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후보 단일화가 대선을 결정짓는 '유일한 변수'는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 2002년 대선에서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보여준 파괴력이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는 당시 여론조사 결과에 근거한 주장이다. 대선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또 다른 '빅이슈'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2002년 대선 직후(12월 20~27일) 전국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한국선거학회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유권자들의 지지후보 결정에 영향을 준 가장 큰 이슈는 노무현-정몽준 단일화(19.9%)와 행정수도 이전(18.7%)이었다. 후보단일화라는 정치적 이벤트만큼이나 유권자의 삶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책공약이 후보자 변별 기준이 된다는 증거다.
특히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 다른 후보로 지지를 변경한 유권자들은 '이념과 노선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54.5%)'를 최대의 이탈사유로 꼽았다. 단일화(12.5%)는 능력과 자질부족(20.5%) 다음이었다.
반면 노무현 후보에서 다른 후보로 이동한 경우 단일화(38.5%)와 이념·노선(36.9%)은 비슷했고, 정몽준 후보에서 다른 후보로 이동한 경우에만 단일화(74.7%)가 이념·노선(8.0%)을 압도했다.
'단일화'가 지지후보를 결정하거나 바꾸는 데 결정적 사유가 아니라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은 "단일화만 하면 모든 것이 결정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현재 시점에서 보자면 문제는 단일화가 아니라 '단일화 이후'"라고 분석했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도 "현재 빅3 후보들의 지지율은 스스로 획득한 것이라기보다 '반사이익' 측면이 강하다"며 "유권자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칠 정책공약이 나오면 판도가 바뀔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야권후보가 단일화를 통한 지지율 상승효과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단일화 직후 '빅이슈'를 던지며 확실하게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도 단일화의 파도를 넘어서는 동시에 '보수유턴'으로 인한 확장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공약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일 '빅이슈'를 찾기가 쉽지 않다. 빅3 후보 모두 주요공약으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내걸면서 차별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명박정부 4대강사업의 악영향으로 '토목공약'을 제시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동남권신공항, 택시의 대중교통 인정처럼 지역간, 집단간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을 꺼내놓을 수도 없다.
박근혜 캠프 관계자는 "단일화가 정국의 중심인 데다 후보들의 공약도 비슷해지면서 우리만의 무엇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며 "주도적으로 꺼낸 거의 유일한 이슈가 '여성대통령' 정도"라고 말했다.
문재인 캠프 관계자도 "유권자들과 만나면 유일하게 묻는 주제가 단일화"라며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사실 단일화 이외에 모든 것은 손을 놓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