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 정치안보 의식 조사
반미·반북 논란후 균형점 수렴… 반북좌파·친북우파 등 분화 "국민이 현실적 思考하게 된 것"
'한국 核무장 필요' 지지 늘어… 보수 76%, 진보 73%가 찬성
우리 사회에서 '진보=반미(反美)' '보수=반북(反北)'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사장 하영선)이 최근 발표한 '2013 정치안보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진보 성향 유권자 중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10년 전 29.0%에서 올해는 62.4%로 늘었다. 또 보수 성향 유권자층에서도 대북 지원을 확대·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10년 전 33.9%에서 올해 47.6%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서 지난 10여년간의 반미, 반북 논란을 거치면서 일정한 균형점으로 의견이 수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도 필요하고, 북한도 포용해야"
EAI는 2003년 6월에 이어 올해 4월 전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안보 인식 변화를 조사했다. 자신의 성향이 '진보적'이라고 한 응답자 중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이 10년 전과 비교할 때 배 이상 늘었다(29.0%→62.4%). 이는 세대별 성향에서도 비슷했다. 20대에선 3배 이상(22.0% → 66.9%) 늘었고, 30대에서도 27.4%에서 62.4%로 늘었다.
반대로 '탈미(脫美)·자주 외교를 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모든 이념층에서 줄었다. 진보 성향층에선 31.7%에서 24.0%로, 중도 성향에선 15.4%에서 12.8%로, 보수층에선 11.9%에서 11.0%로 각각 줄었다. 2003년은 여중생 미군 장갑차 사고와 그 직후 노무현 대통령 당선 등으로 '반미 열풍'이 일던 때였다. 10년만에 미국에 대한 국민 의식이 극적으로 바뀐 셈이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보수층에서도 남북 간 교류 협력의 필요성을, 진보층 내부에서도 한·미 동맹 필요성을 느끼는 층이 늘어나게 된 것"이라며 "과거처럼 한칼로 (좌우를) 나눌 수 없게 됐고, 반북좌파·친북좌파·반북우파·친북우파 이렇게 사분(四分)법으로 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도 영향 미칠 것
김 교수 분석처럼 이번 조사에서는 "대북 지원을 확대 또는 유지해야 한다"고 한 응답자들도 함께 늘었다. 진보층에선 10년 전과 비슷한 비율(52.0% → 53.1%)을 유지했지만, 보수층에선 33.9% → 47.6%로 13.7%포인트가 늘었다. 보수적 성향이 강한 50대에서도 14%포인트가 늘어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북한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새누리당) 지지자들도 10년 전에는 25.9%가 대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이번 조사에선 38.8%로 늘었다. 다만 연령별로 볼 때 20대에선 대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53.5%에서 40.3%로 줄었다.
지난 10년 사이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서 '대한민국의 핵무장 필요성'에 대한 여론은 진보·보수 모두 높아졌다. 자체 핵무장 주장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보수층에선 49.6%에서 76.1%로, 진보층에선 53.1%에서 73.1%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를 실시한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안보는 햇볕정책이나 원칙적 대북정책 같은 양자택일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국민도 깨달은 것 같다"며 "그 속에서 '진보적 한·미 동맹주의자' '보수적 대북 대화론자'들이 늘고 있는 추세로 보인다"고 했다. 서울대 강원택 교수는 "국민이 북한과 미국을 이념이나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다가 북한 핵실험 등을 거치면서 이제는 현실적인 사고를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