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4·9총선 1년, 정치권의 현주소] ① 한나라당

  • 2009-04-09
  • 백왕순기자 (내일신문)

"숫자가 정치안정 담보 못해"

여권 국회장악 시도가 정치불안 불러

 

국회가 법을 잘 지키고 있다 5.3%. 국회 신뢰도 6.3%. 무당층 47.3%.

 

여론조사에 나타난 대한민국 국회의 현주소다. 5.3%의 수치는 지난 3월 21일 동아시아연구원과 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다. 다른 사회기관과 비교해 국회가 꼴찌를 했다. 신뢰도 6.3%는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해 12월 8~9일 실시한 주요기관별 신뢰도 조사 결과다. 무당층 47.3%는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가 3월 13~14일 실시한 정례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수치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정치학)는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극대화되고 있으며,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국회와 정당이 제 역할을 못하니까,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요구하는 상태에 이르렀다"며 "지난해 촛불집회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덧붙였다.

 

◆ 지도부 독자성 상실 =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깊어진 책임은 여야 모두에게 있지만 특히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국민들은 지난 연말연초 국회를 생각하면 '해머'와 '전기톱', '몸싸움'과 '날치기'를 떠올린다. 대화와 타협, 양보와 합의라는 민주적 절차보다 '숫자의 힘'을 믿고 밀어붙이려는 한나라당에게 일차적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4월 9일. 1년 전 한나라당이 10년만의 정권교체에 이어 의회권력까지 장악한 날이다. 153석을 얻은 한나라당은 국정운영의 안정을 위해 친박근혜계 의원들을 입당시키면서 170석의 거대 여당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170석의 한나라당이 보여준 지난 1년간의 국회운영은 안정보다 불안의 연속이었다. 김 교수는 "숫자가 안정을 담보해주지 않는다"며 "숫자가 많으면 밀어붙이려는 정치 불안요소가 잠재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숫자의 유혹은 한나라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정치가 가지고 있는 폐단이기도 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의원은 “정치적 불안은 여권이 국회를 지배하려는 데서 기인한다”고 원인을 진단했다. 국회는 여야 교섭단체간의 대화와 타협 그리고 다수결원칙에 의해 운영되어야 하며, 그래야 국회가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여당을 장악하려하고,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은 국회를 지배하려하기 때문에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야당은 정치적 파트너가 될 수 없으며, 자연히 여야간 극한 대결구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여권의 국회장악 의도는 지도부의 독자성 상실로 이어진다. 김 교수는 "당청 주례회동에서 당 대표가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것처럼 각인되어 있다"며 "한나라당이 청와대 눈치를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과거 제왕적 대통령 체제는 아니더라도 당을 무력화 시키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지도부의 독자성 상실로 여야 협상보다 청와대의 의중이 더 중요하게 자리 잡게 되고, 자연히 타협과 양보보다 밀어붙이기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연말연초 미디어관련 법안 밀어붙이기가 대표적 사례다. 지도부의 독자성 상실은 개별 의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줄서기와 권력 눈치 보기를 하고 있다.

 

◆ 당 분열과 시스템 취약 = 지난 1년간 정치적 불안은 당내 분열과 공조직의 붕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 불안의 한 요소로 한나라당 주류(친이명박)와 비주류(친박근혜)의 갈등구조를 꼽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진영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당을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없는 기형적 구도다. 한나라당의 지도부는 형식상 주류지만 내용상으로는 주류가 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나라당의 기반인 보수와 영남은 비주류인 박 전 대표측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적 시스템 붕괴도 심각한 문제다. 당 안팎에서 "최고위원회의보다 최고·중진연석회의가 더 강력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관리자로 나선 이상득 의원이 전방위 활동을 하면서 당의 공식기구와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당지도부의 독자성 상실과 시스템의 붕괴는 여론조사 지표에도 반영되었다. 지난해 11월부터 한나라당과 이 대통령의 지지도가 역전되고, 당 지지도는 20%대에 머물러 있다. 다행히 한나라당 초선의원들의 모임인 '민본21'에서 8일 국회제도개혁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변화와 개혁을 모색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권영진 의원은 한나라당의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를 제시했다. 권 의원은 "대통령은 의회를 구성하는 지도부, 특히 야당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국정운영의 기본 틀로 삼아야 한다"며 야당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