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신뢰정치’ 승리… 국민 ‘불안한 변화’ 대신 ‘안정’ 선택

  • 2012-12-20
  • 정철순기자 (문화일보)
‘대한민국 향후 5년’ 전문가 대담

 

▲ 김호섭(왼쪽) 한국정치학회장과 이내영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이 20일 새벽 문화일보 편집국 사무실에서

18대 대선 결과와 관련해 긴급 대담을 나누고 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앞에는 그의 공약대로 국민대통합의 엄중한 과제가 주어져 있다.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대선 후보가 대선 패배의 난국을 어떻게 돌파해 나갈지, 이 과정에서 민주당발 정계개편 가능성도 점쳐지는 상황이다.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민심은 무엇인지, 유례없는 보수·진보 양측의 총력전 이후 정치권의 지형 변화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박 당선인이 현시점에서 대통합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지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김호섭 한국정치학회장과 이내영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이 20일 문화일보 편집국에서 2시간여 동안 심야 긴급대담을 나눴다.

 

<대담>
- 김호섭 한국정치학회장·중앙대 교수
- 이내영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

 

<진행>
- 김상협 정치부 차장

 

1. 민심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는가. 유권자가 말하고 싶은 가장 큰 시대정신은 무엇이며 시대교체를 채워넣을 가치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 김호섭 정치학회장 = 새 시대정신은 대(大)통합이다. 여러 복합적 갈등구조가 심각한 상황에서 민심은 사회통합, 국가통합을 강력히 원하고 있다. 양극화도 심하다. 속살을 드러내기는 싫지만 지역구도 대립도 다시 확인됐다. 통합을 위해 유권자들은 신뢰의 정치를 내건 박 당선인에게 통합의 과제를 맡겼다. 통합을 그나마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박 당선인이라고 해석했다. 박 당선인이 TV토론을 잘하지는 못했더라도 ‘이 사람이 말하면 믿을 수 있다’는 평가를 내린 셈이다. 모든 가치를 신뢰정치라는 자기 콘셉트로 만들었다. 또 하나의 화두는 새 정치다. 낡은 정치 타파는 안철수 전 후보가 내세운 것이지만 대상에는 여당, 야당 모두 포함돼 있다. 안 전 후보는 결국 의미있는 콘텐츠를 제시하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다. 문재인 후보 고유의 브랜드,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박 당선인이 내세우는 시대교체와 새 정치를 믿어준 것이라고 본다.

 

◆ 이내영 아세아문제연구소장 = 이번 선거의 의미는 차선 또는 심하게 표현하면 차악을 택한 성격이 강하다.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이 대표하는 철학과 비전에 유권자들이 모두 동의한 게 아니다. 야당이 대안으로 믿음을 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박 당선인이 시대교체를 내세웠지만 정확히 정리된 내용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적 캠페인으로 즉흥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채워넣는 작업이 앞으로 진행돼야 한다. 과거 시대와 앞으로의 시대가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시대교체의 주된 내용은 역시 대통합에서 출발해야 한다. 세대, 지역, 이념 갈등 등 모든 측면에서 양극화가 심하다. 의회에서 진행되는 ‘엘리트 양극화’도 극심해 대북문제, 외교안보, 경제민주화 방법론·복지정책 등에서 사사건건 싸울 것이다. 예컨대 경제민주화의 경우 여야가 모두 내세울 만큼 시대정신 중 하나가 됐다. 그런데 유권자들은 성장과 예산을 무시하고 경제민주화를 추진한다거나 퍼주기식 복지에는 반대한다는 점이 표로 확인됐다. 박 당선인이 내건 ‘안정 속 변화’, 보수적 경제민주화 및 보수적 복지정책을 바란다는 의미다. 성장과 복지의 조화다. 또 정치권의 기득권, 특권을 내려놓는 것을 비롯해 새 정치 패러다임을 만들라는 메시지도 중요하다.

 

2. 막판에 쟁점으로 떠오른 북한 미사일 발사, 국가정보원 여직원의 선거개입 논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발언’ 여부를 둘러싼 회담록 공방 등이 표심에 어떻게 작용했다고 보는가.

 

◆ 김 학회장 = 이번 선거는 보수와 진보가 양대 진영으로 총집결해 치러진 양상을 보였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잣대는 재벌개혁문제, 복지문제 등과 함께 북한 문제다. 북한 미사일 발사는 군사적 위협을 매우 심각하게 느끼는 보수층의 결집을 강화시키는 요소가 됐다.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 공방도 넓게는 북한 이슈다. 국정원 여직원 사건은 여성 인권과 안보 현안의 측면도 있는 복합적인 문제다. 보수는 총결집하는 쪽으로 강화시킨 반면, 진보 진영에는 전체적으로 플러스로 작용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 이 소장 = 한반도 안보 위기가 분명하게 존재하고 보수가 한반도의 불확실성 문제를 크게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 박근혜 대결 구도’는 ‘안정, 위기관리를 택할 것이냐’, ‘불안한 변화를 택할 것인가’의 선택 구도를 만들었다. 다수 국민들은 한반도 불확실성, 경제위기 속에서 불안한 변화보다는 오랜 국정 운영 경험이 있는 박근혜 세력의 안정을 택했다. 연장선상에서 미사일, NLL 문제는 보수 결집의 효과가 있었다. 문 후보로 대표되는 ‘친노(친노무현 전 대통령)파’에게 유권자들은 안보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 여직원의 선거개입 논란은 젊은층을 결집시켜 투표장에 나오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 후보 선택 자체를 바꾸도록 영향력을 발휘했다기보다는 기존 지지층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3. 이번 대선은 보수와 진보 간 총력전의 성격이 어느 때보다 강했다. 양 진영 대결 속에서 중도층의 표심 변화는 어떻게 분석할 수 있는가. 또 선거 양상과 표 결과를 볼 때 향후 보수·진보 지형변화를 예측해 달라.

 

◆ 이 소장 = 그동안 여론의 전반적인 추세를 보면 국민들의 이념 분포상 중도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반면 정치권은 이념적 간극을 (의도적으로) 넓혀 왔지만 더이상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이념에 따라 편가르기함으로써 해결할 과제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견해, 이념적 다양성이 존중돼야 한다. 통합을 위해서는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 틀을 갖고 볼 게 아니다. 한 사회의 주류세력은 중도와 균형감각을 갖고 때로는 진보 어젠다, 때로는 보수 어젠다를 채택해야 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할 때 보수라서 지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성이라거나, 약속을 잘 지킬 것이라고 봐서 지지하는 사람도 있다. 진보와 보수의 대결로 끌고가는 틀은 21세기 패러다임에 맞는 틀도 아니다.

 

◆ 김 학회장 =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그래프를 그리면 중도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양 극단의 극우, 극좌는 작게 분포할 것이다. 중도가 우리 사회의 대세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중도성향의 정책은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정책 자체는 중도가 없다. 진보 정책이냐, 보수 정책이냐가 있는데 중도가 그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대북정책에서도 햇볕정책식의 포용이냐, 압박하는 강경이냐의 둘 중 하나다. 재벌정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사람 수는 중도가 많아도 어젠다 자체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있고, 중도가 포지셔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이 소장 = ‘중도정책’이라는 게 개념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양측 정책의 타협을 통해 수렴이 가능하다고 본다. 또 그렇게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 대북정책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여야 간에 도출하는 과정이나 경제민주화의 경우 성장, 균형을 어느 수준에서 맞출 것인가 선택 가능한 타협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4. 이번 대선은 정책 대결은 별 의미없고, 안철수 전 후보에 좌우된 대선으로 평가된다. 안 전 후보가 던진 새 정치, 정치개혁에 대한 유권자들의 열망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안 전 후보의 향후 정치활동도 전망해 달라.

 

◆ 이 소장 = ‘안철수’는 기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이 만들어낸 ‘아바타’로 본다. 그 아바타가 꼭 안철수여야 했는가는 아니다. 새로운 정치 열망이 안철수로 표출된 것이다. 긍정적인 부분은 많다. 문제는 본인이 꼭 대통령을 해야 한다고 하는 순간, 현실정치의 높은 벽을 느끼고 좌절에 이르게 됐다. 스스로 과대평가하고 착각한 측면이 있다. 새 정치의 콘텐츠를 의미있게 제시하지 못한 것도 한계로 작용했다. 새 정치의 내용이 국회의원 정수 축소, 특권 버리기 정도가 대표적인 것이라면 그 정도는 1시간 안에 10페이지도 쉽게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그 콘텐츠를 실현할 전략, 방법론, 이를 수행할 정치세력이 함께 있어야 하는데 안 전 후보는 불행히도 그게 없었다. 얼마 안 돼 흩어지고 말았다. 아직 기회는 열려 있다고 본다. 민주당이 본격적인 자기성찰을 강요받을 테고 친노파와 다른 정파세력 간 분열과정에서 안 전 후보에게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새 정치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현실적 정치세력화가 중요하다.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 김 학회장 = 안철수와 안철수 현상은 별개로 봐야 한다. 새 정치 희망은 낡은 정치 비판에서 시작되는데 안 전 후보도 처음에는 잘 대응하다가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의 프레임에 걸리면서 낡은 정치에 빠져들어갔다. 새 정치의 깃발을 계속 못 들게 되는 상황에 처했다. 새 정치의 콘텐츠가 무엇이냐 문제는 굉장히 어렵다.

 

우리 정치의 문제점은 새 정치를 몰라서가 아니라 현실정치의 높은 벽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1000년의 정치역사상 연구된 바를 볼 때 새 정치의 정답은 다 나와 있다. 이 같은 현실정치를 감안해 새 정치를 할 수 있는 콘텐츠와 방법론을 내놓는다면 안철수 전 후보에게도 정치인으로서의 미래가 있을 것이다.

 

5. 선거 후유증은 늘 있게 마련이지만, 이번처럼 전례없는 네거티브 선거전을 치른 상황에서 앞으로 ‘힐링 정치’도 중요한 부분으로 보인다. 어떻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김 학회장 = 기본적으로 승리한 51.6%는 포용하고, 패배한 48.0%는 겸허하게 승복해야 한다. 그래야 통합이 되고 치유가 된다. 승자는 48%가 엄연히 반대한 데 대한 승자의 예의와 도리가 있고, 패자 역시 지켜야 할 도리와 의무가 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어려운 과제다. 우선적으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외국처럼 새 정권 출범 후 2∼3개월 동안은 야당이 새 정부·여당의 법안, 인사청문회 등을 다 통과시켜줄 수 있다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미국도 요즘은 덜해졌지만 전통적으로 새 정권 출범 3개월간 야당은 여소야대 상황에서도 법안을 웬만하면 다 통과시켜준다. 새로운 내각 인물들의 청문회도 트집만 잡아 낙마시키려 하지 않고 일단 통과시켜준다. 승복의 첫 번째 미덕으로 우리 정치에서도 필요하다고 본다. 또 승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구성할 때부터 박 당선인이 강조해왔던 탕평인사의 약속을 지키는 게 필요하다. 포용의 중요한 상징이다. 현실적으로 지역갈등도 심각하고, 정치권 갈등도 심한 상황에서 탕평인사는 포용을 통한 대통합을 이루는 상징적 첫걸음을 만들 것이다.

 

◆이 소장 = 상생과 대화의 정치를 해야 대통합을 이룰 수 있다. 인사가 중요하다는 점에 100% 동의한다. 이뿐만 아니라 새 정부 국정의 비전과 철학을 제시하는 과정에서도 48%가 바라는 정책을 포용해야 한다. 박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얘기했던 경제민주화, 정치개혁, 사회복지 정책 등은 민주당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대목이 많다. 수준과 방법 차이만 있지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우리처럼 양극화되고 양대 진영 논리만 있는 사회에서 이는 굉장히 소중한 것이다. 통합의 정치를 위해 야당을 진정한 국정파트너로 삼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여야가 경쟁하더라도 일종의 컨센서스가 만들어지는 접점이 있다. 경제민주화와 대북접근법에서 이 같은 식의 접점이 실제 가능하다고 본다. 국민통합을 위해서도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박 당선인이 인식해야 한다. 이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6. 박 당선인에게 특히 논란이 됐던 과거사 문제는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은 것으로 정리됐다고 보는가. 박 당선인에게 추가로 조언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말해달라.

 

◆김 학회장 = 우선 과거사 문제와 관련,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은 다 아는 것이지만, 긍정적 부분이 있고, 부정적 부분이 있다. 박 당선인이 과거 탄압받았던 가족들에게 선거과정에서 사과했지만 대한민국의 최고지도자가 됐고, 이제 새누리당의 대표도 아니라는 점에서 광범위한 피해자들에게 보다 진정으로 사과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져야 한다. 진정성있게 털고 가야 한다. 또 TV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와 논쟁을 벌였던 문제이기도 한데 전교조 문제와 관련해서도 잘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분명 합법적인 조직인 만큼 이제 대통령으로서 박 당선인은 포용의 자세로 접근해야한다. 스스로 대화의 손을 내밀라는 것이다.

 

◆이 소장 = 현실적으로 박 당선인에게 가장 크게 걱정되는 부분이 그런 지점이다. 과거사 사과 논란과 관련해 사과 여부는 오히려 지엽적인 문제인 게 박 당선인이 많은 장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대목에서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태도의 문제다. 유연성이 떨어지는 것은 원칙을 중시한다는 것과 동전의 양면인데 전교조가 본인의 이념과 다르다고 만약 대화를 할 수 없는 집단으로 여긴다면 대통령으로서 통합 과제를 수행할 수 없다. 자기와 생각이 같은 집단과는 사실 통합하자는 얘기가 필요없다. 통합은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서로 바뀌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박 당선인에게 소통문제가 지적되는 이유도 그런 점에서다. 이 같은 태도만 바뀐다면 과거사 문제는 지엽적인 문제라고 본다. 당장 오늘부터 ‘나꼼수’를 비롯해 반대했던 사람들은 이민가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박 당선인은 다 받아들이자는 포용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7. 새누리당이 정부와 국회를 모두 장악한 상황에서 여권의 독주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가. 또 박근혜 정권의 파워엘리트와 관련해 박 당선인의 용인술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 소장 = 대통령이 될 때까지는 이른바 ‘친박 세력’이 필요할 지 몰라도 대통령이 되는 순간 이는 불필요하다. 대통령은 친박 계 대표자가 아니다. 새누리당이 비록 승리했지만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바는 40대 이하 연령층이 상당히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새누리당은 여전히 권위주의적이고 냉전적 사고를 갖고 있고, 기득권을 옹호하는 세력으로 보인다. 그런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범보수를 내세워 마구잡이로 구시대 인물을 영입했다. 이제부터라도 여권은 이 같은 부정적 평가를 떨쳐내기 위한 개혁작업에 나서야 한다. 보수로서의 중요한 정체성은 살리되 권위주의적 유산은 벗겨내야 한다. 특히 선거가 끝난 뒤 친박계에 전리품을 챙겨주는 식이 된다면 이 나라는 반쪽 나라가 될 것이다.

 

◆김 학회장 = 박 당선인이 친박계에 발목 이 잡혀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보수의 폭은 넓다. 인재를 찾아내는 작업은 그렇게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그리고 박 당선인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더이상 보수의 대표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최고지도자가 된 것이다. 자신을 따르던 보수 쪽 인사만으로 국가를 통치하려 한다면 큰일날 것이다. 소위 대탕평인사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8. 민주당의 장래는 어떻게 보는가. 민주당발 정계개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이는데 전망해달라.

 

◆김 학회장 = 민주당 내에는 여러 그룹이 있다. 문재인 후보나 김두관 전 경남지사 등을 중심으로 합리적인 온건파가 있는 한편 이른바 ‘종북반미노선’의 의심을 받는 그룹도 함께 있다. 국민들의 의심을 받는 그룹이 주류노선으로 있는 한 민주당은 앞으로도 정권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문 후보의 경우 친노그룹의 지지를 받아 후보가 됐다. 민주당이 북한 퍼주기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대북 유화노선만을 고집하고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해 명확한 입장표명을 내놓지 않거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폐기를 주장하는 등 보수로부터 질책을 받고 국민들의 의심을 받는 정책과 노선을 고집한다면 힘들 것이다. 대한민국은 훨씬 앞에 나가 있는데 뒤에 남아서 국익 확보에 지장을 초래하고 훼방 놓는 듯한 노선을 걷는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민주당 패인도 이 같은 노선에 대한 중도층의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이 소장 = 민주당이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정립하지 않으면 어렵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낮은 데도 민주당이 진 데 대해 내부에서 책임 논란이 일 것이다. 당권파인 친노세력이 책임져야 한다는 비당권파의 퇴진 요구가 거셀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불안해 보인다는 평가를 극복하는게 과제다. 북한 퍼주기라고 여길 만한 내용을 계속 주장하는 것은 국민들 보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오히려 중도진보정당으로서의 성격을 헌법 틀 내에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분배 정책, 경제민주화, 양극화, 북한 문제 해법 등을 둘러싼 방법론 논쟁은 한국사회에도 필요하고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이념적으로만, 또 이분법적으로만 접근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9. 중산층 70% 시대, 반값 등록금 공약, 의료지원을 포함한 복지공약 등은 예산과 경제능력을 감안할 때 실현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많다. 이들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 소장 = 진짜로 걱정되는 바다. 성공하는 대통령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국민들의 기대수준을 낮추는 작업이다. 마음이 급해서 공약을 내놓았지만 공약한 대로 다하면 한국이 망할 수 있다는 점을 솔직하게 국민에게 털어놓아야 한다. 약속을 다 지키려다가는 일본식, 유럽식 길을 걷게 될 수 있다. 우선순위를 정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뭔지 정해야 한다. 기대수준을 낮추는 작업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소통이다. 솔직히 털어놓고 민주당의 협조도 받아야 한다. 박 당선인은 야당이 잘되도록 해야 하고 국정운영의 공간도 열어줘야 한다. 약속을 지킨다고 무리하다 보면 집권 1년 만에 지지율 40% 이하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김 학회장 = 옳은 지적이다. 1년 예산이 320여조 원인데 박 당선인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100조 원 상당이 든다. 공약사항 중에서 우선순위와 현실여건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집행해야 한다. 국민들은 성과가 빨리 나오기를 기대할 것이다. 좀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참을 것은 참아달라고 솔직하게 국민들에게 설명을 잘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여러 가지 평가받을 일을 하면서도 국민들 성에 차지 않는 것은 소통 능력이 약한 측면도 크다.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이유다. 우선순위는 국민들의 합의를 통해 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10.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북핵 문제 미해결 등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은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김 학회장 = 남남갈등과 북한의 대응방식, 한반도 주변국가의 협조 등 핵심문제는 다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들이다. 박 당선인처럼 보수에서 대북유화책을 구사하면 퍼주기 논란과 같은 남남갈등은 줄어들겠지만 북한이 호응해서 협조적으로 나올지는 의문이다. 또 중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북한제재를 취하려 해도 되지 않고, 한국이 할 수 있는 부분은 굉장히 작다.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어려운 문제들이다.

 

◆이 소장 = 현 상황에서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 아직 대북정책에 대한 합의도 없고 중국도 쉽지 않다. 이 문제도 다른 문제들처럼 국민들의 기대수준을 낮춰야 한다. 대북정책에서 정부가 갖고 있는 레버리지가 제한적이라는 것을 솔직히 설명하는 게 필요하다. 야당도 정치적 공세만을 해서는 안 된다. 중국이 북한 편들기를 하는 것은 중국국익을 위해 그러는 것 아니냐. 냉혹한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정리 = 정철순 기자

 

김호섭 한국정치학회장
▲ 58세
▲ 서울대 정치학 학사
▲ 미국 미시간대 정치학 박사
▲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 제41대 한국정치학회 회장

 

이내영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
▲ 54세
▲ 고려대 정치외교학 학사
▲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교 정치학 박사
▲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동아시아연구원 여론조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