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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심상치 않은 먹구름이 미국과 중국의 머리 위를 지나고 있다. 20세기 세계사의 주역을 맡았던 미국, 특히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의 기수임을 자랑스럽게 자처하던 초강대국 미국에서 보호주의와 배타주의의 경향이 퍼져가고 있다.

심상치 않은 먹구름이 미국과 중국의 머리 위를 지나고 있다. 20세기 세계사의 주역을 맡았던 미국, 특히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의 기수임을 자랑스럽게 자처하던 초강대국 미국에서 보호주의와 배타주의의 경향이 퍼져가고 있다.

 

또한 21세기의 중심 국가로 부상하며 만국 간의 평화 공존과 우호관계를 강조해 왔던 중국에선 화평굴기(和平崛起)란 그간의 구호를 무색하게 만드는 애국주의와 내셔널리즘의 흥분을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다.

 

혹시 강대국들이 고립주의나 패권주의로 선회하려는 대란의 전조가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마저 드는 어지럽고 걱정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미국과 중국의 변화 증후에 대해 우리가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의 국운은 이 두 강대국과의 관계에 의해 좌우되어 왔던 측면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우선 한·미 동맹관계를 떠난 대한민국 60년의 역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또한 지리적으로 가장 인접국이며 역사적으로 가장 오랜 인연을 갖고 있는 중국은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한국전쟁의 향방을 좌지우지하던 나라였으나 불과 수교 십여 년 만에 우리의 최대 통상 파트너로 부각되지 않았는가.

 

따라서 한국의 외교전략, 한 걸음 나아가 생존전략의 핵심은 보다 튼튼한 한·미 동맹관계와 우호적인 한·중 협력관계를 어떻게 동시에 유지해 나갈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미국의 보호주의 경향이나 중국의 지나친 애국주의 물결은 장기적 추세이기보다는 일시적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보호주의 경향은 작금의 금융위기와 대통령선거가 겹침으로써 나타난 악재라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클린턴, 오바마, 매케인 후보 가운데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내년에는 미국을 자유무역의 본궤도로 복귀시킬 것이란 예상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다만 미국 의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보호주의적 추세를 전환시키는 데는 고도의 정치적 리더십이 필수조건이 될 것이다.

 

중국의 애국주의 물결 역시 올림픽에 대한 범국민적 기대감의 고조와 티베트 사태 및 국제사회의 비판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의 부재가 가져 온 당혹감이 뒤섞인 일시적 반사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오늘의 국제적 상황이 상당히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자세를 견지하고 개방과 평화정책을 일관성 있게 지켜가겠다”던 한 중국 문인의 이야기가 바로 지금의 중국 정부 입장과 국민 정서를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그 길만이 중국의 지속적 성장과 발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판단엔 흔들림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미국과 중국이 각자 자국 이익에 부합되는 입장으로 대결보다는 공존과 협력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헨리 키신저를 비롯한 많은 미국의 전략가들이 강대국 반열에 오른 중국의 위상을 수용하고 새로운 세력 균형을 창출함으로써 국제평화와 미국의 선도적 위치를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중국도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면서 지속적 경제성장과 정치적 안정에 주력하는 것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도달하는 필수조건이란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미·중 관계가 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이와 같이 원만한 미·중 관계의 발전은 바로 우리 한국이 바라는 것이며 그러한 흐름 속에서 북한 핵문제, 나아가서는 통일 과제도 풀어갈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미국 및 일본과의 정상회담으로 출발하여 이달 말 한·중 정상의 만남으로 이어질 이명박 정부의 외교 포석은 미·중 간의 우호 협력관계를 계속 유지·발전시키는 데 능동적 자세로 일조하겠다는 전략적 목표를 포함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보호주의 경향과 중국의 지나친 애국주의적 흐름이 자제될 수 있도록 우리의 영향력을 활성화시켜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 스스로가 지나친 외골수의 보호주의나 국수주의적인 충동을 과감히 떨쳐버리겠다는 국민적 용기와 합의를 전제로 하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한 걸음 나아가 한·중·일 삼국이 동북아 공동체를 건설하자는 원대한 구상이 실현될 수 있도록 우리의 창의력을 발휘해 앞장서 나가야겠다.

 

이홍구 아시아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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