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통령 후보가 16일 국회 정론관에서 후보 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미소 지으며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강병기 통합진보당 비대위원장, 김선동·오병윤 의원. [김경빈 기자] |
이념 스펙트럼으로 볼 때 정치권에서 가장 왼쪽에 있는 ‘이정희 지지 효과’는 득일까 실일까.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후보가 16일 전격 사퇴했다. 사퇴 기자회견은 1분 만에 끝났다. 기습적인 사퇴 회견을 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은 채 사퇴 이유만 밝히곤 회견장을 떠났다. 그의 사퇴 발표문은 270여 글자에 불과했다. ‘반(反)박근혜+정권교체’가 요지였다.
이 전 후보는 “친일의 후예, 낡고 부패한 유신 독재의 뿌리, 박근혜 후보의 재집권은 국민에게 재앙이자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퇴행”이라며 박 후보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노동자·농어민·서민이 함께 사는 새로운 시대, 남과 북이 화해하고 단합하는 통일의 길로 가기 위해 우리는 정권교체를 이뤄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후보에 대한 실질적인 지지 선언이다. 통진당 김미희 대변인도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라고 했다.
김 대변인은 “이 전 후보가 오늘 오후 1시쯤 긴급 선대위 회의를 소집했고 사퇴 의사 역시 그때 처음 통보했다”며 “정권교체를 위한 이 후보의 헌신적 결단”이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 측은 그간 사퇴 가능성이 제기될 때마다 “무조건 완주한다”고 반박했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언젠간 후보직을 던지긴 던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대선을 사흘 앞두고 그만둔 것이다.
이 전 후보 측 김미희 대변인은 사퇴 발표 직후 “국민들은 (박·문 후보의) 양자토론을 보고 싶어했다”며 “이 전 후보가 그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라고 했다.
새누리당 일각에선 민주당과의 교감설도 돈다. 민주당 측 선관위 고위 관계자들이 이 전 후보 측에 “사퇴할 거면 양자토론을 위해 3차 TV토론 전에 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얘기다. 한 새누리당 당직자는 “결국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었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김미희 대변인은 “사퇴 문제를 놓고 민주당 측과 아무런 사전 협의나 교감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문 후보 측 우상호 공보단장도 “(민주당과 통진당 사이에) 사전 교감 같은 건 전혀 없었다”고 부인했다.
‘이정희 효과’에 대해 정치권에선 분석이 엇갈린다. 표 계산으로만 따지면 문 후보에게 당장은 ‘+α’가 될 것이란 관측이 있다. 지난 12일까지 진행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전 후보 지지율은 0.9%(서울신문·엠브레인)∼1.7%(한겨레·한국사회여론연구소)였다. 초박빙 혼전 상태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규모다. 리서치앤리서치의 배종찬 본부장은 “통진당 지지자들은 투표 의향이 적극적이어서 이 전 후보 지지율을 1%로, 전체 투표율 70%로 가정해도 약 28만 명이 문 후보로 이동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특히 통진당이 급진적 진보층과 경남의 공업도시에서 강하다는 점에서 문 후보로선 PK(부산·경남) 지역 바람몰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진보 진영은 1997년 이후 처음으로 단일화로 총집결해 진영표의 누수 없이 임하게 됐다. 1997년, 2002년, 2007년 대선에선 국민승리21 또는 민노당으로 권영길 후보(득표율 각각 1.19%, 3.89%, 3.01%)가 나왔고, 2007년엔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5.82%)까지 출마했다.
그러나 수치 외의 문제까지 고려하면 ‘-α’의 가능성을 지적하는 전망도 많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이 전 후보 지지자들이 야권 지지층의 일부라는 점에서 일단 문 후보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중도층엔 통진당 폭력 사태, 종북 논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어 어디가 유리할지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통진당은 북한의 3대 세습, 장거리 로켓 발사 등에서 북한을 두둔하는 듯한 입장을 보여 왔다. 문 후보는 지금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북한 로켓 발사 등에서 통진당과 선을 그으며 안철수 지지층 등 부동층·중도층을 껴안으려 했다. 그러나 통진당의 종북 이미지가 문 후보 쪽에 투영되는 부작용이 나타나면 중도 성향의 안철수 지지층이 부정적으로 반응할 가능성도 있다. 문 후보가 거국내각, 공동정부를 거론했던 만큼 통진당의 등장은 급진 진보까지 행정기관에 진출하는 것으로 비춰져 보수는 물론 중도적 유권자들도 부담을 느끼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새누리당은 이런 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안형환 대변인은 “문 후보 오른쪽엔 안철수, 왼쪽엔 이정희가 서 있는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이상일 대변인도 “문재인-이정희-심상정-안철수 연대는 가치연대가 아닌 짬뽕연대로 문 후보가 집권하면 권력 나눠먹기와 이념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