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생각만큼 역동적이진 않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만이 박근혜 후보가 다자와 양자 모두에서 이긴다고 말하고 있을 뿐, 수치가 다소 엇갈리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다자대결에선 박근혜, 양자대결에선 안철수’ 후보가 선두를 달리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안철수 후보가 출마 선언을 한지 3주 정도의 시간동안 이 구도는 어찌되었건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변화들이 눈에 띈다. 우선, 안 후보의 출마 선언 이후 박근혜 후보의 지지층 약화가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안 후보의 출마선언 이후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며 정권 재창출을 바란다는 응답을 압도하고 있다. 영남 지역의 판세도 심상치 않다. 박 후보의 지지율은 PK에선 간신히 50%대를 넘기는 수준이고, TK에서도 70% 안팎에 머물고 있다. 서울/수도권과 젊은 층에서 절대 열세를 보이고 있는 박 후보 입장에서 보자면 정권교체 요구가 확산되고 영남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은 매우 심각한 지지기반 붕괴 전조이다.
문 후보의 경우 일반적인 예상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부에서는 안 후보의 등장과 함께 문 후보가 급격한 하락세를 겪지 않겠느냐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지만, 문 후보는 안 후보 등장 이후에도 변함없이 3강 체제의 일원으로 굳건한 지위를 보이고 있다. 추석 민심 대결에서는 가장 얻은 게 많았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착시’라는 비판도 있다. 본인의 성과로 지지율이 유지되는 상황이 아니라 안 후보가 검증 공세에 휘말리고, 박 후보가 스스로 무너지는 상황에 따른 반사이익이란 분석이다.
안 후보의 경우 어느 정도 ‘연착륙’한 것은 분명하지만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단 평가가 지배적이다. 검증 공세로 이미지가 손실된 부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정치 개혁’과 ‘새로운 시대’를 제안한 이후 구체적 실행 경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의제를 선점하긴 했지만, 동시에 피로감 역시 쌓이고 있단 지적이 높다. 수평적 리더십과 네트워크를 강조하고 있지만 타 캠프에 비해 실행력과 실무력이 떨어져 레이스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시대정신과 지지율 이외의 다른 요소들에서 상대 후보들의 역량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 역시 불안요소다.
결국, 무소속 후보가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례적 국면 속에 치열한 3자 대결이 전개되고 있는 이번 대선 레이스의 초반 판세는 각 후보 진영이 약점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琯蕙� 우열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는 후보 본인의 스타일이, 문 후보는 지지율, 안 후보는 정치력이 관건이다.
▲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연합뉴스 |
새누리당의 내홍은 사실 그 책임의 80% 정도는 박 후보 자신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관권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비서진을 비롯한 측근들의 전횡 문제도 극소수의 주변하고만 소통하는 박 후보의 문제이며 갈등이 된 외부 인사 영입도 전적으로 박 후보의 결정사항이었다. 경제민주화의 헤게모니 다툼 역시 오래전부터 예견된 상황이었는데 박 후보가 방치하면서 곪아터지는 지경에 이렀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박 후보가 직접 개입하면서 어느 정도 문제가 수습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이는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새누리당이 완벽하게 사당화 되어있단 점을 노출하고 말았다. 김종인, 안대희 위원장의 쇄신 이미지 역시 박 후보 말 한 마디에 기가 꺾이는 상황으로 연출되며 많이 훼손되었다. 당이 완벽하게 박 후보의 손아귀에 있고 ‘보스’의 한 마디에 모든 것이 제압된다는 게 노출되는 등 집중력 측면에선 강점이라고 생각할 여지도 있지만 아무래도 득보다 실이 많아 보이는 상황이다.
문제는 박 후보가 이런 ‘불통’의 이미지에서 얼마나 빨리 그리고 유연하게 모드를 전환할 수 있는가에서 갈릴 것으로 보인다. 당내 내홍이 수습되면서 박 후보의 지지율 하락세는 일단 멈추겠지만 그렇다고 치고 올라갈 모멘텀이 되긴 어렵다. 대세론 붕괴 이후 지지 기반의 약화 속에서 지지율 추세를 다시 상승 곡선으로 바꾸기 위해선 문제를 수습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닌 공세적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새누리당이 사실상 박 후보의 1인 정당이란 점에서 전환은 오로지 박 후보의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박 후보의 스타일이 지금껏 수년간 정적이었고, 거의 변하지 않았단 점이다.
▲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연합뉴스 |
문 후보는 냉정히 말해 아직까지 3위다. 단일화를 전제로 한 문 후보의 선거 전략상 그가 단일 후보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지지율 2위를 달성해야만 한다. 민주당 내 전략가들은 “10월 말 정도면 안 후보 지지율을 추월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미지수다. 안 후보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문 후보는 아직까지 안 후보를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문 후보 입장에선 시간이 없다. 대선 투표 당일까지 안 후보를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10월 말 혹은 11월 초에 있을 단일화 논의 시점까지 안 후보를 앞서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문 후보의 지지율 확장이 더디다는 점이다.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이 커진다는 점은 인과관계상 문 후보에게 ‘호기’로 작용하는 게 마땅해 보이는데 정작 결과는 그렇게 이어지지 않고 있다. 역시, 국민들 입장에선 정권 교체의 선택지가 문 후보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안 후보까지를 포함해 복수로 존재한단 점이다. 이에 대해 동아시아 연구원 여론분석센터 정한울 부소장은 한 일간지 기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자의 85.1%, 안철수 후보 지지자의 79.5%가 후보 단일화시 그대로 흡수된다”고 밝힌바 있다. 이 분석에 따르면, 후보 단일화 시 이탈율이 15~20% 수준으로 이는 1차적으로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지지층이 거의 그대로 겹친다는 점을 웅변한다. 조금 확장해보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던 사람 중에서 85.1%가 안 후보를 찍지만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던 사람 가운데서는 79.5%만 문재인 후보를 찍겠다는 것은 대략 5% 가량의 차이인데, 작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대선이 100만 표 안팎의 접전이 될 것이라는 예측을 두고 보면 작다고 할 수 없는 수치이다. 결국, 문 후보로 단일화되면 약 5%의 손해가 발생한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결국, 문 후보의 딜레마는 이 부분에 있다. 기본적으로 지지율이 뒤지는데다가 후보자에 대한 지지 충성도가 안 후보에 비해 떨어진단 점이다. 야당 후보 입장에서 반드시 ‘정권 교체’를 앞 순위의 슬로건으로 배치할 수밖에 없지만 그럴 경우 ‘경쟁력’ 측면에서 안 후보에게 밀리는 ‘딜레마’가 발생하는 수도 있다.
▲ 무소속 안철수 후보 ⓒ연합뉴스 |
‘단일화 논의는 적절치 않다’에서 시작된 안 후보의 행보는 ‘무소속 대통령도 괜찮다’는 수준까지 확장됐다. 정치 쇄신을 요구하지만 정당 정치 밖에 있는 그의 포지션은 여전히 그를 붙잡고 있는 난제다. 안 후보의 ‘무소속 대통령론’에 대해 민주당은 즉각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반박을 내놓았다. 실제, ‘무소속 대통령’에 대한 안 후보의 발언 수위는 너무 나갔다는 지적이 높다. 후보를 중심으로 한 논란을 확산시키는 것이 나쁘다곤 할 순 없지만, 지난 번 검증 국면에서도 그렇지만 굵직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안 후보의 대응은 뭔가 미숙하고 정돈이 더 필요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무소속이란 안 후보의 취약성은 조직화된 선거 운동의 미비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애초 소통에 가장 능할 것 같단 평가를 받았지만 실제 안 후보 측의 소통 능력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높다. SNS를 비롯한 온라인 홍보도 취약하고, 국민과의 접촉면을 늘리는 스킨십도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다. 이는 결국 실무력의 부재에서 드러나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일 텐데, 이를 극복할 뚜렷한 방법론을 안 후보 측은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송호창 의원의 입당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도 마찬가지다. 송 의원의 진심과 선의를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캠프 차원에서 보다 세련된 방식 혹은 정치적 기술을 고민했어야했단 지적이 높다. 결국, 안 후보 측은 정치 쇄신을 주창하고 있지만 구체성을 아직 보여주지 못한 채 위기관리 능력과 상황 대처력과 같은 캠프 차원의 정치력이 부재한 모습이다. 이는 샅바 싸움 성격의 국면이 지나가고 정작 한판 싸움을 벌여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안 후보 측의 뒷심 부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