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스로 국민에게 감동 주지 못한 어리석음 탓해야
17대 대선이 진보진영의 참패로 끝나자 동네북처럼 또 등장하는 것이 참여정부 책임론이다. 그 동안 재보궐선거 때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는 여당 지지도보다 항상 높았다. 2005년 4·30 재보궐선거 때에도 노 대통령의 지지도는 50%를 육박했다. 선거 때만 되면 대통령은 당으로부터 원망 들을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일체의 발언을 삼가며 조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재보궐 선거에 참패하면서 대통령의 지지도는 하루 아침에 곤두박질 쳤다.
이번 대선 기간에도 노 대통령의 지지도는 35%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성공적인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도 대통합민주신당은 노 대통령의 지지도 덕을 보지 못했다. 대통합 민주신당은 대선 기간 내내 열린우리당보다도 낮은 지지도를 유지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열린우리당을 깼을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와도 거리를 두며 비노 프레임 속에서 대선을 치렀다. 후보도 자신들이 만든 절차에 따라 뽑았고 선거운동도 독자적으로 했다. 그런데 왜 선거에만 패배하면 노무현 대통령을 물고 늘어지는가.
‘오마이 뉴스’ 오연호 대표는 집권세력의 혁신이 없어서 선거에 패배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의 혁신으로 탄생했다는 말인가? 보수언론 같은 인상 비평 말고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혁신했어야 했는지 말해주면 좋겠다.
전후 최고의 호황을 이끌었다고 평가되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과 호주의 하워드 총리도 정권교체를 당했다. 이들이 일을 크게 잘못해서가 아니다. 민주 국가에서는 8-10년 정도 한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크게 잘못한 것이 없어도 싫증을 느낀 국민은 정권을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선거패배를 노무현 정권의 실패로 자동 연결시키는 것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대선 참패의 원인 규명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이번 대선 기간 동안 후보를 바꾼 유권자가 40%에 달한다는 고려대 동아시아연구원의 발표를 보면 진보진영의 참패가 꼭 노무현 정권 때문만은 아님을 추론할 수 있다. 1)
필자는 올 초 [마법에 걸린 나라]에서 민주개혁세력 대연합은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노무현 정권 하에서 무제한의 자유를 만끽한 국민들은 더 이상 민주세력의 효용가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완전히 민주화되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유권자가 10%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역설적으로 노무현 정부가 민주주의를 완성했기에 유권자가 등을 돌리게 되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민주화 이후 진보는 어떤 비전을 보여주었는가. 참여정부는 한미 FTA 체결과 비전 2030을 통해서 양극화 해소와 동반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실용적 진보의 정책적 해결을 제시해왔고 몸소 실천해왔다. 양극화해결이 여전히 미진하지만 더 악화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하층민들의 복지는 과거보다 월등 나아졌다. 물론 왜 아쉬움이 없겠는가. 더 잘하지 못한 것은 힘이 미약했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에서 여론의 뒷받침 없이 대통령이 어떻게 독단으로 세금을 올리고 분배문제를 해결하겠는가. 진보언론과 학자는 성장이데올로기에 빠져있는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보다는 대통령 때리기에 몰두했다. 노무현이 신이 아니라서 죄송할 따름이다. 이번 대선은 인간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신이 되기를 바란 진보진영 모두가 패배한 선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혹투성이 후보를 이길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고 본다. 정동영 후보가 원칙을 지키고 감동을 주는 길을 택했다면 이번 선거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다. 최악의 투표율을 기록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필자가 [마법에 걸린 나라]에서 내 놓은 선거구도 예측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대통합민주신당이 그 책에서 제시한 선거전략을 따랐더라면 선거에 승리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말이다. 당을 깨고 이합집산할 시기에 성장이데올로기를 대신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과 정책을 제시하며 국민들을 꾸준히 설득했더라면 왜 진보정권이 더 지속되어야 하는지 국민도 이해하고 달라졌을 것이다.
수도권의 상당수 유권자가 집값 오르기를 기대하며 이명박 후보를 찍었다고 한다. 주택보급율이 100%를 넘어선 사회에서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어차피 주택이 한 채 밖에 없는 사람은 집값이 올라봐야 장기적으로 별 혜택이 없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국민들은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장기적으로는 자기파멸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게 바로 죄수의 번민게임 아니겠는가.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런 국민들을 꾸준히 설득하려는 노력이라도 해보았는가. 한 방으로 선거를 이겨 보려고 네거티브 운동만 하지 않았나.
따라서 선거 대패의 가장 큰 책임은 정당의 이합집산과 네거티브 선거전략으로 일관한 대통합민주신당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노무현 대통령이 보수언론으로부터 마녀사냥을 당한다고 같은 편이 이에 동참하는 것은 기본 예의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무책임한 대선 패배 책임론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대통합민주신당은 정당의 정체성과 비전을 바로 세우고 총선 채비에 박차를 가하기 바란다.
조기숙 이화여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