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언론은 선거와 관련해 여론조사를 실시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지난해 6․2 지방선거와 지난 4․27 재보궐 선거 결과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던 언론들이 이번에도 ‘적극 투표 응답률’과 실제 투표율의 ‘공백’을 크게 좁히지 못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실시 한 달 전인 지난 7월23일, 조선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조사를 실시한 결과 “반드시·꼭 투표하겠다”는 적극 투표층은 34.6%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8월12일)한 직후 동아일보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지난 13, 14일 이틀 동안 실시한 조사에서는 적극 투표층이 37%로 다소 높아졌다.
이후 매일경제신문이 한길리서치와 공동으로 동아일보보다 하루 늦은 14, 15일 이틀 동안 실시한 조사에서는 무려 40.3%의 응답자들이 투표에 반드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조사 결과 가운데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앙일보·YTN·동아시아연구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적극 투표층이 38.3%로 나왔다.
그러나 비슷한 시점에 리얼미터가 실시한 결과를 보면, 동아와 중앙, 매일경제의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리얼미터는 매일경제보다 하루 늦은 16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32.7%만이 투표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공개했다. 이같은 수치는 중앙·YTN보다 5.6%포인트, 매경보다는 무려 7.6%포인트 낮아 리얼미터 조사의 표본오차(95% 신뢰수준에서 ± 4.4%포인트)를 넘어선 것이었다.
리얼미터는 오 시장이 주민투표 결과 유효 투표율인 33.3%를 넘지 못하면 시장직을 사퇴하겠다며 ‘눈물의 호소’를 한 직후인 지난 22일 다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결과는 33.1%만이 투표를 꼭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오 시장의 ‘시장직 연계’가 큰 효과가 없었다는 방증이자, 이곳이 실시한 두 차례의 여론조사가 다른 조사에 비해 그나마 ‘민심’에 가까웠다는 얘기다.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가 그나마 실제 투표율에는 가장 가까웠지만, 표본오차가 1차 조사는 ±4.4%포인트, 2차 조사는 ±3.1%포인트였음을 감안할 때 정확하게 민심을 잡아냈다고 하긴 어렵다.
이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빗나간’ 투표율 예측과 관련해 “적극 투표층과 실제 투표율은 10% 가량 차이가 난다”고 입을 모은다.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투표일 이틀 전인 지난 22일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 투표에 꼭 참여하겠다는 적극 투표층이 30%대 중반 정도로 나오는데 이 경우 실제 투표율은 20%대 중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도 “여론조사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응답해도 실제 투표 당일날에는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과거 경험으로 보면 여론조사상 적극 투표 응답률과 실제 투표율 간에는 10%포인트 차가 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과 서울시가 오 시장이 주민투표와 시장직을 연계하기 직전만 하더라도 투표율을 30% 정도로 점친 것도 이 때문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24일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투표율이 25.7%에 그친 데 대해 “이번 주민투표의 투표율과 각종 여론조사의 수치를 종합해보면 주민투표는 사실상 오세훈 서울시장이 승리한 것”이라고 말한 것도 여론조사 결과의 ‘맹점’을 감안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언론이다.
여론조사의 ‘적극 투표 응답률’과 실제 투표율이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거나 기사 안에 한 두 줄로 처리하는 데 그친 채 한나라당이 내놓는 장밋빛 희망만 전해왔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투표 당일인 24일자 3면 <여 “예상 투표율 30%…지지층 막판 결집 중” / 야 “최종 투표율 20%대 초반,대세 기울었다”> 기사에서 “한나라당은 자체 분석 결과 현재 예상 투표율이 30%에 육박하는 등 지지층이 결집하고 있어 3~5% 정도만 투표장으로 더 끌어내면 유효 투표율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여론조사 결과 오 시장이 시장직을 건 이후 응답자의 50% 이상이 꼭 투표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는 이종구 서울시당위원장의 말을 전했다.
오 시장의 ‘시장직 연계’ 기자회견 다음날인 22일자 1면 <무상급식 주민투표 D-2…시장직 건 오세훈 “투표율 3~7%P 오를 수 있을 것”> 기사에서는 “오 시장이 시장직을 건 것이 투표율에 미칠 영향에 대해 한나라당과 여론조사 기관들은 ‘3~7%포인트 정도 상승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보도했다. 또, “서울시와 한나라당은 최근까지 투표율을 20% 중․후반으로 예상해 왔는데, 이날 기자회견으로 한나라당과 오 시장 지지층이 막판 결집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만큼 투표율 33.3%를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며 “여론조사 전문기관들도 투표율 상승효과가 분명히 있을 것으로 분석했지만, 그 효과가 얼마나 될지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렸다”고 덧붙였다.
동아일보는 이날 3면 <지더라도 ‘보수 잔다르크’ 이미지…사즉생 효과 길게 봤다> 기사에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35% 가량이 ‘적극적 투표 참여’ 의사를 보이고 있지만 평일에 진행되는 투표라는 점을 감안하면 투표율은 낮아질 수 있다”면서도 “‘당장은 동정론까지 불러일으켜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고 전했다. 동아는 투표 결과가 나온 25일에서야 “투표일을 3일 남겨둔 21일 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건 것도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언론사가 실제 투표율을 고려해 ‘적극 투표층’의 범위를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는 지적은 이미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중앙일보 신창운 여론조사 전문기자는 지난 4․27 재보선 직후 “언론사 여론조사상의 적극 투표층보다 실제 투표율이 낮아 격차가 벌어진다”며 “과거 대선, 총선, 지방선거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투표를 했고 이번 선거에서도 반드시 투표를 할 예정인 사람을 ‘투표 확실층’으로 정하는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