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조로 보면 ‘극과 극’을 달린다고 할 수 있는 대표적 진보·보수 일간지인 한겨레와 조선이 24일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와 관련해 ‘비슷한 목소리’를 내 눈길을 끌고 있다.
다름 아닌 이날 개표 무산으로 ‘승리감’을 만끽하고 있는 민주당 등 야당과 진보진영을 향한 경고였는데, 관점이 같다고 볼 수는 없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한겨레는 25일자 사설에서 이번 투표 결과와 관련해 “교훈을 받아야 하는 것은 민주당 등 야권도 마찬가지”라며 “투표 결과에 고무돼 우쭐하거나 오 시장 사퇴로 차려질 정치적 밥상에만 정신을 팔 경우 역시 호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무상급식으로 촉발된 보편적 복지 의제를 어떻게 제대로 확산시켜 나갈 것인지를 고민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고 지적했다.
조선 역시 이날 사설을 통해 “민주당도 이번 한번 투표로 국민으로부터 보편적 복지 정책 전반에 대한 허가를 받은 것처럼 자만하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를 던졌다. “이번 투표 결과를 무상급식을 넘어 전면적인 복지 확대로 받아들이는 건 과잉해석”이며 “국민들은 복지 혜택의 확대를 바라지만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모조리 공짜로 해줄 것처럼 떠벌리는 정치권의 사탕발림 주장에 휩쓸려 가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근거에서다.
조선이 제시한 근거는 보는 이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야권과 진보진영뿐만 아니라 일부 보수언론조차 이번 투표 결과를 “전면 무상급식과 보편적 복지주의의 승리”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겨레가 원론적으로나마 사설에 “무상급식으로 촉발된 보편적 복지 의제를 어떻게 제대로 확산시켜 나갈 것인지” 고민을 담은 것은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음을 방증한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좀 더 실증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이러한 분위기를 ‘입증’한다. 정 부소장은 개표 무산이 “단기적으로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에게 유리한 정치지형이 마련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차기 대선 핵심 아젠다에서 유권자의 정책선호 차원에서는 선별주의가 공고화됨으로써 이후 이슈 갈등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기가 용이하지 않을 수 있으며, 주민투표의 무산이 민주당과 야당의 리더십과 이에 대한 유권자 지지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22일 여론분석센터는 7월 23일 서울시민 500명의 무상급식 인식과 투표 직전인 8월 20일 실시한 서울시민 700명 대상 여론조사 결과를 비교·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단계적 무상급식안은 53.2%→56.6%로 전면적 무상급식안(44.3→31.7%)과 비교해 변함없이 다수 여론을 점했다. 이 기간 동안 다른 기관·언론사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역시 단계적 안(54.5%~61.2%)이 전면적 안(31.4%~39.1%)을 크게 압도했다.
정한울 부소장은 이에 대해 “차기 총선, 대선 아젠다의 문제로 보면 야권으로서 뼈아픈 대목이다. 무엇보다 핵심 아젠다는 진보친화적 아젠다가 주도하지만 해당 아젠다의 정책선호에서는 오히려 여당의 노선에 여론이 지지가 높기 때문”이라며 “야권은 주민투표 과정을 거치면서 여권의 선별복지론에 대한 여론의 우열을 좁히는 데서는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야권·진보진영의 ‘투표 거부운동’과 전면적 무상급식 지지 논리 역시 큰 공감을 얻지 못했다. 여론분석센터 자료에 따르면, 거부운동은 ‘공감 안한다’(59.7%→58.7%)는 의견이 ‘공감한다’(33.4%→33.9%)는 견해보다 훨씬 높았다. 또한 ‘무상급식 수혜학생에 대한 낙인효과를 우려한다’는 야당·진보진영의 논리(58.0%→51.4%)도 ‘전면 무상급식시 증세 우려가 있다’는 여권·보수진영의 주장(76.0%→68.5%)을 넘어서지 못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여당과 야당의 대결이나, 오세훈 시장과 곽노현 교육감의 대립도 아니다. 그 배경에 놓여있는 것은 ‘정치인’ 오세훈과 ‘정치인’ 박근혜”라는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미문학·문화비평가)의 분석에 더욱 눈길이 쏠리는 것은 바로 이런 야권·진보진영의 미약한 ‘존재감’ 때문이다.
이택광 교수는 “사실 오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줄기차게 주장한 배경은 보수층 결집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오 시장이 흔들고자 했던 것은 박근혜 대세론이다. 오 시장은 무상급식 논쟁을 통해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 내는 요인 중 하나인 복지담론에서 주도권을 쥐고자 했던 것”이라며 “그런 관점에서 주민투표가 실패하더라도 ‘정치인’ 오세훈이 잃을 것은 없다. 결과에 상관없이 박근혜와 다른 선택지로서 보수 유권자에게 존재감을 부각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한울 부소장은 이번 투표 결과를 “결과는 야권이 웃었지만, 여론전과 노선 싸움은 여권이 승리했다”고 요약했다. 앞서 한겨레와 조선이 야권에 경고한 ‘호된 대가’, ‘역풍’은 그런 점에서 결코 빈말이라고 볼 수 없다. 야권과 진보진영은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압승하고 바로 두달 뒤 7월 재보선에서 완패했던, 그 ‘오만했던 과거’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