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통합진보당 해산이 사법적 사망 선고를 통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사실 국민여론의 사망 선고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헌법재판소 결정은 진보의 위기, 밀어부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앞으로의 경로보다 우선 진보진영 전체의 위기로 진단하고 자성과 혁신의 메시지를 보여야 한다. 새누리당조차 위기가 되면 문제 의원은 제명하거나 혁신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가동하는데 진보진영은 비판의 목소리와 분노의 조직화 이외에 국민들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

ㆍ(3) 전문가들이 보는 회생 방안

 

▲ 헌재의 강제해산 결정 전에 여론의 ‘사망선고’ 이미 예정

북에 대한 입장 명확히 하고 현장 노동자의 신뢰 회복을

급조된 통합보다 혁신이 우선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진보정당의 운명도 벼랑에 서 있다. 정당 해산 결정 이전 이미 ‘소멸’을 걱정할 만큼 여론으로부터 고립된 진보정당의 현주소가 위기의 본질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의 미래 건설은 절박한 과제다. 25일 전문가들은 치열한 자성과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구체적인 회생 방안으로 종북 논란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과 민주적인 정당 운영, 진보적 의제 발굴 등을 제시했다.

 

‘민주의 문’ 앞에서…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운데)가 25일 광주 북구 운정동 5·18 국립민주묘지 민주의

문 앞에서 전 광주시당 관계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광주 | 연합뉴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권영길(73)·김태일(59)·이상돈(63)·조현연(52)·정한울(45)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현장 노동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다시 진보대통합이 이뤄져야 하는 게 급선무다. 현장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을 버린 것은 정파 패권주의로 분열된 것, 민생 정책정당을 버리고 정파놀음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진보대통합은 세 경로로 이뤄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현장 노동자들을 주축으로 한 진보정당 건설이고, 그 다음으로 기존 정의당·노동당 등 진보정당을 통합해야 한다. 또 하나는 학계·문화계가 주도하고 있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건설된 뒤 모두 결합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이를 통해 경제민주화, 비정규직 문제 개선, 보편적 복지, 평화통일 의제를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

 

최소한 당내 운영의 민주화·투명화가 필요하다. 민주노동당이 초기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던 것은 이념보다 정당 운영의 민주성·투명성 때문이었다. 북한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 다음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국민들의 변화를 도외시하고 이념과 당위성만 강조하면 진보정당이 가르치려고 한다는 느낌만 갖게 된다. 전체적으로 자유의 개념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진보세력이 독재정권과 싸우느라 자유의 가치를 도외시했다. 자유의 가치를 보수세력의 전유물로 여겼다. 인류가 발명해낸 진보적 가치가 자유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진보정당은 앞으로 쉽지 않다. 자력 생존이 힘들다. 정의당도 미래가 불투명하다. 노회찬·심상정 두 사람만 바라보고 있는데 이번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두 사람 역시 상처를 입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통합진보당과 합당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이 다른 정당을 보수로 규정하고 스스로 진보라는 가치를 독점하려고 했던 것도 문제다. 야권에선 정계개편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이 포용해야 한다. 진보정당은 새정치연합이라는 제1야당 우산 안으로 들어와 노선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계속 왼쪽으로 가면 집권은 힘들다고 본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사무국장

 

통합진보당 해산이 사법적 사망 선고를 통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사실 국민여론의 사망 선고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헌법재판소 결정은 진보의 위기, 밀어부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앞으로의 경로보다 우선 진보진영 전체의 위기로 진단하고 자성과 혁신의 메시지를 보여야 한다. 새누리당조차 위기가 되면 문제 의원은 제명하거나 혁신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가동하는데 진보진영은 비판의 목소리와 분노의 조직화 이외에 국민들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규탄이나 민주주의 위기로만 몰고 가면 국민들이 위기의 한 축이라고 생각하는 진보진영에 기회를 주지 않는다.

 

조현연 진보정의연구소 소장

 

진보정치 세력들이 이번 사태가 올 때까지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대응해야 한다. 진보정치를 염원한 사람들의 의지가 모여 만든 것이 민주노동당이라면 정당으로 모여야 한다. 그렇다고 현실에 급급해서 급조된 정당은 탄탄하기 어렵다. 20세기 운동권적 버전이나 혁명론을 전제로 한 세계관으로는 국민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국민들 눈높이에 맞는 정당이 나타나야 한다. 진보정당이 현대화·현실화되는 노선을 지향해야 튼튼하게 갈 수 있다고 본다. 단지 흩어져 있다고 모으는 수준이라면 건강한 정당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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