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특집| 대안으로서의 시민정치]정계로 간 활동가들, 고민하는 시민단체

  • 2013-01-15
  • 백철기자 (주간경향)
김기식·박원석 등 10여명 국회 진출…

특정 정당 유착 의심받아 신뢰도 하락 우려

 

‘시민정치’는 선거의 해 2012년의 화두 중 하나였다. 2011년 서울시장 재선거에서 참여연대 출신의 박원순 시장이 당선된 것을 필두로 많은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이 정치권에 결합했다. 한편으로는 기존 정당에 실망한 시민들의 정치참여 열기가 생겨났고, 이것이 ‘안철수 현상’과 투표율 상승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기자회견장에서 ‘정치검사’의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시민단체 인사들의 정치참여도 급격히 늘어났다. 지난해 4월 총선을 계기로 10여명의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국회로 들어간 것이다. 김기식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 이학영 전 YMCA 사무총장, 최민희 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총장 등은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이 됐고, 박원석 참여연대 전 협동사무처장, 김제남 전 녹색연합 정책위의장은 통합진보당 의원(현재는 진보정의당)이 됐다.

 

진선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 여성인권위원장(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문재인 캠프 대변인으로 활동했고, 송호창 민변 전 사무총장(현 무소속 의원)은 안철수 전 대통령후보 캠프의 유일한 현직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보좌관, 특보단에도 여러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은 왜 정치에 뛰어들었을까. 가깝게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이 영향을 줬지만, 조금 멀게 보면 2008년 촛불집회가 이들의 등장 배경이다. 박원석 진보정의당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촛불집회에서 정치의 부재, 정치의 무기력함을 느껴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재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김민영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시민과세계> 21호(지난해 7월 발간)에서 “2008년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기존의 정당구조나 시민단체의 활동으로 포괄할 수 없는 행동하는 시민의 거대한 존재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촛불집회 때 정치무능 보고 정계 진출

 

김 전 처장은 같은 글에서 이명박 정부를 “특권세력의 노골적 이익 챙기기와 민주주의의 퇴행, 남북대결 정책으로 일관했다”고 평가하며 “감시와 정책 제안에 주력하던 기존의 시민운동으로는 집권세력을 도저히 막기 어렵다는 한계를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 행정과 반대자들과의 불통이 시민단체들, 특히 진보·개혁적 성향의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을 정치권으로 이끈 힘이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시민단체 출신의 여러 인사들이 기성 정치권에 자리를 잡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지만, 시민단체에서 현직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좋은 소식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한 시민단체 상근활동가는 “특히 시민단체에서 중심적으로 활동하던 분이 정당에 들어가면서 단체 전체가 ‘민주당 외곽조직’처럼 비쳐지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시민단체 내부적으로는 정치권에 진출하는 사람과 단체의 활동을 명확히 구별하지만 바깥에서 보는 사람들이 유착된 것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에서 현재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 역시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의 정계 진출에 대해 비판적이며, 오히려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고계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무총장(48)은 “시민정치는 시민운동을 통해 공익적 목적에서 정부나 국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광의의 정치활동”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 사무총장은 “시민운동을 하다가 정치를 하게 되면 개인의 활동이 단체에 불필요한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정당에 들어가 선거 때 입후보를 해놓고 슬그머니 시민단체에 돌아오는 등 절차적인 투명성이나 윤리성이 뒤섞여 있는 경우가 있다”며 “결과적으로 시민단체의 정체성도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여러 가지 상황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47)은 “참여연대는 진보적 시민단체”라며 시민단체가 정치적인 성향이 아예 없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시민단체는 특정 정당과 조직적인 연관을 갖지 않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추진 등이 있었을 때 우리는 정권 퇴진까지 주장했다”고 말했다.

 

고 사무총장은 비정부기구로서의 시민단체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경실련 출신인 정치권 인사들과는 가능하면 만나지도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경실련 출신인 현직 의원으로는 홍종학 민주당 의원,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이 있다. 고 총장은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면 몰라도 사적인 자리에서 경실련 출신 인사들과는 의식적으로 만나지 않는다. 이걸 서운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운동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동”이라고 말했다.

 

사실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의 정계 진출은 시민단체 활동이 활발해진 가운데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안철수 현상, 나꼼수 열풍 등 시민정치현상으로 볼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지만, 오히려 시민단체의 역할은 축소된 상황에서 정계 진출만 늘어났다. 이 사무처장은 “예전 시민단체에 낀 거품의 마지막이 정계에 진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가 가장 활발했던 것은 이들이 주도한 낙천·낙선운동이 사회적 영향력과 신뢰를 가졌던 2000년대 초반이었다. 일례로 2004년 성균관대와 삼성경제연구소의 ‘한국종합사회조사’에서 시민단체는 신뢰도 1위를 기록했다. 동아시아연구원의 ‘2005년 파워집단 실태조사’에서 참여연대는 8위를 기록해 검찰, 국세청, 전경련, 청와대보다 높은 신뢰도를 기록했다.

 

하지만 2011년 동아시아연구원의 같은 조사에서 참여연대의 순위는 조사대상 26개 기관 중 16위로 대폭 낮아졌다.

 

비판·감시 역할 부재 신뢰도 하락 원인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시민단체의 신뢰도 하락에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고계현 사무총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일부 시민단체가 권력에 대한 비판·감시라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 신뢰도 하락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고 사무총장은 “참여정부 시절 일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정부에 유착돼 있었다”며 “이른바 진보·개혁적 NGO들이 청와대에 다녀오면 입장이 바뀌거나 비판보다는 협력을 많이 한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오히려 과거에 신뢰도가 지나치게 높게 나왔던 것”이라며 “한때 참여연대와 같은 종합형 시민단체가 준정당적 조직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당시 상황이 굉장히 예외적인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단체가 융성했던 10여년 전 상황과 달리 현재는 시민들 스스로가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생겼다며, 2012년 대선국면에서 시민단체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과정에서 시민단체가 주도한 것이 얼마나 있나. 그나마 투표참여 캠페인이 잘 된 편이었지만 온전히 시민단체만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여러 중심적 인사가 정치권에 진입하고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시민단체의 길은 무엇일까. 한 시민단체 상근활동가는 “주요 단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던 인물들이 빠져나갔다고 해서 갑자기 시민단체 회원이 줄어든 것도 늘어난 것도 아니다. 이런 때일수록 비판과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출해야 하는 것이 정답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태호 사무처장은 “인터넷 등으로 폭발하는 시민정치는 일시적으로 확 타올랐다가 금세 꺼지기도 한다. 시민단체는 꾸준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시민단체가 각자의 영역에서 새로운 정보를 만들고, 시민들이 그 정보를 바탕으로 여러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전히 자신의 의사를 대변받을 수 없는 더 낮은 현장으로 시민단체가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