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특수성 때문에 지상군 파병이 어렵다면 미국과 긴밀한 협조 아래 민간재건팀의 규모 확대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두 정상은 이미 구면이다. 이번 회담은 2010년대 한·미 관계의 기본방향을 크게 좌우하게 될 중요한 만남이다. 제대로 준비 못하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머리를 맞대고 상의해야 할 의제는 아프가니스탄 지원, 북핵과 미사일, 경제위기 극복,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중에 미국에게 가장 시급하고 한국에게 가장 어려운 의제는 21세기 전략동맹의 상징으로 떠오를 아프가니스탄 지원문제다.
지난주 수요일 백악관은 냉전시대 미·소 정상회담이라도 열린 것처럼 분주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전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카르자이 대통령과 파키스탄의 자르다리 대통령을 따로 만났고 오후에는 3국 확대정상회담을 진행했다. 미국의 외교정책 전문잡지가 매년 발표하는 실패국가의 순위를 보면 세계 177개국 중 아프가니스탄은 7위 그리고 파키스탄은 9위이며 1인당 국민소득도 각각 400달러와 1000달러 수준의 최빈국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북한은 15위).
이 지역과 관련, 미국은 내년 국방예산에서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비(戰費)로 1300억달러를 책정하고 있다. 80년 만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으면서도 한달에 100억달러 이상을 쓰겠다는 것이다. 9·11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 테러조직과 가까운 탈레반 세력이 아프가니스탄에서 2001년 잃어버렸던 정치적 영향력을 다시 되찾고 파키스탄까지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러와의 전쟁' 제2기와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세기적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오바마 새 정부는 이미 실패한 군사적 해결방안 대신 보다 포괄적 해결방안에 힘을 쏟고 있다. 일단 그것은 최대한 경제적 방향에서 추진될 것이다. 지난달 초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경제위기 해결을 위한 G20 회의에 들른 후 바로 금년에 환갑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60년 전 소련을 가상 적으로 삼고 탄생한 NATO는 1990년 소련의 해체 후에도 꾸준히 가맹국을 증가시켜 왔으며,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국·영국·독일·캐나다 등을 포함한 41개국 5만6000명으로 구성된 국제안보지원군(ISAF)을 주관하고 있다. 오바마는 NATO가 아프가니스탄의 군사·치안·훈련·경제 영역에서 적극적 역할을 계속해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스스로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도록 하자는 NATO 정상선언을 함께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NATO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에서도 아프가니스탄 지원의 성과를 절실하게 바라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당연히 정상회담의 초점을 아프가니스탄 지원에 맞출 것이다. 또 짧은 시간에 '글로벌 코리아'로 성장한 우리에게 격찬의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글로벌' 한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기대할 것이다. 반세기 만에 '실패국가'가 아니라 '성공국가' 15위의 문턱에 서게 된 한국은 당연히 몸집에 맞는 지구적 그리고 지역적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야 한다.
그 러나 동시에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과 NATO 국가들이 세계질서의 구조적 변화 속에서 새로운 역할의 분담을 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지구적 역할을 현실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변화하지 않는 남북한 관계, 그리고 아직도 제대로 뿌리를 못 내린 민주화를 함께 계산에 넣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반도는 북핵이나 미사일에서 보듯이 사실상 아프가니스탄 못지않게 군사적 불안정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군이나 주한미군은 사실상 국제안보군의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섣부른 움직임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위험을 자초할 수 있다. 또 서양이 반천년 걸린 민주화의 여정을 반백년 만에 겪고 있는 한국은 정치권력의 기반이 자주 취약해지는 탓에 '촛불 민주주의'가 쉽게 불붙을 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횃불 민주주의'로 타오를 위험이 있다.
한· 미 정상회담의 성공 여부는 두 정상이 서로 상대방의 어려운 사정을 충분히 이해해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한국 정부는 최근에 아프가니스탄 지원을 2011년까지 3000만달러에서 7410만달러로 확대하고 민간재건팀(PRT) 규모도 늘리기로 결정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민간재건팀의 성공여부와 맞물려 있다고 할 때 만약 한국적 특수성 때문에 지상군 파병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아래 한국형 민간재건팀의 규모 확대를 신중하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영선 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