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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북한 핵 실험 이후 정치권이 그 해법과 위기관리를 둘러싸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흥미롭게도 민주노동당만은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북한 핵 실험에 대한 당내의 시각 차이로 공식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내홍만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 실험 이후 정치권이 그 해법과 위기관리를 둘러싸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흥미롭게도 민주노동당만은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북한 핵 실험에 대한 당내의 시각 차이로 공식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내홍만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을 어떻게 다룰까 하는 방법론을 둘러싼 갈등도 아니고, 핵 실험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 하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당내 노선 다툼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안보와 평화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진 상황에서도 북한 핵실험이 잘못된 것이라는 "평범한" 의견도 내놓지 못하는 민노당의 태도는 무척 이상해 보인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민노당은 아주 많은 의석은 아니었지만 화려하게 제도권 정치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민노당의 국회 진입은 한국 정치가 과거의 보수 편향으로부터 이념적으로 정상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기존 제도권 정치에 덜 오염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정치를 위한 견인차 역할을 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았다. 때문에 민노당의 이념적 노선에 공감하지 않는 유권자들도 기꺼이 표를 던졌다.

 

재야 세력으로 남아 있을 때 보여준 도덕성과 진보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선거에서는 재야세력이 아니라 "제도권 정당" 민노당에 대한 정치적 평가가 이뤄지게 될 것이다. 이번 북한 핵 실험에 대한 민노당의 침묵과 내홍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 핵 실험을 둘러싼 민노당 내 이념적 갈등을 바라보면서 1980년대 영국 노동당이 떠올랐다. 영국 노동당은 1979년 마가렛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에 패한 이후 당내 좌파들이 당권을 잡았다. 당이 급격하게 좌경화했고 1983년 총선을 앞두고는 강경 이념 노선에 따른 공약을 유권자에게 던졌다. 그 가운데는 영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일방적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폐기하겠다는 것도 있었다. 1983년이면 여전히 "소련"과 동구 공산권이 건재하던 냉전의 시기였다. 핵 공포 없는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핵 폐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영국부터 먼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현실적인 노동당의 노선은 선거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 선거에서 노동당의 지지율은 전후 최악으로 떨어졌고 보수당은 압승을 거두었다. 노동당이 몰락하는 대신 제 3당에 대한 지지가 급격히 상승했다. 그런데 1983년 한 차례의 선거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 노동당의 집권 역량에 대해 유권자들이 깊은 의구심을 갖게 되었고 이로 인해 대처와 메이저가 이끈 보수당의 장기 집권을 허용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념적 편협성을 버린 토니 블레어의 실용적 노선은 18년 동안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야당 신세에 머물러 있었던 상황에서 노동당의 정치적 생존을 둘러싼 위기감의 결과였다.

 

사회운동 단체와 정당이 다른 것은 이념적 순수성만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운동단체와는 달리 정당은 정치적 결정에 대한 책임을 이처럼 선거를 통해 묻게 된다는 것이다. 노동 운동을 하는 사회단체로 계속 남아 있었다면 모르지만 민노당이 현실 정치권에 들어왔다면 거기에 맞는 책임 있는 정당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민족해방, 민중민주도 좋고 자주도 다 좋지만 다수 국민의 의사와 함께 할 수 없는 이념적 편협성과 독단은 1980년대 영국 노동당처럼 언젠가 정치적으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될 지도 모른다.

 

민노당은 2008년에는 제 1 야당, 그리고 2012년에는 집권당이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북한 핵 실험에 대한 민노당의 내홍과 침묵은 아직도 민노당이 권력을 맡을 만한 책임 있는 정당으로서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에게 일깨워 주는 것 같다.

강원택 EAI 시민정치패널 위원장 · 숭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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