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2지방선거 투표일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지사는 '낙승'이 예상됐다. 조사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민주당 후보에 비해 대체로 10~20%p 가량 앞서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투표함이 열리자 초박빙 경합구도가 만들어졌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오 전 시장 스스로 선거 다음날 "제 생애 가장 긴 밤이 아니었던가 싶다"고 말할 정도로 피말리는 상황이 전개됐다. 더구나 광역단체장은 새누리당이 가까스로 승리했지만 기초단체장은 민주당의 싹쓸이로 끝났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민주당 승리'였다.
반면 2012년 4·11총선은 선거 직전까지 민주당 승리가 점쳐졌다. 공표금지 기간 직전 여론조사 결과 엎치락뒤치락하는 선거구가 전체의 25~30% 가량이나 됐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과반은 모르겠지만 제1당은 민주당'이라고 지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결과는 새누리당의 '완승'으로 끝났다.
두 선거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마지막까지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다 반대의 결과로 나타난 대표적인 경우다. 당시에는 '여론조사의 실패'라는 분석이 많았지만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부동층'과 지지후보 변경 가능성이 높은 '스윙보터'들이 마지막에 결정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에 들어가는 선거 6일전부터 투표일까지의 변화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악수하는 박근혜와 문재인 후보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스튜디오에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최로 열린 3차 TV토론에 앞서 악수를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2012년 총선에서는 투표당일이 6.5%, 투표 1~3일전 13.6%였다.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던 2002년 대선에서도 투표당일이 7.5%, 투표 1~3일전이 10.6%나 됐다. 투표참여 유권자의 15~20% 가량이 선거일 3일전부터 결정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들의 마음이 왜, 어떤 방향으로 움직였느냐는 것이다. 비밀은 '자만'이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이명박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이 커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나라당은 앞선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승리를 자신했다.
5월까지 중순까지는 유지하던 '낮은 자세'는 5월말에 들어서면서 야당에 대한 '공세'로 바뀌었다. 승부를 굳히겠다는 전략이었다.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가 이뤄졌고, 천안함 폭침사건을 두고 '종북몰이' 같은 색깔론 구태도 재연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쟁기념관에서 '전쟁불사' 발언을 해 주식시장 폭락을 이끌었다. 승리에 대한 자만이 만든 일이었다.
2012년 총선은 민주당의 '자만'이 선거흐름을 바꿨다.
새누리당은 당명과 색깔, 정강정책까지 모두 바꾸며 낮은 자세로 지지를 호소했지만 민주당은 자신들의 문제는 돌아보지 않은채 '정권심판'만 떠들었다. 유권자들은 참여정부에 대한 성찰과 변화를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MB 탓만 했다. 공천은 사천으로 흘렀고, 김용민 파동에 대해서도 지도부는 침묵했다. 그러면서도 "무조건 이긴다"고 큰소리를 쳤다. 유권자들은 민주당을 떠났고, 안철수라는 새로운 플랫폼에 들어섰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여당소속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참여정부 탓만 하거나, 정권교체를 주장하는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새로운 비전 제시에 한계를 보이면서 여야 모두 갈림길에 선 모양새"라며 "오만한 쪽이 실패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