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법만 지켜라’에서 이젠 ‘법보다 엄한 기업윤리’ 요구

  • 2010-06-28
  • 정한울 (한겨레)
[헤리리뷰] 중국의 CSR 시장의 변화_소비자

기업역할 인식 10년새 역전

자율성보다 법적 강제 선호

윤리적 소비로 뒷받침해야

 

» 중국 소비자 열 명 중 일곱 명은 실제 윤리적 소비행동의 경험이 없어, CSR에 대한 인식과 실천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베이징의 대표적인 쇼핑거리인 왕푸징의 대형 명품쇼핑몰. 〈한겨레〉 자료사진

 

최근 중국 소비자들이 기업의 사회책임경영(CSR)을 바라보는 인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CSR을 ‘이윤 창출 및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영역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시각이 다수였다. 그러나 2000년대를 거치면서 ‘보다 높은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사회 전반의 개선을 위해 역할을 해야 한다’는 보다 포괄적인 사회책임인식이 부상하고 있다. 이는 국제CSR리서치기관인 글로브스캔과 한국의 동아시아연구원(EAI) 등 세계 20~30개국 조사연구기관이 1990년대 말부터 진행한 국제 여론조사 결과다.

 

1999년 중국 국민조사에서는 중국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최소한의 ‘법테두리 내에서 이윤 창출,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책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입장이 44%, ‘법이 요구하는 수준보다 높은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포괄적인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은 31%에 그쳤다. ‘양 입장을 절충해야 한다’는 응답은 22%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2008년 조사에서는 경제적 책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여론은 34%로 1999년보다 10%포인트 감소했다. 반대로 높은 기업윤리와 포괄적 사회책임을 강조하는 입장이 44%로 10년 전에 비해 13%포인트 증가했다. 절충해야 한다는 입장은 20%로 큰 변화가 없었다. 경제위기 이후 미국, 영국 등 서구 선진국 국민들 사이에선 높은 윤리기준 및 포괄적 사회책임을 강조하는 여론이 줄어들고 양자를 절충해야 한다는 여론이 늘어나는 것과 다른 양상이다.

 

중국 국민,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 CSR을 경제적 책임에 한정하는 여론이 많았던 것은 개혁개방 이래 중국의 국가적, 사회적 과제가 경제개발과 고도성장 노선으로 집약되어 온 국가사회적 환경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인민들의 눈에 중국의 기업은 정부와 함께 부국건설과 고도성장이라는 국가적, 전사회적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견인차였고 기업활동을 통해 지속적인 이윤 창출과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최대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인식이 다수였던 셈이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국제적으로 ISO-26000 사회책임국제표준 제정 노력이 가시화하는 등 환경, 보건, 교육, 지역공동체 발전과 같은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요구하는 압력이 커졌다. 국내적으로도 성장 우선 노선 아래서 사회양극화, 노동인권의 악화, 환경파괴 등 기업과 연관된 심각한 사회문제들이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중국 소비자들에게 여러 심각한 사회문제나 환경문제가 기업의 책임 영역일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킨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점은 중국 소비자들은 CSR을 기업의 자발적 노력보다는 정부 규제와 법적 강제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올해 실시한 30개국 CSR 조사에서는 무려 67%의 응답자들이 ‘정부가 기업들이 경제활동 범위를 넘어선 CSR활동을 강제하도록 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이는 2008년 조사에서 62%, 2009년 조사에서 63%를 기록한 이래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임을 보여준다. 경제위기 이후 CSR에 대한 정부의 법적 규제에 동의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한국(83%), 일본(55%)과 함께 규제친화적 여론이 강한 국가로 분류된다. 미국(39%), 독일(40%), 프랑스(43%) 등에서 규제에 미온적인 것과 대비된다.

 

중국 소비자들이 CSR을 위한 정부의 법적 규제를 선호하는 것은 정부주도경제라는 중국경제제도의 특성으로 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 중국 기업의 CSR활동에 대한 불신이 작용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CSR활동을 하는 것은 진정으로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다’라는 입장에 대해 무려 72%가 동의할 정도로 CSR의 진정성에 대한 불신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 중국 소비자가 바라는 대기업의 사회적 역할 인식변화

 

또 중국 소비자들의 CSR 인식과 소비행동 사이의 괴리로 인해 개별 기업의 CSR활동에 대한 소비자 압력이 미약한 것도 국민들이 정부 규제에 의존하는 요인이 된다. 2009년 조사에서 중국 국민들은 ‘소비자로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진술에 대해 무려 81%가 동의할 정도로 강한 자신감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정작 CSR 활동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기업에 대해 ‘그 회사 제품을 구매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포지티브 소비행동을 해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25%에 불과했다. ‘고려했지만 해본 적이 없다’는 응답이 35%, ‘고려도 실천도 안 해봤다’는 응답이 40%나 된다. 반대로 CSR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기업의 제품에 대해 ‘불매하거나 제3자에게 그 제품을 비판해본 적이 있느냐’는 네거티브 윤리적 소비행동의 경우 34%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고려만 했다는 응답이 33%, 생각도 안 해봤다는 응답이 33%로 열 명 중 일곱 명은 실제 윤리적 소비행동의 경험이 없었다.

 

이러한 중국 소비자의 CSR 인식과 실천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CSR을 정부 규제에 의존하는 데서 탈피해 윤리적 소비자 행동을 통한 자율적 규제력을 키우는 것이 중국 CSR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의 진정성과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것은 규제만으로 불가능하다. 강제에 의한 CSR은 항상 진정성 시비를 낳을 수 있으며 CSR활동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을 경우 기업에 있어 CSR은 기업 브랜드 이미지 전략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활동을 넘어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사회적 책임경영의 폭을 넓히는 것이 중국 기업의 몫이라면 착한 기업과 나쁜 기업을 가려내 착한 기업을 키워주는 성숙한 소비자 실천은 전적으로 중국 소비자들의 사회적 책임이 된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