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뉴시스아이즈]이슈진단 '반값 등록금' 과연 될까-'필요하지만 방법이 문제' 반신반의

  • 2011-06-07
  • 이득수기자 (뉴시스)

 

한국의 대학등록금 수준은 미국 다음인 세계 2위이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세계 대학의 연간 등록금 현황에 따르면 2만1979달러인 미국(사립대)에 이어 8519달러인 한국이 두 번째였다.

 

대학교육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OECD국가 평균치의 절반 정도이며 등록금의 78%를 학생과 학부모가 직접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 기숙사비, 하숙비, 교재비 등을 합치면 학부모는 허리가 휘는 정도가 아니라 부러질 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반값 등록금’을 실천하라는 요구가 학부모 학생 시민단체 정치권 등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게 당연하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87%, 전체 대학은 4년제 200개 2년제 150개교이며, 대학생 수는 총 350만 명(대학원 포함 360만 명)이다. 이중 국·공립대는 18%이다. 대학 등록금 총액은 15조원, 장학금 총액은 3조5000억원으로 12조5000억원이 학생들의 순수 등록금 부담액이다. 참고로 자녀 1인당 대학까지 양육비용은 2억6000만원이다. (대학 및 학생 수, 등록금 총액 등은 방송통신대 기술대학 포함 여부 등에 따라 통계가 달라질 수 있음)

 

대학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개념은 지난 2007년 12월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 진영이 공약의 하나로 내놓은 것이다. 한나라당은 당시 이 내용이 대선 공약집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며 정식으로 공약한 것이 아니라고 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반값 등록금’하면 한나라당과 이 대통령을 떠올리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이 공약으로 인해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등록금 부담에 고통 받던 학부모와 학생 상당수가 지지표를 던졌을 것이다.

 

막상 정부를 꾸리고 보니까 국가재정 형편상 그게 안 되는 형편이므로 없었던 걸로 하자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비치면 시민들은 정부를 비판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부가 시민들에게 공약사항을 외면해 무책임하게 대응한다는 인상을 갖게끔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교육과학기술부, 청와대 등의 반응을 살펴보면 ‘재정여건 상 어렵다’ ‘포퓰리즘적인 발상이다’ ‘모든 대학에 다 지원하는 건 곤란하다’ 등으로 실행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황우여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가 지난달 취임 일성으로 반값 등록금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행정부에 큰 부담을 안겨주는 것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이 문제에 있어서 늘 야당과 시민단체의 공세에 몰려있던 한나라당이 이니셔티브를 장악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최근 중앙일보, YTN, 동아시아연구원의 공동여론조사에서도 반값 등록금 추진에 대해 응답자의 3분의 2이상이 찬성했다. 구체적으로 ‘재정이 허용하는 선에서 제한적 추진’에 58.4%, ‘재정적자가 생기더라도 적극 추진’에 19.9%가 응답해 찬성의견이 78.3%였고, ‘인기영합 정책이므로 반대’ 의견은 18.4%에 불과했다.

 

황 원내대표가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던 고액 대학등록금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와 원칙을 표출해 일견 신선한 충격을 주고 교육 아젠다를 선점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은 내년 총선과 관련해 여론을 염두에 둔 정치적 입장표명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며, 구체적인 실행방안까지 갖추고 있지는 않다. 황 의원 측에선 “일단 반값 등록금제 시행이라는 화두를 던진 것이며,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정책위 차원에서 논의하고,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종합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득구간별로 장학금을 차등 지급하는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황 의원 측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지난달 31일 반값 등록금 실행을 위한 TF팀을 만들어 교육부문 당 정책위부위원장인 임해규 의원이 팀장을 맡아 실행방안을 취합하기로 했다. 6월에 공청회를 열어 각계 여론을 수렴하고, 정부와 협의해 최종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김성식 정책위 부의장은 지난달 29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등록금 완화를 위해 들어가는 돈은 국민의 세금인데, 세금을 내는 국민의 동의를 받고 대학생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현재 75% 이상의 학생들이 받는 B학점을 기준으로 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뉴시스 5월29일 보도)

 

이 발언이 보도되자 일부 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 하며 학비를 벌어야 하는 형편에 B학점을 유지하기가 쉬운 일이냐며 거부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민주당은 6월 임시국회에서 반값 등록금 예산 5000억원을 추가로 편성한 뒤 당장 올 2학기부터 실행하자는 입장을 내놓았다.

 

민주당 천정배 최고위원은 반값 등록금에서 더 나아가 무상 등록금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천 최고위원은 부자감세만 철회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천 의원은 “대학생을 가진 부모들은 등록금과 교육비를 합치면 1년에 2000만~3000만원이 들어간다”며 “참여연대의 표현대로 ‘살인적인 교육비의 사회’ ‘미친 등록금의 나라’이다”라고 비판했다. 천 의원은 “대학등록금 전액을 면제한다면 매년 11조원의 예산이 필요한데 MB정부 집권기간에 부자감세로 90조원이 사라진 것을 감안하면 11조원을 집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반값 등록금이 정치권과 시민단체 학부모 재학생들의 요구대로 실현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첫째가 정치권의 실현 의지이며, 둘째가 재원확보다. 여기서 추가로 교과부가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부실대학 구조조정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이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교육부문 예산은 41조원으로 지난해보다 3조원이 증액됐고, 교육예산의 대부분은 초중고교 교육에 사용되며 대학교육에는 12%만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늘어난 3조원은 몽땅 초중등 교육에 투입한다. 한나라당의 반값 등록금 실천의 기본 방안의 하나는 대학교육 부문에 쓰는 교육예산의 비중을 선진국 수준인 20%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또 기업이나 개인이 대학에 쉽게 기부하고 투자하도록 법령을 개정하고, 대학의 장학금을 대폭 늘리며, 등록금에 주로 의존하는 기존의 대학재정 수입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 반값 등록금 실행방안의 골자이다.

 

한편 이주호 교육과학부 장관은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가 올인하듯 추진하고 있는 등록금부담완화(반값 등록금)방향에 대해 동의하고 6월말까지 당정 협의를 마치고, 내년 1학기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관은 대학등록금 부담 완화 건에 대해서는 공과(功過)를 동시에 갖고 있는 인물이다. 공(功)은 대학등록금을 반액으로 줄이자는 반값 등록금 정책의 원조라는 것. 이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인 2006년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교육비 부담 절반 줄이기 정책’을 입안했다.

 

과(過)는 지난해 이 장관이 고등교육법을 개정해 등록금을 직전 3년간 물가상승률의 1.5배까지 인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법적으로 등록금을 물가상승률보다 높게 올릴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반값 등록금 방침을 여당 신임 원내대표가 내놓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이 시큰둥하고 반신반의 하는 모습이다.

 

그 이유는 그간 한나라당이나 정부 주요 관련부처에서 줄곧 반대해 왔던 것을 총선을 1년 앞두고 갑자기 방향전환을 했기 때문인데, 여당이 신뢰를 얻기 위해선 재원마련에 대한 방책을 신속히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교과부의 기본 방향도 모든 대학생의 등록금을 ‘화끈하게’ 절반으로 줄이는 게 아니라 장학금 확대와 개별 대학에 대한 지원을 통해 등록금을 줄이도록 유도한다는 미지근한 내용으로 알려진 것도 대학생들의 시위가 잦아들지 않는 것과 상관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TF팀이 어떤 결론을 도출하고 교과부와의 당정협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는지는 아직 예상하기 어렵다. 이것이 실현되려면 대학 스스로 대학운영비의 절반을 조달하든가 정부가 등록금 총액의 50%를 재정으로 대학에 지원해줘야 가능한데, 대학 측에 기대를 걸기는 어렵다. 결국 정부가 해결해야 할 몫인데 예산편성에 있어서 등록금 반액 예산을 우선 순위에 둔다는 보장은 없다. 반값 등록금 실행 여부는 역시 국정 운영권자인 대통령의 정치 철학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30호(6월13일자)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