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도 '反南' 장기화 불가능, 한반도를 둘러싼 바람 방향은 남북 긴장완화·6자회담 재개
전시실을 나오면서 나는 현재 투영되고 있는 한반도의 그림자 뒤에 놓여 있는 진짜 한반도의 모습은 무엇일까를 궁금해하면서 현실로 다시 돌아왔다. 회의장에는 네 개의 촛불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지난달 25일 베이징에서는 1년 만에 세 번째인 북·중 정상회담이 있었다. 회담 후 열린 연회에서 두 정상은 대단히 흥미로운 연설을 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전략적 의사소통의 심화, 국가건설 경험 교류의 강화, 호혜 협조의 확대, 다양한 분야의 교류심화, 국제 및 지역정세를 비롯한 중요 문제들과 관련된 의사소통 강화와 공동보조 유지라는 5개 항에 견해일치를 보았다고 밝혔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번 방문이 두 나라 사이의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하고 실무적 협조를 심화시키며 중(中)·조(朝) 친선협조 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게 될 것이라고 요약했다. 중국의 5개 항과 북한의 3개 항의 차이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6월 초 싱가포르에서 열린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제10차 아시아안보회의에서 중국 국방부장 량광례(梁光烈)는 안보협력의 4대 원칙을 밝힌 다음에 가진 질의응답에서 과거와 달리 "우리가 북한과 소통해 온 것은 밖에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라고 솔직하게 답변하고 이어서 "중국은 북한에 모험을 하지 말라고 여러 경로로 권고해 왔다"고 밝혔다. 같은 모임에서 미국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는 '북한의 도발, 국제 규제, 양보를 통한 협상'의 악순환을 지적하면서 미국은 "더 이상 같은 말[馬]을 두 번 사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귀국 이후 북한의 언론과 방송은 방중(訪中)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반면, 한국에 대한 비방 강도를 급격히 높이면서 남·북 관계의 악화 책임을 한국에 돌리고 있다. 한편 한국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에 대한 사과를 전제로 6자회담의 개최와 포용정책의 가능성을 반복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한국과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네 개의 한반도 그림자 뒤에서 조용히 타고 있는 하나의 촛불이 한국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대북 공동전략을 논의하기 위한 방미를 일주일 앞두고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6자회담의 재개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중국은 북한에 대해서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와 나선경제무역지대 공동 착공과 같은 경제협력의 심화와 함께 더 이상 한국에 대해 모험을 하지 말고 6자회담으로 돌아오라는 외교적 압력의 이중(二重)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은 일단 남·북 관계의 개선 없이 북·중 협력을 최대한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최근 남·북 비밀접촉의 실패 책임을 한국 쪽에 일방적으로 전가하면서 대남비방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협력과 외교압력이라는 대북 이중 정책에 직면해서 북한은 현재의 '친중반남(親中反南)'정책을 장기화하기는 불가능하다.
한편 미국도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인내'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6자회담을 통한 관리도 필요하기 때문에 첫 단추로서 한국이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커트 캠벨은 지난 10일 베이징과 협의를 끝내고 서울에 도착하여 "중국에 북한이 한국과 관계개선을 시도하도록 최대한 노력해 달라고 부탁했으며, 미국도 남·북 대화에 진전이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네 개의 그림자 뒤에서 타고 있는 촛불에 불고 있는 바람의 방향은 남·북 관계의 긴장완화와 6자회담의 재개로 잡히고 있다. '선(先)사과, 후(後)6자회담'의 단순논리로 현실의 강한 바람을 피하기는 어렵다. 어설픈 비밀접촉의 뼈아픈 실패를 교훈 삼아 보다 장기적인 대북정책을 제대로 마련해서 국면을 주도해 나가지 못하면 뒷북치며 끌려가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