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싱크탱크와 시민사회 프로그램’은 2006년부터 매년 세계 싱크탱크의 순위를 발표해왔다. 지난 1월28일 발표된 2012년도 순위에서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가 182개국 6603개 싱크탱크 가운데 최고 싱크탱크로 선정되었다.

한국 정책 지식 생태계는 극단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시민사회 싱크탱크의 인력과 예산을 다 합쳐도 삼성경제연구소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정부와 언론의 지원, 대중의 관심이 필요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싱크탱크와 시민사회 프로그램’은 2006년부터 매년 세계 싱크탱크의 순위를 발표해왔다. 지난 1월28일 발표된 2012년도 순위에서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가 182개국 6603개 싱크탱크 가운데 최고 싱크탱크로 선정되었다. 한국 싱크탱크 중에서는 대외경제연구원(56위), 한국개발연구원(58위), 동아시아연구원(65위), 외교안보연구원(79위), 자유기업원(106위) 등이 150위 안에 속했다.

 

그런데 삼성경제연구소는 전체 순위는 물론 지역별·분야별 순위 안에도 없다. 예상 밖의 결과다. 다만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고의 영리 싱크탱크’ 명단에서 발견되었다. 조사에 참여한 1950명 이상의 싱크탱크 전문가들에게 삼성경제연구소는 삼성이라는 ‘기업’이 만든 연구소이자,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있는 삼성그룹 서울 서초동 본관. 노동계 싱크탱크 연구 인력을 다 더해도

삼성경제연구소의 절반도 안 된다. ⓒ시사IN 자료  

 

삼성경제연구소가 세계 싱크탱크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처럼 저평가되는 것에 비해, 국내에서의 평가는 과도하다고 할 정도이다. 2012년 조사에서 2위로 한 계단 내려가기는 했으나, 4년 연속으로 삼성경제연구소는 한 경제 주간지 조사에서 국내 경제·산업 분야 최고 싱크탱크로 선정되었다.

 

정부 부처들의 삼성경제연구소 선호도 유별나다. 2010년 보건복지부는 삼성경제연구소에 ‘미래 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산업 선진화 방안’이라는 연구 용역을 무려 5억원짜리 수의계약으로 발주했다. ‘최고의 연구팀’을 구성한다면 특정 연구기관을 지정할 수 있다는 규정을 근거로 했다고 설명하지만, 결국 ‘삼성경제연구소’라는 이름값 때문이었으리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지난해 행정안전부는 공무원들이 정책 수립 시 참고하는 정부통합 지식행정시스템에 삼성경제연구소를 연결하기 위한 기술적 검토를 진행하다가 특정 기업 편향을 우려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다른 연구소들로 대상을 확대하기도 했다.

 

언론의 삼성경제연구소 의존은 ‘편향’을 넘어 ‘중독’ 수준이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동아일보>의 경우 2001년부터 10년간 삼성경제연구소라는 이름이 3000번 이상 등장했다. 거의 매일 등장한 셈이다. 정책 결정자뿐만 아니라 언론과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이토록 넓고 높은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최근 발표된 한 학술 논문에서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자신의 이익을 공적 담론과 정책으로 전환시키면서 이른바 ‘삼성 공화국’ 현상, 혹은 자본의 국가 지배 현상을 강화시켰다”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삼성경제연구소를 그저 단순한 ‘기업’ 연구소, 그리고 일개 싱크탱크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독 현상’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는 억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싱크탱크는 ‘학계와 정책 결정자,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며, 응용과 기초학문의 성과를 정책 결정자와 대중이 이해하기 쉽고, 신뢰할 만하며, 접근하기 용이한 언어와 형태로 번역하여 독립적인 목소리를 냄으로써 공익에 이바지하는 기구’라고 정의된다. 필요한 자원의 동원은 소액 후원, 고액 기부, 연구 용역, 컨설팅 비용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며, 기업의 계열사 형태나 기업 재단의 지원을 받는 싱크탱크 또한 가능하다. 컨설팅 회사나 관련 기업들과 직접 시장경쟁을 벌이는 싱크탱크 역시 적지 않다. 독일의 베텔스만 재단이나 일본의 노무라 연구소 등이 대표적이다. 헤리티지 재단이나 미국기업연구소, 케이토 연구소 등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들이 친기업·친시장 성향이라는 사실 또한 익히 알려져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그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좀 더 잘 운영되고 있을 뿐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너무 큰 덩치, 경쟁도 검증도 불가능

 

삼성경제연구소가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적 존재’인가에 대한 고민은 삼성경제연구소와 삼성의 관계가 아니라 한국의 정책 지식 생태계, 좁게는 싱크탱크 생태계 차원에서 이뤄질 필요가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석·박사급 연구원 수가 100명을 넘는 데 비해, 시민사회 싱크탱크들의 상근 연구원 수는 평균 4명에 불과하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해 영업이익이 1500억원이 넘고 자산이 1000억원이 넘는 데 비해, 1년 예산이 1억원 미만인 시민사회 싱크탱크가 전체의 30% 이상이다. <동아일보>에 10년간 33개 시민사회 싱크탱크가 보도된 건수는 고작 441건인데, 삼성경제연구소 한 곳이 2700건이 넘었다. 사실상 비교가 불가능하고 무의미한, 절대적인 불균형 상태다.

 

이 정도로 불균형한 생태계는 생존 자체가 어렵다. 한국의 정책 지식 생태계야말로 가장 극단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인 셈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등 노동계 싱크탱크들 전체의 연구 인력을 다 더해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 인력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예산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독일의 베텔스만 재단이 크다고 하지만, 독일 노총의 한스뵈클러 재단이 운영하는 경제사회연구소도 규모와 영향력, 전문성 모든 면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다. 이렇듯 한국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진보와 보수, 노동과 자본, 국가와 시민사회 싱크탱크 사이의 치열한 아이디어 전쟁은 그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그렇다면 경쟁이 아닌 최소한의 검증은 가능한가?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가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성공하는 세상’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과잉 학력론을 주장하자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에 보고서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한 장문의 비판 글이 게재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재반박을 하지 않았고, 다른 언론들은 비판 글에 무관심했다. <한겨레>가 2010년부터 1년간 진행했던 ‘싱크탱크 맞대면’이라는 논쟁 지면에도 삼성경제연구소는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괜한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쟁은커녕 논쟁과 검증도 이뤄지지 않는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 보고서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다. 사실 학계의 기준을 싱크탱크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여러모로 무리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싱크탱크 연구물의 질에 대한 논란이 빚어지곤 한다. 그때마다 싱크탱크 연구자들은 “우리들이야말로 가장 혹독한 ‘동료 평가(peer review)’를 매일매일 받는다. 이곳은 전쟁터이자 시장터다”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한국의 싱크탱크 사이에 동료(의식)도, 철저한 검증도, 치열한 경쟁도 발견하기 어렵다. 이러한 왜곡의 정점에 삼성경제연구소가 서 있는 셈이다.

 

결국 ‘균형’이 필요하다. 헤리티지 재단을 필두로 한 보수 싱크탱크의 위력이 너무나 커졌을 때, 미국 진보 진영은 미국진보센터를 만들었고 진보 싱크탱크 네트워크를 강화함으로써 균형을 맞추려 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시도가 계속되었지만, 절대적인 자원 부족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싱크탱크 간 연대와 협력은 시도되지만 정부의 지원이나 언론의 관심, 대중의 지지는 태부족이다. 정부나 정당이 가진 정책 자원의 배분, 경쟁과 검증 강화를 위한 언론의 노력 없이 싱크탱크 생태계의 균형 발전은 불가능하다. 삼성경제연구소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연구소가 클 수 있도록 하는 전략적 자원 배분이 필요하다. 하지만 궁금하다. 정말 삼성경제연구소가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제대로 된 독립 민간 싱크탱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삼성’경제연구소에 대한 관심을 넘어 ‘연구’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대안적 지식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얼마나 절실히 느끼는지. <한겨레> 창간이나 <뉴스타파> <국민TV> 출범과 같은 대중적 열망이 대안 싱크탱크 설립으로 모아질 때야 비로소 ‘삼성경제연구소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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