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미국 내 보호무역주의 대두 … 한·미 FTA 기대 반 걱정 반

  • 2008-07-24
  • 전수진기자 (중앙일보)

비라이터 미 아시아재단 총재-이홍구 전 총리(EAI 이사장) 대담

미군 재편성은 한·미 동맹의 자연스러운 진화
아시아 공동체 움직임 … 미국도 적극 지지 필요

 

아시아재단의 더글러스 비라이터 총재가 방한해 이홍구 전 총리와 아시아 지역 정세 및 한·미 관계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아시아재단은 아시아 국가의 정치·사회·경제적 발전과 번영을 지원하기 위해 1954년 설립된 미국의 비영리·비정부 기구다. 아시아 국가들과 미국의 관계 향상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중앙일보 고문이기도 한 이 전 총리는 아시아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다. 이 전 총리는 주미대사 시절(1998~2000)부터 당시 미국 하원의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의 위원장이었던 비라이터 총재와의 인연을 이어왔다. 비라이터 총재는 미 중서부 네브래스카주 출신으로 하원의원(13선)을 지냈다. 대담은 22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진행됐다.

 

중앙일보 이홍구 고문(右)과 더글러스 비라이터 아시아재단 총재가 22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김성룡 기자]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아시아재단

 

▶이홍구=아시아재단이 반세기 넘게 해온 많은 일 중 하나가 아시아 지역의 민주화를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민주주의 불안 징후가 감지됩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역동적이지만 다소 불안정하고, 일본의 경우도 총리가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고 있지요. 동남아 지역의 민주주의도 순탄치 않습니다. 얼마 전 만난 아시아 전문가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도 같은 생각이더군요.

 

▶비라이터=걱정스러운 징후들이 보인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특히 동남아 지역에서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징후가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와 같은 경우는 1997, 98년 상황에 견주어 볼 때 대단한 진보를 이뤘어요. 잘돼 가고 있는 국가들의 사례도 분명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때로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인해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동티모르에서는 얼마 전 대통령 암살 기도가 일어나는 등 정치적 불안이 여전히 존재하는 게 사실입니다. (이번 방한에 이어) 몽골을 방문하는데, 이 나라도 최근 치러진 총선을 두고 야당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서 대규모 폭력시위가 일어나 한바탕 홍역을 치렀습니다. 선거가 공정히 치러졌다고 보는 국제사회의 의견과는 다른 움직임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여야 지도자 모두를 만나볼 예정입니다. 아시아 여러 나라가 민주화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이홍구=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공고히 제도화하는 과정이 때론 더 힘들지요.

 

▶비라이터=맞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시아재단이 주력해온 분야 중 하나가 각국에 시민단체를 만들거나 강화하는 일이었습니다. 선거를 공정히 치를 수 있도록 감독 기능을 기르는 데도 힘썼지요. 올해 4월 네팔에서 치러진 제헌의회 선거를 위해 1만9000명에 이르는 선거 감독원을 교육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치러진 네팔의 선거는 국제적으로도 공정했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네팔 왕정도 평화롭게 막을 내렸지요. 12월께 열릴 방글라데시 선거에도 감독관을 교육하고 파견할 예정입니다.

 

◇미국 대선과 아시아

 

▶이홍구=그간 미국이 이라크전을 비롯한 중동 문제에 여념이 없는 나머지 아시아는 뒷전이 아니었나 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내년에 새로 들어설 미 행정부는 어떨 거라고 보는지요.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마침 중동과 유럽을 순방 중입니다만.

 

▶비라이터=미국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몰입하다보니 다른 지역들은 미국 정부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고 느끼는 것이 전반적 인식이지요. 하지만 올해 대선의 두 후보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연결고리가 확실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민주당 오바마 후보의 경우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어린 시절 인도네시아에서 잠시 지내기도 했지요. 그의 어머니는 인도네시아에서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하면서 인도주의적 활동을 펼쳤습니다. 1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재단 이사회를 개최했는데, 그때 보니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오바마 의원을 마치 자국 출신인 것처럼 살갑게 생각하더군요.

 

▶이홍구=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포로로 잡혀 5년 반을 하노이에서 보냈고, 그 뒤 미국과 베트남의 국교 정상화에 앞장서기도 했죠.

 

▶비라이터=그렇습니다. 두 후보 모두 아시아에 대해 상당히 높은 관심을 보일 거라는 증거지요. 이런 점들을 볼 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역할과 관심이 줄어들지 않을 거란 점은 확실합니다. 아시아는 미국에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 미국이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접어야 합니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저도 의원 활동을 하면서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미국의 미래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아시아에 대한 관심의 폭을 넓힌 바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중국 등을 방문하고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를 선택해 활동했지요.

 

▶이홍구=그간 아시아에선 지역 공동체를 발전시키고 관계를 더 돈독히 하자는 움직임이 있어 왔습니다.

 

▶비라이터=그런 움직임을 미국이 적극적으로 지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지역 공동체를 꾸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아우르는 활동으로 발전할 수도 있지요.

 

◇한·미 관계

 

▶이홍구=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의회 비준에서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한·미 FTA는 아시아 국가와 미국의 첫 FTA이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최대 규모의 FTA이기도 합니다만. 기대 반, 걱정 반인 상황입니다.

 

▶비라이터=현재 미국에서 보호무역주의 정서가 득세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미국 시민들이 점점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FTA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적어도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는 내년 1월 전까지 의회 비준이 이뤄지는 건 어려울 거라고 전망합니다. 하지만 한·미 양국이 오랜 기간 공들여 준비해온 문제고, 합리적 결론이 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대선 후보들 모두 뛰어난 분들이고, 한·미 FTA의 이점을 잘 판단할 거라 생각합니다.

 

▶이홍구=미국과 콜롬비아의 FTA도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지요.

 

▶비라이터=그렇습니다. 한·미 FTA가 난항을 겪고 있는 건 한국과 어떤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FTA란 것이 순탄치 않다는 거지요.

 

▶이홍구=한·미 관계의 또 다른 중요한 문제인 북핵과 관련해 6자회담을 중심으로 긍정적 진전도 있었지만 과연 완벽한 문제 해결이 이뤄질지에 대한 우려가 남아 있습니다.

 

▶비라이터=북한과 협상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압니다. 한국인들은 인내심을 갖고 관대한 태도를 보여왔지요. 과연 북한이 핵에 대한 야망을 완전히 포기할지에 대한 회의감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게다가 일본의 경우는 납치 문제가 걸려 있고, 한국도 최근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을 겪었죠. 그럼에도 6자회담은 계속할 가치가 있습니다. 6자회담을 단순히 북핵 문제에 국한시킬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정치·사회적 문제를 아우르는 포럼과 같은 형태로 바꿔나가는 게 좋다고 봅니다. 또 한 가지 항상 염두에 둬야 할 점은 북핵 문제가 한국과 미국의 불화를 일으키는 계기로 작용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협상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인상을 주면 절대 안 된다는 거지요.

 

▶이홍구=만약 북한이 한두 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면 힘의 균형 문제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요. 미국·한국 그리고 일본이 긴밀히 협조하며 중국과도 함께해야 할 겁니다.

 

▶비라이터=맞습니다. 한·미·일 3국 공조가 중요합니다. 또 중국이 지금까지 해온 긍정적이고 중요한 역할도 평가해야죠.

 

▶이홍구=한·미 동맹 문제는 어떻게 봅니까.

 

▶비라이터=한국은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라는 데 변함이 없습니다. 한국은 민주주의를 극적으로 발전시킨 훌륭한 사례입니다. 단, 군사동맹의 측면에서는 변화가 있습니다. 한국도 그동안 전력을 증강했고, 미국은 한국과 일본 대신 미국의 영토인 괌을 중심으로 병력 배치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요. 그러나 이것을 한국의 안보에 위협을 주는 요소로 이해해선 안 됩니다. 한·미 동맹의 자연스러운 진화라고 봐야죠.

 

▶이홍구=최근 한국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거 같습니다. 인터넷 발달과 함께 젊은 세대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면서 새로운 의미의 참여민주주의가 등장하고 있고, 이는 전통적인 정치제도도 압박하고 있는데요.

 

▶비라이터=인터넷과 통신을 통해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는 것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현상이지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고, 이런 움직임은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런 변화가 참여민주주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함께 고민해봐야 합니다.

 

▶이홍구=한국과 미국이 오랜 민주 동맹국으로서 함께 고민해 나갈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오랜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