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갈등은 있다. 다만 갈등 수렴이 안 되고 확산만 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요즘 대한민국이 딱 그렇다. 매경이코노미가 2014년 새해를 맞아 조사업체인 마크로밀엠브레인과 손잡고 한국 사회 갈등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현 정치권의 갈등 조정 능력, 갈등 해소를 위한 방안 등을 들여다본 이유다.

‘갈등 공화국’.

 

대한민국의 오늘을 잘 보여주는 슬픈 이름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갈등은 있다. 다만 갈등 수렴이 안 되고 확산만 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요즘 대한민국이 딱 그렇다. 매경이코노미가 2014년 새해를 맞아 조사업체인 마크로밀엠브레인과 손잡고 한국 사회 갈등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현 정치권의 갈등 조정 능력, 갈등 해소를 위한 방안 등을 들여다본 이유다.

 

한국 사회는 갈등 공화국

 

우리 사회가 온갖 분야에서 갈등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설문조사 결과, 국민들이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갈등 정도는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

 

갈등 수준이 ‘심각하다’는 의견이 49.7%에 달한다. ‘매우 심각하다’는 의견 또한 37.8%에 이른다. 8명 중 7명(87.5%)이 ‘한국 사회의 갈등 수준이 심각하다’고 봤다. ‘보통 수준이다’라고 응답한 사람은 10.8%였으며, ‘갈등이 심각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나이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 국민들은 한국 사회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분야를 묻는 질문에는 최근 코레일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연일 이슈가 되고 있는 ‘노사 갈등(29.4%)’이라 응답한 사람이 제일 많았다. ‘이념(23.1%)’과 ‘계층(22.9%)’ 간 갈등도 비교적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갈등 양상은 심하지만 조정은 거의 되지 않고 있다. 설문에 응한 사람들 대부분이 현 정치권이나 정치 시스템의 갈등 조정 역할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정치권의 갈등 조정 역할에 ‘만족한다’는 의견은 3.3%에 불과했으며, ‘그저 그렇다’는 응답은 19%를 차지했다. ‘매우 만족하지 않는다’는 응답(47%)이 절반에 육박하는가 하면 ‘다소 만족하지 않는다(30%)’는 의견도 상당수다. 4명 중 3명 이상(77%)이 현 정치권의 갈등 조정 역할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보였다.

 

사실 정치란 ‘사람이나 집단 간 의견 차이나 이해관계를 둘러싼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사회 갈등 수준이 높아졌을 땐 정치권이 스스로 나서 이를 조정하고 중재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갈등 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결국 우리나라 정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정치권은 갈등 관리 못 해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해야 할 핵심은 청와대와 정부다. 대다수 국민들은 ‘청와대와 정부(49.7%, 중복 허용)’를 사회 전반에 걸친 갈등을 관리해야 할 주체로 꼽았다. ‘언론이 중재해야 한다’는 의견도 30.4%나 된다. 그 뒤를 ‘국회(28.4%)’가 잇는다.

 

국회 개혁을 묻는 질문에 국민들은 ‘면책 등 특권 줄이기(46.5%)’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국회의원 법안 발의와 공청회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21.2%)’는 응답이 뒤를 이었으며, ‘정당 공천과 선거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15.4%)’고 대답한 비율도 꽤 있었다. 최근 일련의 상황들을 보면 정치권의 행보가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이 같은 인식이 그대로 반영됐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정치의 두 가지 기능은 갈등의 대표와 갈등의 조정이다. 국내 정치는 갈등을 대표하는 수준을 넘어 갈등을 동원하는 데 집중되고 있다. 반면 갈등의 조정과 문제 해결 기능이 심각하게 약화되면서 갈등 관리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근혜정부의 갈등 해소 노력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박한 평가를 내렸다. ‘전혀 노력하고 있지 않다’는 비율은 32.4%였으며, ‘별로 노력하고 있지 않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도 35.3%였다. 3명 중 2명(67.7%)이 현 정부가 사회 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다고 응답한 것이다.

 

갈등 해소를 위해 필요한 리더십으론 ‘국민과의 소통 능력(48.6%)’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혔다. ‘판단력과 통찰력(20.1%)’과 ‘도덕성과 청렴성(13.1%)’ ‘강력한 추진력(11.3%)’이 그 다음이다.

 

 

 

개헌하면 미국식 4년 중임제로 

 

나날이 심각해지는 갈등 양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개헌을 통해 권력 구조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가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는 것은 5년 대통령 단임제라는 권력 구조가 더 이상 갈등 조정자로 의미가 없다는 말과 동격이라는 분석에서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가 골자인 현행 체제가 수립된 이후 27년이 지난 지금, 다수결에 의한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현 시대 흐름과 맞지 않다는 목소리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개헌을 통해 권력 구조를 개편해 기본 정치 형태를 바꾼다면 많은 국민들은 ‘미국식 4년 중임제(40.7%)’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현행 5년 단임제 유지(20.5%)’와 ‘의원내각제(17.3%)’순으로 손을 들어줬다.

 

특히 새로운 정치 형태에 대해선 세대별로 큰 차이점을 보였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50대 이상 국민들은 절반 이상(54.2%)이 미국식 4년 중임제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20대의 경우 미국식 4년 중임제(25.4%)와 현행 5년 단임제 유지(24.9%)가 비교적 비슷한 응답률을 보였다. 40대는 4년 중임제(40.8%)를 선호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지만, 의원내각제를 도입해야 한다(20.2%)는 의견 비율은 설문조사를 진행한 전 연령층 중 가장 높았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미국식 4년 중임제를 지지한다. “잦은 선거로 인한 사회비용을 감안할 때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가 일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는 이유다.

 

개헌도 좋지만 갈 길이 멀다. 당장 갈등 해소가 절실하다. 국민들은 ‘시민사회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청와대·정부 내 새로운 기구나 제도를 구성(50.8%)’하는 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법적 강제력을 지닌 새로운 갈등조정위원회 신설’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23.3%로 나타났다. ‘현 제도만으로 충분하지만, 운영 방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16.2%에 달한다.

 

전국 시도 거주 19~70세 1000명 설문

이번 ‘한국 사회의 갈등’에 대한 조사는 리서치 전문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의 온라인 패널 조사를 활용했다. 한국 사회의 갈등 수준과 분야, 현 정치권의 갈등 해결 능력, 갈등 해소를 위한 방법 등을 알아보기 위해 12월 23~24일까지 이틀에 걸쳐 모바일로 이뤄진 이번 설문조사의 최종 응답자는 전국 16개 시도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70세 미만 성인 남녀 1000명이다.

 

패널 참여자의 성별과 연령대는 지역별 인구 비례에 맞게 조정했다. 남성은 전체 1000명의 51%인 510명, 여성은 49%인 490명이 설문조사에 응답했다. 연령대별로는 만 40~49세 성인이 282명으로 가장 많이 참여했다. 지역별로는 서울·경기·인천이 673명(67.3%)으로 가장 많이 참여했으며, 부산·대구·울산·경상도가 182명(18.2%)으로 뒤를 이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39호(14.01.01~01.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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