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나의 애독서]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 2009-01-09
  • 이정환 (세계일보)

- 영국 보수당의 역사유연한 변화 대응과 자기변혁
- 한국사회, 英 보수당서 배워야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으로 닥쳐올 실물경제 침체가 더 큰 걱정이라고 한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발전해온 영국 보수당의 역사를 다룬 강원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영국 보수당의 역사’(동아시아연구원)란 책이 시의적절하다고 생각되어 추천해드린다.

 

영국 보수당은 그 명칭에서 보듯이 기존의 질서와 이해관계를 지키려는 정당이다. 이러한 보수당이 역사의 숱한 도전을 이겨내고 200여년간 존속하고 있다. 봉건시대의 지주와 귀족계급으로 출발해 지배층의 이익을 대변해온 정당이 산업혁명과 1·2차 세계대전, 대영제국 쇠락 등 급격한 정치적 환경 변화를 이겨내고, 현대 대중민주주의 시대까지 경쟁력 있는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발전해 왔다.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당이 등장하고 치열한 경쟁 상대였던 자유당이 정치적으로 몰락하는 정치구조의 변화가 있었다. 구체제를 지키려는 보수당이 어떻게 오랫동안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우선, 영국 보수당의 현실 변화에 대한 유연성과 선제적 대응을 들 수 있다. 보수는 원래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지키려는 속성이 강하다. 하지만 영국 보수당은 변화를 거부하거나 수구적이지 않았다. 고집스럽게 있는 그대로 지키려 하지 않았다. 현재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양보하고 변화를 더 빨리 수용하는 유연함을 보였다.

 

어떤 시기는 시대 변화에 맞춰 노동당보다 더 진보적인 사회개혁 정책을 시행한 것이 보수당의 생명력이고 경쟁력이었다. 물론 시대 변화나 민심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선거에 참패한 경우도 있었지만 유연한 현실 적응력으로 신속히 집권세력으로 회복했다.

 

둘째는 영국 보수당의 실용성에 바탕을 둔 자기 변화의 리더십이다. 기존 전통과 질서, 제도를 지키기 위해 현실과 타협했다. 교조적이거나 이념적 독단에 빠지지 않고 변화하는 현실에 자신을 맞춰가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념이나 원칙의 순수성보다 실용성을 더 중시한 것이다.

 

다음으로, 영국 보수당은 지배세력이 배타적인 집단으로 남아있지 않고 외연을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토지 소유 계급과 귀족 정당에서 출발하여 산업혁명 이후 ‘상공업자의 정당’, 노동자에게 투표권이 확대된 후 ‘복지국가의 정당’으로 변화했다.

 

영국 보수당의 생명력은 시대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처와 뛰어난 적응력, 끊임없는 자기 변신으로 정리할 수 있다. 보수는 변화를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시대적 유행이나 사고방식에 저항하며, 사회의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급진적이고 전면적인 변화보다는 통제 가능한 점진적이고 온건한 변화를 수용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변화가 요구될 때 선제적으로 개혁안을 도입하고, 개혁이슈를 선점하는 것이 현재의 이익이나 가치를 보존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지키는 것이 목표인 영국 보수당이 보여준 현실 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개혁 세력에 앞선 자기변혁의 리더십은 어려운 시기를 헤쳐가고 있는 우리 사회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정환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