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새 판 짜기에 EU · 동아시아 역할 커질 것”
2009 세계 질서의 변화와 한국의 선택 EAI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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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증유의 경제위기 속에 맞은 2009년의 지구촌은 다소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금융위기와 이라크 전쟁의 실패로 쇠퇴론이 대두되고 있는 미국의 힘과 리더십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새로이 출범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과 대처 능력이 그 첫 시금석이다. 그 틈을 타 중국은 국제적 위상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호기를 노리고 있다. 2009년의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나라 간 외교력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국은 이처럼 격동의 물결에 휩싸인 세계 질서의 재편을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새해를 맞아 동아시아연구원(EAI)의 안보 패널 연구자들은 중앙일보를 통해 미국과 동아시아, 북핵 문제, 북·미 및 한·미 관계를 전망해 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 |
하영선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정보지식 기반 위에 경제 군사 결합
미국, 힘 빠졌지만 지도력 지속될 것
마상윤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오바마 대외정책의 화두는 ‘균형력’
축구로 치면 미드필더 역할 하게 돼지난 8년간 부시 행정부가 변환의 개념을 중심으로 핵 테러리즘의 위협에 대응하는 전략을 추진했다면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균형을 화두로 삼아 조정될 전망이다. 물론 오바마도 핵 테러리즘의 위협을 심각하게 다루겠지만 접근 방식은 부시와 차별화될 것이다.
오바마의 차별화 시도는 균형력(power of balance)의 발상에서 출발한다. 균형력은 세력균형(balance of power)과는 차원이 다른 발상이다. 만약 미국이 세력균형에 입각해 정책을 편다면 중국 같은 잠재적 경쟁국의 견제가 중심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은 경쟁국의 부상뿐 아니라 테러리즘과 그 온상이 되는 실패국가 문제 등 복합적 도전을 맞고 있다. 세력균형적 접근과 군사력만으로는 복합적 도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으며, 미국 국력의 제 요소를 통합해 도전의 성격에 맞게 균형 있게 배합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설상가상 경제위기로 미국의 상대적 국력 하락이 가속화하고, 이는 예산제약을 가중시킬 것이다. 따라서 미국 스스로 낭비 없이 균형 잡힌 힘을 갖추는 것이 강조될 뿐 아니라 다른 국가와 국제 조직의 힘을 이끌어내서 사용하는 능력도 요청된다. 리더십과 파트너십의 균형이 요청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압도적 힘을 바탕으로 세계를 리드했다. 가급적 다른 나라의 협조를 얻고자 했지만 필요하다면 일방적으로 힘을 행사했다. 마치 프로축구 선수가 아이들과 경기하면서 사실상 공격과 수비를 도맡던 셈이었다. 미국의 힘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복합적 세계 위협에 혼자 대응할 수 있을 만큼은 아니다. 경제위기로 체력이 약화된 미국은 자신의 역할을 매끄러운 경기 운영과 정확한 공 배급을 담당하는 미드필더의 역할로 재정의하려 한다. 혼자서 운동장 전체를 뛰어다니는 대신 능력을 갖춘 다른 파트너에게 수비와 공격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오바마의 균형전략은 장기적 쇠퇴 과정의 초입에 들어선 미국호의 불가피한 실험이 될 전망이다. 물론 성공의 보장은 없다. 상충되는 조류와 바람 속에서 기우뚱해진 미국호의 균형을 취하면서 항진하는 일은 묘기에 가까운 항해 기술을 요한다. 하지만 오바마라는 젊은 지도자가 던지는 담대함의 매력은 그런 묘기마저 능히 소화해 내리라는 기대를 자아내는 것도 사실이다.
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중국·일본, 경제 회생 이끌 순 있지만
미국 대신할 리더십 보여주진 못해미국이 당면한 금융위기를 넘기고 과도한 차입으로 부풀려 온 살림을 축소, 조정하는 고난의 행군을 해 갈 동안 상처 입은 지구촌은 새로운 지배구조를 만들고 경제 회생을 이끌 대주주를 찾고 있다. 동아시아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동아시아의 두 거인인 중국과 일본은 견실한 제조업, 막대한 외환보유액과 상승하는 자국 통화가치를 바탕으로 이 자리를 차지할 호기를 맞고 있지만, 지구 대주주에게 요구되는 핵심 덕목은 모두가 원하지만 따로 가질 수 없는 지구 공공재(公共財)를 제공하는 역할이다. 세계 금융시스템의 복원, 개방경제의 유지, 글로벌 불균형의 해소 등이 그것이다. 예컨대 중국은 5000억 달러 상당의 경기부양책으로 자국 경제를 추스름으로써 세계 경제 회복에 기여하겠다는 소극적 발상을 넘어 위안화 가치의 절상을 통해 수입을 확대하고 금융시스템의 선진화를 통해 보다 투명하고 책임 있는 대주주로 거듭나야 한다. 이는 기왕의 수출 주도형 경제성장 전략을 수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급격한 성장률 둔화에 따른 실업과 일자리 창출의 부담, 빈부 격차가 초래할 사회적·정치적 불안에 고심하는 중국의 지도부가 이러한 희생을 감내할 가능성은 작다. 그들은 2020년 소강사회의 건설이란 국가 목표를 완수하기 전에는 본격적인 리더십 역할을 맡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 역시 역부족이다. 막강한 현금 동원력에도 불구하고 계산에 민감한 이기적인 주주이다. 일본은 눈앞의 손해를 감수하고 대의를 추구하는 대주주로서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해 왔다. 더욱이 자민당 정권 교체가 임박한 유동적인 국내 정치 상황 속에서 일본의 전향적 리더십은 기대하기 어렵다.
보다 근본적인 동아시아의 한계는 중·일 양국이 마지못한 협조 이면에 불신과 근시안적인 대립을 넘지 못하는 데 있다. 지역 차원에서 서로를 머리와 마음으로 품지 못하면서 지구촌의 주역으로 떠오를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구촌의 새 대주주로서 동아시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은 흔들리는 미국 대신 지구 공공재를 제공하기보다는 여전히 미국 중심의 지구촌 지배구조하에서 지분과 역할의 확대를 꾀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진정한 부상은 이들이 지구적 주주 가치를 추구하는 속에서 동아시아 공동체의 ‘신화’를 ‘현실’로 바꾸어 놓는 소프트파워를 보여줄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