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생명도 보호하지 못한다면
60년 전 제헌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는 독립 운동하는 기분으로 투표했다고 한다. 주권을 잃은 지 36년 만에 나라를 다시 세우는 투표이니 얼마나 소중했겠는가. 그때 느꼈을 감회를 지금 우리가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60년 전 감격은 민족의 자존에 있었을 것이다. 민족을 뛰어넘어 국가가 소중한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내가 세금을 내고 투표하는 것도 우리 가족, 내 후손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의 표현이다.
그런 정부가 가끔 자기 역할을 잊어버린다. 미국은 50년이 넘은 한국전쟁 당시의 미군 유해를 아직도 찾고 있다. 우리는 유해는커녕 살아있는 국군포로 문제도 입에 올리기를 겁낸다. 납북 어민 문제도 뒷전으로 밀어놨다. 박왕자씨가 미국 시민이라면, 또 일본 국민이라면 어떻게 대응했을까 추측해 보면 부아가 치민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없다면 자기 국민을 보호하는 원칙에 눈치볼 이유가 뭔가.
박왕자씨가 살해된 것은 오전 5시쯤.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은 오후 1시30분쯤이다. 무려 8시간 반이나 걸린 것이다. 북한이 현대아산 측에 알린 9시20분부터 쳐도 4시간이다. ‘적지(敵地)’에 들어간 국민이 사라져도 북한이 알려줄 때까지는 책임이 없다는 듯한 가당찮은 변명을 받아들여도 그렇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런 일을 알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국회의장은 국회회담을, 집권당 원내대표는 정치회담을 제의했다. 당대표도 질세라 특사 파견을 꺼냈다 거둬들였다.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정권의 실상을 고스란히 드러낸 셈이다. 그런 점에서 11일 북한군이 쏜 총탄은 박왕자씨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심장을 명중한 것이다.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남북관계가 경색돼 우리만 ‘왕따’당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것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햇볕정책의 명분은 북한이 국제적 기준에 적응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시장경제를 집어넣어 돈맛을 알게 하자는 것 아닌가. 그러면 이념이 달라도 중국처럼 말이 통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무수히 양보해 왔다. 이제 그 양보가 북한이 국제적 기준을 파괴하고 떼쓰도록 부추긴 것은 아닌지 따져볼 때가 됐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은 지난 20년간 한국에서 떼쓰기식 불법 시위가 늘어난 것은 ‘약발이 잘 먹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합법 시위를 하면 28.2%만 요구가 관철됐지만 불법 시위를 하면 42.4%가 관철됐다는 것이다<본지 7월 24일자 5면 떼를 쓰면 들어주는 무원칙한 대응이 불법을 조장해온 셈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국제적 기준을 무시해도 ‘원래 비상식적 집단’이라며 넘어갔다. 비핵화 공동선언을 묵살한 대가로 경수로를 짓고, 중유를 보내고, 쌀을 보냈다. 북한 입장에서 생각하자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북한이 남침한 것은 ‘통일 전쟁’이고,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생존을 위해 ‘불가피했다’는 주장이 횡행한다. 결국 그 핵무기로 우리 국민을 인질로 삼아 도피용 헬기(안전 보장)와 몸값을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인도적 지원도 협박에 굴복한 몸값이 되고 말았다.
이번 일로 모든 남북관계를 봉쇄하자는 건 아니다. 6자회담은 그대로 진행돼야 한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금강산을 보고, 개성을 보는 것이 우리 국민이 죽은 것조차 모른 체 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은 아니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사건의 경위를 밝히고, 사과할 부분이 있다면 사과하는 것이다. 정말 우발적 실수였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더욱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당국은 배제하고 책임없는 민간인을 통해 확인할 수 없는 소문만 흘리는 것은 남쪽의 내부 갈등을 유도해 어물쩍 넘기려는 속셈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최소한의 보장도 없이 어떻게 안심하고 관광길에 나서겠는가.
북한은 당국 간 접촉을 거부한다. 이명박 정부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광객이 죽은 일은 정권의 문제가 아니다. 금강산관광이 계속되려면 정권과 상관없이 우리 국민의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 북한 당국의 시혜가 아니라 남북 당국 간 합의로 보장돼야 할 일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남쪽 관광객을 보호하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보호하지 못한다면 인적 교류를 하지 말자는 말이다. 투자는 어떻게 하나. 아무런 대책없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장군님의 처분’에만 맡긴다면 정부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