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10·4 공동선언’이 남긴 두 가지 숙제

  • 2007-10-04
  • 하영선 (조선일보)

내년은 한반도의 남과 북에 단독정부가 들어선 지 꼭 60년이 되는 해다. 철이 들 때도 되었건만 분단의 역사는 쉽사리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네 번째 시도다. 1972년의 7·4 공동성명은 첫 번째 시도였다. “박정희 목을 따러 왔다”는 1·21사태(1968년)의 기억이 생생한 상황에서, 이후락 정보부장의 평양 방문과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북한의 “조국통일 3대 원칙”을 그대로 담고 있는 7·4 공동성명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러나 분단 극복의 꿈에서 깨어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해가 가기 전에 남과 북이 생각하는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의미가 전혀 다르다는 현실을 겪어야 했다.

남과 북은 탈냉전의 세계사적 변화 속에서 1990년대 초 남북한 기본합의서를 마련하고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합의했다. 이 노력은 제1차 북핵 위기를 맞고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세 번째 타자는 6·15 공동선언(2000년)이었다. 그러나 교류 협력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실험을 막기에는 역불급이었다.

4번 타자로서 2007년 정상회담이 과연 기대처럼 홈런을 칠 것인지 아니면 또 한 번 공중에 뜬 볼로 물러나게 될지를 모두들 궁금해하고 있다. 두 정상이 합의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부터 훑어보자. 6·15 공동선언보다 세부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10·4 선언의 핵심은 예상대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항목들이다. 평화항목은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보장을 위한 남북협력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국제협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의 실질적 이행은 90년대 당시 남북기본합의서의 남북불가침선언이 북핵문제 때문에 사장되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김 위원장의 북핵문제에 대한 결단 없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6자회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핵이 명실상부한 폐기의 길로 들어서지 않는 한 미국이 본격적으로 북미관계개선에 나설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를 비롯한 남북한 공동번영 항목이 현재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위기 극복에 본격적으로 기여하려면 이제까지의 선군정치(先軍政治)에 기반한 제한적 협력을 넘어서서 개혁개방에 기반한 본격적 협력을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따라서 10·4 선언의 홈런 여부는 한국이나 국제적 노력보다는 북한이 이제까지의 선군적 사고를 넘어서 얼마나 과감하게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개혁개방적 사고로 한반도 평화와 공동번영의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가에 달려 있다.

2박3일 평양방문에서 노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언급은 첫 단독 정상회담 직후 남측 수행원들과 가진 오찬에서 남긴 말이다. 김 위원장의 평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확인했으며 동시에 쉽지 않은 벽을 느꼈다고 말하면서 대통령은 그 예로 “개혁과 개방이라는 용어에 대한 불신감과 거부감을 어제 김영남 상임위원장과의 면담, 오늘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느꼈다”는 중요한 지적을 했다. 이 지적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겠다고 느낄 정도였다면 김정일 수령체제가 선군정치에서 개혁개방정치로 변환할 가능성은 당분간 희박하다. 김 위원장이 개혁개방에 대해 보다 적극적 자세를 취하지 않는 한 노 대통령이 둘째 날의 만찬사에서 강조한 경제협력과 평화의 선순환적 발전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두 가지 면에서 그렇다. 개혁개방 없는 경제협력은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동시에 경제협력이 체제유지에 미칠 악순환적 발전을 두려워해서 과감한 경제협력을 주저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이 남긴 숙제는 분명하다. 노 대통령이 희망하고 있는 평화와 번영의 선순환적 발전은 세계사의 탈냉전적 변화, 한국의 민주화에 이어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북한의 탈(脫)선군정치라는 어려운 숙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서 밝혀진 것은 북한이 아직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첫 열쇠는 북핵문제의 해결이고 마지막 열쇠는 개혁개방이다. 다음 정상회담은 북한이 두 열쇠를 마련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하영선 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