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중국 기업 ‘사회적 책임’에 눈 돌리다

  • 2010-06-28
[헤리리뷰] 중국의 CSR

‘선부론’서 ‘조화사회 건설’로

투자자·노동자·소비자 선도

고성장 부작용 ‘해소제’ 주목

 

 

» 중국 기업 ‘사회적 책임’에 눈 돌리다. 사진 김명진 기자

 

한국인의 머릿속 ‘중국 상인’은 늘 영리에 밝고 약삭빠른 존재였다. 경제적 이익에 누구보다 민감하고, 명분보다 실리를 챙기는 사람들로 여겨졌다. 최근 수십년 동안 시장경제가 발달하면서 성장한 중국 기업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미지를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중국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에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10여년 사이 그 흐름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이제 중국 기업인에게 사회책임경영(CSR)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워졌다.

 

한겨레경제연구소의 2008년 보고서 <동아시아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에 따르면, 이 자극은 처음에 외부에서 왔다.

 

 

» 중국의 CSR. 그래픽 홍종길 기자

 

시작은 다국적기업이었다. 이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중국 내 공급업체에 노동 및 환경에 관한 자체 국제규범 및 윤리규정을 전달하며 지킬 것을 요구했다. 사회책임경영의 개념이 처음 중국에 알려지던 시기였다.

 

또 다국적기업의 중국 내 생산기지에서는 앞장서서 사회책임경영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중국 최초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즉 경제적 성과와 함께 사회책임 성과도 공개하는 보고서가 1999년 셸 차이나에 의해 발간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는 국제기구와 엔지오들이 중국 기업의 노동 및 인권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다. 노동조건이 새로운 무역장벽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이때 나온다.

 

사회책임경영의 동력이 내부로 옮겨오기 시작한 것은, 중국 정부가 경제사회정책의 일환으로 이를 적극 지지하면서부터다. 2006년 후진타오 정부는 11차 경제 5개년계획을 발표하면서 ‘조화사회 건설’을 국정운영 원칙으로 천명한다. 덩샤오핑 시대 이후의 ‘선부론’(先富論)에서 변화를 꾀한 것이다.

 

그러면서 기업 역시 조화사회 건설에 동참하기 위한 사회책임경영에 나서야 한다는 정책 기조를 가져간다. 정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자, 이후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사회책임경영은 빠르게 확산되어 간다. 시장 입장에서 보면, 여기까지도 외생적인 사회책임경영 드라이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2~3년 사이 큰 변화가 눈에 띈다. 시장 내적인 동력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투자자, 노동자, 소비자 같은 기업의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변화와, 이에 대응하는 기업의 적극적 몸놀림이 그것이다.

 

한겨레경제연구소가 이번에 중국의 사회책임경영을 들여다보게 된 것은 이 내생적 흐름 때문이다. 외부 압력엔 사회책임경영을 도입하는 시늉만 해도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내부 압력엔 정말로 이런 경영을 실행해야만 대응할 수 있다.

 

중국 사회 내부로부터의 사회책임경영 압력을 점검해보기 위해,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살폈다. 그리고 중국 기업의 대응 양상을 살폈다. 마지막으로 중국에 진출해 성장을 꿈꾸고 있는 한국 기업은 어떤 사회책임경영 전략을 갖고 있는지 조사했다.

 

중국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은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게 우리의 잠정적 결론이다. 중국 자본의 기업도, 외자계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제품에 투자할 투자자와, 제품을 만들 노동자와, 제품을 구매할 소비자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투자자 쪽을 보자. 상하이증시와 선전증시는 2009년 각각 사회책임투자지수를 내놓았다. 선전증시는 이미 2006년부터 상장기업에 대한 사회책임경영 가이드라인을 내놓는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 증시에 사회책임투자 지수가 나온 시기도 2009년이다.

 

노동자 쪽은 어떨까? 최근 폭스콘 사태와 노동자 연쇄파업 사태가 벌어지면서, 중국 기업은 이에 대한 적극적 대응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몇 군데 파업에서 노동자들의 요구조건이 관철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중국 내 기업이 노동조건에 대한 재점검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 사이에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글로브스캔과 동아시아연구원 조사 결과, 2009년 중국 소비자들은 높은 기업윤리와 포괄적 사회책임을 이윤 및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책임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10년 전과는 뒤바뀐 결과다.

 

시장의 직접적 이해관계자들이 이렇게 변화하자, 기업 경영자 역시 변화하고 있다. 영국 비영리기관 어카운터빌리티의 2010년 중국 경영자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89%가 환경 및 사회 성과가 장기적으로는 경제적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는 2007년의 67%에서 22%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중국에서 기업이 제대로 사회로 눈을 돌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구매력 기준 GDP, 이하 같은 기준)은 6000달러 수준이다. 한국의 1980년대 초반 수준이다. 1980년대 초반이면, 한국 기업에는 제대로 된 노동조합조차 없던 시절이다. 환경 등 기업 외부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사치처럼 여겨지던 시절이다. 늦게 출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경제발전 단계를 고려하면 일찍 출발한 셈이다.

 

한국 기업이 노동문제를 진지하게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1987년의 대규모 파업 이후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에 육박할 때다. 환경문제는 1992년 두산의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이후에야 진지하게 생각했다. 이때 국민소득은 1만3000달러였다. 지속가능경영은, 중국과 비슷하게 2000년대 중반 이후에나 시작된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시작한 것이다.

 

중국의 사회책임경영 컨설팅사 ‘신타오’(商道)의 궈페이위안 대표는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불거진 환경, 노동, 지역간 소득 격차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며 “중국에서는 정부 혼자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함께해야 사회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 중국의 소득수준이던 한국의 1980년대 초반, 기업에 대해 이런 조언을 하는 전문가가 있었을까?

 

시장경제를 가장 늦게 받아들인 중국이,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은 경제성장의 부작용을 흡수하면서, 중국만의 독특한 시장경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베이징/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사진 김명진 기자

 

▶ CSR: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기업이 경제적 수익성, 환경적 건전성, 사회적 책임성을 함께 고려하는 경영방식

중국 CSR 연구진 한겨레경제연구소 이원재 소장, 이현숙 연구위원, 김진경 선임연구원, 한겨레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