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인 박근혜·안철수, '효과적 대응' 할지 관심
네거티브 캠페인(negative campaign). 상대후보의 비리를 폭로하거나 비난해 상대후보가 지지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선거운동의 한 방법이다. 자신의 장점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후보의 약점이나 비리를 공격하는 방법이다. 그런 만큼 마치 불법이나 비겁한 선거운동방식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네거티브 캠페인은 엄연히 합법적인 선거운동 방법이다. 더구나 효과도 빠르고 강력하다. 선거캠프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의 유혹을 떨치기 힘든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나라 대선 역사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이 등장하지 않은 선거는 찾기 힘들다. 선거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도 있다. 빠른 효과를 거둘 수도 있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선거에 비친 네거티브의 두 얼굴 = 네거티브 캠페인이 기승을 부렸던 최근의 사례는 바로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다. 선거정책은 묻혔고,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와 박원순 야권단일 후보(무소속)의 진흙탕 싸움만이 언론에 비쳤다.
당시 네거티브 캠페인은 여론조사에서 뒤쳐진 나 후보측이 주도했다. 처음에는 재미를 보는 듯 했다. 여론조사 상 지지도 격차도 좁혀졌다. 박 후보 측에서도 초반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노출했다.
그러나 네거티브의 칼날이 한쪽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 후보가 연간 1억원이나 하는 피부관리숍 회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전세는 완전히 역전됐다. 고소고발이 이어졌고, 경찰 수사까지 진행됐지만 한 번 형성된 부정여론을 뒤집지는 못했다.
반대로 박원순 후보에게 제기된 아들 병역비리 의혹은 박 후보측이 공개적인 재검사를 통해 해소하면서 의혹을 제기한 측이 되레 '묻지마 폭로'를 한 것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나 후보의 패인은 '정권심판론' 구도가 형성된 데다, 새로움을 지향하는 '행동하는 무당층'이 적극 박 후보를 지지한 데 기인한 바 크다. '행동하는 무당층'이라는 새로운 선거시민은 박 후보에 대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네거티브 공세를 '구태'로 받아들였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런 그들이 나 후보의 '고급 피부숍 논란'을 계기로 선거판 전면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네거티브 캠페인의 역습이었다.
◆캠페인 성공에는 법칙이 있다 = 네거티브 캠페인이 이뤄지는 데는 몇 가지 법칙이 있다.
우선 전선(戰線)이 명확해야 한다. 공격을 하는 측에서는 공격 포인트가 분명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양당 대결구도나 양자 대결이 치열할 때 위력을 발휘한다.
지난해 11월 미국 네거티브 전문가인 커윈 스윈트 조지아주 주립대 정치학 교수는 김정욱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 "경쟁이 치열한 양당 정치시스템에서 네거티브 발현 가능성이 높다"면서 "네거티브 성공 가능성은 50% 이상"이라고 장담했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구조가 단순해야 성공 한다. 이해하기 쉽고 즉각적으로 감성에 와 닿아야 한다는 의미다. 1997년, 2002년 대선에서 당시 유력주자였던 이회창 후보는 두 아들 병역면제 의혹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치명상을 입었다. '왜 면제가 됐는지'에 대한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남들 다 가는 군대를 왜 안 보냈느냐'는 감성적이고 단순한 의문이 유권자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이른바 '병풍'은 '원정출산 의혹' '고급빌라 의혹'과 겹쳐지면서 '이회창=기득권' 이미지를 확고하게 심어놓는다.
그런데 2007년 대선에서는 양상이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당시 이명박 후보에 대한 BBK 주가조작 의혹 역시 네거티브 캠페인의 하나다. 그러나 효과는 크지 않았다. 얼개가 복잡했고, 무엇보다 양 후보간의 격차가 상당해 네거티브 캠페인이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것이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절대적 지지층과 절대적 거부층이 존재할 때 더 위력을 발휘한다. 절대적 거부층은 자기가 싫어하는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소재가 나오면 이를 빠른 시간 내에 퍼뜨리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1997년 대선 당시의 김대중 후보에 대한 색깔론 시비나 건강이상설,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에 대한 병역비리 의혹 등은 절대 지지층과 절대 거부층이 공존했기 때문에 더 휘발성이 강했다.
◆올 대선에선 박근혜 노릴 듯 = 올해 대선에서도 네거티브 캠페인이 기승을 부릴까. 대부분의 선거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네거티브의 위력에 대해서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처럼 네거티브만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은 국민 입장에서는 짜증나는 상황"이라면서도 "기본적으로 포지티브한 전략을 깔고 네거티브를 같이 결합하면 여전히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네거티브 공세에 시달릴 개연성이 가장 큰 후보는 누가 뭐래도 새누리당의 박근혜 전비상대책위원장이다. 절대 지지층과 절대 거부층이 뚜렷한 데다, 양자대결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네거티브 캠페인의 필요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박 전 위원장의 삶의 궤적이 일반인들과 거리가 있다는 점은 충분조건이다. 대선주자의 신비주의는 깨부수고 싶은 유리성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위원장측이 네거티브 대응팀을 별도로 꾸릴 정도로 신경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네거티브의 또 다른 소재가 될 만한 올케 서향희 변호사(동생 박지만씨의 부인)를 홍콩으로 해외연수를 보내기로 한 점, 저축은행과 관련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공세에 즉각 검찰에 고소한 것도 네거티브 대응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진다.
안철수 서울대 융복합기술대학원장도 네거티브 캠페인에 노출될 위험성이 커 보인다. 아직 제대로 된 정치적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현재의 긍정적 이미지에 흠집을 낼 다양한 소재들이 동원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지난해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보여지듯 네거티브 캠페인은 양날의 칼이다. 지나친 네거티브는 선거판의 새로운 시민인 '행동하는 무당층'에게 '낡은 세력'으로 낙인찍혀 역풍을 부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