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기투표식 여론조사 ‘반기문 현상’도 기획?
kor_eaiinmedia | 2014-11-08
박송이기자
2002년 8월 8일 재·보선이 끝난 직후의 일이다. 16대 대선을 4개월 남짓 앞두고 대선후보 지지도 여론조사가 시행됐다. 이 여론조사는 처음으로 정몽준 당시 무소속 의원을 대선후보군에 넣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정몽준 의원이 신당 후보로 나설 경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앞서는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월드컵 4강 열기로 축구협회장이었던 정 의원의 인기가 치솟았던 때다. 월드컵 이후 정 의원은 심심치 않게 대선후보 하마평에 오르내리기는 했지만, 군소 후보 중 하나였다.
2002년 8월 8일 재·보선이 끝난 직후의 일이다. 16대 대선을 4개월 남짓 앞두고 대선후보 지지도 여론조사가 시행됐다. 이 여론조사는 처음으로 정몽준 당시 무소속 의원을 대선후보군에 넣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정몽준 의원이 신당 후보로 나설 경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앞서는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월드컵 4강 열기로 축구협회장이었던 정 의원의 인기가 치솟았던 때다. 월드컵 이후 정 의원은 심심치 않게 대선후보 하마평에 오르내리기는 했지만, 군소 후보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여론조사 결과로 정 의원은 단숨에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보도 이후 정치판은 요동쳤다. 정 의원은 16대 대선의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고, 신당 창당과 대선 출마를 본격화했다. 여론조사가 한국 정치판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특종은 언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론조사 업체에도 ‘특종’이 있다. 당시 정몽준 후보를 처음으로 대선후보군에 넣었던 이 여론조사는 업계에서 ‘특종’이었다. 화제를 몰고오는 여론조사는 여론조사 업체에 톡톡한 홍보효과를 가져다준다. 최근에도 특종이 있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지율 39.7%를 기록하며 차기 대권후보 지지도에서 1위를 기록한 여론조사였다. 그러나 ‘특종’이 늘 의미가 있을까.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 여론조사가 ‘인기투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차기 대권후보로 유재석을 넣어도 된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의 말이다. 최소한의 기준도 없었다는 비판이었다.
“이런 식이면 후보에 유재석 넣어도 돼”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은 여론조사로 촉발된 ‘반기문 현상’은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집권 후반기도 아닌 지금 차기 대권후보 지지도를 조사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차기 대권후보 지지도는 현재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집권 2년차인 지금은 현 대통령에 대한 리더십 평가와 이를 바탕으로 한 차기 리더십에 대한 전망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시기다. 두 번째는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은 후보를 여론조사에 넣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정 사무국장은 “2012년 대선을 앞둔 당시에도 여론조사를 실시할 때 출마의사를 밝히지 않았던 안철수 후보를 후보군에 넣느냐 마느냐로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도 당시 안철수 후보는 안철수 현상이라는 게 있었고 적어도 국내에서 활동을 하고 있지 않았나. 그런데 현재 국내에 있지도 않은 사람을 대선후보군에 넣고 조사를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연구자인 김헌태 전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위원장도 정당구조 밖에 있는 사람을 후보군에 넣을 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가에서 정치엘리트를 배출하는 것은 제도적 시스템, 곧 정당이다. 정당 밖에 있는 사람을 정치인으로 상정하고 여론조사를 실시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정당은 한마디로 정치엘리트 충원구조이고, 이건 일종의 사회적 검증시스템이다. 이를 거치지 않은 사람의 경우 본인이 정치적 의사를 밝혔을 때에만 넣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로스 페로처럼 정당 밖에 있던 사람이 자기가 직접 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경우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 넣는다면 이는 그저 오락용에 불과하다.”
기초적인 기준이 없는 여론조사가 난립하다 보니 여론조사가 정치권에서 악용될 수 있다. 여론조사를 전공한 한 보좌관은 “지금 나보고 대권후보 지지도 여론조사를 하라고 하고, 우리 의원을 3위 안에 올려놓으라고 한다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왜곡시킬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군소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국회의원 중에 정치인 지지도 여론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의원이 있다고 말했다. “해당 의원의 경우 자신의 이름을 넣어 여론조사 업체에 여론조사를 굉장히 자주 의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열 번 하면 그 중 몇 번은 결과가 괜찮게 나올 수 있고, 그럼 선거 때 이를 활용하는 것이다.”
집권여당이 정권재창출을 모색하는 과정에서도 악용될 수 있다. 매 정권마다 차기 주자로 밀어주고 싶어한 기획 후보가 있었다. 전두환 정권 때는 노태우 대통령이었고, 노태우 정권 때는 이홍구 전 총리였다. 김영삼 정부 때는 이인제 의원이 기획 후보였고, 김대중 정부 때는 이인제 의원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정운찬 전 총리가 그랬다. 집권여당이 정권재창출을 노리는 과정에서 여론조사 또한 충분히 기획될 수 있다는 것이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말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김무성 대표가 당대표로 선출된 이후 차기 대권후보로 물망에 오르지 않았나. 그러나 개헌 논의 이후에 김무성 대표가 생각보다 힘이 없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친박 비박을 떠나서 집권여당으로서는 유력한 후보가 보이지 않는 지금 차기 주자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반기문 총장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충돌로 비쳐진 개헌 논의가 박근혜 대통령의 승리로 정리될 때 즈음, 반기문 총장이 유력 대권후보 1위로 등극한 것은 우연의 일치일 수 있다.
정당·조사업체·언론 ‘바보들의 합작’
하지만 정치인 여론조사의 기준이 느슨한 여의도 생태계에서 여론조사는 정치권의 기획 아닌 기획이 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여의도 생태계를 보면 정당, 여론조사 업체, 언론이 모두 연결됐다. 만약 여권 일부에서 반기문 영입 기획을 하고 있었다면 그 커넥션 속에서 ‘한 번 넣어 볼까’ ‘넣어 보자’ 이런 식으로 얘기가 오갈 수 있다. 소위 여론조사업체의 정기 여론조사라는 게 점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다 보니까 여의도의 친한 사람들끼리 술 마시면서 ‘누구 한 번 넣어봐라’ 하면 그냥 넣어보게 되는 환경이다. 솔직히 지금 한국 사회 여론조사는 바보들의 잔치다.”
문제는 ‘바보들의 잔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이다. 여론조사가 상시화되면서 이는 일상적 투표 결과로 간주된다. 여론조사가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무당층의 대세추구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김경미 정치발전소 사무국장은 “회전문 같은 건데 언론에서 이를 받아쓰고 부풀려지면서 하나의 소스가 여러 소스의 근거가 된다. 아래로부터의 정치세력을 모아가는 것 없이 특정 후보의 ‘자산 불리기’가 시작될 수 있다. 반 총장의 임기가 2016년까지인데 그때까지 국내정치에 없어도 ‘차기 대권 지지도’ 1위라는 유력 후보로 거론될 수 있다. 각 정당이 그 사이 차분하게 리더십을 만드는 게 아니라 반기문 총장의 인지도를 자기 정당에 유리하게 활용하려고 하면서 들뜬 상태에서 1년을 보내게 된다”고 말했다.
김헌태 전 민주정책연구원 전략위원장은 그의 책 <분노한 대중의 사회>라는 책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대중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지점에 이르게 됐는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의 여론조사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예컨대 최경환 부총리의 경기부양책에 대중들이 얼마나 동의를 하는지 같은 걸 여론조사를 통해 물어야 하지 않나. 부동산 가격이 오를 거라고 생각하는지 내릴 거라고 생각하는지, 만약 다수의 대중들이 부동산 가격이 내릴 거라고 생각하면 최경환의 경기부양책은 잘못된 것이다. 또는 다수의 국민이 가계빚에 시달리는데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볼 수도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지금 이런 걸 조사해서 민심을 읽고 국정과 의정활동에 반영해야 하는데 전혀 아니다”라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를 그대로 쓰는 저널리즘의 문제 또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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