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안철수 ‘현상’을 통해 본 정치쇄신 논란

  • 2012-10-29
  • 허신열기자 (내일신문)
안 후보 공약에 기존 정치권 "화성 정치인?" 반응 … 국민의 변화열망은 '여전'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정치권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출마가 거론되면서다. 안 후보의 돌풍에 정치권은 한마디로 '멘붕' 상태에 빠졌다. 이명박정부 들어 단 한 차례도 여론조사 1위를 내준 적이 없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단숨에 제치며 파문을 일으켰다. 지방선거 이후 마땅한 대표주자를 내지 못해 지리멸렬 중이던 야권도 충격을 받긴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다.

 

안철수 '현상'에 고개 숙였던 정치권 = 당시 정치권은 앞 다퉈 '안철수'가 아니라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들의 정치불신과 새 정치에 대한 요구가 안철수라는 인물을 통해 표출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해석도 비슷했다.

 

실제 내일신문이 지난해 9월말에 실시한 창간18주년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의사를 대변해 줄 정당이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는 응답은 13.9%에 불과했다. 국민 10명 중 9명이 정치권과 자신의 삶을 별개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정치가 이른바 '3김시대' 보다 나아졌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35.5%만 '그렇다'고 답했다. [내일신문 2011년 10월 9일자 1면 참조]

 

안철수 출마선언에 쏠린 눈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 출마선언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구세군 아트홀에서 지난 9월19일 수많은 취재진이 출입 등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국민적 열망은 정치권의 변화를 이끌었다. 새누리당은 강경보수 인사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강정책을 개정했고 당명도 바꿨다. 정치불신과 변화의 에너지가 충만한 중도층 혹은 행동하는 무당층을 붙잡지 않고서는 집권이 어렵다고 본 것이다.

 

민주당은 정권교체를 통한 정치의 쇄신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무소속 안 후보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대중적 기반을 가진 독자후보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급물살을 탔고 문재인 후보를 '발굴'했다.

 

'안철수'에는 냉정한 비판 = 대선을 50일 앞둔 29일 현재, 정치권은 한창 정치쇄신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전에도 정치쇄신과 관련한 공약발표와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정치쇄신을 주제로 본격적인 논란이 시작된 것은 안 후보의 발표가 계기가 됐다. 안 후보는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에서 200명으로 줄이고 중앙당 및 공천권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정당 국고보조금도 축소하겠다고 했다.

 

정치권의 반응은 "황당하다", "정치의 ABC를 모르는 아무추어적인 발상이다"로 요약된다.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김무성 총괄본부장은 "정치는 강의, 연구가 아닌 현실"이라며 "실험실 연구원 같은 안 후보에게 장래를 맡길 수 없다"고 깎아내렸다. 이정현 공보단장은 "현실정치를 전혀 모르는 화성에서 온 정치인"이라며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

 

야권단일화의 상대인 문재인 후보마저도 "바람직한 것인지, 우리 정치를 발전시키는 방안인지도 좀 의문"이라며 "선뜻 찬성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내놨다. 전문가들도 '인기영합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안 후보는 기존 정치권을 향해 "교만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가슴 아팠던 부분은 '국민들의 정치혐오에 편승한 맹목적 포퓰리즘'이라고 했는데, 굉장히 무서운 말"이라며 "새 정치를 갈망하는 국민의 요구를 폄훼한 것"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안 후보도 '엉뚱한 의제' 던진 책임 = 정치공방과 별개로 국민들의 '안철수 정치쇄신안'에 대한 지지는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시아연구원(EAI)·한국리서치 지난 27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국회의원 정원 축소를 중심으로 한 '안철수안'에 대한 공감률은 71.9%나 됐다.

 

반면 '지역구 축소, 비례대표 확대'를 중심으로 한 '문재인안'의 공감률은 49.0%에 불과했다. 여론으로만 보면 안 후보의 판정승이다.

 

정한울 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최소한 현재의 논쟁구도에서 안 후보의 파격적인 주장이 국민여론에 당장 부정적 영향보다는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여론은 '안철수안'에 대한 정치권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때론 비합리적이고, 때론 핵심을 건드리지도 못하는 즉흥적인 '시중여론'을 정치권이 어떻게 수용하고, 또 어떻게 대안을 만들고 국민과 공감대를 넓혀나갈지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28년 동안 들어왔던 내용"(이정현 공보단장)이라고 폄훼하기 전에 '왜 28년 전부터 제기됐는데 정치불신은 여전한가'라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안 후보가 "문제의 본질은 '국민이 왜 정치를 혐오하게 됐는가'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안 후보도 정치개혁의 핵심과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엉뚱한' 의제를 꺼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 부소장은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현재의 정치불신에 최소한 절반씩의 원인을 제공한 정치집단"이라며 "최소한 정치쇄신에 대해서는 겸허한 태도를 보여야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