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동아시아연구원과 겐론NPO가 작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된 일본인들은 그 주요 이유로 한국이 역사문제에서 일본을 비판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역사문제로 인한 정부관계와 국민 상호 인식의 동반 악화는 한일관계의 전망을 어둡게 만든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과거사 문제로 한일관계를 마냥 표류하게 해서는 안 된다.

日의 과거사 부정-우경화로 꽁꽁 얼어버린 韓日

日의 급속한 우경화 기저엔 中, 亞패권국 부상에 대한 불안

中과 가까워진 韓에 대한 의심

동북아 평화와 안정 위해선 韓中 협력 강화 못지 않게 韓日 해빙 돌파구도 찾아야

 

이숙종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곧 3·1절이 돌아온다. 일제에 강제 병합된 지 9년 만에 주권을 되찾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선조들을 기리는 날이다. 여름에는 가장 큰 국경일인 8·15 광복절이 있다. 올해는 70주년을 맞는지라 정부와 사회 각층은 다양한 행사들을 준비하고 있다. 이 두 국경일 사이에 일본과 관련돼 기념할 일이 또 하나 있다. 바로 50주년을 맞는 한일 국교정상화이다. 두 나라 간의 국교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맺은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된 날은 1965년 6월 22일이다. 이날을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거니와 기념하고 싶지도 않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 한일관계를 돌아본다.

 

이숙종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건국신화를 믿거나 말거나 한국인은 단일민족으로서의 유구한 역사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대륙의 한 자락인 반도에 문명을 건설하고 수많은 외침과 도전을 이겨낸 나라이니 그럴 만하다. 이 긴 역사에서 보자면 일제 치하 35년이란 짧은 세월로 미래를 위해 떨쳐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근대적 기억의 공동체에 일제가 입힌 상처는 깊어 국가로서의 일본에 대한 반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만큼 근대 한국의 정체성 형성에 반일과 극일이 미친 영향이 컸다는 이야기이다.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소득에서 일본을 바짝 쫓게 되면서 경제적 극일은 가까워졌지만 역사문제에서 우리는 아직 일본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일본 정부의 탓이 크다. 1998년 미래지향적 김대중-오부치 선언과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 이후 개선되던 한일관계는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역사문제를 퇴행적으로 다루면서 급속히 나빠졌다. 특히 2012년 말에 들어선 아베 신조 제2차 내각의 과거사 부정과 이를 옹호하는 우익 여론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조류로 자리 잡으면서 일본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동아시아연구원과 겐론NPO가 작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된 일본인들은 그 주요 이유로 한국이 역사문제에서 일본을 비판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역사문제로 인한 정부관계와 국민 상호 인식의 동반 악화는 한일관계의 전망을 어둡게 만든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과거사 문제로 한일관계를 마냥 표류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우경화의 근간에는 아시아태평양지역 패권국으로 부상한 중국에 대한 불안이 있다. 그 불안은 센카쿠 열도 인근에서 2010년 9월 중국 어선과 일본 순시선이 충돌하는 사건으로 가시화되었고 2년 후 일본 정부가 이 섬들을 국유화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해상과 공중에서 중국과 충돌 직전의 위기로 치달았다. 불안해진 일본은 동맹국인 미국에 유사시 방어의 한 축을 담당하겠다는 집단적 자위권을 선물하는 대신에 센카쿠 방어가 미일동맹의 범위 내에 있다는 메시지를 받아냈다. 한국과는 보다 적극적인 안보협력을 바라지만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자국보다는 중국 편이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양국과 각각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미국은 한일관계 악화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동맹 체제를 약화시킬 것을 우려한다. 워싱턴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미국인들로부터 작년 한 해 가장 자주 들은 말은 북한 문제보다도 한일관계에 대한 걱정이었다. 한미일 삼각공조가 과거만 못할지라도 적어도 북한 문제에 대처함에서는 강화되어야 함은 마땅하며 그 점에서 최근 한미일 군사정보공유약정을 체결한 것은 잘한 일이다. 한편 중국은 한일관계가 삐걱거릴수록 한국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다. 중국의 ‘항일전 승리 70주년’을 한국의 ‘광복 70주년’과 공동으로 기념하자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제안은 역사문제에서 반일 한중공조의 성격을 내포한다. 정부는 일본과의 역사문제는 중국과 공조하기보다는 개별적으로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이 원칙을 유지하면서 중국 전승일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하게 된다면 전승보다는 ‘화해와 평화’에 방점을 찍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야 하며 그전에 일본과의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은 가까이 붙이려 하고 중국은 떼어내려고 하는 한일관계를 한중관계 못지않은 협력적 관계로 발전시켜야 한중일 삼국 협력과 현 정부가 추진하는 동북아평화협력구상도 궤도에 올릴 수 있다. 이 점에서 광복 70주년에 묻혀버린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건져내야 한다.

 

이숙종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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