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여론 양극화는 현실의 여론 지형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은 실제 현실의 여론은 이처럼 극단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40% 정도는 <변호인>을 보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국제시장>을 보면서도 눈물을 흘릴 것이다. 지금 <국제시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은 전체 여론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정치화된 사람들끼리의 논쟁이다.”

영화 <국제시장>을 둘러싼 ‘국가주의’ 논란… 현실과 동떨어진 애국 담론 넘어야

 

덕수는 돈을 벌기 위해 전쟁의 한복판인 베트남으로 가겠다고 우긴다. 아내 영자는 왜 가족을 위해 당신만 희생해야 하냐며 남편을 책망한다. 영자의 눈에 눈물이 고이며 부부싸움이 고조되던 순간, 애국가가 울린다. 하필 그들이 앉아 있었던 장소는 국기게양대 앞. 덕수는 싸움을 회피하려는 듯 벌떡 일어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영자는 그런 남편을 원망하듯 쳐다보지만 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느냐는 주변의 눈초리에 밀려 억지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국제시장>의 한 장면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어김없이 웃는 장면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만은 이 장면에서 진지했다. 구랍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핵심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도 보니까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울려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며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영화에서 국기하강식은 시대의 촌극으로 다뤄졌지만, 박 대통령만은 이를 ‘나라 사랑’의 의미로 해석했다.

 

정반대로 소비되는 ‘국기에 대한 경례’

 

박 대통령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애국 담론’을 들고 나왔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과 교수는 “이 장면은 개그 코드다. 국가와 개인이 다른 차원이며 국가가 개인을 어떻게 착취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보수는 이 장면을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편을 비롯해 이념 갈등을 일으키려는 일부 보수의 이념에는 사실 실체가 없다. 그럴수록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담론의 차원에서 증명을 해야 한다. 그때 이용되는 게 애국 담론이다. 박 대통령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이 담론을 들고 나오는 이유다.”

 

‘애국 담론’의 가시적인 효과는 있었다. 여론의 양극화다. 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영화를 둘러싸고 ‘이 영화는 누구의 편이냐’는 질문만이 남게 됐다. 노정태 문화평론가는 영화 <변호인>의 ‘국기에 대한 경례’ 장면과 <국제시장>의 ‘국기에 대한 경례’ 장면을 비교했다. 영화 <변호인>에는 고문경찰이 고문을 하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두 영화 모두 ‘국기에 대한 경례’를 긍정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다. 그런데 한 영화는 ‘애국의 아이콘’으로 소비되고 또 한 영화는 ‘진보의 아이콘’으로 소비되고 있다.” 두 영화가 보수-진보 각 진영을 대리하는 구도가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론 양극화는 현실의 여론 지형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은 실제 현실의 여론은 이처럼 극단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40% 정도는 <변호인>을 보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국제시장>을 보면서도 눈물을 흘릴 것이다. 지금 <국제시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은 전체 여론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정치화된 사람들끼리의 논쟁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누구의 편이냐’는 질문은 적절하지 않다. 영화의 흥행에 숨은 여론을 살피기 위해서는, 그보다는 ‘이 영화의 주소비층은 누구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국제시장>의 주요 소비층은 중·장년층이다. 1940년대에 태어나 70대 중반을 넘긴 영화의 주인공 ‘덕수’보다는 덕수를 맏형으로 두었을 법한 40~50대다. 영화 예매사이트 맥스무비에 따르면 <국제시장>의 세대별 예매율 1위는 40대 이상이다. 40대 이상 46%, 30대 34%, 20대 17%, 10대 3% 순이었다. 이는 <변호인>과도 흡사하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한상익 민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제시장>과 <변호인>의 주소비층인 40대 이상에서 50대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연령 효과’와 ‘코호트 효과’의 영향력 아래에 동시에 놓여진 세대다. 연령 효과는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되는 경향을 뜻한다. 반면 청년기에 형성된 정치 성향이 시간이 흘러도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을 코호트 효과라고 한다. 50대는 민주화를 경험한 세대이면서 동시에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가 되는 세대라는 점에서 뚜렷하게 이념 지향성이 잡히는 세대가 아니다. 그렇지만 선거에서만큼은 결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세대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50~54세 투표자의 박근혜 후보 지지율은 54.2%였고, 문재인 후보 지지율은 45.8%였다. 8.4%포인트 차이에 불과했다. 55~59세가 박근혜 후보 71.0%, 문재인 후보 29.0%를 지지한 것에 비하면 현격하게 다르다. 50대 초반과 50대 후반은 전혀 다른 세대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다른 투표 양태를 보였다. 지난 대선에서 50대 초반에서 드러났던 양상이 다음 투표 때는 50대 전반으로 더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상익 연구위원은 “차기 대선에서 변수가 될 50대는 이념 논쟁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세대다. 민주화 세대였다가 나이 들어서 보수화되어 있다. 그 윗세대들처럼 일방적으로 반북으로 치우쳐 있지 않지만, 산업화에 대한 향수도 있는 세대다. 취직, 연금, 정년, 부채 등 경제적인 문제에 민감하고 경제적 성장에도 관심이 있지만 안정적 복지에도 관심이 있는 세대다. 영화 <국제시장>이 이들 세대에게 호소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러나 그게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애국 보수’의 관점은 아닐 것이다”라고 말했다.

 

적절하지 않은 질문 ‘누구 편의 영화냐’

 

보수가 <국제시장>을 자신들의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국가주의’가 아니라 다른 가치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택광 교수는 영화가 현실의 ‘애국 보수 세력’이 담지 못했던 다양한 스펙트럼을 담아냈다고 평가했다. “영화는 보수에 대한 생각을 재편성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시각의 영화이지만, 기존의 보수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화다. 영화에서 중공군, 베트콩은 나오지만 북한군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논란을 피해 북한군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것이다. 가수 ‘남진’이 베트남전에서 활약을 하는 장면도 흥미 있게 볼 수 있다. 남진은 전라도 출신으로 영화에서도 사투리를 쓰고 있는데 이는 호남 사람들도 베트남전에서 국가를 위해 싸웠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주노동자를 등장시키면서 다문화적인 세계도 보여준다. 이 영화가 포괄하고 있는 세계가 진정한 민주주의인가라고 물을 수 있지만, ‘관용’이라는 측면에서 보수가 이 영화를 자신들의 영화로 생각한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자신들과 일치시키는 만큼 ‘관용’을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관용’의 맥락에서 ‘보수의 가치’를 내세우기보다는 ‘애국 보수’라는 보수의 예각을 더 첨예하게 세우는 데 이 영화를 활용했다. 영화의 주요 소비층인 50대가 그러한 ‘보수의 가치’에 동의를 할까. 이택광 교수는 “허구 담론은 현실에서 점점 더 작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상익 연구위원은 “지금의 50대는 윗세대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국제시장>을 둘러싸고 보수 일각에서는 다시 ‘국가주의’를 호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애국 보수의 담론을 넘어 다른 보수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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