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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강원택·장훈 교수의 이번 대선 대담은 한나라당 이명박·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이미지 전쟁’에 초점을 맞췄다. ‘국민성공시대’(이명박), ‘가족행복시대’(정동영)라는 슬로건을 앞세운 두 후보의 이미지 선거 전략은 유권자에게 어느 정도 호소력이 있을까. 두 교수 모두 정책·콘텐츠와 유리된 채 슬로건만 난무하는 이미지 선거의 위험성에 대해 우려감을 나타냈다.

"李의 ‘성공’- 탈이념 구호가 보수층 균열 부를 것
鄭의 ‘행복’- 가족이 진보의 핵심 아젠다인지 의문
보수 對 진보 전선 불투명해지자 인위적 편가르기
정책 콘텐츠는 없고 조작적 이미지·슬로건만 난무

 

강원택, EAI 시민정치패널 위원장, 숭실대학교 교수  · 장 훈, EAI 거버넌스센터 소장, 중앙대학교 교수

 

강원택·장훈 교수의 이번 대선 대담은 한나라당 이명박·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이미지 전쟁’에 초점을 맞췄다. ‘국민성공시대’(이명박), ‘가족행복시대’(정동영)라는 슬로건을 앞세운 두 후보의 이미지 선거 전략은 유권자에게 어느 정도 호소력이 있을까. 두 교수 모두 정책·콘텐츠와 유리된 채 슬로건만 난무하는 이미지 선거의 위험성에 대해 우려감을 나타냈다.

[강원택] 이번 선거는 적과 아군을 가를 수 있는 뚜렷한 전선이 형성돼 있지 않은 측면이 강합니다. 이명박 후보가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층뿐 아니라 과거 노무현 대통령 지지층까지 끌어안고 있을 만큼 보수 대 진보의 전선이 불투명합니다. 과거에는 후보들이 진보나 보수를 대표하면서 후보 지지를 결정하는 뚜렷한 요인이 있었는데 이번 선거에는 그게 별로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후보들이 이미지나 구호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더욱 짙은 것 같습니다. 인위적으로 편을 가르거나 지지층을 끌어오기 위해 상징 조작 같은 형태의 이미지를 더 많이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장훈] 이명박 후보가 내세우는 ‘국민성공’, 정동영 후보가 내세우는 ‘가족행복’의 장단점을 짚어보면, 우선 국민성공은 ‘성공’이라는 말을 잘 잡아낸 것 같습니다. 이번 선거의 핵심 화두는 뭐니뭐니 해도 경제 능력, 정부 운영 능력입니다. 경제 능력, 정부 운영 능력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자연스레 ‘성공’이라는 낱말이 도출됩니다. 능력은 성공이라는 결과물로 증명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유권자를 과거의 ‘도덕성’이나 ‘개혁’이라는 잣대로부터 ‘일할 수 있는 능력’으로 옮겨오게 했다는 점에서 ‘성공’은 적절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앞에 붙어 있는 ‘국민’이라는 말입니다. 정부가 끌고가는 성공이 아니라 국민이 주체가 된다는 의미는 알겠지만, 국민이라는 말은 상당히 낡은 개념입니다. 차라리 요즘은 시민이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또 우리나라 경제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하면 국민성공은 글로벌시대 우리 경제가 지향하는 바와 잘 매치가 되지 않는 닫힌 개념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정동영 후보의 가족행복 역시 ‘가족’을 내세운 점은 좋아 보입니다. 보수가 강조하는 성공·경제 등 물질적 가치와 대비돼 여가·오락·행복 등 탈(脫)물질적 가치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서유럽에서도 보수와 진보를 가를 때 물질이냐 탈물질이냐로 구분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족’이 과연 진보가 생각하는 핵심 아젠다를 정확하게 짚었느냐는 부분입니다. 지금 진보가 강조하는 아젠다는 양극화 문제, 세계화에 대해 어떤 식으로 대응할 것이냐 등입니다. 이런 핵심적 화두를 빼놓은 채 탈물질적 가치만을 얘기하는 건 전체 그림을 꿰뚫는 슬로건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강] ‘국민여러분 성공하세요’라는 슬로건을 처음 접하면 ‘부자되세요’라는 카드회사 광고가 자연스럽게 연상됩니다. 장 교수의 지적처럼 너무 물질적 가치와 성공만을 강조하는 것처럼 비칩니다. 이명박 후보가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도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물질적 가치와 성공이었을 겁니다. 거기에 비해 가족행복시대는 맞춤형 슬로건이라는 인상이 짙습니다. 이명박 후보와의 대척점을 만들고 대비를 뚜렷이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개념이라는 인상이 짙습니다. 장 교수가 탈물질적 요소가 강하다고 했지만, ‘꼭 돈이 많아야 가족이 행복한 게 아니다’라는 반박형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용어가 진보의 핵심 화두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동의합니다. 가족과 행복에서는 진보가 강조해온 사회안전망이라든지 민족주의는 잘 보이질 않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가 내건 ‘성공’ 역시 기존에 전통적 보수가 강조해온 메시지와는 거리가 느껴집니다. 전통 보수가 추구해온 안보, 질서 등의 이미지와는 무척 다릅니다.

[장] 후보들이 이번 선거에서 슬로건을 강조하는 현상은 우리나라 선거 정치가 빠른 속도로 미국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선거운동의 미국화, 즉 아메리카나이제이션(Americanization)은 세계적 조류인데 미국화의 핵심은 전문화입니다. 기존 정당이나 정당 조직원의 역할이 위축되고 여론조사·마케팅·광고·홍보 전문가들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진다는 얘깁니다. 이명박 후보 측이 보여주는 전통적 한나라당과의 미묘한 거리감, 외부 전문가들의 중용, 국회의원들을 표밭 현장으로 내모는 것 등이 모두 미국화의 양상들입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정치적 오리엔테이션이나 이념적 성향을 가진 전문가들이 나서지만 우리는 비정치적인 사람들이 현직에서 활동하다 선거 때만 한시적으로 들어온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 때문에 우리의 슬로건은 정치적 맥락과 유리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넓은 맥락에서 보면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우리나라의 정당정치를 더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도 됩니다.

[강] 미국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정당이 선거 캠페인을 뒷받침하지만 우리는 인물이 정당을 훨씬 앞섭니다. 당은 인물에 따라 재편되거나 없어지기도 하는 존재입니다. 정당 자체의 기반이 약한 데다 이번처럼 보수 대 진보의 정파적 구분도 희미해지면 후보 개인을 어떻게 부각시키느냐가 선거 캠페인에서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후보의 이미지만 있고 서브스탠스(substance)가 없는 경우입니다. 슬로건만 나부끼고 실질적 내용이 없는 선거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예컨대 성공을 강조할 경우 성공의 기준이 뭐고 어떤 의미에서 어떻게 도달할 수 있다는 건지, 행복을 말할 경우에도 행복이 뭐고 어떤 형식으로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없습니다. 성공·행복이라는 좋은 단어만 무책임하게 던져놓은 꼴입니다. 후보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명박 후보는 TV 토론을 회피하는 것 같고, 정동영 후보는 자기 콘텐츠를 강조하는 대신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데 몰두하는 것 같습니다. 또 언론은 3자 구도니 4자 구도니, 이회창씨가 나오느니 마느니 하면서 선거공학적 문제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선거판에서 후보들의 슬로건과 이미지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누군가 대통령이 됐을 때 통치 철학이 어떻게 구체화될 수 있느냐에 대한 실질적 논의가 없습니다.

[장] 이미지 정치 시대이기는 하지만 선거 캠프에 집중적으로 투입되는 이른바 전문가들의 비정치성, 다른 말로 하면 정치적 사안과 민감성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한 데서 오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광고를 잘 만들어라’ ‘이미지를 멋있게 하라’는 주문만 따라서는 후보가 가져야 하는 콘텐츠·정책과 이미지·슬로건이 따로 놀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행복시대’라는 것과 정동영 후보가 얘기해온 ‘한반도 통일경제론’이 어떻게 논리적으로 연결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 후보가 강조하는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강국’도 가족행복과 잘 매치되지 않습니다.

[강] 결국 이미지는 기획된 것입니다. 즉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미지 속에 숨겨진 퍼스낼리티와 역량, 가치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미지와 관련돼 정책이 어떻게 일관성 있게 실현되고 논리적 연결성을 갖는지에 대한 평가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캠페인을 마치면 나중에 유권자들이 ‘속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이미지 정치의 약점을 제도적으로 보완할 장치가 필요합니다. 특히 이번 선거는 양당 모두 5년 전에 비해 후보자를 늦게 뽑았습니다. 여당의 경우는 불과 선거 두 달 전에 후보를 뽑는 어이없는 일도 저질렀습니다. 유권자들이 후보의 실체에 대해서는 모른 채 이미지만 갖고 투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제도적 보완책이 더욱 요구됩니다.

[장] 사실 여권에서는 이명박 후보의 이미지를 깨뜨리기 위해 가치 논쟁을 벌이고 싶어하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명박 후보도 시장 중시 등 우리 사회의 골간이 되는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가치를 갖고 있지만 탈가치적·탈정치적으로 보여지고 싶어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 진보정치에 대한 피로감과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감을 흐리면서 수도권을 기반으로 한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로부터도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겁니다. 이명박 후보로서는 격렬한 가치 논쟁을 벌일 이유가 없습니다.

[강] 이명박 후보가 갖고 있는 이념적 색채를 흐릿하게 만드는 게 이미지인데, 가치논쟁은 ‘이명박이 보수적 후보다’라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이명박 지지 성향으로 가 있는 진보적 유권자를 이념적으로 일깨우겠다는 전략입니다. 즉 이명박의 이미지를 벗김으로써 ‘이명박은 네 편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자는 공세입니다. 이명박 후보로서는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는 싸움입니다.

[장] 역설적이지만 그러한 이명박 후보의 탈이념적 성향이 보수층에 균열을 낳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탈가치·탈정치적으로 가기 때문에 보수층이 이명박 후보에 대해 불만을 갖는 겁니다.

[강] 진보진영도 비슷합니다. 대표적인 게 문국현 후보의 경우입니다. 진보진영에서도 이념지향적인 사람들은 이미지를 앞세운 정동영 후보보다는 문국현 후보를 지지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장] 이미지 선거가 몰고온 결과물이지만 결국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는 보수의 분열과 진보의 통합 가능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보수층의 분열 위기를 낳고 있는 이회창씨의 출마 가능성은 이번에 여당보다 잘 치러진 한나라당 경선 제도에 대한 중대한 도전입니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이회창식 깨끗한 정치’에 대해 이미 심판을 받은 입장에서 이회창씨의 도전은 역사적 명분도 없습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10%가 넘는 지지율은 거품이라고 봅니다.

[강] 저는 거품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현재 보수층은 전통적 가치로부터 이탈한 이명박 후보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이명박 후보는 그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소외시켰습니다. 또 이명박 후보 개인의 도덕성과 관련된 문제들이 보수층에 불안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전통적 보수층이 이회창씨를 대안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명박 후보가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관건이지만 이회창 출마 가능성이 상당한 변화 가능성을 몰고 올 수 있습니다.

[장] 올드(old) 보수들이 끝까지 이회창씨를 지지할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올드 보수들이 한나라당에 대해 불안감, 거리감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결국 일시적 불만 표출로 끝날 겁니다. 이념적 지표로 보면 이회창 지지가 맞지만 정권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대의명분도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사표(死票) 방지 심리가 유독 강합니다. 실증적 연구를 보면 사표방지를 위해 막판에 자기의 선택을 바꿀 수 있다는 유권자들이 3분의 1 가까이나 됩니다. 전통적 보수층도 선거 후반에 가면 한나라당으로 복귀할 것으로 봅니다.

[강] 과거 선거를 봅시다. 1992년 선거 때 YS도 이명박 후보와 비슷한 존재였습니다. TK 등 보수층의 메인스트림은 YS에 대해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그때도 제3 후보인 정주영은 전국적으로 17%를 얻었습니다. 정주영 후보를 찍은 사람들도 DJ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겠지만 정주영 후보에게 17%의 표를 던져준 것입니다. 이번에 이회창씨도 출마할 경우 15~20%의 득표력은 있다고 봅니다.

[장] 저는 이회창씨가 5%를 받기도 어렵다고 봅니다. 이번 선거는 과거와 달리 제3의 후보가 한 명이 아닙니다. 역대 대선에서는 제3 후보에 대한 욕구가 분명히 있었지만 정주영·이인제·정몽준의 맥을 잇는 제3의 와일드 카드, 다시 말해 선거판을 흔드는 스포일러(spoiler)가 이번에는 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인제·문국현·이회창 세 사람이 ‘스포일러 트로이카 체제’를 이루고 있습니다. 성향상 세 사람간의 연대와 연합 가능성도 낮습니다.

[강] 어쨌든 이명박 후보가 이미지를 통해 가치를 감추고 있긴 하지만 이회창씨가 출마할 경우 가치 논쟁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회창씨가 등장할 경우 보수층 내에서 가치 논쟁이 벌어지면서 이명박 후보의 숨겨졌던 보수 성향이 부각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렇게 되면 이명박 후보 쪽으로 가 있던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이 떨어져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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