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에서 떠오르는 北核 단상
| 2007-07-18
류길재
문제는 2002년 10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동결보다 폐쇄가 더 확실한 비핵화의 노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5년간 고단하게 진행됐던 협상의 우여곡절은 상황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을 뿐이다. 그렇다고 액면 그대로 5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은 아니다.
지난 14일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쇄했다고 발표했다. 다음날 유엔도 이를 확인했다. 이제 북핵 문제는 2002년 10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동결보다 폐쇄가 더 확실한 비핵화의 노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5년간 고단하게 진행됐던 협상의 우여곡절은 상황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을 뿐이다. 그렇다고 액면 그대로 5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은 아니다.
핵실험을 통해 북한이 확실하게 핵을 보유하게 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점과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에서 보듯 북한을 압박한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대표가 말했듯이, 이것은 앞으로의 여정이 그렇게 간단치 않을 것임을 예견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번의 핵시설 폐쇄는 그야말로 비핵화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진전이 있었던 것은 과거와는 달리 2·13합의에서 정한 비핵화의 로드맵, 즉 폐쇄, 불능화, 고농축우라늄(HEU)을 포함한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로 이어지게 될 도정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단순히 핵개발을 동결시키는 선에서 그쳤지만 이제는 완벽한 의미의 비핵화를 그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더욱 중요한 진전은 비핵화의 과정과 병행해서 북미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나아가서 동북아의 안보상황 개선을 위한 조치들이 이뤄질 가능성이 열렸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대차대조표는 약간의 변화만 있을 뿐 지난 수년간 수도 없이 많이 제시되었던 터라 사실 식상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다. 잘되면 기가 막힌 미래가 올 것이고 안 되면 끝도 없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동어반복적인 전망을 의미할 뿐이다. 한마디로 사태가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이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바로 북핵 문제다.
워싱턴은 요즘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정책에 대한 공화당 의원 일부를 포함한 의회의 반대로 어수선하다. 이들의 관심은 온통 이라크,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 있다. 미국의 유력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북한 문제는 미국 정가의 관심거리는 아니지만 대내외적으로 곤경에 처한 부시 행정부에 그나마 일말의 외교적 성공으로 부각되고 있다. 힐 차관보는 몇 명 되지도 않는 한반도 데스크에서 참으로 잘도 견디면서 북핵 협상을 잘 이끌고 있다. 심지어 이런 성과는 힐 개인의 역량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평도 나온다.
그런 힐 차관보가 완곡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이 6자회담 프로세스와 조율되기를 희망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고 한다. 금년 초부터 버시바우 대사 등 미국의 한반도 관련 인사들이 계속해서 던지는 말의 연장에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도 모르게 북미 간에 평화체제 등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 벌어질까봐 염려하면서 한국 주도의 획기적인 조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만 몰두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주장은 현실화될 가능성은 없다. 중요한 것은 만일 이 협상의 주연이 힐이라면 그 주연이 제대로 연기할 수 있도록 옆에서 잘 도와주는 것이다. 주연을 제치고 또 다른 조연을 내세워 설익은 연기를 하도록 한다면 주연도 당황하게 되고 조연은 더욱 우스운 꼴에 처하게 된다.
한국이 할 일은 향후 벌어질 상황에 대해서 모든 싱크탱크를 동원해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일이다. 워싱턴, 베이징, 도쿄, 모스크바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양에서 벌어지고 생각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가감없이 분석하는 일이다. 남북관계라는 좁은 지형에만 매몰되면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더 큰 현실을 도외시하게 된다. 지금은 분수령은 아니지만 분수령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매우 높은 때이기 때문이다.
류길재 EAI 북한연구패널 위원장,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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