅테크들이 주도하면서 자국의 독자적인 플랫폼이나 LLM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들이 자국의 정체성이나 국익을 반영하지 못하는 인공지능 결과물이 가져오는 위협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국가의 독자적 AI 역량을 구축하기 위한 소버린 AI 전략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슈퍼컴퓨터 역량 강화와 자체적인 AI 모델 개발에 대한 요청이 높다. 프랑스의 ‘미스트랄 AI,’ '르챗,' 핀란드의 ‘사일로 AI,’ 영국 문화와 역사에 초점을 맞춰 설계고자 하는 '브릿GPT,' 엔비디아와 협력해 일본어 특화 LLM 개발 등이 시도 중이다. 현재 국내에서도 한국형 소버린 AI 개발 및 확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네이버가 한국어 기반, 한국 사회·문화적 맥락을 담은 '하이퍼클로바X'를 개발하였고 이를 토대로 중동, 동남아 지역에 최적화된 소버린 클라우드 및 소버린 AI 개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인공지능 생태계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성공적인 소버린 AI 개발과 확장이 중요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아울러 Global South와의 인공지능 양자/다자 협력을 확대하면서 Global South의 포괄적 AI 전환을 지원하는 패키지를 개발하고 제시해야 한다. 현재 사이버안보 분야에서 Global South, 특히 아세안국가들과의 협력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2024년 11월, 한국과 아세안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으며, 사이버안보, 국방, 공급망, 디지털 전환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인공지능 부문의 협력도 함께 진행하며 한-아세안 디지털 플래그십 사업 등을 통해 개도국과의 기술협력을 확대하고, 아세안을 넘어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으로 협력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한국 기술외교의 출발점은 우리가 인공지능을 통해 어떤 국가와 어떤 세계질서를 만들어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다. 빅테크가 주도하는 미국이나 권위주의 국가가 AI 발전을 이끄는 중국이 지향하는 것과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미국식 모델이나 중국식 모델이 아니라면 한국식 모델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사회적 합의가 모아져야 한다. 이는 단지 소버린 AI 개발을 넘어 그 안에 어떤 내용과 가치를 담을 것인지를 포함하는 한국의 미래 정체성에 핵심적인 부분이다. 인공지능이 제기하는 도전과 위험들에 대한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위협의 정체는 불분명하다. 루쉰은 분명히 적대세력들이 포위하고 있는데 분명한 적을 찾을 수 없고, 아군과 적군의 구분이 모호하며, 명확한 전선이 형성될 수 없는 상태를 무물지진(無物之陣)으로 표현한 바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압도적이고 얼마간 매력적이면서 동시에 위협적인 아직 그 정체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대상이 우리를 무물지진으로 내몰고 있다. 현재까지 분명한 것은 한국의 안보와 경제성장을 지원했던 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의 쇠퇴가 진행되는 가운데 인공지능의 위협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글로벌 AI 거버넌스의 구축 또한 난망하다는 점이다. 한국의 지속적인 번영과 안보를 위해 요청되는 공생공진의 규칙 기반 자유주의 세계질서로의 재편이 한국만의 소망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세계질서속에서 많은 국가들이 함께 바라보는 지향점이 될 수 있다. 미중패권 경쟁이 지속되는 와중에 우리는 공생공진의 자유주의 세계질서로의 재편 및 우리의 안보와 번영에 중심을 두고, 한편으로는 인공지능 기술 개발과 활용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미중 경쟁과 인공지능이 제기하는 도전과 위험을 파악하고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힘을 규합하고 연대하는 기술외교를 펼쳐야 한다.

 


 

배영자_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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