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대담] 파괴적 냉소주의 치유제는 신뢰회복

  • 2009-03-18
  • 이숙종 (매일경제)

공권력 무시 위험수위…합법적 절차ㆍ대안 갖고반대의견 표출해야
극단의 개혁ㆍ진보세력 여론 영향력 너무 커…중도 정책파트너 활용을
사회지도층의 권위 추락…팔로어십 부재 한 원인 대오각성ㆍ자정노력 필요

 

"공권력은 법을 집행하는 국가권력이고, 공권력이 지켜지는 것은 법의 지배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요건입니다. 시민들이 공권력을 무시하는 것은 팔로어십(followership) 부족 때문입니다."

매일경제신문이 `위기 극복의 열쇠 팔로어십` 기획 시리즈와 관련해 마련한 지상 좌담회에서 각계 전문가들은 "팔로어십을 고양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정치적 냉소주의를 없애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국민은 비판과 동시에 생산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법제도 틀 안에서 원칙을 지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팔로어십과 함께 리더십 부재를 꼽는 전문가도 있었다. 대통령의 소통 부재와 신뢰 부족이 국민에게서 자발적인 팔로어십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좌담회에는 정부를 대표해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 시민단체를 대표해 권영준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경희대 교수), 노조를 대표해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학계 전문가로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동아시아연구원장)와 이창원 한성대 교수가 참가했다.

 

 

 

 

-팔로어십 부재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 사회 팔로어십에 대해 진단한다면.

▶이숙종 교수=팔로어십이 부족한 대표적인 사례가 시민들이 공권력을 무시하는 것이다. 정부나 법에 불만이 있다면 먼저 법을 고치거나 합법적 절차를 통해 반대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자신에게 불리하면 법과 제도를 지키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민주사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박형준 기획관=대화와 조정, 타협을 미덕으로 하는 `원탁형 민주주의 모델`이 뿌리 내리기에는 우리 정치ㆍ문화가 너무 극단적이다. `대안 없는 반대` `공권력 경시` `자기 이익을 전체 이익과 조화시키려는 노력의 결핍` 등이 팔로어십 문제를 제기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권영준 이사장=우리 사회의 이념적 지향으로 볼 때 각각 20% 정도 되는 양 극단을 제외하고 60% 정도인 중도통합ㆍ개혁 세력들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반드시 지킨다. 문제는 양 극단인 40%가 여론 형성 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에 팔로어십 부재 문제가 나온다. 중도세력들이 영향력을 높일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이들을 정책파트너로 삼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이창원 교수=팔로어십이 부족한 원인으로 `사회 지도층 권위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사회 지도층 권위와 신뢰가 땅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사실상 권위를 바탕으로 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김종각 본부장=한국과 같이 급속하게 경제 발전을 이룩한 나라는 리더 역할이 구성원보다 더 크다. 지금까지 국민이 지켜본 리더는 부정적인 모습이 더 컸고 이것이 구성원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데 방해요인이 됐다. 물론 팔로어십도 변해야 한다. 저항과 반대가 한국 사회 발전에 기여한 바가 있지만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어려운 시대다.

-팔로어십 부재는 자신이 뽑은 조직의 대표가 내린 결정을 뒤집고 권위에 대해 승복하지 않는 문화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부분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김종각 본부장=민주적이고 공정한 절차를 거친 의사결정은 존중돼야 한다. 일부 소수가 전체 의사결정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물론 민주적인 절차를 위해서는 소수 의견을 봉쇄하고 표출하지 못하게 해서도 안 된다. 권위에 있어서도 민주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형성된 권위는 지켜야 한다.

▶이창원 교수=권위 자체가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권위에 승복하는 문화가 없을 수 있다. 국회의원, 법조인, 관료, 교사 등 사회 지도층들이 각종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사회 지도층 스스로 자정 노력과 윤리규범 측면에서 대오각성이 필요하다.

▶이숙종 교수=우리 대표로 특정인을 뽑았다면 그들 권위를 인정하고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만일 무능하고 부패한 대표를 뽑았다면 왜 애당초 그런 사람이 뽑혔는지, 유권자로서 책무를 다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팔로어십과 리더십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리더십 부재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권영준 이사장=지난해 촛불집회는 대통령과 국민 간 소통 부재와 신뢰 상실 때문에 증폭돼 국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스스로가 당선 첫날 국민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국민들을 섬기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김종각 본부장=일방적 리더십이 문제다. 충분한 설득과 이해를 구하고 당사자들에게 동의를 받거나, 동의가 안 되더라도 최소한 내용과 절차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현대사회의 리더십은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고, 구성원 발전을 지원하는 육성(make)의 리더십이어야 한다.

▶이숙종 교수=리더십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회를 이끄는 것이다. 다양한 이해관계 표출로 사회적 갈등이 많아졌을 때는 정부가 현명한 조정자가 돼야 한다. 오늘날 리더십에 대해 염려가 있다면 정책에 우선순위를 정해 적시에 결정하고 집행하는 결단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성공한 정책이 되지 못한다.

▶이창원 교수=현 정부의 `결과지향적` 국정 운영이 리더십 부재를 낳는다고 본다. 기업에서는 계약에 성공하고 수익을 올리고 나면 설사 과정에 문제가 좀 있더라도 모든 것을 용서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공공 부문에서는 과정에도 문제가 없어야 결과가 빛을 발하게 된다.

▶박형준 기획관=위기 앞에서 지도층의 희생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위기 국면에서는 냉철하게 국가 앞날을 판단하는 통찰력과 이를 실행에 옮기는 실천력을 보여주는 것이 국민에게 신뢰를 얻는 길이다.

-우리 사회 팔로어십을 높이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가.

▶박형준 기획관=권리에 대한 주장에 앞서 사회적 책임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에 대한 관용 정신이 확산돼야 한다. 개별 사업장 이익을 넘어서 국가 전체의 위기 극복에 협력하고 비판과 동시에 생산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공식적인 법과 제도 틀 안에서 원칙을 지키는, 노력을 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숙종 교수=리더십과 팔로어십은 동전의 양면이다. 팔로어들이 없으면 리더도 없고, 리더가 없으면 팔로어들도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 팔로어십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냉소주의다. 이러한 냉소주의를 극복할 수 있도록 사회적 신뢰, 정치적 신뢰를 축적하는 일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는 파괴적 냉소주의를 치유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권영준 이사장=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주도권 회복이 급선무다. 이것을 전제로 불법ㆍ탈법에 대한 일벌백계와 함께 법치주의 확립이 필요하다. 윗물이 맑아지면 동시에 아랫물도 맑아진다. 이것이 사회적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으면서도 큰 진전을 볼 수 있는 방법이다.

▶김종각 본부장=구성원 간 충분한 토론과 설득 과정이 필요하다. 설령 합의에 이르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다 해도 그 과정이 상호 침투돼 전체 틀을 파괴하는 사태까지는 가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빨리 빨리`를 외치며 달려왔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존중과 공존, 대화와 타협에 익숙지 않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일수록 충분한 시간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 리더십 부재 해결 방법은…`나를 따르라` 안통해 

   설득하고 이해 구하는 소통의 리더십 절실

-리더십 부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이창원 교수=리더가 국민 개개인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처럼 "국민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더욱 더 국민의 의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라고 선언해야 한다. 국민이 개별적으로 존중을 받는다는 것을 느낄 때 많은 국민이 지도자의 리더십에 공감할 것이다.

▶김종각 본부장=의사결정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 과반수라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당사자간의 이해를 높이는 충분한 토론과 설득을 해야 한다. 상명하달식의 회의 문화부터 고쳐 나가야 한다. 최근 들어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 회의 효율성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끝내는 식의 의사결정은 구성원의 자발적인 참여를 얻기 어렵다. 일분일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의사결정은 신속할수록 좋다는 맹목적인 믿음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진정한 리더십과 팔로어십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숙종 교수=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일수록 리더십에 목마르게 된다. 보다 체계적이고 발 빠른 경제대책도 중요하겠지만 정부나 국회는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지도자들 스스로 자신의 말과 아이디어의 실천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보여줘야 한다. 또 오늘날의 팔로어들은 매우 유식하며 까다로워 지도자의 리더십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권영준 이사장=법 앞에 평등이라는 법치주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 나가는 동시에 문화적ㆍ의식적 선진국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치ㆍ경제 선진국들은 문화적이나 의식적으로도 선진국이다. 정직이 문화가 되고 감사가 일상이 되는 품격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즉 국격을 세우는 작업이 곧 리더십의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박형준 기획관=현재는 위기극복을 위한 수준 높은 리더십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는 리더의 정확한 비전 제시와 함께 팔로어의 동의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리더는 팔로어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팔로어는 리더에게 창조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양자 간 긴밀한 교감과 소통 속에서 권력관계가 아닌 협력관계로서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정리 = 박정철 기자, 이승훈 기자, 박종욱 기자

사진 =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