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제18대 대통령선거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문재인 후보가 역전했다, 대세가 기울었다 '희망 섞인' 분석이 많았으나 역부족이었다. 그간 진행된 여론조사 추이를 토대로 박근혜 당선인의 승리 배경을 살펴봤다. 주요 근거는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정한울 부소장이 지난 10일 발표한 〈2012 대선 변수 : 박근혜 박빙 우위 지속될까?〉 보고서를 참조했다.
1주일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여론조사 공표가 허용된 마지막 시간이었다. 10~12일 사이에 실시된 대부분의 조사에서 박근혜 후보(이하 박근혜)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이하 문재인)를 앞섰다. 문 후보가 앞선 조사는 한국일보(박 44.9%, 문 45.3%)가 유일했고, 나머지는 박 후보가 적게는 0.1%P, 많게는 6.7%P 이상 차이를 벌렸다.
박근혜의 우위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여론조사 자체가 가진 한계는 명확하지만, 전화면접, 자동응답(ARS), 유·무선 전화 등 표본 구성·조사 방식과 상관없이 결과는 대동소이했다.
물론 문재인 측 입장에서 비관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이보다 며칠 전 조사들에서는 격차가 더 컸으니 추격세가 확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원만한 단일화를 이루어내지 못했던 안철수 전 후보가 7일께부터 선거운동에 결합하면서 상승곡선을 그리던 상황이었다.
방심과 교만, 일관성 상실
그렇다면 왜 끝내 역전하지 못했을까? 결국 승부처는 남은 1주일이었다.
과거 선거를 보면 선거 막판 1주일 사이 표심이 판세를 흔드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10년 지방선거, 지난 4월 총선에서 여론조사 예측과 달리 판이한 결과가 나온 건 이 때문이었다. 2010년엔 참여정부 심판론, 전쟁불사론 등을 앞세운 여권의 '자기성찰 없는' 대대적인 공세 전략이, 지난 총선에는 야권의 지나친 네거티브 드라이브와 '나꼼수' 김용민 막말 파문 등이 부동층·중간층 유권자들의 견제심리를 자극해 극적인 '역전'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연구원 정한울 부소장은 "2010년 지방선거의 경우 서울·경기 지역 공히 투표 1주일 이내에 지지 후보를 결정했다는 응답이 45% 전후나 됐다"며 "대선 역시 1주일 사이에 박근혜나 문재인의 선거전략 변화에 따라 격차가 더 크게 날 수도, 반대로 크게 줄거나 역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잘 알려진 대로 남은 1주일을 지배한 건 '네거티브' 공방이었다. 포문은 문재인 쪽이 열었다. 12일 밤 제기한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이 그것이다. 문재인 쪽은 지난해 막판 대역전극을 펼친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를 떠올리게 하는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불법선거를 주도하는 국정원 '아지트'로 의심된다며 서울 역삼동 국정원 한 직원의 집을 들이쳤다.
하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고 급기야 경찰마저 16일 "개입 흔적이 없다"고 발표했다. 이외에도 박근혜 TV 토론회 아이패드 소지, 신천지, 굿판, 여론조사 조작 등 여러 의혹이 쏟아졌으나 뭐 하나 확실한 게 없었다. 박근혜 측은 불법적으로 '댓글 알바'를 활용한 일로 선관위 고발까지 당했으나 이런 식의 잇따른 '헛다리'는 유리한 효과를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정한울 부소장은 막판 '뜻하지 않은 이변'을 낳을 구체적인 변수로 방심과 교만, 자포자기와 일관성 상실 등을 든 바 있다. 문재인 측의 네거티브 공세는 이 중 일관성 상실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었다. '새 정치'를 외치며 안철수 측과 단일화까지 이루었지만 정책 경쟁과 변화된 모습, 자기성찰의 자세보다는 오직 네거티브에 몰두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미문학부·문화비평가)는 "내용없는 MB심판론이 초래한 재난"이라고 이번 선거 결과를 평하기도 했다.
막판 1주일, 문재인 측의 모습 어땠나
전문가들은 네거티브를 중심으로 한 '난전'이 지속되자 투표율이 떨어질 가능성을 전망했다. 정치에 대한 환멸과 짜증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75.8%라는 기록적인 높은 투표율이었다. 70% 이상이면 문재인이 유리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지만,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박근혜였다. 결과적으로 막판 야권이 주도한 네거티브 공세는 박근혜 지지층의 위기감을 자극해 대거 투표 참여로 이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정확한 집계는 몇 달 후 나오겠지만, 방송 3사가 추정한 세대별 투표율에서 박근혜 주요 지지층인 50대와 60대 이상은 각각 89.9%와 78.8%로 평균을 상회했다. 반면 문재인 주요 지지층인 20대와 30대는 각각 65.2%, 72.5%로 부진했다. 승부처로 여겨졌던 40대에서 문재인이 박근혜를 10%p 이상 앞섰지만 결과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고 노무현 대통령이 승리했던 지난 2002년 16대 대선과 비교해 전체 유권자 중 30대 이하가 차지하는 비중은 10.1%p 줄어든 반면 50대 이상은 10.7%p 증가한 상황이었다.
사실 박근혜는 엄밀히 말해 그리 강한 후보가 아니었다. '유신의 딸'이란 오명에다, 불통과 권위주의 이미지까지 있었다. 경제민주화와 민생 등을 제시하며 정책적 변신을 꾀했으나, 유권자를 구체적으로 사로잡은 '알맹이'는 없었고 김종인과 불화 등 끊임없이 잡음이 새어나왔다.
결국 박근혜 승리의 최대 요인은 문재인을 비롯한 야권의 무능과 전략적 오류를 꼽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특히 50대 이상 유권자가 큰 폭 늘었음에도 형식과 내용 모든 면에서 주야장천 젊은층에만 타깃을 맞춘 것이 가장 뼈아팠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2012 총선과 대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과 SNS에서 진보성향 유권자들의 다소 과격한 표현방식이 보수,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위축되게 만들고, 그래서 그들 의견이 실제보다 소수의 의견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있었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야권은 겸허히 이 말을 곱씹어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