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정상회담에 바란다 … 감격은 작더라도 성과 큰 회담 되길

  • 2007-10-02
  • 이홍구 (중앙일보)

우리 대통령으로 두 번째,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회담을 위해 떠나는 날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처음이 아니다 보니 과도한 흥분은 가라앉은 모습이지만 지금 우리 국민 마음속엔 기대와 우려가 뒤섞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상회담으로 통일을 향한 한 보 전진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면서도 반면 극적인 성과를 거두려는 조바심이 상황의 논리를 앞지르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분단 시대의 동.서독 관계를 거울로 삼아 감상적 표현이나 요란한 행사보다 차분하고 합리적인 협상으로 구체적인 결과를 하나씩 쌓아갈 수 있기를, 즉 감격은 작더라도 성과가 큰 회담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누가 뭐래도 나라와 국민을 대표해 정상회담에 임하게 된다. 따라서 개인의 생각이나 소신 못지않게 대다수 국민의 입장과 바라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뜻에 충실하려 노력할 때 명분과 실효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사실 정상회담의 주역은 양측 지도자들이지만 실질적 주인공은 7000만 우리 동포가 아니겠는가.

지도자는 왔다가 가는 존재이나 민족은 영원한 것이다. 그러기에 양쪽 지도자들의 정치적 입지나 역사적 위치보다는 민족 구성원 모두의 권리와 안전, 그리고 복지를 어떻게 보장하고 향상시켜 나갈 수 있는지, 그것이 회담의 최대 목표이며 참된 의의임을 회담 당사자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소중하다는 것, 그리고 이 땅에서 우리 동포가 함께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발전시켜나갈 민족공동체가 바로 통일의 모체임을 우리는 적극적으로 강조해야 된다.

우리는 북한을, 아니 남북한 모두를 따뜻하게 비춰주는 햇볕을 사랑하고 고마워한다. 그러나 햇볕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통일을 가능케 하는 열린 민족공동체 건설에 꼭 필요한 햇볕이기에 우리에겐 소중할 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민족공동체"란 개념의 사용을 스스로 회피하는 듯 싶은 기이한 풍조가 우리 한국사회에서 만연되고 있다.

"공동체"의 기반 없이 "연방"이나 "연합" 같은 인위적인 체제만을 논의하는 것은 반드시 경계해야 될 것이다.

우리가 굳이 열린 공동체를 강조하는 것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이 함께 풀어야 할 최대 과제는 바로 빠르게 역사발전의 예외지대로 전락하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서 비롯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개방과 폐쇄 사이의 격차와 불균형이 한반도, 동아시아 및 전 지구적 차원에서 얼마나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지는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실 이번 회담은 그러한 위기를 지혜롭게 관리하고 극복하기 위한 개방의 물꼬를 트려는 공동 노력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폭넓게 다양한 교류협력사업을 남북이 합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공동체 건설의 기본 틀을 명시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민족에 대한 엄숙한 약속인 "비핵화 공동선언"이 결코 휴지가 될 수 없음을 남북 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재삼 확인한다면 핵무기 보유로 불균형과 고립의 위기에서 탈출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북한의 위험한 망상을 잠재우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개인이든 민족이든 노력 못지않게 운이 따라 주어야 일이 순조롭게 풀려가는 법이다. 94년 7월 25일 평양에서 예정되었던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은 그 보름 전 김일성 주석의 급서로 무산되었다. 이를 못내 아쉬워하면서 오늘 시작되는 이번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도록 행운이 뒤따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5년 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가능케 한 놀라운 행운이 아직도 유효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홍구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