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서울시민, 이념보다 밥이 앞섰다

  • 2011-08-25
  • 백만호기자 (내일신문)
오세훈 정치쇼, 대선 불출마→시장직 연계→현충원 참배

서울시민, 물가폭등에 삶의 질 저하·여당 지지층도 불참

 

서울시민은 아이들 밥그릇이 이념이나 정치보다 절실했다. 24일 치러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이념적 편가르기에 대한 시민들의 집단적 거부로 드러났다.

 

각종 여론조사 등과 비교할 때 오 시장의 주민투표는 우군인 보수층과 한나라당 지지층한테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가 지난달 서울시민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서울시민의 37%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보수층이라고 답했다.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37.6%에 달했다. 하지만 24일 치러진 주민투표에 참여한 시민은 25.7%에 불과해 오 시장과 한나라당의 지지층 상당수도 불참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민들의 이념성향이나 특정 정당지지 여부에 따른 '묻지마 투표'가 아니라 생활에 기반한 사회정치적 요구가 투표불참행위로 나타났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리서치의 같은 조사에 따르면 '정부가 의료와 복지, 교육 등 복지서비스를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제공하는 것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65.5%가 공감한다고 했다.

 

특히 정부의 역할에 대해 '경제적 양극화 완화'(37.1%)와 '삶의 질 개선'(13.0%) 등 복지영역에 대한 선호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는 전통적으로 우리 국민들이 국가의 역할과 관련해 '경제성장'(15.3%)이나 '국가안보 강화'(2.4%) 등을 염두해 뒀던 것에서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관련한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세금을 더 낼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선택적 복지'도 찬성하고, 국민들이 동등하게 복지를 향유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복지'도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둘 다를 조화시킨 '상충적 복지론'을 선호하고 있다"며 "정치권과 달리 유권자들은 어느 한쪽의 입장을 택하라는 양자택일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명박정부 들어 '밥상물가'가 폭등해 식탁살림이 쪼들리는 등 서민생활도 이념대결을 용납하지 않았다. 2008년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3년간 신선식품 물가는 37.2%나 뛰었고, 채소와 과일이 각각 38.5%, 29.5% 상승했다. 노동계 관계자는 "임금은 그대로인데 물가가 오르면 살림살이가 쪼그라드는 것은 당연하다"며 "서민들 입장에서 한 달에 5만원의 아이들 급식비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주민투표를 주도한 한나라당과 오 시장은 일관되게 '복지 포퓰리즘'을 강조하며 이념적 잣대로 접근했다. 특히 오 시장은 대권불출마 선언(8월 12일)→시장직 사퇴 연계(8월 21일)→국립현충원 참배(8월 24일) 등 주민투표 전 과정에서 정치적 이벤트를 선보여 보수층을 자극하는 전략을 써 야당의 비난을 샀다.

 

이에 대해 야당은 민심과 민생의 승리라며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