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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7월의 베이징은 무더웠다. 오래간만에 중국의 중요 싱크탱크(思想庫) 연구원들과 함께 세계, 동아시아 그리고 한반도 문제를 얘기했다. 사회주의 싱크탱크들의 자율적 제약성을 고려한다면 문제에 대한 시시콜콜한 대답 내용보다는 문제를 설정하고 푸는 중국 방식을 조심스럽게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싱크탱크의 커다란 흐름을 결정하고 있는 정치 주도 세력의 21세기 ‘중국 책략’을 제대로 독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7월의 베이징은 무더웠다. 오래간만에 중국의 중요 싱크탱크(思想庫) 연구원들과 함께 세계, 동아시아 그리고 한반도 문제를 얘기했다. 사회주의 싱크탱크들의 자율적 제약성을 고려한다면 문제에 대한 시시콜콜한 대답 내용보다는 문제를 설정하고 푸는 중국 방식을 조심스럽게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싱크탱크의 커다란 흐름을 결정하고 있는 정치 주도 세력의 21세기 ‘중국 책략’을 제대로 독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국 측은 모든 논의를 ‘화평 발전의 화해(和諧)사회 건설’로 시작하고 마무리했다. 한편으로는 흥미롭고 다른 한편으로는 답답했다. 중국은 내년에 개혁·개방 30년을 맞이한다. 중국은 지난 30년간 스스로가 놀랄 만큼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경제 변화를 겪고 있다. 국내총생산은 2200억달러에서 2조6000억달러로, 그리고 1인당 국민소득은 220달러에서 2000달러로 증가했다. 중국 지도부는 현재의 경제 수준을 2020년까지는 두 배 정도 높이려고 전력 질주하고 있다. 화해사회와 화해세계 건설은 단순한 정치 구호가 아니다. 개혁·개방의 30년 역사적 체험과 다가오는 2020년의 미래적 체험을 동시에 겪으면서 중국식 사회주의가 보여주는 최대한의 유연 사고다. 이 노력은 21세기 중국이 20세기의 뒤늦은 숙제를 풀기 위해서는 성공적이다. 그러나 중국, 아시아 그리고 지구가 명실상부하게 21세기 대동(大同)세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유연하지 못하다. 제2의 개혁·개방이 필요하다. 중국적 사고가 아닌 네트워크적 사고에 익숙해져야 하며, 화평 발전을 넘어선 복합 사고를 터득해야 한다. 중국의 싱크탱크들은 아직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있지 않았다.

21세기 변환의 동아시아 무대는 냉전기에 이어 계속해서 주연을 맡은 미국과 초대형 신인으로서 주연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중심으로 꾸며지기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미·중관계는 서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들에도 사활의 문제다. 미국은 오늘의 중국을 전략적 이해당사국(stakeholder)의 차원에서 협력 견제하고, 내일의 중국을 시장민주주의체제로 변환시켜 미국형 대동 질서의 주주(shareholder)로 만들려고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은 적어도 2020년까지는 화해사회 건설을 위한 화평 발전의 시각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꾸려 나가려는 중이다. 그러나 동아시아형 대동 질서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미국형과 중국형 동아시아 대동 질서가 마주치게 되면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세기의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2·13 합의를 본격적으로 실천에 옮기기 위한 6자회담이 다음 주에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이다. 미국은 9·11 테러와 이라크전쟁의 두 악몽을 동시에 피하는 방법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비군사적 방법으로 실현해 보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은 철저하게 화평 발전의 시각에서 북핵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난해 북핵 실험에 대한 유엔 제재에 미국과 중국이 공동 보조를 취했다 해도 미국과 중국이 북한 비핵화의 속도와 정도에 미국이 기대하는 것만큼 쉽사리 공동 보조를 취하기는 쉽지 않다. 문제를 다루는 기본 원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의 시각에서 북핵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우리 정부의 노력은 북한조차 외면하는 외로운 독주에 그칠 위험성이 높다.

중국 싱크탱크와의 사상전을 마치고 머리를 식히려 하루하루 눈에 띄게 번화해지는 백화점가인 왕푸징(王府井) 거리를 비좁게 걸으면서 머리는 점점 복잡해져 갔다. 미국은 변환의 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동아시아전략을 구상해서 실천에 옮기고 있다. 중국은 조화사회 건설을 위한 화평 발전의 동아시아정책을 추진하면서 조만간 중국형 대동아시아론을 꿈꾸고 있다. 그 사이에 끼어 바람직한 삶터를 확보하기 위한 한반도의 북한은 이미 변환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서 낙오했으며, 한국은 ‘마지막 10년’의 어려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현재와 같이 어설픈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체제론은 시대착오적이다. 제대로 된 21세기형 복합 ‘동아시아책략’ 마련이 시급하다. 국내의 그리고 남북의 자중지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지 못하면 역사의 마지막 기회는 위기로 다가올 것이다

하영선 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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